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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한 가지 목적도 달성하지 못해

여범준은 고다정의 얼굴이 평온해지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는 위엄 있게 사람들을 훑어보며 그중 승복하지 않는 표정들도 놓치지 않았다.

“모두 보셨다시피 우리 손자며느리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해 회사에 불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손자며느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두 번의 기밀 유출로 인해 입은 손실은 우리 여씨 가문에서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누군가가 배후에서 우리 손자며느리를 모함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 여씨 가문에서는 그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고다정은 자기편을 들어주는 여범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덫에 걸려 최면 당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가 더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그리고 하동훈이 그녀가 한 일을 다 파악하고 있는 듯한데, 이 남자가 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회의가 끝난 후, 고다정은 한가득 의혹을 안고 여범준과 여진성을 따라 나갔다.

하동훈은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이사회에서 그는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원래 가지고 있는 증거로 고다정을 처리한 후 다른 이사들을 선동해 여준재 대표이사 해임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이사 자리까지 내놓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씨 가문의 그 늙다리가 모든 일을 떠안아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될 줄이야.

하동훈의 분노에 대해 고다정은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무실에 돌아온 후, 여범준은 옆에서 침묵하는 두 사람, 특히 기분이 극도로 가라앉은 고다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얼마나 자책하고 있을지 알았다.

“진성아, 다정이가 회사에 두 번 손실을 입혔지만 너도 다정이 상황을 봤잖아. 누군가에게 당한 거야. 너...”

여범준은 고다정을 달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옆 사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여진성도 그의 뜻을 알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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