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준의 설득이 전혀 귀에 와닿지 않는 고다정은 낮게 부르짖으며 구남준을 매섭게 쳐다봤다.그녀는 언제부턴가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조급했지만 가능한 한 진정하려고 애쓰는 얼굴이었다. 구남준은 그런 그녀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하게 되었다.“대표님이 사고 난 건... 닷새 전입니다.”“닷새 전?”믿을 수 없다는 듯 구남준을 쳐다보다 고다정은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엄청난 충격에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그걸 본 구남준은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라앉는 몸을 부축하고는 그녀를 불렀다.“작은 사모님!”그가 부르는 외침에도 고다정은 깨어나지 못하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구남준은 황급히 그녀를 들어서 안고 문밖으로 향해 뛰쳐나가며 소리쳤다.“거기 누가 없어? 얼른 여기로 와 봐!”잠시 후, 안젤로는 고다정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받고 팀원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달려왔다.또 영문 모를 혼수상태에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 줄 알았는데, 검사해 보니 그게 아니어서 그는 한시름 놓았다.“고다정 씨는 제가 예상했던 그런 혼수상태는 아니고 그저 일시적인 충격으로 실신한 겁니다. 좀 있으면 곧 깨어날 겁니다.”안젤로는 고다정이 대체 어떤 충격을 받아 쓰러지기까지 했는지 궁금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한테는 알지 말아야 할 일은 모르는 게 원칙이었다.검사를 마치자 안젤로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그러자 방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구남준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고다정을 살펴보고는 휴대전화를 들고 소파에 가서 앉아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작은 사모님이 대표님 실종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쪽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대표님을 찾았나요?’‘들킨 거야?!’간결한 네 글자로 답장이 왔다.그리고 구남준이 다시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조급한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저편에서는 불쾌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예요? 보스가 분명 이 일을 함구하라 했잖아요.”“처음
구남준이 여준재의 말로 자신을 가로막자 고다정은 바로 호통쳤다.“하지만 남준 씨 또한 잊지 말아요. 준재 씨가 자리에 없으면 뭐든 내 말에 따라야 한다고 했어요!”구남준은 말문이 막혀 진퇴양난의 표정이었다.이어서 고다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또 귓전에 울렸다.“당장 비켜서요! 이건 명령이에요! 지금 바로 준재 씨가 사고 난 곳에 데려다줘요!”“하지만 작은 사모님, 저 진짜 그럴 수 없어요. 곤란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구남준은 거의 빌다시피 하며 눈빛은 여전히 완고했다.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그를 보며 고다정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한테 삿대질했다.“내가 다시 한번 물을게요. 진짜 날 안 데리고 갈 거예요?”입을 꾹 다물고 있는 구남준은 문어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명확했다.그걸 모를 리 없는 고다정은 오히려 짧게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래요? 알겠어요. 내 앞을 가로막으면 내가 아무 방법이 없을 줄 알았어요?”이윽고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누구한테 전화를 걸었다.“화영 씨, 사람 데리고 여기 안방에 좀 와줘요.”그녀의 의도를 알아챈 구남준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기까지가 최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등 뒤에서는 워커 신발이 바닥에 힘 있게 부딪히는 쿵쿵하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화영은 팀원들을 데리고 방 앞을 둘러쌌다.그녀는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구남준과 아직 방문을 나서지 못한 채 잔뜩 노여워하는 고다정을 번갈아 보고, 의혹에 찬 눈길로 고다정한테 물었다.“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화영 씨, 이 사람 잡아요, 당장.”고다정은 구남준을 가리키며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갑작스러운 명령에 화영은 약간 어리둥절하게 구남준을 쳐다봤지만 지체 없이 명령대로 움직였다.“네, 알겠습니다.”자신이 화영한테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똑똑히 아는 구남준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낮게 얘기했다.“명령 거둬들이시죠,
그 젊은 남자를 보는 순간 고다정은 놀란 마음에 속이 꿈틀하며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였다.이때 구남준이 헬기에서 내리며 그 남자를 보더니 좀 뜻밖이라는 눈치로 말을 걸었다.“여명호 씨, 당신이 직접 왔어요?”그러고는 그 남자를 가리키며 고다정한테 정중하게 소개를 드렸다.“작은 사모님, 이분은 여명호 씨라고 대표님 최측근 심복입니다. 계속 은밀히 대표님의 안전을 책임지고 대표님이 나서기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여명호라는 젊은 남자는 바로 여태껏 구남준과 통화를 해왔던 그 의문의 남자였다. 그는 지금 구남준의 말을 듣고 못마땅한 얼굴로 눈썹을 찡그리며 고다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작은 사모님은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여기는 저희의 통제를 벗어난 구역입니다. 언제든지 위험이 생길 수 있어요. 만일의 사태에 저희가 작은 사모님의 안전을 온전히 보장 못할 수도 있습니다.”그의 말은 고다정이 지금 찾아온 것은 폐 끼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자신의 도래를 아니꼽게 생각한다는 것을 고다정도 충분히 눈치챘지만 그녀도 이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라 수려한 미간을 좁히며 냉랭하게 그의 말에 받아쳤다.“저도 제 안전을 책임질 사람을 데리고 왔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절 고려할 필요 없습니다.”“허, 작은 사모님께서 말 참 쉽게 하시네요. 사모님의 안위에 문제가 생겼는데 저희가 손 놓고 있으란 말씀인가요? 그랬다간 보스가 나중에 돌아와서 저희한테 어떤 큰 벌을 내릴지 생각은 해봤어요?”여명호는 콧방귀를 뀌며 고다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쏘아붙였다.고다정은 낯빛이 확 가라앉으며 그의 시선을 마주하였다.“내가 그러라고 했으니까 준재 씨가 돌아오면 그쪽 사람들 난처할 일 없게 제가 잘 설득할 거예요. 지금 그쪽 급선무는 준재 씨부터 찾는 겁니다. 저 포함해서, 다른 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두 사람의 눈빛은 한 치도 양보 없이 공중에서 찌르르 부딪히며 불꽃을 튕겼다.주변 공기가 점점 살벌해지자 구남준
고다정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비올라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전 준재 씨 약혼녀예요. 약혼자가 일이 생겼는데 옆에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제가 방해된다면 저를 상관 안 하면 그만이에요. 저도 사람 데리고 왔으니까.”“당신이 말한 사람이 저 뒤에 있는 저 사람들이에요?”비올라는 고다정의 뒤에 서있는 화영 등을 보며 조소적인 웃음을 내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고다정의 얼굴에 떨구며 빈정거렸다.“준재 씨를 추격한 테러범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법자들이에요. 저런 어정쩡한 사람을 몇 명 데리고 준재 씨를 찾기는커녕 당신 하나 보호하는 것도 힘들걸요? 그 사람들 손에 뭐가 있는지 알아요? 권총 하나 갖고 덤비는 인간들이 아니에요. 더 큰 열병기도 갖고 있다고요. 알겠어요?!”고다정은 그녀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더 큰 열병기...”“그래요. 그 사람들 손에는 포탄 같은 것도 있어요. 아니면 준재 씨가 타고 있던 배가 왜 침몰했겠어요?”비올라는 차가운 말투로 설명했다. 그녀는 한 걸음 나아가서 고다정한테 가까이 다가가며 더 날카롭게 고다정을 깎아내렸다.“당신이 데리고 온 이 사람들이 당신을 포탄 아래에서 안전히 도망치게 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의 위장술을 간파할 수는 있어요?”“......”쏟아지는 질문에 고다정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는 그녀를 보자 비올라는 마치 승리한 여왕처럼 목을 빳빳이 쳐들고 고다정을 내리깔아 보며 일갈하였다.“그것 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여준재 약혼녀라는 타이틀이 뭐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인 줄 알았나 봐요? 그걸로만 준재 씨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허, 순진하기는... 그 테러범들이 더 원하는 게 당신을 잡는 거예요. 그러면 준재 씨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으니까.”말을 마치고 그녀는 팔을 뻗어 고다정의 어깨를 힘껏 밀쳤다.그녀의 말에 얼이 나가 방심하고 있었던 고다정은 그녀한테 밀려 한 발 크게 뒷걸음질을 쳤다.그러자 화영과 소담이 얼른 다가가
문을 나서니 마침 비올라가 사람을 한 무리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급히 나오고 있었다.“비올라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큰일났어요. 고다정 씨가 여기 있다는 소식이 어떻게 새 나갔는지 다들 찾고 난리인데, 내가 안 와볼 수가 있어야죠.”비올라는 퉁명스럽게 말을 꺼내며 마지못해 관심하는 척하는 연기를 제대로 펼쳤다.여자의 천 길 속내를 알 리 없는 구남준은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저도 방금 소식을 듣고 작은 사모님한테 알리러 가던 참이었어요. 비올라 씨가 철수를 도와주면 저야말로 감사하죠.”“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빨리 고다정 씨한테로 가요. 지금 바로 떠나야 하니까.”비올라가 귀찮다는 듯 구남준을 재촉하자 그는 알겠다고 하며 그녀를 데리고 고다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구남준이 여행 가방을 들고 찾아온 모습과 뒤에 비올라까지 따라온 걸 보고 고다정은 의아하여 물었다.“어떻게 된 거...”“작은 사모님, 우리 빨리 떠나야 합니다.”구남준은 조급하게 말을 꺼내며 고개를 돌려 한창 짐 정리 중인 소담을 저지했다.“그만 정리하고 꺼낸 옷을 다시 도로 넣어요. 우리 지금 떠나야 해요.”고다정은 그의 말을 따라잡지 못하고 물었다.“왜 그래야 하죠?”“흥, 왜라뇨? 빨리 가라는데 말 안 듣고 버틴 사람이 누군데요? 여기 이제 당신이 떴다는 소식이 다 퍼졌어요. 사방에서 지금 당신을 잡겠다고 들쑤시고 다닌단 말이에요. 당신을 잡아서 준재 씨를 끌어내려고!”비올라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고다정한테 눈을 부라리며 말투는 더더욱 거침없었다.“내가 전에 했던 얘기들이 그저 농담인 줄 알았어요? 여기 있다간 뒈지기 딱 좋다고요!”그녀의 비수 같은 질책들이 날아와 고다정한테 사정없이 꽂혔지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그녀는 사태가 급히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소담한테 짐을 다시 꾸리라고 말했다.대략 5분 뒤, 일행은 주변을 경계하며 호텔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오르자마자 비올라는 굳은 표정으로 고다정한테 철수 계획을 얘기했다.“나도 감시당하
고다정의 물음에 구남준은 몇 초간 말이 없다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대표님이 비올라 씨와의 협력관계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유럽에는 십여 년간 지하 세계를 통치하고 있는 규모가 방대한 암 세력이 존재합니다.”“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 내에 야심이 꿈틀거리는 자들이 나타났죠. 대표님은 그 방대한 세력의 배후이자 가장 큰 보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표님을 쫓는 거예요.”다만 그는 몇 가지 사실을 고다정한테 숨겼다.이번 반란 세력은 누군가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 여준재는 그 배후에 대한 정보를 일부 취득하여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는 척하며 더 큰 플랜을 꾸미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는 고다정은 구남준의 얘기를 듣자마자 구겨졌던 미간이 더 세게 좁혀졌다. 그렇지 않아도 조마조마했는데 이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저도 몰래 최악의 경우를 머릿속에 그리며 안절부절못했다.“그러다 준재 씨가 그들한테 잡히면 어떡해요?”“대표님이 만약 잡힌다면, 가벼운 경우 대표님을 협박해 비올라 씨더러 유럽의 지하 각 세력권을 내놓으라 할 수도 있고, 심하면 아마 대표님이...”그는 말끝을 흐렸지만 고다정은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삽시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구남준은 그녀의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한 후 얼른 위로했다.“작은 사모님, 걱정 마세요. 대표님은 절대 그들한테 잡힐 일이 없을 겁니다.”그의 말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고다정은 걱정에 사로잡혀 두 손을 으스러지게 맞잡았다.“그런 절대적인 말이 어딨어요. 준재 씨가 일 생긴 지 이렇게 오랜데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상황이 더 안 좋을지도 몰라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부터 펑 하는 굉음이 들려왔고 이어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무언가에 세게 부딪혔다. 그 후 차가 심하게 휘청이더니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이 측면으로 뒹굴기 시작했다.소담과 화영은 소리가 나는 순간부터 얼굴이 굳어졌다.“로켓포!”두 사람은 이구동
상처는 10분도 안 되어 처치를 마치고 곱게 싸매졌다.고다정은 남은 약 가루를 보며 다친 경호원들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구남준을 불러 분부했다.“여기 외상 치료용 약 가루가 좀 있는데 다른 부상자한테 가져가서 쓰고 간단히 싸매라고 하세요.”“그럼 제가 걔들 대신해서 작은 사모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야겠네요.”구남준은 약봉지를 손에 들고 고마운 눈으로 고다정을 쳐다봤다.고다정은 어설프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미안해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저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지. 저들이 아니었으면 방금 제가 저기서 도망쳐 나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제멋대로 굴었어요.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얼른 약 가져가세요.”이 말에 구남준은 고다정이 자책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녀를 위로할 겨를이 없어 그는 소담한테 눈길을 보내고는 약을 가지고 부상당한 경호원들한테로 걸어갔다.구남준이 보내는 눈빛 신호를 받은 소담은 기분이 저조하여 어깨를 축 떨어뜨린 고다정을 보며 어떤 위로를 건넬까,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작은 사모님,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한테 일이 생겨 걱정되어 찾아 나서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그저 그들이 이렇게 나올 줄 예측 못한 것뿐입니다. 상처만 난 것도 너무 다행입니다. 저희가 예전에 임무 수행할 때 죽는 건 아주 자주 보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우리 같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애써 자신을 위로하려는 그녀의 마음을 고다정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고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자기는 괜찮다고 대답했다.그때 구남준이 굳은 표정으로 밖에서 들어왔다.“작은 사모님,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왜요?”고다정은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바라봤다.그녀는 이곳이 당분간 꽤 안전해 보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그들을 구조할 사람들이 도착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소담과 화영도 의문을 품고 구남준을 쳐다봤다.구남준은 휴대전화를 그녀들
그들이 어디 있는지 가늠은 안 됐지만 다행히 구남준의 휴대전화에는 GPS 기능이 있었다.그가 보낸 위치 좌표에 근거해 여명호는 한 시간 뒤에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와보니 고다정 옆에는 소담과 구남준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꼴이 모두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여명호는 이런 상황에 표정이 굳어졌다.어젯밤에 어떤 격전이 벌어졌을지 안 보고도 눈앞에 훤했다.고다정과 구남준은 그를 보고 끝내 한숨을 돌렸다.특히 고다정은 전에 그와의 불쾌했던 대화를 상기할 새도 없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에게 조급하게 물었다.“여명호 씨, 사람 몇 명 데리고 왔어요? 사람 좀 보내서 제 호위팀을 찾아볼 수 없나요? 어제 제가 도피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벌어보겠다고 뒤에서 엄호를 맡다가 다른 쪽으로 놈들을 유인했을 거예요.”“사람은 제가 대신 찾아볼 수 있지만, 조건이 있어요. 지금 당장 귀국하도록 하세요. 여기 남아서 더 민폐 끼치지 말고요.”여명호의 말은 얄짤없고 무례했다.고다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이때 곁에서 지켜보던 구남준은 고다정이 화났을까 봐 얼른 나서서 대신 해명했다. “작은 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여명호 씨가 말은 이렇게 해도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주요 세력이 국내에 있다 보니 국내에서 사모님을 더 잘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돌아가라 한 거예요. 그럴 뿐만 아니라 국내는 여기보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심해서 더 안전합니다. 그들이 뭘 하려고 해도 여기보다 더 신중히 움직여야 할 것이고요.”그의 말에 고다정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제안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여준재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곳을 떠난다면 그녀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제 안전 때문에 그러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난 준재 씨가 걱정돼서 안 되겠어요. 제발 날 여기 있게 하면 안 돼요? 약속드릴게요. 앞으로 모든 것에 당신 말을 따를게요. 문밖에 나가지 말라면 절대 안 나갈게요!”고다정은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