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어디 있는지 가늠은 안 됐지만 다행히 구남준의 휴대전화에는 GPS 기능이 있었다.그가 보낸 위치 좌표에 근거해 여명호는 한 시간 뒤에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와보니 고다정 옆에는 소담과 구남준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꼴이 모두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여명호는 이런 상황에 표정이 굳어졌다.어젯밤에 어떤 격전이 벌어졌을지 안 보고도 눈앞에 훤했다.고다정과 구남준은 그를 보고 끝내 한숨을 돌렸다.특히 고다정은 전에 그와의 불쾌했던 대화를 상기할 새도 없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에게 조급하게 물었다.“여명호 씨, 사람 몇 명 데리고 왔어요? 사람 좀 보내서 제 호위팀을 찾아볼 수 없나요? 어제 제가 도피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벌어보겠다고 뒤에서 엄호를 맡다가 다른 쪽으로 놈들을 유인했을 거예요.”“사람은 제가 대신 찾아볼 수 있지만, 조건이 있어요. 지금 당장 귀국하도록 하세요. 여기 남아서 더 민폐 끼치지 말고요.”여명호의 말은 얄짤없고 무례했다.고다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이때 곁에서 지켜보던 구남준은 고다정이 화났을까 봐 얼른 나서서 대신 해명했다. “작은 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여명호 씨가 말은 이렇게 해도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주요 세력이 국내에 있다 보니 국내에서 사모님을 더 잘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돌아가라 한 거예요. 그럴 뿐만 아니라 국내는 여기보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심해서 더 안전합니다. 그들이 뭘 하려고 해도 여기보다 더 신중히 움직여야 할 것이고요.”그의 말에 고다정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제안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여준재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곳을 떠난다면 그녀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제 안전 때문에 그러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난 준재 씨가 걱정돼서 안 되겠어요. 제발 날 여기 있게 하면 안 돼요? 약속드릴게요. 앞으로 모든 것에 당신 말을 따를게요. 문밖에 나가지 말라면 절대 안 나갈게요!”고다정은 남아
돌아가는 것에 동의한 고다정은 구남준한테 잊지 않고 부탁했다.“준재 씨 찾으면 반드시 저한테 즉시 알려줘요. 될 수 있으면 준재 씨가 저한테 직접 연락을 줬으면 좋겠어요.”“안심하세요, 작은 사모님. 대표님한테 소식 있으면 첫 번째로 알려드리겠습니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그리하여 30분 뒤, 고다정은 귀국하는 헬기에 올랐다.하늘 위로 점점 날아올라 작은 점 하나로 변해버린 그 헬기를 바라보며 구남준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여명호는 그런 모습을 깨고소하게 보다가 불쾌해하는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내가 진작 얘기했잖아요. 저 여자 데려오지 말라고. 골칫덩어리야, 아주.”“이 여자, 저 여자가 뭡니까? 호칭 똑바로 해요, 저분은 작은 사모님이에요. 당신, 요 며칠 새에 작은 사모님한테 너무 무례했어요!”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구남준은 여명호한테 못마땅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고다정을 위해 몇 마디 변호했다.“그리고 작은 사모님이 대표님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자꾸 이런 태도로 작은 사모님을 대하면 당신이 대표님과 아무리 형, 아우 하는 사이래도 대표님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흥, 보스는 이깟 일로 날 뭐라 하지 않아.”여명호는 그의 말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나중에 이 일로 여준재에 의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자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여명호를 더는 설득할 생각이 없어 구남준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심각한 표정으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어제 우리가 여기 도착해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비올라 씨와 당신밖에 없는데, 그동안 소식이 새 나간 거면 우리 중에 첩자가 있는 게 분명해요.”그는 말끝으로 가며 점점 차가운 눈빛으로 변했다. 말하는 포스에 위엄이 실려있었다.이때 여명호의 얼굴에도 살기가 흘러넘쳤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잇새로 말을 뱉었다.“전에 한번 대청소를 했는데 아직 덜 걸러진 모양이에요. 내가 돌아
계속하여 앞으로 뛰어가는 집사를 보며 고다정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에 바짝 긴장했던 정신 줄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좀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씻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작은 사모님, 몸에 상처를 좀 봐 드리려고 제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들어오세요.”고다정은 머리를 말리던 타월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그러자마자 집사가 의사를 데리고 방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의사는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진 선생님,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제가 방금 병원에서 듣기로 제란원에 진찰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자진해 왔어요. 준재는요?”진현준은 말하는 동안 방안을 둘러보며 여준재를 찾았다.그의 모습을 보니 여준재한테 일이 생긴 것을 모르고 있는 눈치라, 고다정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준재 씨는 아직 해외에 있어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현준은 다짜고짜 캐물었다.“고 선생님, 준재가 해외에서 일 생긴 거 아니죠?”“......”고다정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그녀가 보인 반응에 대충 감 잡은 진현준은 잠시 고민하다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말하기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돼요. 좀 이상해서 물어본 거예요. YS그룹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준재가 얼굴을 전혀 비추지 않는 게.”“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진 선생님. 그런데 준재 씨 지금 상황은 제가 좀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이해해 주세요.”고다정은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했다.그러자 진현준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아까 집사님한테서 들었는데, 고 선생님이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다면서요. 그런데 왜 지금 봐서는 괜찮은 거 같은데요?”“저는 괜찮고, 다른 사람의 피에요. 제가 피가 잔뜩 묻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집사님이 오해하신 것 같아요. 너무 놀라 저한테 물을 새도 없이 급하게 병원에 호출했나 봐요.”이 이야기가 나오자 고다정은 또다시 실소를 금치 못했다.그러고 나서
해외에는 구남준도 있지만, 다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열성을 다해 여준재를 찾아줄 건지에 대해 심해영은 의문을 품었다.근심이 내리지 않는 그녀의 안색을 보고 여진성은 아내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준재를 따르는 이상 우리는 그들을 믿어줘야 해요. 당신, 준재 안목을 못 믿는 거예요?”“누가 준재를 못 믿는대요?!”심해영은 무의식적으로 반박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뭐라 말하려고 했다가 그저 입을 다물기로 했다.아들을 믿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함께 고스란히 흘려보낸 세월만큼이나 남편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두터웠기 때문이다.고다정은 심해영이 더 말을 안 하자 조금 전의 화제가 일단락되었단 걸 알고, 그제야 회사가 부딪힌 문제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제가 돌아올 때 남준 씨가 그룹에 문제가 생겼다고 저한테 돌아와서 회사를 안정시키는 데 힘 써보지 않겠냐고 하던데, 혹시 어떤 상황인지 아버님께서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여진성은 흔쾌히 고다정이 알고 싶어하는 회사 사정에 대해 대략 설명했다.그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구남준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고다정이 너무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회사에서 일을 좀 맡아 하게 해달라고 구남준이 요청했다. 고다정의 체내에 있는 독소도 아직 제거를 못했는데 여준재의 부재에 대해 심려가 너무 깊으면 발작을 또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그 사실을 고다정은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여진성의 설명을 듣고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YS그룹의 핵심 자료들과 대외비로 관리되고 있는 프로젝트 관련 문서들이 한꺼번에 유출이 됐다니. 그 손실을 따지면 천문학적 수준이었다.고다정의 마음을 알아채고 여진성은 도리어 그녀를 위로했다.“매우 심각한 상황이긴 하였지만 그동안에 거의 처리되어 안정을 찾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처리가 돼요? 진짜 그 사람들한테 6조 원을 줬단 말씀이신가요?”고다정은 흠칫 놀랐다가 의문스레 여진성을
예상했던 대로, 고다정이 돌아오니 별장 안의 분위기는 더없이 신나고 가벼워졌다.두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기뻐서 날뛰었다.“엄마, 끝내 돌아왔네요.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어요. 아참, 아빠는요? 아빠는 왜 안 보여요?”하준이는 문밖을 내다보며 여준재의 그림자라도 있는지 살폈다.고다정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아빠는 해외에서 아직 일이 채 끝나지 않아서 오지 못했어. 하지만 너희들한테 주라고 선물을 보내왔지.”사실 이 선물들은 그녀와 여준재가 그전에 유럽 여행을 할 때 미리 사 둔 것들이었다. 하윤이는 별생각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하지만 하준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의혹에 찬 눈길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 고다정을 바라봤다.“엄마, 아빠가 정말 일이 있어서 외국에 있는 거 맞아요? 무슨 일인데 국내에 있는 회사보다 더 중요해요?”이 말에 고다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개를 숙여 하준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마주치니 저도 몰래 당황스러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눈길을 피하면 이 영특한 아이가 꼭 낌새를 차릴 거라는 걸 알고 억지로 시선을 고정하며 침착해 보이는 말투로 물음에 대답했다.“당연히 중요하지. 그리고 회사는 할아버지가 계시잖아. 그래서 아빠는 따로 볼일을 보시는 거야... 됐어, 너도 얼른 가서 선물이나 뜯어봐, 네 동생처럼. 이제 젖을 금방 뗀 애가 왜 이렇게 애어른 행세니.”“아빠 엄마가 항상 시름이 안 놓이게 하니까 그렇죠.”하준은 코를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고다정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울지도 웃지도 못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하준이는 돌아서서 선물을 고르러 갔다.그제서야 틈이 생긴 고다정은 외할머니 곁에 가서 그녀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는지 물었다.“너희들이 집에 없는 동안 우린 다 잘 지냈어. 은미랑 준재 어머니가 자주 보러오기도 했고. 별일 없었으니까 걱정 말거라.”강말숙은 자애
이틀 동안, 고다정은 집에서 두 아이와 외할머니를 모셨다. 이 또한 한편으로는 국내 상황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그러던 중, 임은미가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잠시 담화를 나눈 뒤 고다정은 임은미의 배를 보며 물었다.“아이는...”“없어졌어. 네가 떠난 지 보름 만에 나는 이 아이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임은미는 덤덤하게 이 일을 꺼냈다. 고다정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파졌다.고다정은 임은미의 성격으로 그때 당시 이렇게 평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안타까워했다.“미안해, 이렇게 큰일을 겪을 때 나는 네 곁에 없었네.”“아니야. 너도 중요한 일이 있었잖아. 뭘 사과까지 해. 그리고 너도 채성휘에게 나를 돌바달라고 부탁했잖아.”임은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고다정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동안 임은미와 채성휘가 어떻게 지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너랑 채 선생님은...”“아무 사이도 아니야.”고다정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눈치챘던 임은미는 급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말이다.고다정은 아쉬워하는 척하면서 넘어갔다.“그렇구나. 아쉽네! 나는 두 사람이 잘 됐으면 했는데.”“내가 어떤 남자를 찾던 무조건 성휘 씨는 아니야.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너무 많아. 내 이상형이랑 너무 거리가 멀어. 내가 그에게 시집간다면 그야말로 내 고생길이 열리는 거야.”임은미는 채성휘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투덜거렸다. 그때 고다정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임은미는 분명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았다.만약 정말 관심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잘 지내는 것 같으니 마음이 놓이네.”고다정은 빙그레 웃으며 임은미를 바라봤다. 그러자 임은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어딜 봐서 우리가 잘 지내는 것 같아?”“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채 선생님의 단점을 그렇게 많이 알 수 있
김창석과 채성휘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걱정하였다.“저도 외국에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제가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라고 할까요?”“아니면 제가 스승님에게 사람을 보내 찾아달라고 할까요?”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다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이 일은 결국 여준재와 관련된 일이기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김창석과 채성휘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고 했다. 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이어 특효약에 관해 이야기했다.“전에 주신 아이디어에 따라 기술적인 난제를 모두 풀었어요. 이제 곧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마침 고 선생님이 돌아오셨으니 우리 함께 손을 잡으면 빨리 특효약을 출시시킬 수 있을 겁니다.”채성휘는 기대 가득 찬 눈빛으로 고다정을 보며 말했다. 그는 특효약 출시를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환자들도 싼 가격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더는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다정도 그런 채성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지금 그녀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고다정은 여준재를 대신해 회사를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여진성과도 회사에 가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래서 결국 고다정은 미안한 표정으로 채성휘를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줘야 할 것 같네요. 준재 씨가 돌아오지 않았고 YS그룹쪽도 지금 많이 어수선해요. 준재 씨를 도와 회사를 지키고 싶습니다. 실험실 쪽은 두 분이 계셔서 제가 정말 든든해요. 다만 제가 없어서 진도가 느려질 수는 있지만 회사 일을 잘 처리하고 야근을 해가면서라도 진도를 따라잡을게요.”“괜찮아요. YS그룹쪽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입니다. 고 선생님, 먼저 가서 처리하세요.채성휘가 넓은 야량으로 이해하자 고다정은 무척 고마웠다. 오히려 김창석에게서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고다정이 이 기간에 별장 쪽 실험실에 갈 수 없다면 그는 아마 사람들에게 손을 쓰라고 알릴 것이
넓은 회의실에는 YS그룹 고위층들로 꽉 찼다. 그들은 여진성이 고다정을 데리고 들어오자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언짢아했다.비록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그들은 마지못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회장님, 작은 사모님. 오셨습니까”여진성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다들 다정이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소개하지 않을게요. 다정 씨, 저쪽에 앉으세요.”말을 마치자 여진성은 멀지 않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진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를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은 여진성이 곧 어떤 계획을 발표할지 모두 눈치를 챘다.그리고 곧이어 그 추측 또한 진실로 입증되었다.여진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오늘 회의의 주제를 짚으며 말했다.“오늘 회의는 업무 외에 다른 한 가지 일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오늘부로 고다정 씨가 회사 사업부를 인수하고 사업부의 모든 기획을 책임질 거예요. 혹시 반대의견 있는 분?”이 말이 나오자 모두 갸우뚱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은 회장님이 이런 결정을 한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전 사업부 책임자에게 치명적인 단점은 없었으나 업무 태도가 성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 기물 유출 문제까지 더해져 여진성은 당연히 중요한 부서를 외부인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다.고다정은 여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여진성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다.회의는 한 시간 반 정도 열렸다. 고다정이 빼곡히 필기한 노트를 들고 사람들을 따라 회의실을 떠나려고 할 때 여진성이 그녀를 불렀다.“네, 회장님.”고다정은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며 호칭을 써갔다. 그러자 여진성은 고다정을 더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만족해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보면 낙하산으로 사업부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방금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불만 있는 사람이 무조건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다정 씨를 귀찮게 할 수도 있죠. 만약 도가 지나치거나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랑 말하세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하루빨리 회사에서 자리를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