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여 앞으로 뛰어가는 집사를 보며 고다정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에 바짝 긴장했던 정신 줄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좀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씻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작은 사모님, 몸에 상처를 좀 봐 드리려고 제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들어오세요.”고다정은 머리를 말리던 타월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그러자마자 집사가 의사를 데리고 방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의사는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진 선생님,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제가 방금 병원에서 듣기로 제란원에 진찰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자진해 왔어요. 준재는요?”진현준은 말하는 동안 방안을 둘러보며 여준재를 찾았다.그의 모습을 보니 여준재한테 일이 생긴 것을 모르고 있는 눈치라, 고다정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준재 씨는 아직 해외에 있어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현준은 다짜고짜 캐물었다.“고 선생님, 준재가 해외에서 일 생긴 거 아니죠?”“......”고다정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그녀가 보인 반응에 대충 감 잡은 진현준은 잠시 고민하다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말하기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돼요. 좀 이상해서 물어본 거예요. YS그룹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준재가 얼굴을 전혀 비추지 않는 게.”“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진 선생님. 그런데 준재 씨 지금 상황은 제가 좀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이해해 주세요.”고다정은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했다.그러자 진현준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아까 집사님한테서 들었는데, 고 선생님이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다면서요. 그런데 왜 지금 봐서는 괜찮은 거 같은데요?”“저는 괜찮고, 다른 사람의 피에요. 제가 피가 잔뜩 묻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집사님이 오해하신 것 같아요. 너무 놀라 저한테 물을 새도 없이 급하게 병원에 호출했나 봐요.”이 이야기가 나오자 고다정은 또다시 실소를 금치 못했다.그러고 나서
해외에는 구남준도 있지만, 다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열성을 다해 여준재를 찾아줄 건지에 대해 심해영은 의문을 품었다.근심이 내리지 않는 그녀의 안색을 보고 여진성은 아내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준재를 따르는 이상 우리는 그들을 믿어줘야 해요. 당신, 준재 안목을 못 믿는 거예요?”“누가 준재를 못 믿는대요?!”심해영은 무의식적으로 반박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뭐라 말하려고 했다가 그저 입을 다물기로 했다.아들을 믿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함께 고스란히 흘려보낸 세월만큼이나 남편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두터웠기 때문이다.고다정은 심해영이 더 말을 안 하자 조금 전의 화제가 일단락되었단 걸 알고, 그제야 회사가 부딪힌 문제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제가 돌아올 때 남준 씨가 그룹에 문제가 생겼다고 저한테 돌아와서 회사를 안정시키는 데 힘 써보지 않겠냐고 하던데, 혹시 어떤 상황인지 아버님께서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여진성은 흔쾌히 고다정이 알고 싶어하는 회사 사정에 대해 대략 설명했다.그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구남준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고다정이 너무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회사에서 일을 좀 맡아 하게 해달라고 구남준이 요청했다. 고다정의 체내에 있는 독소도 아직 제거를 못했는데 여준재의 부재에 대해 심려가 너무 깊으면 발작을 또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그 사실을 고다정은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여진성의 설명을 듣고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YS그룹의 핵심 자료들과 대외비로 관리되고 있는 프로젝트 관련 문서들이 한꺼번에 유출이 됐다니. 그 손실을 따지면 천문학적 수준이었다.고다정의 마음을 알아채고 여진성은 도리어 그녀를 위로했다.“매우 심각한 상황이긴 하였지만 그동안에 거의 처리되어 안정을 찾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처리가 돼요? 진짜 그 사람들한테 6조 원을 줬단 말씀이신가요?”고다정은 흠칫 놀랐다가 의문스레 여진성을
예상했던 대로, 고다정이 돌아오니 별장 안의 분위기는 더없이 신나고 가벼워졌다.두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기뻐서 날뛰었다.“엄마, 끝내 돌아왔네요.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어요. 아참, 아빠는요? 아빠는 왜 안 보여요?”하준이는 문밖을 내다보며 여준재의 그림자라도 있는지 살폈다.고다정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아빠는 해외에서 아직 일이 채 끝나지 않아서 오지 못했어. 하지만 너희들한테 주라고 선물을 보내왔지.”사실 이 선물들은 그녀와 여준재가 그전에 유럽 여행을 할 때 미리 사 둔 것들이었다. 하윤이는 별생각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하지만 하준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의혹에 찬 눈길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 고다정을 바라봤다.“엄마, 아빠가 정말 일이 있어서 외국에 있는 거 맞아요? 무슨 일인데 국내에 있는 회사보다 더 중요해요?”이 말에 고다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개를 숙여 하준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마주치니 저도 몰래 당황스러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눈길을 피하면 이 영특한 아이가 꼭 낌새를 차릴 거라는 걸 알고 억지로 시선을 고정하며 침착해 보이는 말투로 물음에 대답했다.“당연히 중요하지. 그리고 회사는 할아버지가 계시잖아. 그래서 아빠는 따로 볼일을 보시는 거야... 됐어, 너도 얼른 가서 선물이나 뜯어봐, 네 동생처럼. 이제 젖을 금방 뗀 애가 왜 이렇게 애어른 행세니.”“아빠 엄마가 항상 시름이 안 놓이게 하니까 그렇죠.”하준은 코를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고다정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울지도 웃지도 못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하준이는 돌아서서 선물을 고르러 갔다.그제서야 틈이 생긴 고다정은 외할머니 곁에 가서 그녀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는지 물었다.“너희들이 집에 없는 동안 우린 다 잘 지냈어. 은미랑 준재 어머니가 자주 보러오기도 했고. 별일 없었으니까 걱정 말거라.”강말숙은 자애
이틀 동안, 고다정은 집에서 두 아이와 외할머니를 모셨다. 이 또한 한편으로는 국내 상황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그러던 중, 임은미가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잠시 담화를 나눈 뒤 고다정은 임은미의 배를 보며 물었다.“아이는...”“없어졌어. 네가 떠난 지 보름 만에 나는 이 아이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임은미는 덤덤하게 이 일을 꺼냈다. 고다정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파졌다.고다정은 임은미의 성격으로 그때 당시 이렇게 평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안타까워했다.“미안해, 이렇게 큰일을 겪을 때 나는 네 곁에 없었네.”“아니야. 너도 중요한 일이 있었잖아. 뭘 사과까지 해. 그리고 너도 채성휘에게 나를 돌바달라고 부탁했잖아.”임은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고다정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동안 임은미와 채성휘가 어떻게 지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너랑 채 선생님은...”“아무 사이도 아니야.”고다정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눈치챘던 임은미는 급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말이다.고다정은 아쉬워하는 척하면서 넘어갔다.“그렇구나. 아쉽네! 나는 두 사람이 잘 됐으면 했는데.”“내가 어떤 남자를 찾던 무조건 성휘 씨는 아니야.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너무 많아. 내 이상형이랑 너무 거리가 멀어. 내가 그에게 시집간다면 그야말로 내 고생길이 열리는 거야.”임은미는 채성휘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투덜거렸다. 그때 고다정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임은미는 분명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았다.만약 정말 관심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잘 지내는 것 같으니 마음이 놓이네.”고다정은 빙그레 웃으며 임은미를 바라봤다. 그러자 임은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어딜 봐서 우리가 잘 지내는 것 같아?”“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채 선생님의 단점을 그렇게 많이 알 수 있
김창석과 채성휘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걱정하였다.“저도 외국에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제가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라고 할까요?”“아니면 제가 스승님에게 사람을 보내 찾아달라고 할까요?”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다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이 일은 결국 여준재와 관련된 일이기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김창석과 채성휘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고 했다. 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이어 특효약에 관해 이야기했다.“전에 주신 아이디어에 따라 기술적인 난제를 모두 풀었어요. 이제 곧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마침 고 선생님이 돌아오셨으니 우리 함께 손을 잡으면 빨리 특효약을 출시시킬 수 있을 겁니다.”채성휘는 기대 가득 찬 눈빛으로 고다정을 보며 말했다. 그는 특효약 출시를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환자들도 싼 가격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더는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다정도 그런 채성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지금 그녀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고다정은 여준재를 대신해 회사를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여진성과도 회사에 가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래서 결국 고다정은 미안한 표정으로 채성휘를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줘야 할 것 같네요. 준재 씨가 돌아오지 않았고 YS그룹쪽도 지금 많이 어수선해요. 준재 씨를 도와 회사를 지키고 싶습니다. 실험실 쪽은 두 분이 계셔서 제가 정말 든든해요. 다만 제가 없어서 진도가 느려질 수는 있지만 회사 일을 잘 처리하고 야근을 해가면서라도 진도를 따라잡을게요.”“괜찮아요. YS그룹쪽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입니다. 고 선생님, 먼저 가서 처리하세요.채성휘가 넓은 야량으로 이해하자 고다정은 무척 고마웠다. 오히려 김창석에게서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고다정이 이 기간에 별장 쪽 실험실에 갈 수 없다면 그는 아마 사람들에게 손을 쓰라고 알릴 것이
넓은 회의실에는 YS그룹 고위층들로 꽉 찼다. 그들은 여진성이 고다정을 데리고 들어오자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언짢아했다.비록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그들은 마지못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회장님, 작은 사모님. 오셨습니까”여진성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다들 다정이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소개하지 않을게요. 다정 씨, 저쪽에 앉으세요.”말을 마치자 여진성은 멀지 않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진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를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은 여진성이 곧 어떤 계획을 발표할지 모두 눈치를 챘다.그리고 곧이어 그 추측 또한 진실로 입증되었다.여진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오늘 회의의 주제를 짚으며 말했다.“오늘 회의는 업무 외에 다른 한 가지 일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오늘부로 고다정 씨가 회사 사업부를 인수하고 사업부의 모든 기획을 책임질 거예요. 혹시 반대의견 있는 분?”이 말이 나오자 모두 갸우뚱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은 회장님이 이런 결정을 한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전 사업부 책임자에게 치명적인 단점은 없었으나 업무 태도가 성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 기물 유출 문제까지 더해져 여진성은 당연히 중요한 부서를 외부인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다.고다정은 여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여진성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다.회의는 한 시간 반 정도 열렸다. 고다정이 빼곡히 필기한 노트를 들고 사람들을 따라 회의실을 떠나려고 할 때 여진성이 그녀를 불렀다.“네, 회장님.”고다정은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며 호칭을 써갔다. 그러자 여진성은 고다정을 더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만족해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보면 낙하산으로 사업부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방금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불만 있는 사람이 무조건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다정 씨를 귀찮게 할 수도 있죠. 만약 도가 지나치거나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랑 말하세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하루빨리 회사에서 자리를 잡
여명호의 말을 듣던 여준재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여명호가 나쁜 마음을 품고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계획이 흐트러져서 여준재의 처지가 위험해질까 봐 한 말이었다. 필경 여준재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보통 재벌 집이 아니라 수백 년의 역사를 빛낸 진정한 명문이었다.하지만 누군가가 고다정의 뒷담화하면 여준재는 마음이 불편했다.“명호야!”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여명호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여준재는 차갑게 여명호를 노려보며 말했다.“다정 씨는 내 와이프야. 네가 그 사람을 평가할 처지는 아니지 않아? 이런 말을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아!”자기 보스가 잘난 체하는 권다정을 이렇게 아끼는 걸 보자 여명호는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 다시 안 그럴게요.”구남준은 흐뭇해하면서 이 모습을 바라봤다. 여명호가 여준재의 의형제라는 명분으로 고다정에게 무례한 것도 모자라 험담까지 했다. 인제야 여준재에게 혼 혼난 것을 보자 구남준은 속으로 기뻐했다.여명호가 잘못을 인정하자 여준재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더는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미간을 펴며 말했다.“부윤솔 어르신 쪽은 어떻게 됐어?”이 일의 배후에는 여준재뿐만 아니라 부윤솔도 함께 있었다. 부윤솔은 이런 은둔 가문 사람들이 나라에서 주는 최고급 대우를 받으면서 나라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부씨 가문에서 따라 하려고 하지 않자 그들은 연합해서 부씨 가문을 괴롭혔다!여준재와 부윤솔이 은둔 가문 세력과 싸우고 있을 때 일주일 동안 잠잠해 있던 고다정에게 갑자기 일이 생겼다.이날, 고다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야근했다. 저녁 무렵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스팸 전화인 줄 알고 받기 싫었다. 하지만 전화가 끊기려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스쳐 갔다. 혹시 여준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다정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준재 씨?”고다정은 핸드폰을 꼭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
여진성을 적절히 배치한 후 고다정은 직원을 시켜 자기가 프로젝트팀에 두고 온 핸드백을 가져오게 했다.핸드백에는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약봉지와 은침이 들어있다.잠시 후 핸드백이 그녀의 손에 도착했다.그녀가 침을 놓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수상태이던 여진성이 서서히 깨어났다.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는 방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야단쳤다.“다들 여기를 둘러싸고 뭐 해요? 한가해요? 회사 일은 다 해결했어요?”“여 회장님, 이분들도 회장님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까 야단치지 마세요. 잊으셨나요? 방금 쓰러지셨잖아요.”고다정이 급히 다른 사람들 대신 설명했다.그제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여진성은 미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여러분 미안해요. 방금은 정신이 흐리멍덩해서.”“괜찮습니다. 회장님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회장님이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일 보러 가겠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다시는 과로로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대표님이 돌아오지 않으셨는데, 회장님이 회사를 지키셔야죠.”“그러게요, 회장님, 휴식에 신경을 쓰세요.”사람들은 여진성이 또 쓰러질까 봐 충고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저도 모르게 조바심 냈다.회사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대표님은 왜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것 같았다.고다정은 이들의 생각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임원들을 보낸 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휴게실에 남아 여진성을 돌보았다.그녀와 함께 남은 여진성의 비서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몹시 불안해했다.“작은 사모님, 회장님을 병원으로 모시지 않아도 될까요?”“걱정되시면 병원 가서 검사해 보는 것도 좋죠.”고다정은 자기가 검사했을 때 문제가 없었으니 반드시 문제가 없다고 뻐기지 않았다.한의학과 서의학은 어쨌든 서로 다른 두 가지 체계다.그녀의 말을 들은 비서는 잠깐 생각하더니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여진성이 이를 거절했다.“내 몸은 내가 알아. 별문제 없으니까 병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