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여준재는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그는 서로 교류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말을 끊었다.“다정이가 밥을 먹고 다시 얘기를 나누세요.”말하는 동안에 그는 접시를 다정의 곁에 놓았고 그곳은 죽과 두 그릇의 채소들이었다.부윤솔은 여준재가 죽을 가져온 것을 보고 고다정에게 먹여주려고 했다.그리고 일어나서 말했다.“너희들 먼저 먹어, 사람을 시켜 날 방에 데려다주고 내가 정리 한 후에 계속해서 다정에게 진찰을 진행해 주지.”“네.”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를 불러왔다.부윤솔이 짐을 다 놓자 유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집사가 조심스럽게 보고하였다.“주인님,오신 분들 중에서매 사람마다 무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번 찾아보고 올라가요?”“가 찾아봐라.”유라가 분부했다.필경 이 사람들이 고다정을 보고 왔고 그뒤에는 여준재가있었기 때문이다.이 일들에 대해서 고다정은 알지 못했다.이때 그녀는 여준재의보살핌을 받고 있었다.“시간이 이렇게나 됐는데 밥 먹었어?”고다정은 죽을 먹으면서 눈앞의 남자를 보며 말했다.여준재는웃으면서 말했다.“당신이 다 먹고 저와 사부님이 같이 먹기로 했어요.”고다정이 다시 질문했다.“아까 사부님과의 토론은 어땠어?”“사부님도 이런 상황은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하네, 내가 의심하기를 이건 분명 그 특효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야.”고다정은 숨기려하지 않았소 그와 사부님의 대화를 다 말했다.여준재는들으면서 차가운 눈빛을 띄었다.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 계속하여 말했다.“아, 어제 회연에 고다빈과 진시목도 갔다고 들었는데 너도 보았어?”“응,하지만 그들은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어.”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말이 끝나자 고다정은 여준재의말을 알아들은 듯 놀라며 말했다.“그들을 의심하는 거야?”여준재는부인 하지 않았다.“그들의 신분으로 그 곳에 들어 갈 자격이 없는데 널 괴롭힌 사람들은 분명 특효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들일 거야.”고다정은 침묵하며 여준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
“일주일 더 머물 거면 내일 호텔로 돌아가요. 유라 씨한테 폐 끼치지 말고.”고다정은 여준재의 품에 안겨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이 속마음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여준재는 단번에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챘다.그러나 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내일 유라한테 말하고 호텔로 돌아가요.”“네.”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준재에게 얼른 쉬라고 했다. 피식 웃던 여준재가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누워버렸다.“잘 거면 같이 자요.”그의 말에 고다정은 안색이 약간 변하였다.“먼저 자요. 난 조금 있다가 잘 거예요. 낮에 하루 종일 잤더니 기운이 넘치네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고다정은 잠들었다가 또 다시 낮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다.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여준재는 마음이 아팠다. “바보, 졸리면 자요.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면 당신 건강만 해치게 될 거예요.”고다정이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그녀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여준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당신이 그랬잖아요.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몸을 추스려야 한다고. 신체 소질이 좋으면 어떤 병세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잖아요. 난 그 말이 지금의 당신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해요.”그 말을 듣고 변명하려 했던 고다정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했던 말을 부정하게 되는 거니까.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영롱한 달빛이 창밖에서 비쳐 들어와 커튼을 통해 두 사람에게 쏟아졌고 그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고다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곁에 잠든 남자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그가 잠귀가 밝은 편이었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여준재는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집사가 건네준 선물 상자를 보고 고다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유라 씨, 이게 무슨 뜻인가요?”“별다른 뜻은 없어요. 다정 씨가 준재 구해줘서 고마워서 그래요. 다정 씨가 준재 약혼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당연히 사례를 해야죠.”유라는 고다정을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자신이 여준재와 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다.그 말에 고다정은 어이가 없었다. 유라의 행동이 불만스러웠던 여준재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한테 유라는 그저 사업 파트너일 뿐, 아무리 10년 넘게 알게 지낸 사이긴 하지만 그의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귓가에서 고다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례는 필요 없어요. 유라 씨가 준재 씨와 오랫동안 친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족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유리 씨가 사례를 해요? 그리고 난 이미 좋은 사례를 받았어요.”고다정은 말을 하면서 여준재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람이 그녀한테 최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고다정의 뜻을 알아차린 여준재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서 거리낌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보며 유라는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주먹을 쥐고 심호흡하며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녀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부윤솔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부윤솔은 미간을 찌푸린 채 유라를 힐끔 쳐다보았고 이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고다정과 여준재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다정에게 유라를 조심하라고 일깨워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보기에 고다정의 성격은 조금 나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장차 부씨 가문을 책임질 사람으로서는 결코 나약해서는 안 되었다.유라는 자신이 고다정의 디딤돌로 전락했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다. 꽁냥꽁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유라는 이를 악물고 가볍게 기침을 했다.“다정 씨 말이
솔직히 그녀의 마지막 말이 여준재의 마음에 확 와닿았다. 확실히 고다정한테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지금으로서는 부윤솔을 제외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유라의 의료진뿐이었다. 여준재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유라는 눈빛이 교활하게 변하였다. 이내 그녀는 고다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다정 씨, 날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 알아요. 나한테 폐 끼치는 것도 싫겠죠. 하지만 다정 씨도 알다시피 나랑 준재는 사업 파트너예요. 만약 준재한테 무슨 일이 있다면 난 가만두고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안심하고 여기서 지내요.” 그녀의 이 말은 고다정에게 제멋대로 굴지 말고 여준재를 난처하게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다만 여자들의 이런 속셈을 모르는 여준재는 그녀의 뜻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다정은 달랐다. 고다정은 유라가 자신에게 제멋대로 군다는 뜻도 알아들었고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다. 유라는 그녀한테 그녀의 존재는 여준재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폐만 끼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고다정은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성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잡아당겼다. 지금 반박한다면 유라가 한 말이 사실이 되어버리게 되니까. 그녀는 유라한테 자신은 제멋대로인 여자가 아니고 여준재한테 짐이 되는 여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유라 씨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해주는데 우리가 계속 떠나겠다고 하면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네요.” 고다정은 유라를 쳐다보고는 이내 여준재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준재 씨, 유라 씨가 이렇게 진심으로 우리를 붙잡는데 우리 그냥 이곳에서 지내요.” 고개를 살짝 숙인 여준재는 눈앞의 여인이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몰래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앉아 있는 유라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뜻대로 해요. 난 당신 뜻에 따를 거니까.
여준재의 시선을 따라 다시 바라본 유라 역시 고다정의 얼굴에 찬 미소가 눈에 거슬릴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마음속의 질투심을 발산할 방법이 없어서,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몇 번 숨을 들이마셨다."아가씨와 사이가 좋은 건 알겠지만 나 같은 싱글들 앞에서 계속 그렇게 할래? 나도 상처받아.”유라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입을 열었다.여준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더니 갑자기 유라에게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전에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정 씨 앞에서 네 성격대로 말하지 말라고. 네가 하는 말은 남들이 오해하기 쉬워. 무심코 한 말이라도 사람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여. 우리 다정씨가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아.”“……”유라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여준재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전보다 더 진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유라는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 앞으로 주의할게. 전에는 네가 이렇게 아내 바보인 줄 몰랐어.”유라는 아직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준재를 갖기는커녕 그들의 십여 년 동안의 우정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웠다. 그녀는 주제를 돌려 더 이상 이 화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참, 방금 내가 너에게 말한 방안은 어때?”"나는 의견이 없지만 이왕 할 바에야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여준재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당연하지."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이야기하고 유라는 정원을 떠났다.앞으로 며칠 동안 고다정과 여준재는 정원에 머물렀다.그러던 중 고다정이 또 한 번 혼수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이번에 잠든 시간은 그전보다 족히 이틀은 길었다. 그래서 여준재는 겁에 질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안젤로가 다시 한번 검사한 후 결과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마침내 폭발했다."이미 이틀 동안 혼수상태로 자고 있는데 지금 나한테 문제가
여준재는 깜깜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벌써 이틀째에요.”고다정은 이 숫자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이전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시간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점차 증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는 패닉상태에 빠졌다.'이러다가 언젠가 그냥 자다가 죽어버리진 않을까?'이렇게 생각한 고다정이 온몸을 떨었다. 그녀가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한 번에 알아챈 여준재는 그녀를 힘껏 안고 조용히 말했다."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아무 일도 없게 만들 거예요. 괜찮아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여준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단호함이 가득했다. 그녀의 원래 약간 당황했던 마음이 서서히 위로가 되었다."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저도 열심히 살 거예요.”고다정이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감을 회복한 후 여준재를 바라보았다. 여준재도 그녀의 숨결에 변한 것을 눈치채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때 성시원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내 허락 없이는 염라대왕도 널 데려갈 수 없어.”이 말을 듣고 고다정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당연히 선생님을 믿죠. 선생님은 무조건 저를 무사하게 할거에요!”고다정은 성시원을 향해 달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성시원은 고다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부추기지 마. 깨났으면 손 좀 줘봐. 지금 몸 상태 좀 보게."고다정은 앙증맞게 손을 내밀었다. 여준재는 옆에 서서 긴장한 듯 바라보았다. 그동안 유라는 외부인처럼 세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그녀는 여준재의 보살핌을 받는 고다정을 보고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자진해서 말했다. "다정 씨가 깨어났으니 부엌에 가서 먹을 것을 만들라고 분부할게요. 이틀 동안 잤으니 지금쯤 배가 고프겠네요.”유라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여준재는 유라가 있다는 것이 생각난 듯 괴로워하며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유라를 바라보았다."미안. 너무 걱정돼서 깜빡하고 있었어.”"그럴
그다음 날들에 여준 재는 고다정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증세가 걱정돼서 계속 그녀의 곁을 지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났지만 고다정이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와 여준재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여준재는 매일 고다정의 곁을 지켰다. 덕분에 두 사람의 애정은 그동안 더욱 돈독해졌다.그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바로 유라였다. 하루하루 고다정과 여준재의 사랑이 돈독해지는 걸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자학이라도 하듯 자신이 보기 힘들 줄 알면서도 매일 두 사람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 이틀 지나자 유라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대로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방법을 생각해서 고다정과 여준재를 갈라놓으려고 했다.하늘이 그녀의 마음을 들었는지 어떻게 여준재가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할지 고민하던 참에 기회가 찾아왔다. 그날 저녁 유라가 침울한 표정으로 장원으로 돌아갔다. 여준재가 이 시간에 계속 고다정과 함께 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찾아갔다. 유라는 입구에 서서 방문을 두 번 두드렸다. "준재, 나 왔어."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다정과 여준재가 잇달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 그녀의 안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먼저 물었다."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유라는 말을 들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다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일은 좀 까다로워서 고다정의 앞에서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얘기였다.여준재는 자연스럽게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려 고다정에게 말했다."금방 다녀올 테니 심심하면 아래층 정원으로 내려가 있어요. 몸이 불편하면 바로 저한테 말하거나 안젤로를 부르세요.""알겠어요. 빨리 가서 일 봐요."고다정이 빙그레 웃으며 가라고 재촉했다. 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라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서재로 돌아오자 유라가 입을 열었다."공해 쪽에 일이 생겼어. 우리가 이번에 운송한 화물이 모두 압류됐대. 구진에서
의논이 끝나고 여준재와 유라는 각자 서재를 떠나갈 준비를 했다. 여준재가 방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울 일을 고다 정에게 말했다. 세력적인 일은 언급하지 않았고 이웃나라와 유라 계열사의 합작에 문제가 생겼으니 가서 처리해야 한다고만 했다."그럼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밥 잘 챙겨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어요.”고다정이 몸이 좋아진 후 여준재의 몸에 있는 숨은 질병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치료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약을 먹어 여준재의 몸에 있는 질병이 자동으로 약력을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준재는 그녀가 걱정해주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남준이한테 말해서 당신 옆을 지키도록 할게요."두 사람이 알콩달콩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유라가 찾아와 준비가 다 되었으니 출발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행은 정원의 깊숙한 곳, 드넓은 잔디밭으로 향했다. 풀밭에는 이미 헬리콥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고다정이 애틋한 마음을 달래며 작별인사를 했다."꼭 자기를 잘 챙기세요.”유라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그녀는 여준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다정 씨, 안심하세요. 제가 잘 돌볼게요.”유라의 눈에서 도발적인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고다정은 화를 내지 않고 되려 능글맞게 대답했다."유라 씨 감사합니다. 준재 씨가 약 먹고 밥 먹는 것을 감시해 주세요. 이 사람은 한번 바빠지면 항상 밥 먹는 것을 잊어버려서 걱정이에요. 남준 씨가 없으면 혼자 출장 가는 게 걱정돼서요.”고다정은 센스있게 유라의 도발을 받아쳤다. 그녀는 유라를 구남준과 같은 비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라는 이 말 속에 있는 뜻을 알고 이를 갈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준재 앞에서 이질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녀는 고다정의 말에 응하고 짐 검사를 핑계로 비행기에 올랐다.고다정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여준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의 표정을 보며 고다정은 화가 나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