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본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벌겋게 달아오른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계속 지켜보라고 해.”“네.”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자는 손을 흔들어 경호원을 떠나보냈고,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손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여준재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 표시를 본 그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 모습에 고다정이 물었다.“왜 그래요?”“별것 아니네요. 전화 좀 받을게요.”여준재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너 E국으로 왔다며? 왔으면 옛 친구들을 불러 한번 만나야지, 내가 먼저 전화하게 만들어?”요염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지만 여준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좀 바빠. 별다른 일 없다면 이만 끊을게.”말을 마친 그는 상대방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휴대폰을 접고는 다시 고다정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이제 가요.”“좋아요.”고다정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 밑 깊은 곳에는 약간의 의심이 생겼다.그녀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준재가 방금 전화를 받은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별로 반가운 사람이 아니지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한 고다정은 또 자신이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여준재의 신분과 성격으로 누가 감히 그를 강요할 수 있을까?곧 고다정은 잡생각을 뒤로하고 여준재와의 여행에 집중했다.이틀 동안 그들은 수도의 명소를 거의 다 돌아다녔다.사진도 많이 찍었고, 돌아가 두 아이와 외할머니에게 드릴 특산물도 잊지 않고 샀다....셋째 날, 고다정과 여준재가 밖에서 놀고 있을 때, 갑자기 여아린의 전화가 걸려왔다.“준재야, 너 다정이랑 E국에 왔다며?”“네, 국제상인 연합회 행사에 참여하러 왔어요.”여준재는 간단하게 설명했다.여아린은 이 행사가 3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
여준재에게서 여아린이 젊었을 때 벌였던 일탈 행동들을 전해 들은 고다정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그녀의 눈에 여아린은 고귀하고 우아한 패셔니스타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여아린에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았을 줄은 몰랐다.말하는 사이에 마차가 궁궐을 본따서 지은 집 앞에 멈춰 섰는데, 외벽의 부조가 특히 아름답고 절묘했다.고다정이 여준재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릴 때 여아린이 안에서 마중 나왔다.“다정 씨.”그녀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직접 고다정의 옆에 다가오더니 여준재를 옆으로 밀쳐냈다.고다정은 그녀의 장난스런 동작을 눈치채지 못하고 기뻐하며 인사했다.“고모님, 오랜만이에요. 또 예뻐진 것 같네요.”“어린 친구가 말도 잘해. 입에 꿀을 발랐나?”여아린은 고다정의 애교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고다정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고모랑 같이 웨딩드레스 보러 가자.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고모한테 말해. 고모가 고쳐줄게.”“고모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웨딩드레스인데 당연히 모든 게 다 맘에 들겠죠.”고다정이 비위를 맞춰주자 여아린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렇게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뒤에 있는 여준재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응접실로 들어갔다.두 여인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얼굴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쫓아갔다.그런데 응접실에 들어서니 그의 약혼녀와 고모가 보이지 않았다.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어떤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여 대표님, 사모님께서 직접 2층 작업실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알았어요.”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올라갔다.이때 고다정은 이미 여아린을 따라 2층의 작업실에 들어섰다.그녀는 사방에 줄지어 늘어선 화려한 드레스들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었다.예쁜 드레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여인은 없을 것이다.여아린은 고다정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어때? 드레스들이 예뻐?”“너무 예뻐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에 여준재도 제정신이 돌아와 어이없고 사랑 가득한 눈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그는 고다정이 장난스럽게 다가와 자기를 놀릴 줄 몰랐다.고다정도 여준재가 머쓱해하는 것을 눈치챘다. 재미로 그러긴 했지만 자기 약혼자가 남에게 놀림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약혼자의 친 고모일지라도.“고모님, 이 드레스가 맘에 들고 몸에도 잘 맞습니다. 감사합니다.”고모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 말이지만 감사한 마음은 진심이었다.이 웨딩드레스가 정말 그녀의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다.여아린은 고다정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거두고 부드럽게 말했다.“마음에 들면 됐어. 감사는 무슨. 다 가족인데.”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그녀가 다시 커튼 안으로 들어가자 여준재는 고마운 눈길로 고모를 바라보며 감사를 표시했다.“다정 씨 웨딩드레스에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내가 다정이를 좋아해서 신경 쓴 건데, 너랑 무슨 상관이야?”여아린은 일부러 거만을 떨며 여준재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참,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네 예복은 스스로 맞춰. 하반기 패션쇼가 매우 중요하거든. 내가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지가 결정돼. 다정이 웨딩드레스도 시간을 짜내서 겨우 제작한 거야.”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화내지 않았다.그는 고모가 세계 최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 고모는 이 목표를 위해 젊었을 때 이름을 숨기고 당대 최고 디자이너 밑에서 조수로 일한 적도 있다.“괜찮아요. 제 예복은 다른 곳에서 맞출게요. 고모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덕담 고마워.”이때 고다정이 자기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고 나왔다.화장을 지우는 것은 역시 하는 것보다 빨라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고다정은 시간을 보더니 점심이 다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여아린이 손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줬는데 입으로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텔을 나선 고다빈은 모자를 눌러쓰고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이리저리 살피다가 옆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골목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그녀는 이내 다가가지 않고 핸드백을 꽉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글라스에 감춰진 두 눈에는 갈등과 두려움이 역력했다.반 시간 전에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그녀를 도와 고다정을 괴롭힐 수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내려와서 얘기하자고 했다.게다가 문자의 마지막에 진시목이 약 탄 물을 마셔서 날이 밝기 전에는 깨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내려오라는 말도 덧붙였다.고다빈은 문자를 보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진시목에게 약을 먹인 만큼 거절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그리고 사실 이 배후 인물이 고다정을 어떻게 괴롭히려는 건지 기대되기도 했다.특히 고다정 때문에 연달아 두 번 구치소에 들어가고 결혼생활도 고다정 때문에 깨지기 직전인 것을 생각하자, 고다빈은 배후 인물이 그리 겁나게 느껴지지 않았다.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그래서 고다빈은 용기를 내서 검은색 승용차에 다가가서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그러자 음성 변조기를 사용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다빈 씨가 감히 차에 타지 못할 줄 알았는데요.”“그럴 리가요. 당신의 목표가 고다정이라면 우리는 친구예요.”고다빈은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그 사람을 보았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이 사람은 신비롭게 커튼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꽁꽁 싸고 있는 이 신비한 인물을 아래위로 훑어본 고다빈은 문득 후회가 몰려왔다.이 사람은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신분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다. 즉 이제 고다정을 공격할 때 그녀를 무기를 사용할 것이다.일이 발각되면 자기는 이 사람 신분도 모르는데 혼자 모든 죄를 떠안는 것이 아닌가?“남성분인지 여사님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손잡기로 한 이상 서로 솔직해져야 하
“유인한 후에는요? 당신들은 고다정을 어떻게 할 건가요?”고다빈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을 보냈다.그러나 신비한 인물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당신은 맡은 일만 잘하면 됩니다. 다른 건 알 필요 없어요. 많이 알게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요.”이 말을 들은 고다빈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감돌았다.결국 그녀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신비한 인물의 지시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고다정은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연합회가 시작되는 날이 임박하자 그녀와 여준재는 놀러 나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에서 이틀간 푹 쉬면서 기운을 차린 후 사흘째 되는 날 저녁, 활기차게 연합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연합회가 열리는 장소는 오래된 성곽 안에 있었다.그들이 도착했을 때, 성곽 밖의 길가에는 이미 전 세계의 다양한 한정판 명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다.눈앞의 광경을 보며 고다정은 여씨 가문에서 봤던 성황은 이곳과 전혀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심지어 세계적인 갑부와 국제 뉴스에서만 볼 수 있는 거물들도 보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그녀의 몸이 굳어지자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챈 여준재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놀러 왔다고 생각해요.”이런 거물들을 보고 어떻게 긴장을 풀 수 있겠는가!고다정은 여준재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살짝 후회되기도 했다.이런 성황인 줄 알았으면 그녀는 누가 뭐래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평소 파티에 잘 참석하지 않고 접대는 더더욱 싫어한다. 그런 그녀가 세계 각국의 경제계 거물들 앞에서 적절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여씨 가문의 국제적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여준재는 고다정의 눈에서 그녀의 속마음을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걱정하지 말아요. 들어간 후 내 옆에 꼭 붙어 있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웃으면 돼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네.”고다정은 심호흡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여준재를 전적으로
두 사람은 말하며 걷다 보니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입구를 지키는 직원이 두 사람의 초대장을 검사한 후 안에 대고 소리쳤다.“본국 YS그룹 여준재 씨와 약혼녀 고다정 씨가 도착했습니다.”고다정은 이렇게 통보하는 것을 처음 보는지라 어리둥절했다.연회장에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야기를 멈추고 의아해하며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고다정에게 시선을 집중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여준재와 혼인을 맺을 생각을 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하지만 그동안 그들의 출중한 딸들이 전부 여준재에게 사정없이 거절당했다.그들이 수단을 썼을 때도 여준재는 완벽히 피해 갔다.그래서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여준재의 약혼녀가 매우 놀랍고 궁금했다.수많은 거물이 시선을 보내자, 고다정은 겁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연회장에 들어섰다.말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 있던 거물들은 그녀의 침착한 태도에 놀랐다.그들의 시선 속에서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는 여인은 어쨌든 드물기 때문이다.역시 여준재가 선택한 약혼녀답게 기품이 남다르다.하지만 그중 일부 젊은 미녀들은 고다정을 바라보는 눈빛에 악의와 질투가 가득했다.그중에는 지난 몇 년 여준재에게 거절당한 사람도 적지 않다.이런 악의적인 시선을 고다정도 눈치챘다.싸한 느낌을 따라가 보니 사람들 속에서 예쁘게 생긴 상류층 미녀 몇 명이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질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이런 사람들에 대해 고다정은 마음에 두지 않았고 오히려 약간의 자부심을 느꼈다.그녀가 점찍은 남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그가 훌륭한 사람임을 의미할 뿐이다.여준재와 고다정이 연회장에 들어선 후 친한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그들이 회사 제휴 문제 아니면 글로벌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어 고다정은 미소를 띤 얼굴로 조용히 여준재 곁을 지켰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여
고다정의 눈에 장난기가 뚜렷하지 않았더라면 여준재는 방금 한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어이없으면서도 사랑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알고 싶으면 저녁에 돌아가서 내가 직접 알려줄게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 필요는 없어요.”여준재가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분류하자 유라는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옆에 있는 가녀린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질투가 용솟음쳤지만 이내 내리눌렀다.이때 그녀의 귓가에 여준재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너와 상의할 중요한 일이 있어.”일 얘기가 나오자 유라도 표정이 엄숙해졌다.다만 그녀는 이내 입을 열지 않고 고다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가씨, 당신의 약혼자를 몇 분간 빌릴 수 있을까요? 외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니라서.”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유라가 비밀 유지를 위해서 그런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를 외부인이라고 말한 것에 심기가 불편해졌다.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여준재가 옆에서 불쾌해하며 말했다.“다정 씨는 외부인이 아니야. 나의 모든 일에 대해 알 자격이 있으니까 자리를 피할 필요가 없어.”“안 돼. 외부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할 얘기를 제삼자가 들으면 안 돼.”유라는 여준재와 단둘이서 상의해야 한다고 고집했다.여준재도 태도가 단호했다.“그렇다면 말하지 마.”“준재야, 너 미쳤어?”여준재가 고다정을 위해 중요한 일을 포기할 줄은 몰랐는지 유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질투의 불길은 곧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타올랐다.두 사람이 자기 때문에 다투기라도 할 것 같아 고다정은 급히 나서서 여준재를 말렸다.“비밀 유지가 필요한 일이라면 제가 자리를 피해주는 게 맞아요. 유라 씨가 고집하는 것도 협력자로서 염려되어 그러는 것이니 유라 씨한테 화내지 마세요. 마침 저도 배고프던 차라 디저트 코너에 가서 디저트를 먹고 있을 테니 두 분이 얘기 나누세요.”그녀는 또 여준재에게 눈빛을 보냈다.여준재는 비위를 맞추려고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여준재와 유라의 협력은 그들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그들은 자기들의 상황이 안정되자 E국의 암흑가를 정돈하기 시작했다.5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고 흩어져 있던 E국 암흑가를 지배해 세계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조직을 만들었다.이 세력의 겉으로 드러난 권력자는 유라지만 실제 의사결정권자는 여준재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집안에 불필요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는 배후에 있었다.여준재는 유라의 말을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냉혹하게 말했다.“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야지. 한 번으로 안 되면 몇 번 더 족치고. 결국에는 말을 듣게 돼 있어.”“하하하,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유라는 웃는 얼굴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일부러 감탄했다.“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의 호흡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쉬울 뿐이야. 아니면 우리 둘의 지능으로 틀림없이 높은 지능을 가진 출중한 아이를 낳아 나 대신 이런 일들을 관리하게 할 텐데.”그녀는 일부러 이 말을 했다. 여준재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는지 떠보고 싶었고, 여준재가 고다정에게 얼마나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야 어떤 수단을 써야 할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유라의 속내를 모르는 여준재는 방금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오해의 여지가 있으니까 앞으로 이런 말은 하지 말아 줘. 그리고 우리는 원래 어울리지 않아.”왜 어울리지 않는데? 유라는 속으로 질문했다.여준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원망과 달갑지 않은 마음이 서려 있었다.그녀가 보기에는 그들이 가장 잘 어울리며, 서로 눈짓만 해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하지만 이런 것에 대해 그녀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고 내색할 엄두는 더 못 냈다.“알았어. 그냥 농담이야.”유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넘겼다.여준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