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휘는 임은미의 안색에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점잖게 걸어나가 손에 든 도시락 텀블러를 건넸다.“집에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끓인 삼계탕 국물이에요. 담백하게 끓였으니까 아침 안 먹었으면 이거 마셔요. 아침밥 이미 먹은 거면 나중에 수술하고 마시든지요.”그의 따뜻한 말에 임은미는 난데없이 화를 냈다.“이런 걸로 내가 생각을 고쳐먹을 거 같아요? 안 마셔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고다정의 손을 잡아끌어 고다정의 차에 올라타서 기사한테 빨리 출발하라고 했다.기사는 눈빛으로 고다정의 의견을 물었다.고다정은 임은미의 말대로 하라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떠나간 고다정의 차 꽁무니를 쳐다보다 채성휘는 짧게 한숨을 내리 쉬고는 차를 몰고 뒤쫓아갔다.병원 가는 길에 짜증이 가득한 임은미를 보며 고다정은 이상해서 물었다.“왜 다 얘기가 됐다면서 계속 화를 내?”“몰라. 저 사람만 보면 화가 치미는 걸 어떡해.”임은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고다정은 친구의 말이 너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무언가 생각나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아까 네가 한 말, 그거 뭐야? 채 선생님이 이 아이 낳기를 원해?”고다정이 묻자마자 임은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그러게 말이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저 사람 되게 웃기는 사람이다. 결혼은 하기 싫은데, 집에서 재촉하니까 이 애를 낳았으면 한다는 거야. 그러면 집에서 더는 결혼하라는 말을 안 할 거라고, 대체 날 뭐로 본 거야?!”임은미는 말할수록 화가 나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고다정도 눈살을 찌푸리며 채성휘의 생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임은미의 등을 다독였다.“네가 거절하는 게 맞아.”“당연히 그럴 순 없지!”너무 화가 났는지 임은미는 씩씩대며 뜨거운 콧김을 내뱉었다.고다정은 ‘그래, 맞아, 맞아’ 하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한참 지나자 임은미는 화가 좀 많이 누그러든 거 같았고, 차도 병원 앞에 도착했다접수와 각종 검사를 마치고 한 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수술을 할
임은미는 고다정이 하는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답답해하는 어조로 고다정한테 물었다.“그러니까 넌 날 낳으라는 거야, 낳지 말라는 거야?”“... 네가 낳든 안 낳든, 난 널 항상 응원해.”눈만 끔벅끔벅하다가 임은미는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다 자기 절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은미는 무력감이 들며 짜증이 확 덮쳤다.미친 듯이 머리를 마구 긁어대더니, 일단 놓인 현실을 기피하려고 애썼다.“아야, 됐어. 난 이제 첫 달인데 3개월 되려면 아직 멀었어. 두 달 동안 잘 생각해 보지 뭐.”“은미야, 너무 오래 끌면 안 돼. 14주 내엔 다 가능하다지만, 일찍 하면 할수록 몸에 덜 해로워.”임은미가 갈팡질팡한다는 걸 잘 알지만, 고다정도 친구의 본분을 다해 그녀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임은미도 그런 도리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여전히 안 되겠는지 생각을 고집했다.“아무래도 다시 잘 생각해 봐야겠어. 너무 오래 끌진 않을 거야.”“네가 잘 알면 됐어.”너무 다그치기에는 고다정도 마음이 아픈지라 얘기를 그만두고 돌아가자 하였다.잠시 후, 차는 임은미가 사는 오피스텔 아래에 멈춰 섰고, 두 사람이 내리자 바로 쫓아온 채성휘를 보게 되었다.“은미 씨...”채성휘는 분명 뭔가 할말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임은미는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고 고다정과 작별 인사를 한 후 돌아서서 오피스텔로 들어갔다.임은미의 뒷모습을 채성휘는 그윽하게 바라봤다.이때 고다정은 그의 앞에 다가가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채 선생님, 얘기 좀 할까요?”“그래요.”채성휘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오피스텔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와서 앉았다.고다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 오늘 은미가 일을 번복하긴 했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채 선생님이 자꾸 가서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결혼 도피용 도구가 아니에요. 어쨌거나 채 선생님과 은미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며칠 후 난 여준재와 일주일 정도 출국할 거야. 채성휘 소장님한테 실험실 쪽과 연구소 쪽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도 창석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이 두 곳을 주시해야 해.”“아가씨는 아가씨 일에만 집중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가씨를 대신해서 이곳들을 잘 관리 할게요.”김창석은 고개를 숙이며 약속했다.그래서 고다정도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몇 분이 지난 후 소담과 화영이 돌아왔다.고다정은 그들을 보면서 물었다.“검사해본 결과 어때요?”“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화영이 공손하게 대답해 주었다.소담도 고다정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문제없었습니다.”“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요. 수고들 했어요. 어서 앉아 쉬세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창석 아저씨를 바라보며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역시 창석 아저씨. 아저씨가 있어서 시름 놓고 외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김창석은 허심하게 말했다.“아가씨, 과찬이에요.”이어서 두 사람은 또 잠깐 말을 했다. 그리고 고다정은 소담과 화영을 데리고 연구소를 떠났다.그 후 이틀, 고다정은 집에 남아 시어머니와 두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그사이에 틈 내어 임은미의 상황도 살피러 갔다.임은미는 요 며칠 엄마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꼈다.지난번 입덧을 한 후부터 그녀의 임신 초기 반응이 줄곧 심각해서 기름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이 때문에 그녀는 이미 며칠 동안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식당에 앉아서 눈살을 찌푸리며 죽을 먹는 친구를 보니 고다정은 그런 그녀가 걱정스럽기만 하였다.“내일 내가 간 후에, 네가 우리 집에 가든지 해. 우리 집에 요리사가 있는데, 네가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너에게 해 줄 수 있어. 게다가 너 삼촌과 아주머니한테 임신했다는 걸 알리지 못했잖아. 우리 시어머니도 곁에서 널 좀 돌봐 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너가 이렇게 혼자 아파트에 계속 있으면 나는 조금도 안심할 수 없어.”“그래도 됐어. 시어머니도 내가 임신한 것을 모르잖아
여준재는 자신을 무시하는 작은 여인을 바라보더니 이내 긴 팔을 휘둘러 고다정을 품에 껴안았다.구남준은 조수석에 앉아 백미러로 그 광경을 보고는 곧바로 기사에게 눈치를 주었다.운전기사도 곧바로 그의 눈빛을 읽고 차 안의 칸막이를 내려놓았다.이에 대하여 여준재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그는 품 안에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잔뜩 토라진 여인을 꼭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알겠어요. 이제 화내지 말아요. 다음에는 절대 웃지 않을게요. 저도 다정 씨가 절 생각해주고 있다는 마음에 기분 좋아서 웃은 거잖아요.”그 말을 듣자 고다정도 화가 많이 풀렸다.어쨌든 여준재는 그녀의 태도에 대해 기뻐한 것이지만 그녀는 결코 다른 여자가 자신의 남자를 노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준재 씨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전 안 좋다고요.”고다정은 노발대발하며 여준재를 노려보았지만, 특히나 그의 잘생긴 이목구비는 좋으면서도 참 미웠다.결국, 고다정은 참지 못하고 마음의 소리를 중얼거렸다.“잘생긴 외모가 결국 불행을 초래한다더니.”비록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여준재의 품 안에 안겨 거리가 워낙 좁았던 터라 여준재는 아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칭찬 감사합니다, 약혼자님.”여준재는 고다정을 다시 힘껏 껴안으며 고다정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작게 열었는데 조금 전 중얼거리던 고다정의 혼잣말에 회답한 셈이었다.그러자 고다정의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이 남자가 정말… 지금 자기를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고다정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귓가에서 여준재의 웃음기가 가득한 사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 미안해요. 이번 일은 확실히 제가 잘못했으니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꼭 가장 먼저 엄숙하게 거절할게요. 그리고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밝힐게요.”이 말까지 듣고 나니 고다정도 자연스레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게다가 애초에 그녀는 정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해외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풍습에 적응하지 못한
저녁 8시 반이 되자 레스토랑에는 정말 작은 밴드가 공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감미로운 저음이 공중에서 맴돌며 손님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행을 초청하여 레스토랑 중앙에 있는 빈 공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그런데 그때, 그녀의 눈앞에 골격이 선명한 손 하나가 다가왔다.고다정이 엉겁결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일어선 것인지 여준재가 식탁 옆으로 걸어왔다.“저에게 그런 영광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저와 춤 한번 추시겠습니까?”“물론이죠.”고다정은 만면에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덩달아 손을 내밀었다.여준재는 자신의 손 위에 포개진 부드러운 손 하나를 꼭 움켜쥐고 살며시 잡아당기더니 고다정을 품 안에 안은 채 무도회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고다정은 원래 춤 기본기가 있는 데다 여준재가 그녀를 데리고 이끌어주어 두 사람의 무대는 더욱 합이 잘 맞았다.한눈에 봐도 그들이 무도장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났다.댄스 플로어에 있던 사람들도 차츰 멈춰 서서 두 사람을 감상하며 바라보았다.노래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고다정과 여준재도 멈춰 섰다.이윽고 현장에는 박수갈채와 찬사가 쏟아졌다.“정말 완벽한 커플이에요.”“그러니까요. 전 순간 정력을 본 줄 알았다니까요”“저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젊었을 때가 생각나네요.”이 목소리들을 듣고 나서야 고다정은 댄스 플로어 전체에 그녀와 여준재만이 남아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외곽에 서서 선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비록 조금 부끄러웠지만, 대중들이 보내준 선의에 대해서는 그녀도 아름다운 미소로 답해주었다.바로 그때,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오색영롱하고 가지각색의 불꽃이 하늘에서 활짝 피어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어냈다.고다정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불꽃놀이에 쏠렸다.그렇게 몇 분 뒤 불꽃놀이가 끝나서야 사람들은 저마다 시선을 거두었다.그때 계속
사진을 본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벌겋게 달아오른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계속 지켜보라고 해.”“네.”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자는 손을 흔들어 경호원을 떠나보냈고,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손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여준재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 표시를 본 그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 모습에 고다정이 물었다.“왜 그래요?”“별것 아니네요. 전화 좀 받을게요.”여준재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너 E국으로 왔다며? 왔으면 옛 친구들을 불러 한번 만나야지, 내가 먼저 전화하게 만들어?”요염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지만 여준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좀 바빠. 별다른 일 없다면 이만 끊을게.”말을 마친 그는 상대방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휴대폰을 접고는 다시 고다정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이제 가요.”“좋아요.”고다정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 밑 깊은 곳에는 약간의 의심이 생겼다.그녀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준재가 방금 전화를 받은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별로 반가운 사람이 아니지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한 고다정은 또 자신이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여준재의 신분과 성격으로 누가 감히 그를 강요할 수 있을까?곧 고다정은 잡생각을 뒤로하고 여준재와의 여행에 집중했다.이틀 동안 그들은 수도의 명소를 거의 다 돌아다녔다.사진도 많이 찍었고, 돌아가 두 아이와 외할머니에게 드릴 특산물도 잊지 않고 샀다....셋째 날, 고다정과 여준재가 밖에서 놀고 있을 때, 갑자기 여아린의 전화가 걸려왔다.“준재야, 너 다정이랑 E국에 왔다며?”“네, 국제상인 연합회 행사에 참여하러 왔어요.”여준재는 간단하게 설명했다.여아린은 이 행사가 3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
여준재에게서 여아린이 젊었을 때 벌였던 일탈 행동들을 전해 들은 고다정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그녀의 눈에 여아린은 고귀하고 우아한 패셔니스타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여아린에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았을 줄은 몰랐다.말하는 사이에 마차가 궁궐을 본따서 지은 집 앞에 멈춰 섰는데, 외벽의 부조가 특히 아름답고 절묘했다.고다정이 여준재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릴 때 여아린이 안에서 마중 나왔다.“다정 씨.”그녀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직접 고다정의 옆에 다가오더니 여준재를 옆으로 밀쳐냈다.고다정은 그녀의 장난스런 동작을 눈치채지 못하고 기뻐하며 인사했다.“고모님, 오랜만이에요. 또 예뻐진 것 같네요.”“어린 친구가 말도 잘해. 입에 꿀을 발랐나?”여아린은 고다정의 애교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고다정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고모랑 같이 웨딩드레스 보러 가자.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고모한테 말해. 고모가 고쳐줄게.”“고모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웨딩드레스인데 당연히 모든 게 다 맘에 들겠죠.”고다정이 비위를 맞춰주자 여아린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렇게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뒤에 있는 여준재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응접실로 들어갔다.두 여인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얼굴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쫓아갔다.그런데 응접실에 들어서니 그의 약혼녀와 고모가 보이지 않았다.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어떤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여 대표님, 사모님께서 직접 2층 작업실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알았어요.”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올라갔다.이때 고다정은 이미 여아린을 따라 2층의 작업실에 들어섰다.그녀는 사방에 줄지어 늘어선 화려한 드레스들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었다.예쁜 드레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여인은 없을 것이다.여아린은 고다정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어때? 드레스들이 예뻐?”“너무 예뻐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에 여준재도 제정신이 돌아와 어이없고 사랑 가득한 눈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그는 고다정이 장난스럽게 다가와 자기를 놀릴 줄 몰랐다.고다정도 여준재가 머쓱해하는 것을 눈치챘다. 재미로 그러긴 했지만 자기 약혼자가 남에게 놀림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약혼자의 친 고모일지라도.“고모님, 이 드레스가 맘에 들고 몸에도 잘 맞습니다. 감사합니다.”고모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 말이지만 감사한 마음은 진심이었다.이 웨딩드레스가 정말 그녀의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다.여아린은 고다정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거두고 부드럽게 말했다.“마음에 들면 됐어. 감사는 무슨. 다 가족인데.”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그녀가 다시 커튼 안으로 들어가자 여준재는 고마운 눈길로 고모를 바라보며 감사를 표시했다.“다정 씨 웨딩드레스에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내가 다정이를 좋아해서 신경 쓴 건데, 너랑 무슨 상관이야?”여아린은 일부러 거만을 떨며 여준재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참,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네 예복은 스스로 맞춰. 하반기 패션쇼가 매우 중요하거든. 내가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지가 결정돼. 다정이 웨딩드레스도 시간을 짜내서 겨우 제작한 거야.”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화내지 않았다.그는 고모가 세계 최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 고모는 이 목표를 위해 젊었을 때 이름을 숨기고 당대 최고 디자이너 밑에서 조수로 일한 적도 있다.“괜찮아요. 제 예복은 다른 곳에서 맞출게요. 고모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덕담 고마워.”이때 고다정이 자기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고 나왔다.화장을 지우는 것은 역시 하는 것보다 빨라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고다정은 시간을 보더니 점심이 다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여아린이 손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줬는데 입으로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