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국내에서 손꼽히던 임씨 가문이 삼류로 나자빠지게 된 건 모두 여준재 덕분이다.그러나 어디까지나 화근은 자기 집 안에 있다는 걸 임성도 잘 알고 있었다.임초연이 계속 여준재의 한계를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두 집안이 그동안 쌓아온 정을 봐서라도 서로 체면은 지켜주었을 것이다.생각을 그리 한 임성은 결단을 내렸다.“구 비서님, 여 대표님께 잘 알아들었다고 전해주시죠.”“어르신이 이해하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수고하세요.”구남준은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었다.휴대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임성은 나쁠 대로 나빠진 안색으로 집사를 부르며 물었다.“초연이 어디 있어?”어르신이 왜 화 났는지 영문을 모르지만 집사는 사실대로 대답했다.“아가씨는 위층에 있습니다.”“당장 불러와, 아비와 며느리도 같이.”임성은 차갑게 분부를 내렸다.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우미한테 아가씨를 불러오라 얘기하고 자기는 임광원 부부를 모시러 갔다.집에 계속 있었던 임초연은 금방 거실에 나타났다.할아버지의 안색이 별로인 걸 보고 그녀는 살짝 겁이 났다. 그녀는 그가 왜 화났는지 이유를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할아버지, 절 부르셨어요?”임성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곁눈질로 차갑게 쳐다보며 얼굴에 불만이 흘러넘쳤다.“그래, 잠시 기다리거라. 네 부모가 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고, 넌 저기 벽 쪽에 일단 기대 있어. 심란하게 내 눈앞에 자꾸 알짱대지 말고.” 말을 마치자 그는 시선을 돌려 더 이상 임초연을 상대하지 않았다.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임초연은 눈빛에 원망스러움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이 자신과 관련 있다는 걸 눈치챘다.30분 뒤, 임광원 내외가 돌아왔다.그들은 돌아오자마자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임초연과 안색이 별로인 임성을 보았고, 임광원은 눈살을 조금 찌푸리더니 임성한테 다가가 공손히 물어보았다.“아버님, 초연이가 뭘 또 아버님을 기분 거슬리게 했나요?”“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각, HS그룹 내에 현진우도 한창 아버지한테 야단맞고 있었다.구남준이 분부를 내리자마자, YS그룹 남양 지사에서는 신속한 일 처리 방식으로 즉시 HS그룹에 사람을 보내 위약금을 청구했는데, 이 일이 마침 회사를 시찰하러 온 현우성한테 들켜버렸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우리 현씨 집안에서 백년 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네가 한꺼번에 다 무너뜨린 거야!”아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계약을 중요시하는 회사의 원칙을 배반하고, 명성에 누를 끼친 데 대해 현우성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너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알아? YS그룹이야, YS그룹!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너 어찌 감히?!”그러나 현진우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뭐 건드리면 어때요? 우린 어차피 서로 다른 사업을 하는데, 지역도 완전히 틀리고. 여준재가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한테 뭘 어쩌겠어요?”“누가 그래, 어쩌지 못한다고! 그건 그 사람이 하냐 안 하냐의 문제야. 아니면 너 임씨 집안 그것들이 왜 운산에서 쫓겨난 거 같아? 왜 그 금싸라기 같은 운산에서 이런 별 볼 일 없는 남양에 왔겠냐 말이야!”현우성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보며 호통쳤다. “임씨 집안 그 계집애가 대체 너한테 무슨 꼬리를 쳤길래 네가 이렇게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것이야?! 너 내가 말하는데, 내일 당장 선물 바리바리 싸 들고 운산으로 가서 여 대표와 여 대표 사모님한테 사과해, 알겠어?!”아버지가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치 못한 현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에 거부하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난 사과하러 안 가요. 내가 간다고 해도 그 여 대표님이 날 용서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안가? 그럼 너랑 임씨 집안 그 계집애와의 혼사는 없던 걸로 하자. 나중에 다시 너의 어머니한테 우리 집과 걸맞은 집안에서 며느릿감을 골라 너랑 결혼을 시킬 테니 그렇게 알아라. 그러면 이번 일로 일어난 스캔들도 덮을 수 있을 거야.”아들이 사과를 거부할 것에 대해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임초연은 자기 때문에 현씨 부자가 케케묵은 지난 일들까지 들춰내며 다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녀는 현재 현씨 집안 별장에 잘 안착하고 나서, 베란다에 서서 물끄러미 서쪽을 향해 보고 있었다.서쪽은 운산이 있는 방향이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임씨 집안과 결별하고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임씨 가문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 없이 전심전력으로 여준재와 고다정한테 복수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자신은 다 망쳐버렸는데, 그 둘은 어떻게 깨가 쏟아지게 잘 살 수 있단 말인가?!절대 용납할 수 없다!......한편 그날 저녁, 고다정은 연구소에서 돌아와 여준재와 두 아이가 거실에서 놀고 있고 외할머니가 옆에 앉아계신 걸 보았다.현씨 집안 소식을 물어보려고 했던 그녀는 다시 입안의 말을 삼켜버렸다. 외할머니가 듣고 걱정하는 게 싫었다.그렇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할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나서 그들이 다 각자 방으로 돌아간 후에야 여준재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고다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준재는 이미 그녀가 물어보려는 게 뭔지 다 알고 현씨 집안 이야기를 스스로 꺼냈다.“남준이가 알아보니 현진우 약혼녀는 임초연이었어요.”“그 여자였어요?!”고다정은 놀란 기색을 하며 눈빛의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여준재가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거의 이 여자를 잊고 살 뻔하였다.그 여자가 운산을 떠나서까지 이런 못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고다정은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얼굴에 비친 꺼림칙해하는 표정을 본 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래주었다.“그런 쓸데없는 사람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요. 내가 약속할게요, 앞으로 그 여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요.”그러나 이때도 여준재는 머지않아 자신의 호언이 허언으로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물론 그건 뒷이야기였다.고다정은 여준재의 말을 듣고 그가 필히 무슨 일을 했겠구나 싶어, 더는 임초연을 신경 쓰지 않고 약재 공급업체를 걱정하기
이튿날 아침, 고다정은 여전히 약재가 걱정되어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곁에 아직 잠들어 있는 여준재를 보며,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씻고 연구소로 가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침대에서 내리기도 전에, 곤히 자고 있던 여준재가 갑자기 눈을 떴다.창밖이 아직 밝지도 않은 것을 보고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체를 들고 일어났다.“날이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일어났어요?”“연구소 일 때문에 잠이 안 와서요. 당신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얼른 더 주무세요.” 고다정은 미안해하며 여준재를 바라봤다.비록 어제저녁에 해결 방안에 관해서 얘기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최후의 노력을 하여 약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어찌하였든 이건 스승님이 자신한테 정식으로 맡긴 첫 번째 일인데, 완벽하게 처리를 못하여 스승님한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여준재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서, 마음이 아팠지만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같이 갈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내가 다정 씨를 연구소로 바래다줄게요.”고다정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이 남자가 자신을 아끼는 만큼 그녀도 그한테 마음이 쓰였기에, 그를 좀 더 쉬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설득해도 여준재를 꺾을 수가 없어,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청소부 외에 아무도 없었다.아직 출근 시간 전이기 때문이다.고다정은 사무실로 가려는데, 문득 실험실 A 구역의 기기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거기로 걸어가 그 안에서 분주히 돌아치고 있는 채성휘의 뒷모습을 보았다.고다정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채성휘가 열심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아침 출근 시간이 돼서야 채성휘는 고다정이 연구소에 있었다는 걸 알고 급히 찾아왔다.“고 선생님, 약재 공급업체는 소식이 좀 있나요?”“제 쪽은 아직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도 가능한 찾아달라고
저녁에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그녀의 미간에는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고 예쁜 얼굴에 홀가분하고 유쾌한 웃음기만 가득했다.“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내가 한번 맞춰 볼까요? 약재 일이 잘 해결됐어요?”“딩동댕. 정답입니다. 맞췄지만 장려는 없어요.”그녀는 애교 섞인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여준재를 쳐다봤다.여준재는 눈썹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 자신의 품속으로 안기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누가 그래요, 없다고?”거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앞에서 운전하던 구남준은 눈치 있게 가림막을 내렸다.한참 동안의 키스 후에 입술이 떼어지자 고다정은 온몸이 나른하여 숨을 헐떡이며 여준재의 품에 안겨 있었다.여준재도 별로 좋은 낯빛은 아니었다. 이마의 핏줄이 뚜렷해지고 무언가를 참는 내색이 여실하게 나타났다.다행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숨을 가다듬었고, 여준재는 그제야 궁금하여 물었다.“약재 문제는 어떻게 해결된 거예요?”“이 일은 다 채 선생님 덕분이에요. 채 선생님 친구분이 임시로 우리한테 약재를 빌려줘서 이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고다정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얘기했고, 주말에 채성휘와 함께 식사하고 나들이 나가기로 한 것도 털어놓았다.“채 선생님이 운산에 와서 한 번도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고 해서요.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뭐라도 해드려야 되지 않나 싶어서, 주말에 같이 나가서 놀자기에 그러기로 했어요.”그리고 그녀는 여준재가 질투할까 봐 뒤에 말을 덧붙였다.“물론 당신이 이곳 남자 주인이니까, 꼭 같이 가야 해요. 놀고먹는 일은 약혼자분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예비 신부님께서 직접 분부를 내리셨는데, 여부가 있겠어요?”여준재는 총애의 눈길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수응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되었다.채성휘와 놀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고다정과 여준재는
이런 생각은 온천 산장에 도착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그들은 더 좋은 구경을 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도보로 산기슭에서부터 산 정상에 있는 온천 산장으로 올라갔다.전에 고다정과 여준재가 같이 왔을 때는 한 가을이라 올라가는 길에는 단풍잎들이 울긋불긋 물들어 한 폭의 아름다운 유화와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갓 여름이 시작되어 사방이 봄꽃으로 단장되고 산 좋고 물 맑은 초여름의 완연한 풍경이 마치 인간 절경을 보는 것 같아 그야말로 힐링이 따로 없었다.아이들은 눈앞의 경치에 한껏 들떠서 고다정과 여준재를 팔을 끌어당기며 활짝 웃었다.“엄마 아빠, 우리 사진 찍어요.”여준재도 당연히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고다정의 허리를 껴안고 두 아이한테 사진을 부탁했다.“아빠, 엄마 좀 더 가깝게 껴안아 봐요.”“엄마, 아빠 좀 보세요.”두 아이는 그들한테 포즈를 잘 취하라고 진두지휘하고 있었다.나무 아래에서 다정하게 붙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고다정과 여준재를 보며 채성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아예 눈길을 돌려 보지 않고 생각지도 말자고 하는 그때, 두 아이는 일부러 찍은 사진을 들고 와 보여주며 그한테 잘 찍었는지 평가를 요구했다.“아저씨, 우리가 찍은 이 사진, 어때요? 잘 찍었어요?”두 아이는 말하며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을 채성휘한테 들이밀었다.피할 수 없어 그는 사진을 대충 한번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당겨 고개를 끄덕였다.“예쁘네.”“저도 너무 예쁜 거 같아요. 아빠랑 엄마랑 너무 잘 어울리죠. 아저씨?”하준은 작은 머리를 뒤로 젖혀 채성휘를 똘망똘망하게 쳐다봤다.마치 채성휘가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계속 뚫어지게 그를 쳐다볼 것처럼 말이다.채성휘는 눈앞의 요 꼬마를 깊이 들여다보며, 이 녀석이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그저 무심코 하는 얘기일지를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애가 몇 살밖에 안 되었는데, 설마 어른들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그는 진
채성휘의 말과 소탈한 얼굴 기색에 여준재는 그가 이미 마음속 집념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고,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전 당연히 다정 씨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여준재는 고개를 숙여 품속에 있는 여자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마침 그때 고다정도 고개를 들어 여준재를 쳐다보았고, 두 사람의 눈길은 서로 마주치며 달콤한 분위기가 그들 주변을 감돌았다.곁에서 보는 채성휘는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끝내는 생각을 비워 내어 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았다.그는 옆에 있는 두 아이를 향해 손짓하며 조용히 말했다.“하준아, 하윤아. 아저씨가 너희들이랑 같이 먼저 올라갈까? 아빠랑 엄마는 뒤에서 천천히 오라고 하자.”두 아이는 이 말에 그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어쨌든 이 아저씨를 데려가면 아빠와 엄마가 같이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더 싹틔울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채성휘는 두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그저 그 둘이 자기를 따라나서자 한 손에 한 아이씩 잡고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올라가는 길에 하준은 자주 고개를 들어 채성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그의 눈빛을 채성휘는 진작에 발견하고, 아이가 또다시 한번 훔쳐볼 때 얼른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너 이 녀석, 아까부터 왜 자꾸 날 힐끔힐끔 쳐다봐? 무슨 할 말이 있어?”하준은 눈을 깜박거리며 앙증맞은 소리로 물었다.“아저씨, 아저씨 집에는 아이가 있어요?”채성휘는 어리둥절해서 의문스레 쳐다봤다.“왜 갑자기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보니까 아저씨가 우리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데, 결혼하셨을 거 같아서요. 우리 아빠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나 해서요.”하준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다섯 글자를 강조하며 말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채성휘는 알아듣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아저씨가 너희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 건 맞지만, 아저씨는 실험실에서 계속 일만 하다 나니 아직 결혼도 못했고 여자친구도 없어.”“네? 여자친구도 없다고요? 그
지난 한 달 동안 진씨 집안과 고씨 집안은 확실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좀 더 탄탄했던 진씨 집안은 그래도 고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 진씨 집안에서 고경영의 회사에 일부 자금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고씨 집안 회사는 아마 진작에 파산을 선고했을 것이다.근황을 전하며 심여진은 자신이 마중 나온 진짜 목적도 잊지 않고 얘기했다.“너 돌아가서 시부모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집안에서 우리 집에 돈을 더 투자 안 하면 네 아버지 회사가 망해버릴 거야. 그럼 너나 나나 그날로 끝장인 거야, 내 말을 잘 알아듣겠니?”“네,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시부모님이 저를 못마땅해하는데, 우리 집이 파산하면 더 이혼하라고 난리 칠 걸 저도 알아요.”고다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모녀는 다정한 말을 주고받으며 고씨 집안 저택으로 돌아갔다.고경영은 저택 안에 없었고, 심여진은 고다빈을 씻으라 하고 또 한참을 쉬고 난 후에야 기사 편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다빈이 진씨 집안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그녀는 거실에 들어서자 진씨 일가 사람들이 한창 식사 중인 걸 보았다.진씨 집안 두 어르신은 고다빈을 차갑게 흘겨보더니 상대할 마음이 없다는 듯 계속하여 밥을 먹었다.진시목은 그래도 그녀를 본체만체하지는 않았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점심때 나오는 거 아니었어? 왜 이제야 집에 돌아와? 그리고 너 얼굴에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비록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관심이 담긴 그의 말에 고다빈은 그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제가 걱정되어 엄마가 절 친정집에 데려갔었어요. 얼굴은... 그 안에서 실수로 부딪힌 거니까 괜찮아요.”고다빈은 말을 마치고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시부모님을 향해 인사를 드렸다.“어머님, 아버님. 저 왔어요.”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도 시부모는 여전히 차가운 낯빛을 하고 있었다.“돌아오든 말든. 뭐 일어나서 환영식이라도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