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감에 휩싸인 고다정을 보며 여준재는 살며시 그녀를 품에 안으며 위로했다.“자책할 필요 없어요. 다정 씨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고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그녀는 그동안 연구소의 일 때문에 두 아이와 가정, 심지어 여준재한테도 소홀했다.하지만 여준재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마음 놓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숨긴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는 아까 여준재한테 화를 낸 거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아까 그렇게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제가 두 아이한테 소홀해 놓고는, 준재 씨가 저 속였다고 화내서 미안해요.”고다정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에게 사과했다.후회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본 여준재는 웃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더욱 다정하게 물었다.“다정 씨 바보 아니에요? 그게 왜 사과할 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다정 씨한테 아이가 아픈 걸 속였으니 엄마로서 다급함에 화를 내는 건 정상이죠.”하지만 고다정의 마음은 여전히 죄책감에 휩싸였다.여준재도 그걸 눈치채고는 그녀를 위로했다.“그렇게 미안하면, 그 프로젝트 끝나고 나와 아이들한테 제대로 보상해줘요.”“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앞으로는 가능한 집에 일찍 들어갈게요.”고다정은 조금 전 생각해놓은 계획에 대해 그에게 말해주었다.비록 연구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아이와 가족, 그리고 배우자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여준재는 무언갈 결심한듯한 그녀의 모습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또한 고다정이 그렇게까지 힘들게 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이다.그렇게 그 둘은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고다정은 하준이가 또다시 열이 날까 봐, 그동안 자주 하준이의 체온도 체크해줬다.다행히 거의 해가 뜰 대쯤, 하준이의 체온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고다정도 그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여
이른 아침, 고다정은 채성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전화기 너머로 채성휘의 목소리는 아주 다급해 보였다.“고다정 씨, 방금 생산부 실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HS 그룹에서 어젯밤에 보내기로 한 약초가 오늘 아침에 도착하지 않았대요. 전화로 물어보니, HS 쪽에서 합작을 종료했다고 하던데요? 지금 우리 쪽에 3일 후에 납품해야 할 주문도 있어요. 처음부터 다정 씨와 체결한 계약이니, 다정 씨가 그쪽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 돼요? 대체 왜 그러는지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삽시간에 멍해졌다.HS 그룹에서 말을 번복하고 계약위반 후 공급을 끊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얼른 정신을 차린 뒤 심각하게 물었다.“제가 한번 그쪽에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그런데 저희 이미 모든 희망을 HS 그룹에 걸었잖아요? 지금이라도 얼른 다른 약재 업체에 전화해서 저희한테 어느 정도의 약재를 줄 수 없는지 물어보세요. 약재가 비싸더라도 괜찮으니 납품일은 꼭 지켜야 해요. 이건 우리 연구소 명의까지 관련된 일이니까요.”“그 부분은 저도 잘 알아요. 다정 씨는 일단 HS 그룹에 연락해봐요. 저도 아는 사람 통해서 약재 물어볼게요.”말은 마친 뒤 채성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한편 고다정은 바로 계약서 체결을 담당했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 연결음이 한참을 울려도 상대 쪽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때마침 여준재가 욕실에서 나오며 굳은 얼굴로 앉아있는 고다정을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요? ”“HS 그룹에서 갑자기 계약을 중지했어요. 원래는 어제 도착해야 하는 약재가 오늘 아침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대요. 거기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요.”고다정은 속임 없이 그 상황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여준재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누가 뭐라고 하든 HS 그룹은 그가 고다정에게 소개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그의 일 처리 능력이 좋지 못하다는 걸 나타내는 것
비록 윗선에서 이미 그에게 대충 핑계를 대라고는 했지만, 여 씨 그룹에서 이 일에 끼어드는 한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이윽고 이 실장이 처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구 비서실장님, 물건 공급을 멈춘 이유는 그쪽 사모님이 저희 대표님 약혼녀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밖에 말해주지 못하겠네요.”“그쪽 대표님 약혼녀가 누구인데요?”구남준이 바로 되묻자 이 실장은 완곡하게 거절했다.“그것까지는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여 씨 그룹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저희 대표님 약혼녀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여 씨 그룹에서는 그게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제 말 맞죠?”그 말을 들은 구남준은 자신이 되묻는다고 해도 더는 그에게서 별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챘다.하여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정보를 캐냈기에 예의상으로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그는 여준재에게 바로 보고하지 않고 문자를 몇 통 보낸 뒤에야 여준재에게 연락했다.“대표님, 정보 알아냈습니다. HS 그룹에 말로는 사모님이 그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에게 미움을 사 약재 공급을 멈춘 거라고 합니다.”“현진우 약혼녀?”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게 누군데?”구남준은 솔직하게 답했다.“그쪽에서 그들 대표님 약혼녀가 누군지는 끝까지 말하려 하지 않아 저도 지금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게 했습니다. 늦어도 오후쯤에는 정보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그래, 알겠어. 제대로 확인해보고 다시 보고해. 그리고 사람 시켜서 적당한 약재 공급업체가 있는지도 한번 알아보고.”여준재가 그에게 업무를 분부하자 구남준은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그는 그 일을 제대로 조사해보고 고다정에게 알려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이 일에 대해 중시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니, 차라리 그냥 바로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실제로도 고다정은 그 일에 대해 엄청 신경 쓰고 있었고 온 오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이때
어쨌든 국내에서 손꼽히던 임씨 가문이 삼류로 나자빠지게 된 건 모두 여준재 덕분이다.그러나 어디까지나 화근은 자기 집 안에 있다는 걸 임성도 잘 알고 있었다.임초연이 계속 여준재의 한계를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두 집안이 그동안 쌓아온 정을 봐서라도 서로 체면은 지켜주었을 것이다.생각을 그리 한 임성은 결단을 내렸다.“구 비서님, 여 대표님께 잘 알아들었다고 전해주시죠.”“어르신이 이해하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수고하세요.”구남준은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었다.휴대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임성은 나쁠 대로 나빠진 안색으로 집사를 부르며 물었다.“초연이 어디 있어?”어르신이 왜 화 났는지 영문을 모르지만 집사는 사실대로 대답했다.“아가씨는 위층에 있습니다.”“당장 불러와, 아비와 며느리도 같이.”임성은 차갑게 분부를 내렸다.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우미한테 아가씨를 불러오라 얘기하고 자기는 임광원 부부를 모시러 갔다.집에 계속 있었던 임초연은 금방 거실에 나타났다.할아버지의 안색이 별로인 걸 보고 그녀는 살짝 겁이 났다. 그녀는 그가 왜 화났는지 이유를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할아버지, 절 부르셨어요?”임성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곁눈질로 차갑게 쳐다보며 얼굴에 불만이 흘러넘쳤다.“그래, 잠시 기다리거라. 네 부모가 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고, 넌 저기 벽 쪽에 일단 기대 있어. 심란하게 내 눈앞에 자꾸 알짱대지 말고.” 말을 마치자 그는 시선을 돌려 더 이상 임초연을 상대하지 않았다.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임초연은 눈빛에 원망스러움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이 자신과 관련 있다는 걸 눈치챘다.30분 뒤, 임광원 내외가 돌아왔다.그들은 돌아오자마자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임초연과 안색이 별로인 임성을 보았고, 임광원은 눈살을 조금 찌푸리더니 임성한테 다가가 공손히 물어보았다.“아버님, 초연이가 뭘 또 아버님을 기분 거슬리게 했나요?”“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각, HS그룹 내에 현진우도 한창 아버지한테 야단맞고 있었다.구남준이 분부를 내리자마자, YS그룹 남양 지사에서는 신속한 일 처리 방식으로 즉시 HS그룹에 사람을 보내 위약금을 청구했는데, 이 일이 마침 회사를 시찰하러 온 현우성한테 들켜버렸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우리 현씨 집안에서 백년 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네가 한꺼번에 다 무너뜨린 거야!”아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계약을 중요시하는 회사의 원칙을 배반하고, 명성에 누를 끼친 데 대해 현우성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너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알아? YS그룹이야, YS그룹!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너 어찌 감히?!”그러나 현진우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뭐 건드리면 어때요? 우린 어차피 서로 다른 사업을 하는데, 지역도 완전히 틀리고. 여준재가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한테 뭘 어쩌겠어요?”“누가 그래, 어쩌지 못한다고! 그건 그 사람이 하냐 안 하냐의 문제야. 아니면 너 임씨 집안 그것들이 왜 운산에서 쫓겨난 거 같아? 왜 그 금싸라기 같은 운산에서 이런 별 볼 일 없는 남양에 왔겠냐 말이야!”현우성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보며 호통쳤다. “임씨 집안 그 계집애가 대체 너한테 무슨 꼬리를 쳤길래 네가 이렇게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것이야?! 너 내가 말하는데, 내일 당장 선물 바리바리 싸 들고 운산으로 가서 여 대표와 여 대표 사모님한테 사과해, 알겠어?!”아버지가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치 못한 현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에 거부하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난 사과하러 안 가요. 내가 간다고 해도 그 여 대표님이 날 용서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안가? 그럼 너랑 임씨 집안 그 계집애와의 혼사는 없던 걸로 하자. 나중에 다시 너의 어머니한테 우리 집과 걸맞은 집안에서 며느릿감을 골라 너랑 결혼을 시킬 테니 그렇게 알아라. 그러면 이번 일로 일어난 스캔들도 덮을 수 있을 거야.”아들이 사과를 거부할 것에 대해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임초연은 자기 때문에 현씨 부자가 케케묵은 지난 일들까지 들춰내며 다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녀는 현재 현씨 집안 별장에 잘 안착하고 나서, 베란다에 서서 물끄러미 서쪽을 향해 보고 있었다.서쪽은 운산이 있는 방향이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임씨 집안과 결별하고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임씨 가문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 없이 전심전력으로 여준재와 고다정한테 복수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자신은 다 망쳐버렸는데, 그 둘은 어떻게 깨가 쏟아지게 잘 살 수 있단 말인가?!절대 용납할 수 없다!......한편 그날 저녁, 고다정은 연구소에서 돌아와 여준재와 두 아이가 거실에서 놀고 있고 외할머니가 옆에 앉아계신 걸 보았다.현씨 집안 소식을 물어보려고 했던 그녀는 다시 입안의 말을 삼켜버렸다. 외할머니가 듣고 걱정하는 게 싫었다.그렇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할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나서 그들이 다 각자 방으로 돌아간 후에야 여준재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고다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준재는 이미 그녀가 물어보려는 게 뭔지 다 알고 현씨 집안 이야기를 스스로 꺼냈다.“남준이가 알아보니 현진우 약혼녀는 임초연이었어요.”“그 여자였어요?!”고다정은 놀란 기색을 하며 눈빛의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여준재가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거의 이 여자를 잊고 살 뻔하였다.그 여자가 운산을 떠나서까지 이런 못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고다정은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얼굴에 비친 꺼림칙해하는 표정을 본 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래주었다.“그런 쓸데없는 사람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요. 내가 약속할게요, 앞으로 그 여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요.”그러나 이때도 여준재는 머지않아 자신의 호언이 허언으로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물론 그건 뒷이야기였다.고다정은 여준재의 말을 듣고 그가 필히 무슨 일을 했겠구나 싶어, 더는 임초연을 신경 쓰지 않고 약재 공급업체를 걱정하기
이튿날 아침, 고다정은 여전히 약재가 걱정되어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곁에 아직 잠들어 있는 여준재를 보며,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씻고 연구소로 가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침대에서 내리기도 전에, 곤히 자고 있던 여준재가 갑자기 눈을 떴다.창밖이 아직 밝지도 않은 것을 보고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체를 들고 일어났다.“날이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일어났어요?”“연구소 일 때문에 잠이 안 와서요. 당신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얼른 더 주무세요.” 고다정은 미안해하며 여준재를 바라봤다.비록 어제저녁에 해결 방안에 관해서 얘기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최후의 노력을 하여 약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어찌하였든 이건 스승님이 자신한테 정식으로 맡긴 첫 번째 일인데, 완벽하게 처리를 못하여 스승님한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여준재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서, 마음이 아팠지만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같이 갈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내가 다정 씨를 연구소로 바래다줄게요.”고다정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이 남자가 자신을 아끼는 만큼 그녀도 그한테 마음이 쓰였기에, 그를 좀 더 쉬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설득해도 여준재를 꺾을 수가 없어,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청소부 외에 아무도 없었다.아직 출근 시간 전이기 때문이다.고다정은 사무실로 가려는데, 문득 실험실 A 구역의 기기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거기로 걸어가 그 안에서 분주히 돌아치고 있는 채성휘의 뒷모습을 보았다.고다정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채성휘가 열심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아침 출근 시간이 돼서야 채성휘는 고다정이 연구소에 있었다는 걸 알고 급히 찾아왔다.“고 선생님, 약재 공급업체는 소식이 좀 있나요?”“제 쪽은 아직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도 가능한 찾아달라고
저녁에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그녀의 미간에는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고 예쁜 얼굴에 홀가분하고 유쾌한 웃음기만 가득했다.“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내가 한번 맞춰 볼까요? 약재 일이 잘 해결됐어요?”“딩동댕. 정답입니다. 맞췄지만 장려는 없어요.”그녀는 애교 섞인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여준재를 쳐다봤다.여준재는 눈썹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 자신의 품속으로 안기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누가 그래요, 없다고?”거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앞에서 운전하던 구남준은 눈치 있게 가림막을 내렸다.한참 동안의 키스 후에 입술이 떼어지자 고다정은 온몸이 나른하여 숨을 헐떡이며 여준재의 품에 안겨 있었다.여준재도 별로 좋은 낯빛은 아니었다. 이마의 핏줄이 뚜렷해지고 무언가를 참는 내색이 여실하게 나타났다.다행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숨을 가다듬었고, 여준재는 그제야 궁금하여 물었다.“약재 문제는 어떻게 해결된 거예요?”“이 일은 다 채 선생님 덕분이에요. 채 선생님 친구분이 임시로 우리한테 약재를 빌려줘서 이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고다정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얘기했고, 주말에 채성휘와 함께 식사하고 나들이 나가기로 한 것도 털어놓았다.“채 선생님이 운산에 와서 한 번도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고 해서요.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뭐라도 해드려야 되지 않나 싶어서, 주말에 같이 나가서 놀자기에 그러기로 했어요.”그리고 그녀는 여준재가 질투할까 봐 뒤에 말을 덧붙였다.“물론 당신이 이곳 남자 주인이니까, 꼭 같이 가야 해요. 놀고먹는 일은 약혼자분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예비 신부님께서 직접 분부를 내리셨는데, 여부가 있겠어요?”여준재는 총애의 눈길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수응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되었다.채성휘와 놀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고다정과 여준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