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잠시 멍해졌지만 여전히 채성휘가 자신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어쨌든 약혼자도 있고 아이도 있다고 공개했는데,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은 이상 이런 여자에게 마음을 줄 리 없지 않은가.“당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맞아요. 채 선생은 예의상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어요.”“...”여전히 믿지 않는 고다정을 바라보던 여준재는 문뜩 계속 쟁론하다가는 서로 감정만 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하기로 했다.“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나 봐요.”여준재가 더 이상 고집하지 않자 고다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한쪽은 애인이고 한쪽은 스승님이 특별히 모셔 온 전문 연구원이니 두 사람이 충돌하면 그녀가 중간에서 곤란해질 것이다.여준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녀가 여전히 그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있다.채성휘가 본색을 드러내게 해야 할 것 같다.고다정은 여준재의 이런 속내를 모르고 있었다.잠시 후 식사가 끝나고, 여준재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들어가야 했다.가는 길에 그는 고다정을 연구소에 데려다주었다.그녀는 연구소에서 채성휘가 말한 이론에 정말 문제가 있는지 추론해 보려 했다.정말이라면 일찌감치 스승님과 상의해야 하니까.바삐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갔다.날이 어두워져서야 고다정은 마침내 추산을 멈췄다.그녀는 책상 위의 추산 결과를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이 결과는 정말 채 선생님이 말한 대로 문제가 있잖아.”그녀가 스승님께 연락하려 할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고, 흰색 가운을 입은 채성휘가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채 선생님, 여긴 왜 오셨어요?”고다정이 의외라는 듯 걸어와 문을 열자, 채성휘가 웃으며 말했다.“한잠 자고 일어났는데, 아까 그 문제가 생각나서 추론해 보려고 연구소에 왔어요. 좀 더 확실히 해야 하니깐요. 그런데 밖에 있는 김창석 씨가 고 선생님도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아까 제가 말한 그 이론을 추산하고 있었나요?”“네,
사실 여준재는 진작에 채성휘가 연구소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는 채성휘가 연구보다는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두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이놈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포기하게 만들어야지. 어리석게 군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고다정은 여준재의 이런 속내를 몰랐다.그녀는 여준재가 준이, 윤이를 데리고 왔다는 말에 매우 의아해했다.“애들은 왜 데려왔어요?”“당신이 바빠지기 전에 네 식구가 같이 외식하고 쇼핑하려고 그러죠. 이제 바빠지면 애들과 같이 보낼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요.”여준재의 진심 어린 말에 고다정은 별생각 없이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준이, 윤이를 데리고 올라와요.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같이 식사하러 가요.”“알았어요. 그럼 먼저 일 봐요. 준이, 윤이랑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요.”여준재는 고다정에게 일하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떴다.채성휘는 고다정이 다시 실험실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동공이 살짝 흔들리더니 말했다.“여 대표님이 데리러 오셨는데 먼저 들어가세요. 저 혼자서 결과를 기다려도 돼요.”“괜찮아요. 어차피 결과를 기다리는 데 30분도 안 걸릴 텐데 기다려도 무방해요.”고다정이 웃으며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그러자 채성휘는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다름이 아니라 무의식 간에 밖을 내다보다가 여준재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뽀얀 피부를 가진 두 아이는 너무 귀여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두 아이가 딱 봐도 여준재와 고다정의 장점만 쏙 빼닮은 영락없는 두 사람의 아이였다.고다정도 이때 유리문 밖의 쌍둥이를 발견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쌍둥이도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네 식구가 서로 교류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채성휘는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물론 그는 여준재가 일부러 두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에게 경고를 주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도 잘 알
식사가 끝나고 네 식구는 근처 보행자거리에서 쇼핑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다정은 너무 피곤했는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어느새 잠들어버렸다.이를 본 여준재는 쌍둥이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손짓한 후,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이를 지켜보던 쌍둥이가 입을 가리고 킬킬 웃었다.그러다가 하준이가 무슨 생각이 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마침 그 순간을 목격한 여준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미간을 찌푸려?”이 말을 들은 꼬맹이는 여준재를 쳐다보며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며 망설였다.그는 연구소에서 나올 때 성휘 아저씨가 엄마를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나자 결국 말하기로 했다.그는 아빠와 엄마가 간신히 맺어졌기에 둘의 애정 전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아빠, 가까이 와봐요. 조용히 말해줄게요.”꼬맹이가 여준재를 오라고 손짓했다.여준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렇게 비밀 얘기야?”그는 말하면서 하준이한테 가까이 다가갔다.옆에서 지켜보던 하윤이가 씨무룩해서 입을 삐죽거리며 방해했다.“나도 들을래. 나도 들을래.”“윤아, 조용히 해. 시끄러워서 엄마가 깨겠다.”하준이가 급히 쉿 하더니 동생을 달랬다.“집에 도착하면 알려줄 테니까 넌 얌전히 있어. 지금 먼저 아빠한테 얘기할 거야.”하윤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준이는 여준재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아빠, 성휘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아까 뒤로 돌아볼 때 발견했는데 아저씨가 엄마를 보는 눈빛이 아빠가 엄마를 보는 눈빛과 같았어요.”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깜짝 놀랐다.그는 이 녀석이 이 사실을 눈치챌 정도로 예민하리라 생각지 못했다.그는 꼬맹이의 알고 싶어 하는 눈빛과 마주치자 결국에는 숨기지 않았다.“네 말이 맞아. 그 사람이 아빠한테서 엄마를 빼앗으려 해. 그러니까 너 앞으로 아빠를 도와줘야 해. 알았지?”“정말 빼앗으려 했네!”하준이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
성인인 채성휘가 고다정의 발그레한 얼굴과 약간 부은 입술을 보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리 없다.그는 눈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지만 표정을 유지하며 온화하게 인사했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아, 채 선생님, 안녕하세요.”고다정은 여전히 쑥스러웠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인사했다.그러면서 차 안에 있는 여준재를 슬며시 노려보았다.‘이 남자가 기어코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켜 이렇게 민망해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여준재는 물론 고다정의 시선을 느끼고 빙그레 웃었다.그는 고다정에게 멀리서 채성휘가 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랬다고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다정 씨, 나 먼저 회사에 갔다가 저녁에 데리러 올게요.”이어서 여준재는 채성휘에게 인사하고 구남준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했다.고다정은 차가 멀리 가버린 후에야 시선을 돌렸다.이때 그녀의 귓가에 채성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선생님과 여 대표님은 금슬이 참 좋네요. 너무 부러워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무심코 채성휘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부러움 외의 다른 것은 없는 것을 보고 여준재가 했던 말들이 더욱 터무니없이 느껴졌다.‘채 선생님이 정말 나에게 무슨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이게 뭐가 부러워요? 채 선생님도 언젠가는 뜻이 맞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거예요. 그때 되면 저와 준재 씨보다 더 끈끈할지도 몰라요.”“그랬으면 좋겠네요.”기분이 엉망인 채성휘는 입꼬리가 축 처진 채 대답했다.그는 고다정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어젯밤에 물류센터에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택배로 보낸 약재가 도착했어요. 지금 창고에 입고됐을 건데 지금 확인하러 가실래요?”“약재가 도착했어요? 그럼 이따가 회의가 끝난 후 확인하러 갈게요.”고다정도 일 얘기가 나오자 진지해졌다.그렇게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면서 사무실로 향했다.30분 후 고다정은 연구소의 모든
“저한테 옷을 주시면 채 선생님은 어떡해요?”고다정이 관심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남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이 추위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고다정의 관심을 받아서인지 채성휘는 어둡던 눈빛이 한순간 반짝반짝 빛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연구소 업무가 시작되면 이쪽에서 야근하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요. 다른 코트를 가져올 테니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계셔요.”말하고 나서 그는 돌아서서 가버렸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다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채성휘가 갈아입을 옷까지 가져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예 연구소에서 살 생각인가. 참 각오가 남다르다.몇 분 후, 채성휘가 다른 코트를 입고 돌아왔고, 두 사람은 저온 창고로 들어갔다.한바탕 대조 확인한 후, 고다정은 이 진귀한 약재의 양이 이쪽 소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줄곧 고다정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채성휘는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자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요? 이 약재들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약재는 문제없는데 양이 모자랄 것 같아요.”고다정이 마음속 생각을 털어놓았다.채성휘는 이 말을 듣고 약간 난처해졌다.어쨌든 이 약재들은 그가 책임지고 사들인 것이므로 지금 양이 부족한 것도 그의 책임이다.“그러면 제가 약재상에 다시 연락해서 좀 더 보내라고 할게요. 제가 꼼꼼히 챙기지 못했네요.”“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저도 스승님이 주신 핵심 자료를 봐서 약재가 대략 얼마나 필요한지 아는 거예요. 채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많은 진귀한 약재들을 구해왔으니 정말 대단하세요.”고다정은 채성휘를 탓할 수 없다고 여기며 고개를 저었다.채성휘는 비록 성시원이 모셔 온 핵심 연구원이지만 연구 프로젝트의 핵심 자료는 스승님이 그녀에게만 주었다.채성휘도 이 사실을 알지만 고다정이 자신을 감싸 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하지만 그는 이 약재들이 공급이 달리는 품종이라는 생각이 들자, 급히 흥분을 가라앉
이튿날 아침 고다정이 깨어 보니 자기 집 침대에 누워있었다.어젯밤에 여준재 품에서 잠든 후 여준재가 그녀를 안고 들어온 게 분명하다.주변을 둘러보니 방에는 그녀 혼자만 있었다. 그녀는 서운할 것도 없이 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일어났다.여준재는 항상 그녀보다 일찍 일어났으니까.간단히 씻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여준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쌍둥이와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엄마, 일어났어요?”쌍둥이는 고다정을 발견하고 방글방글 웃으며 인사했다.고다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아침 식사는 했어?”“저희는 먹지 않았고 외증조할머니는 일이 있어서 아침을 드시고 나갔어요.”하준이가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여준재가 옆에서 덧붙였다.“외할머니가 노인회관에 가입하셨는데, 오늘 아침 회관 사람들과 등산 약속이 있다고, 저녁에 돌아오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한테 전하라 하셨어요.”“외할머니가 언제 회관에 가입하셨죠? 저는 왜 모르죠?”고다정이 의아해하자 여준재가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요즘 바삐 보내니까 외할머니가 당신한테 말하지 말라 했어요. 근데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사람을 시켜 조사해 봤는데 다단계 사기, 그런 건 아니에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마음속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뒤이어 그녀는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아침 식사하자고 여준재와 두 아이를 불렀다.식사가 끝난 후 여준재는 고다정을 연구소에 데려다주려 했지만 그녀에게 거절당했다.“연구소에 가기 전에 신수 어르신한테 들러야 해요.”고다정이 이유를 말하자 여준재가 무심코 한마디 물었다.“왜요?”고다정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채 선생님이 가져온 약재가 부족해요. 신수 어르신이 좀 더 구해줄 수 있을지 해서요.”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고다정이 말하는 약재가 보통 약재가 아닐 것임을 직감하고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나도 사람을 보내 알아볼 테니 이따가 나한테 리스트를 줘요.”“그럴게요.”고다정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녀는 자기가 구하려는
고다정의 말을 듣고 신수 노인은 그녀가 한 발짝 물러섰다는 것을 알면서도 찬물을 끼얹었다.“천천히 사들인다 해도 이 모든 걸 다 구하기는 힘들 것 같아.”신수 노인이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정말 다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정말 진귀한 약재들이라 매년 성숙기가 되면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가 싹쓸이할 정도다.고다정도 이 사실을 알기에 방금 그 말을 한 것이다.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간곡하게 부탁했다.“어쨌든 있는 만큼 구입해 주세요. 마지막에 약재 한 톨도 못 받더라도 어르신을 탓하지는 않을 거예요.”“알았어.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도와줘야지. 이따가 문성 노인한테도 연락해 살피라고 할게.”신수 노인은 더 이상 찬물을 끼얹지 않고 정색하며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고다정은 감격하며 연신 감사를 표시했다.그녀는 신수 노인과 한참 의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신의약방을 떠났다.그러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연구소로 달려갔다.이때 연구소에서는 일이 착착 전개되고 있었고, 분망하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직원들은 고다정이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고 원장님.”“고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고다정은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개무량함을 느꼈다.‘내가 원장이 되는 날이 오다니.”물론 이 모든 것은 스승님 덕분이다.이런 생각을 하며 고다정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직원들에게 자기 때문에 일을 지체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당부했다.사무실에 들어선 후 그녀가 연구복으로 갈아입고 실험실에 가려 할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고 선생님, 들어와도 될까요?”“들어오세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다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시간을 보면, 채성휘는 이 시간에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어야 한다.고다정은 속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문을 밀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채 선생님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돌아오셨다고 해서 약재는 어떻게 됐는지
식사 후 고다정과 채성휘는 각자 실험실로 향했다.그렇게 바삐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한밤중이 됐다.오후에 한 번 해봐서 그런지 실험은 매우 순조로웠고 결과도 나왔다.실험실을 대충 정리한 후 고다정은 실험 수치를 들고 나갔다.문을 나서자 채성휘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옆 실험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채성휘도 고다정을 발견했다.그는 고다정이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를 힐끗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속도가 비슷하네요.”그는 말하면서 손에 있는 보고서를 흔들었다.고다정도 눈썹을 치켜올리며 방긋 웃었다.“그렇다면 우리 같이 결과를 보는 게 어때요?”“그러죠.”채성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두 사람은 3초간 침묵한 후 같은 시간에 수치를 말했다.그와 동시에 고다정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채성휘의 수치가 그녀의 수치보다 답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이럴 수가?”고다정은 자신의 이론이 왜 틀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채성휘는 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고 선생님이 이론을 잘못 생각한 것은 정상적인 일이에요. 어쨌든 저처럼 체계적으로 제약 이론을 배운 적이 없으시니까요. 배우셨더라면 이 실험에 세 가지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걸 아셨을 거예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이내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그녀는 가르침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제가 간단하게 생각했어요.”상대방은 의학을 전공한 석사 졸업생이니 전문 이론에서는 당연히 그녀보다 강하고 아이디어도 많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며 고다정은 약간 쑥스럽게 채성휘를 바라보았다.“채 선생님,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채성휘는 여인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전문용어 이론 서적들을 정리해 달라는 거죠?”“정말 채 선생님을 속일 수 없네요.”고다정이 인정하자, 채성휘가 웃으며 말했다.“큰일도 아닌데요. 마침 제가 보던 책들을 아직 버리지 않았는데, 부쳐 보내라고 할게요. 책에 제 필기도 있어서 더 빨리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