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팀장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자기가 방심하는 바람에 이동수를 떠나보냈다고 또 한 번 후회했다.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재무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동수가 이미 회사를 떠났는데, 지금 그를 찾아 횡령 문제를 추궁하는 게 가능할까요?”“솔직히 말하면 어렵습니다.”재무팀장은 머리를 흔들며 부정적 의견을 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고다정이 장부를 파헤치지 않기를 바랐다.그가 조금 전 했던 거짓말이 탄로 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부에 이동수가 저지른 것도 있지만 그가 몰래 손댄 것도 있기 때문이다.상황을 모르는 고다정은 재무팀장의 말을 듣고 표정이 안 좋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금 뒤 그녀는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현재 회사에 유동 자금은 얼마나 있어요?”“2,000만 원 미만입니다.”재무팀장은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 목소리가 훨씬 낮아졌다.이를 눈치채지 못한 고다정은 오히려 금방 들은 숫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운산에서 50위권에 드는 상장회사가 장부상 유동 자금이 2,000만 원밖에 안 된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이 순간 고다정은 많은 직원이 회사를 나간 것이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 월급을 지급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물었다.“장부상 자금이 이렇게 적은데, 그동안 월급은 어떻게 지급했어요?”“아, 이전에는 줄곧 본사에서 월급을 지급했었는데, 이제 대표님이 맡으셨으니 앞으로는 회사 자금에서 나가야겠죠.”재무팀장은 말하고 나서 그렇지 않냐는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그 뜻을 모를 리 없는 고다정은 돈을 버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어쨌든 이미 인사팀장한테 직원을 모집하라고 지시했으니 모든 직원을 합하면 100명까지는 아니더라도 80~90명은 될 것이다. 그러면 한 달 월급만 적어도 2억 원 가까이 지급해야 한다.물론 그녀에게 2억 정도의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달 회사에 자기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고다정은 재무팀
자책하는 여인을 바라보던 여준재는 가슴 아픈 나머지 그녀를 꼭 껴안으며 다독여 주었다.“이 일은 당신 탓이 아니에요. 비즈니스 요령을 모르니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에요.”고다정은 몇 초간 침묵했다. 그녀도 여준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안다. 이 일에 그녀도 책임이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그녀가 아니라 이동수한테 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희망에 찬 눈빛으로 여준재를 쳐다보았다.“제가 지금 이동수의 책임을 추궁하면 그가 횡령한 돈을 토해낼까요?”“시도해 볼 수 있어요. 이따가 자료를 정리한 후 경찰에 넘겨서 입건하게 해요.”여준재가 고다정의 귓가에 대고 아이디어를 냈다.정말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고다정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면 재무팀장한테 알고 있는 상황들을 정리해 달라고 해야겠어요.”“그래요.”“이렇게 되면, 손실을 일부 만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직원 모집이 시급해요.”고다정은 말하다 뭐가 생각난 듯 다시 여준재를 바라보며 물었다.“헤드 헌팅 회사를 좀 소개해 줄래요? 빨리 직원을 모집하지 않으면 회사가 엉망진창이 될 것 같아요.”“그건 간단해요. 이따가 사람을 찾아줄게요.”여준재가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고다정이 그를 향해 방긋 웃었다.“당신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어요.”“뭔데요?”여준재가 묻자 고다정이 웃으며 대답했다.“당신한테 회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배우고 싶어요. 오늘 회사에 이런 문제가 생긴 데는 제 탓이 커요.”그녀가 회사 경영에 대해 알았다면 이동수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이 말과 품속에 안긴 여인의 침울한 표정에서 여준재는 그녀가 여전히 후회하고 있음을 알아챘다.“회사 일에 관해서는 자책할 필요 없어요. 이동수가 고경영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어느 회사에서 임원이 바뀌었다고 아래 직원들이 집단 사직을 해요? 고경영이 당신이 회사 관리에 아마추어인 걸 알고 일부러 훼방을 놓았을 거예요.”“왜 그렇게 깔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운산은 인터넷 기사 때문에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신우하이테크에 관한 기사를 보고 여러 가지 추측을 쏟아냈다.“직원들이 다 떠났다면 신우하이테크가 이번에는 정말 문을 닫겠네.”“최근 몇 년 계속 적자였다고 들었는데, 5년 버틴 것도 쉽지 않은 거야.”“아, 갑자기 내가 신우하이테크 주식을 샀던 게 기억났어. 파산한다면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게 손해잖아. 지금 당장 팔아야겠어.”“나도 신우하이테크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버텼으니 다시 살아날 줄 알았더니 파산이라니.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팔아야겠어. 너무 많이 손실 보기 전에.”이런 댓글들이 나오자 그 아래에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팔겠다는 대댓글이 줄을 이었다.이로 인해 원래 그나마 안정적이던 신우하이테크 주식이 하락세를 지속했다.여준재의 지시를 받고 신우하이테크에 대해 조사 중이던 구남준은 이때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와 신우하이테크의 주가 변동을 보고 급히 여준재에게 연락해 상황을 간단히 보고했다.“대표님, 인터넷에 신우하이테크 직원의 집단 사직에 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누리꾼들이 신우하이테크가 파산하는 줄로 알고 줄줄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면서 지금 신우하이테크 주식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인터넷 쪽은 잠시 내버려두고 주식시장에 집중해서 누리꾼들이 매도하는 주식을 전부 사들여. 다른 사람이 집중 매수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해.”“알겠습니다.”구남준은 지시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여준재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무슨 일이 있어요?”“신우하이테크 직원의 집단 사직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에 보도돼 회사가 파산한다고 생각한 누리꾼들이 줄줄이 주식을 매도하고 있어요. 조금 전 구 비서가 전화 와서 나한테 어떻게 할지 물었어요.”여준재는 숨기지 않고 인터넷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이 말을 들은 고다정도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여준재는 고다정이 뒤숭숭해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회사 일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구 비서한테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매도하는 주식을 전부 사들이라고 지시했으니 주식시장 쪽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지금 회사에 나가요. 구 비서가 사람을 데리고 건너갔을 거예요. 준이와 윤이는 내가 학교에 데려갈게요.”“정말 회사 일이 걱정되긴 해요. 그럼 준이와 윤이는 당신에게 맡길게요.”고다정은 사양하지 않고 이내 핸드백을 들고 문을 나섰다.여인이 급하게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준재는 빙그레 웃었고, 속으로 회사 일을 끝낸 후 신우하이테크에 도우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이를 모르는 고다정이 회사에 도착하니 밖에 언론 기자들이 쫙 깔려 있었다.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에돌아서 뒷문으로 회사에 들어갔다.들어서자마자 구남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작은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회사에 나오셨다고 하던데 지금 어디 계셔요? 지금 회사 밖에 기자들이 깔려 있어서 도착하시면 절대 앞문으로 들어오지 마세요.”“알아요. 저 이미 뒷문으로 들어왔어요.”고다정은 말하며 비상 통로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실을 보며 휴대폰에 대고 말을 이었다.“제가 곧 사무실에 도착하니 만나서 얘기해요.”“알겠습니다, 작은 사모님.”구남준은 대답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몇 분 후, 고다정이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구남준까지 무려 10명이나 됐다.이들은 고다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잇달아 일어서며 공손하게 인사했다.“작은 사모님.”“안녕하세요.”고다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구남준이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작은 사모님, 이 사람들은 대표님의 지시로 각 지사에서 뽑아온 능력자들입니다. 당분간 신우하이테크의 프로젝트, 마케팅, 고객서비스와 재무 등 직무를 맡을 것입니다.”이 사람들이 여준재가 각 지사에서 뽑아서
고다정의 생각을 모르는 구남준은 대뜸 머리를 저으며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저는 사양할게요. 작은 사모님께서 솔로인 저를 좀 봐주세요.”“풉.”구남준이 이렇게 익살스럽게 거절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고다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가기 싫으면 가지 마세요. 준재 씨한테 월급을 2배로 올려주라고 말할게요.”이런 말을 주고받을 때 책상 위의 내선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니 고객서비스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작은 사모님, 조금 전 몇몇 협력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는데, 이들은 우리와 제휴를 해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넌지시 밝혔습니다. 제가 일단 달래긴 했지만 이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지 않고, 게다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전화기 저편에서 담당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용건을 말했다.겨우 긴장이 풀렸던 고다정은 이 말을 듣자 또다시 신경이 곤두서서 급히 캐물었다.“왜 제휴를 해지하려는 건지 물어봤어요?”“물어봤는데, 대부분 똑같은 생각입니다. 다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 주가도 하락한 데다 인터넷에 머지않아 파산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빨리 손절하려는 겁니다.”담당자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할 말을 잃었다.담당자는 고다정이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그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걸 알아채고 먼저 입을 열었다.“작은 사모님, 현재 중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구 비서님한테 말해서 인터넷상의 루머를 해명하고 신우하이테크가 재정비 후 YS그룹과 제휴를 맺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요. 그러면 잠시 고객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그렇게 해도 돼요? 그리고 YS그룹과 제휴를 맺지 않았는데 그건 사람을 속이는 거잖아요?”고다정은 사람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비즈니스를 모르지만 신용이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쯤은 안다.담당자는 고다정이 이런 말을 하리라 예상치 못했는지 몇 초간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작은 사모님과 대표님의 관계로 볼 때, 두 회사가 제휴를 맺지
이 공고가 나오자 사태를 지켜보던 주식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다.특히 주식을 대거 저가 매도한 개인투자자들은 이때 후회가 막심했다.“회사 재정비라니? 신우하이테크가 파산하는 줄 알고 주식을 황급히 저가에 매도했는데, 진짜 큰 손해를 봤어.”“큰 손해뿐이야? 완전히 망했지. YS그룹과 관계를 맺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법칙을 잊었어? 내 돈, 아까워죽겠어.”“하하하, 난 다행히 주식을 팔지 않았어. 돈 벌었네.”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희비가 엇갈렸다.고다정과 여준재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단독룸에서 오붓하게 밥을 먹었고, 식사가 끝난 후에도 즉시 떠나지 않고 같이 앉아 커피를 마셨다.이때 여준재의 휴대폰이 울리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한 번 훑어보더니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고다정이 이내 그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제 구 비서한테 신우하이테크 직원의 집단 사직에 배후가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했는데, 결과가 나왔어요.”여준재가 휴대폰을 고다정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내 추측이 맞았어요. 직원들의 사직이 고경영과 연관이 있어요. 심지어 오늘 아침의 인터넷 여론도 그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거예요. 그리고 당신 계모도 엉큼한 사람인지라 이번 일에서 고경영 몰래 많은 일을 꾸몄어요.”이 말을 듣고 휴대폰 속의 자료를 보던 고다정도 안색이 변했다.“고경영, 심여진, 이 사람들은 계속 제 주변을 맴돌면서 어디나 빠지지 않네요.”그녀의 눈에서 혐오감이 넘쳐흘렀다.여준재는 증오에 불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달랬다.“됐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서 몸을 망가뜨리면 손해에요.”고다정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여준재의 말이 맞는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다가는 조만간 화병 걸려 죽을 것이다.품속의 여인이 진정된 것을 본 여준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계속 설득했다.“사
여준재 같은 대사업가가 가르치니 고다정이 사업 수단을 장악하는 속도도 로켓이라도 탄 듯이 빨랐다.이틀 후, 신우하이테크는 여준재와 고다정의 공동 노력으로 끝내 안정을 찾았다.직원도 끊임없이 충원해 회사가 정상적 운영을 회복했다.그럼에도 고다정은 매일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그녀가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여준재 같은 대사업가와 구남준 같은 유능한 엘리트 직원이 지도한다고 해도 어쨌든 회사를 처음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이로 인해 그녀가 해야 할 것도 다른 사람보다 많았다.겨우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녀는 몸이 반쪽이 됐다. 이를 지켜보는 여준재와 강말숙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강말숙은 매일 갖은 방법을 다해 고다정에게 몸보신을 시켜주었다.여준재도 매일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하라고 주방에 시켜서 회사에 갖다주었다.좀 쉬게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안다.그는 고다정이 신우하이테크를 제대로 경영하려 하고, 적어도 신우하이테크가 영업을 회복해야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임을 안다.그래서 그는 고다정을 더 호되게 채찍질했다.이날 저녁에도 고다정은 여준재한테서 서류 처리에 대해 한밤중까지 공부했다.요즘 너무 힘들었는지 여준재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녀는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더니 눈을 뜰 수가 없었다.쿵 하고 고다정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자기 팔에 머리를 쪼았다.여준재가 소리를 듣고 옆을 보니 원래 아름답던 용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여인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특히 눈 밑의 다크서클이 심했다.그는 한숨을 쉬고는 조심조심 일어나 그녀를 옆으로 안고 서재에서 나왔다.이동하는 동안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고다정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잠꼬대를 했다.“말은 70%만 믿고... 가격을 매길 때는 여지를 두고... 경제뉴스를 많이 보고...”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이 소리를 똑똑히 들은 여준재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이날 고다정은 집에서 쌍둥이랑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대부분은 고다정이 소파에 앉아 그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확실히 많이 지쳤던 그녀는 쉰다고 하니 꼼짝도 하기 싫었다.쌍둥이도 그걸 눈치채고 너무 기특하게 그녀를 들볶지 않았다.심지어 하준이는 기특하게 엄마한테 다가가더니 애티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많이 피곤해요? 다리 주물러 줄까요?”“나도 엄마 안마해 줄래.”하윤이도 소파에 올라와 고다정의 뒤에 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려고 했다.고다정은 쌍둥이의 안마를 받으며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옆에서 여준재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온종일 집에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저녁에 강말숙이 특별히 고다정을 위해 몸보신에 좋은 삼계탕을 끓였다.그러나 고다정은 며칠 연속 보신탕을 먹은지라 이 탕을 보자 식욕이 뚝 떨어졌다.강말숙은 그것도 모르고 흐뭇해하며 삼계탕을 들고 들어와 보물을 바치듯 고다정의 앞에 놓으며 재촉했다.“온도가 딱 맞으니 식기 전에 먹어.”“이따가 먹을게요.”말은 그렇게 하지만 고다정은 이따가 외할머니가 자리를 뜨면 여준재에게 떠넘길 생각이다.이를 모르는 강말숙은 강요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좀 있다 먹어. 나는 소화도 시킬 겸 애들을 데리고 화원에 산책하러 갈게.”“알았어요. 준이 윤이가 외증조할머니 잘 챙겨.”고다정은 쌍둥이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나서 그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들이 문을 나서자마자 고다정은 보신탕이 들어있는 그릇을 여준재에게 떠밀었다.“빨리빨리, 나 대신 먹어요.”여인이 보신탕이 싫증 나서 그런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여준재는 머리를 흔들며 장난쳤다.“이건 외할머니께서 특별히 당신을 위해 끓인 보신탕이니 내가 먹으면 안 돼요. 외할머니가 아시면 기분 상하실 거예요.”“지금 외할머니가 없잖아요. 우리 둘이 말하지 않으면 외할머니는 모를 거예요.”고다정은 여준재가 일부러 놀리는 것도 모르고 그의 팔을 잡으며 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