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영의 말을 들은 여준재는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건 누가 봐도 고경영이 그 주식과 신분이라는 핑계로 그한테서 뭘 좀 뜯어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여기까지 생각한 여준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말했다.“혼례에 관해서 그쪽은 자격이 없다고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오늘 제가 온 이유는 주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말에 뭐라 토를 달 거라면, 주식은 그냥 당신이 직접 가져가세요.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GS 그룹도 파산될 거니까요. 그때 가서 제가 다시 인수해도 됩니다.”말을 마친 뒤 여준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였다.고경연은 여준재가 GS 그룹에 대해 이렇게 잘 알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여 얼른 그를 불러세웠다.“여 대표님, 잠시만요.”그는 종종걸음으로 여준재의 앞에 달려가 그를 막아서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조금 전에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저희 다시 주식에 관해 이야기 좀 해보죠?”그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이 여준재는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그 주식은 고다정이 계속 신경 쓰고 있는 물건이라 그래도 아직은 인내심 있게 고경영을 대하기로 했다.“주식에 관한 이야기이면…”“여 대표님, 아시다시피 지금 GS 그룹에서는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만약 그 주식을 양도하지 않으면 회사의 이익에도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요. 그때 가서 다정이가 이 주식을 손에 넣어도 그냥 한낱 종이 한 장에 불과할 것입니다.”고경영은 여준재가 하려던 말을 가로채며 갑자기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여준재는 화를 내지 않고 그냥 그의 연기를 조용히 지켜보았다.몇 분이 지나도록 고경영은 입이 마르도록 말했지만 여준재는 답이 없었다. 하여 그는 눈을 치켜뜨고 여준재를 바라봤다.“여 대표님, 저 이렇게나 많이 말했는데 지금쯤 혹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가요?”그 말을 들은 여준재는 차갑게 웃으며 그를 흘겨보았다.“그 뜻에 대해서 대략 알겠어요. 기왕 주식을 내놓고 싶지 않으면 저도 더는 곤란하게 하지
여준재는 고경영의 아부를 그닥 좋게 보지는 않았다.그는 냉담한 눈빛으로 고경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말한 제안에 별 의견이 없다면 내일 하루 준비시간을 줄게요. 내일 이 시간대쯤, 제가 다시 찾아와서 계약서 체결할게요.”“네, 알겠습니다.”고경영은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조금 전 구두로 한 협의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고 씨 집안이 여 씨 집안에 의지할 수 있도록, 몇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려고 했다.“여 대표님, 다름이 아니라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저희가 조금 전에는 그냥 간단하게 협력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더라고요. 많은 디테일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점심 식사 같이하시면서 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밥은 됐어요. 더 이야기할 디테일이 있으시면 지금 바로 말씀 주세요.”여준재는 그와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경영도 당연히 그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조금 전 생각했던 그 몇 가지 중요 디테일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혹시 조금 전 여 대표님이 말씀하신 프로젝트가 YS그룹에서 담당하고 있는 건가요?”“그렇죠.”여준재는 그의 말에 답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그 프로젝트는 확실히 YS그룹에서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지만 YS그룹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게다가 그가 말했듯이 제대로 운영을 해야 수억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그가 고경영에 대한 조사로 봤을 때, 고경영은 자신이 덫에 걸린 줄도 모르고 지금쯤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그는 여준재의 답을 듣고 신나서 손을 비비며 재차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더 한걸음 앞서 나갔다.“여 대표님, 저희 두 가문 회사 협력이 순리롭길 바랍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 대표님.”“그때 가서 다시 보죠.”여준재는 그의 속셈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경영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경영 또한 그 대답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여준
그 말을 들은 심여진은 고경영이 왜 신우 하이테크를 고다정에게 넘겨줬는지 알게 되었다.심여진은 매년 빚지고 있는 회사를 수억 원의 수익으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다.신우 하이테크의 이윤이 억대의 수익을 담보할 수 있으니 그건 황금알을 낳는 보배인 것이다.하지만 심여진은 그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었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수억 원의 수익이라고 해도 신우 하이테크의 가치가 그것뿐만은 아니지 않나요? 제 기억에 신우 하이테크에는 유료 특허도 많은 거로 기억하는데요.”“당신이 말한 거 나도 이해할 수 있어. 근데 그 특허만으로는 부족해. 그동안 그 회사가 우리의 자금을 얼마나 잡아먹었는지 모르지? 언제 한번 성공적으로 뭘 연구해낸 적이 없어. 이 쓰레기 같은 회사로 수억 원의 프로젝트를 바꾸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때마침 강수지가 다정이에게 남겨준 주식도 담보할 수 있고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우린 손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버는 거라고!”고경영은 아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그 말을 듣고 있던 심여진은 오히려 깜짝 놀라 그에게 물었다.“조금 전 고다정의 그 주식도 담보할 수 있다는 건 뭔 말이에요?”“한마디로 고다정이 그 주식을 포기하고, 손해 보는 회사를 가지게 된 거지.”고경영은 여기까지 말한 뒤 참을 수 없다는 듯 거만하게 웃어 보였다.“다들 여준재의 실력이 탁월하고 보는 안목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그냥 그런 것 같아. 어떻게 내 말 한마디에 수십억의 주식을 포기하고, 그런 회사를 가질 수 있어?”심여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한마디 욕하고 싶었다.‘어이구, 당신이 여준재를 갖고 논게 아니라, 당신이 여준재에게 놀아난 거라고.’GS 그룹의 지분은 오래전만 해도 신우 하이테크에 비해 조금 떨어졌다.결국, 하나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줄 수 있고 잘 운영하면 수익이 증가하는데, 다른 하나는 아무리 좋은 가치가 있어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의사결정자만 있을 뿐이었다.그렇게 생각하
그 말을 들은 여준재는 확실히 요즘 회사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소홀했다고 생각했고, 다소 죄책감을 느꼈다.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그냥 나가서 밥 먹죠. 때마침 밖에서 좀 돌아볼 겸요. 저도 한동안은 어디 놀러 나가지 않은 것 같아요.”“좋아요.”고다정은 그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두 아이도 오늘 저녁 밖에 나가서 밥도 먹고 놀 수도 있다는 말에 다들 들떠있는 상태였다.곧 그들 한 가족은 간단히 준비를 마친 뒤 외출했다.출발 전, 여준재는 미리 구남준더러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라고 했다.도착해서 자리에 착석 후, 두 아이는 여준재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빠 요즘 많이 바빠요? 우리 가끔은 아빠랑 놀러 나가고 싶었는데, 결국은 아빠를 찾지 못했어요.”“아빠 요즘 많이 바빴어. 근데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최대한 저녁에 시간 비우고 많이 놀아줄게.”여준재가 진지하게 답했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아이들 성장 관련에 전혀 참여한 적 없기에, 그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인 것이다.그것 때문에라도 그는 다시는 그렇게 아쉬움으로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두 아이는 그 말을 듣더니 아주 기뻐했다. 하지만 눈치는 빠른 듯 이어서 답했다.“특별히 시간 내서 우리와 놀아줄 필요 없어요. 돈 버는 게 중요하니까요.”‘아빠가 돈 벌지 않으면 엄마가 돈 벌어야 하니까요.’그들은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은듯했다.하지만 여준재는 이런 아이들의 생각은 모른 채, 단지 두 아이가 귀엽게 느껴졌다.저녁 늦게 즈음,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주변의 상가 쪽에서 시간을 보냈다.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고 해는 이미 저물어 완전히 어두워졌다.고다정은 거의 9시가 되어가는 걸 보고는 얼른 다른 집에 가자고 그들을 불렀다.집에 돌아간 뒤 두 아이도 지쳤는지 계속 하품만 하였다.하윤이는 더욱더 고다정에게 애교를 부렸다.“엄마, 나 졸려. 안아줘.”“그래, 엄마가 안아줄게.”고다정은 허리를 숙여 하윤이를 품에
자신을 위해 걱정하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그는 마음이 몽골 몽골 해졌다.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턱을 목덜미 쪽에 가져다 대면서 가볍게 웃어 보였다.“걱정하지 마요. 고경영이 나에게 들러붙기 또한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과연 나한테 엉겨 붙을지 말지도 지켜봐야겠고요.”“아무튼, 저는 고경영이 제 덕을 볼 수 없었으면 좋겠어요.”고다정은 자신의 태도를 명백히 표현했다.이윽고 그녀는 이어서 답했다.“비록 아직 별 증거는 없다 해도 제 마음속에는 명확히 남아 있어요. 우리 엄마의 죽음이 그 사람과 연관이 있다는 걸요.”그 말을 들은 여준재도 문득 전에 고다정을 도와 어머니의 사인을 조사해보겠다고 한 게 떠올랐다.“그러고 보니 그 일에 대해 사람 시켜 한번 조사해보라고 해야겠어요. 하지만 아직 정확하진 않아 다정 씨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예요. 조금 더 있다 보면 아마 결과가 있을 거예요.”“괜찮아요. 저 대신 조사를 해준다는 게 저한테는 아주 큰 선물이에요. 더 오래 기다리라고 해도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고다정은 진심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하지만 그녀의 말또한 전혀 거짓이 아니었다.결국, 그 사건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애초에 어머니가 자살한 후, 뒷일은 매우 빠르게 준비되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많은 단서가 오리무중으로 변한 것이다.여준재는 품에 안긴 여인을 꼭 껴안고, 진지하게 약속했다.“제가 꼭 장모님 사인에 대해 밝혀낼게요. 그리고 벌도 꼭 받게 할거에요.”“네 믿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 대신에 고맙다는 말도 할래요.”고다정은 여준재를 향해 달콤하게 웃어 보였고, 눈에서는 꿀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그 연분홍 입술을 가볍게 포갰다.한참 뒤, 방안에 공기는 금방 무르익었고, 창밖의 달마저도 부끄러운 듯 구름 뒤로 숨었다.…이튿날 여준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실에서 나왔다.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두 아이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아빠, 왜 혼자 내
“누구세요?”잠에서 깬 직원들은 고다정을 향해 물었다.심지어 말투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자신들의 잠을 깨운 고다정이 별로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고다정은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그 답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지금은 출근 시간인 것 같은데요? 출근 시간에 업무도 제대로 안 하고, 심지어 손님대응도 이따위로 해요? 지금 회사 제도가 이렇게 산만해졌나요?”그들은 고다정이 되물을 줄 몰랐는지 다들 잠시 멍해 있었다.“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데스크 직원은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며 고다정을 바라봤고, 그 태도는 엄청 건방졌다.고다정은 그 모습에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그러고는 다시 정색하고 눈앞에 있는 그 직원들에게 명령했다.“지금 회사 책임자 누구예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고다정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데스크 직원들은 어딘지 모르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꼈다.‘설마 본사 사람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삼촌을 찾을 수 있지?’그렇다, 눈앞의 그 직원은 신우 하이테크 책임자 조카 이아영이였다.고다정은 이아영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자 급 불쾌해졌다.“왜요? 여기 담당자 없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이아영의 표정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가방을 든 채 성큼성큼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이아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다정을 불러세웠다.“그렇게 맘대로 회사에 들어가면 안 돼요!”고다정의 그림자가 회사 큰문에서 사라지자 이아영은 다급히 막아 나서기 시작했다.게다가 그녀의 목소리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끌었다.그 순간 회사 내부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봤고, 그와 동시에 굳은 얼굴인 고다정도 발견했다.“저 사람은 누구야? 이쁘게 생겼다.”“전에 말했던 그 애인 아니야?”“그럴 수도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아영이 저렇게까지 막아 나서지는 않겠지.”“맞다, 생각났어. 오늘 이동수네 집 와이프도 회사로 온다고 했는데, 곧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기겠네.”많은 사람은 서로 낮은 소리로 수군거
실제로 이동수의 예감은 틀린 적 없었다.고다정은 그 말을 마친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동수를 바라봤다.“기왕 이렇게 된 거, 저는 이 사장님이 관리자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얼른 자리에서 물러서서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님 스스로 퇴사하시죠.”고다정은 직설적으로 그에게 말했고, 체면 따위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이동수의 얼굴색은 더욱 형용할 수 없이 나빠졌다.그는 고다정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자기를 가라고 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는 전혀 가고 싶지 않았다. 신우 하이테크에서 위에 회장님 빼고는 그가 가장 높은 직위였으니 말이다.게다가 그는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되어 있었다. 만약 다른 회사로 간다면 아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며, 버티기 또한 어려울 것이다.“저 아가씨, 제 행동이 틀렸다는 거 저도 압니다. 고칠 의향도 충분히 있고요. 그러니 저 기회 한 번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여기서 수년간 노력했다는걸 감안해 다시 고칠 기회 좀 주세요.”이동수는 그녀에게 애절하게 빌었다.안타깝게도 고다정은 더는 그 사람을 회사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누가 고경영 아래의 사람 아니랄까 봐, 그 이유가 아니라도 회사에 계속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이런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은 규칙을 준수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이를 생각한 고다정은 단호하고 차갑게 거절했다.“내가 당신에게 사직을 요청한 것은 당신의 공로 때문입니다. 당신이 했던 행동대로라면, 당신이 지난 몇 년 동안 회사에서 내린 모든 결정을 조사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겠다고 고집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제가 조사해서 깨끗하게 문제가 없다면, 계속 남아도 됩니다.”그 말을 들은 이동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깨끗?그는 전혀 깨끗할 리가 없다.요 몇 년 동안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직무를 많이 이용했다.하여 그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침묵을 지켰다.그가 무슨 뜻을 가졌
몇 분 뒤, 고다정은 황 팀장의 안내하에 회사 기술 부서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문 앞에 서자마자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들렸다.“이 거지 같은 회사에서 왜 우릴 못 가게 하는 거예요? 심지어 지금 우릴 가둔 거 맞죠? 어이가 없네.”“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저 신고해야겠어요. 이 회사에서 제 자유를 박탈했다고요.”“다들 그만해요. 왜 우릴 가둬놨는지 아직도 몰라서 그래요?”이때 웬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 말을 듣고 있던 고다정은 그 사람이야말로 그중에 가장 리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다정은 그 사람만 잘 설득하면 나머지 기술직 직원들도 남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결심을 내린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전까지 서로 수군거리던 직원들은 모두 그녀 쪽을 바라봤고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누가 뭐라든 고다정의 미모는 어디가 뒤처지지 않거니와 최근 사랑 중이라 더욱 생기가 있어 보였다.고다정도 그들의 시선을 당연히 느끼고는 수려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황 팀장은 그런 것까지는지는 신경 쓰지 못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술 직원들에게 소개했다.“여기는 저희 회사의 새 회장님이며, 앞으로 저희 회사를 책임질 겁니다. 조금 전에 다들 못 가게 했다고 의견이 많으신 것 같던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직책입니다. 떠난다고 해도 반드시 업무인수인계한 뒤 떠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떠나면 회사 관련된 복지도 없어질 건데, 손해 보는 건 여러분들 아니겠습니까?”전까지 불만으로 가득 찼던 직원들은 그 말을 들은 뒤 그제야 얼굴색이 조금 풀린 듯 했다.하지만 그중 한 사람만 눈을 가늘게 뜨며 눈을 반짝였다.그건 다름이 아닌 조금 전 그들을 뭐라 했던 기술 부서 책임자 장경환이었다.황 팀장의 말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간을 끄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그들이 결심을 내리고 떠나더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