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여준재는 잠에서 깼다. 그는 혼자뿐인 방을 보고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여준재가 내려오는 걸 본 두 아이는 그를 놀려댔다. “오늘의 잠꾸러기는 아빠래요. 아빠가 오늘 제일 꼴찌로 일어났대요.”물론 아이들이 이토록 흥분한 이유 또한 있었다. 전부터 기온이 떨어짐에 따라, 하윤이는 춥다는 이유로 일찍 일어나려 하지 않았었다. 하여, 여준재는 제일 늦게 일어나는 아이한테 그 하루 동안은 잠꾸러기라는 별명을 부르며, 아이들이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한 것이었다.여준재는 신나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부정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네, 오늘은 아빠가 제일 꼴찌로 일어났네.”이때 주방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고다정은 무의식적으로 여준재의 편을 들었다.“어제 거의 새벽에 들어와서 잠들었으니, 지금에야 일어나죠. 됐어, 너희들도 아빠 그만 괴롭히고 얼른 아침 먹어. 이따 학교 가야지.”고다정의 마지막 한마디는 두 아이를 향했다.그 말에 두 아이는 혀를 내밀며 빠르게 달려갔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여준재는 출발할 준비를 하며 두 아이더러 책가방을 갖고 오라고 하였다.고다정도 여준재의 출근 준비를 도우며 문득 어제저녁 제대로 듣지 못했던 그 말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어제저녁에 저한테 뭐 말한 거 같은데, 제가 잠결에 제대로 못 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해줘요.”“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 친구들한테 소개해 주고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우리가 함께한 이후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 빼고는 누구도 우리가 만나는 거 모르잖아요.”여준재는 어제 했던 말을 반복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조금 놀랐고,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두 아이에 의해 중단되었다.책가방을 챙겨온 두 아이가 빠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아빠, 우리 준비 다 됐어요. 이제 출발해요.”“그래, 먼저 차에 가 있어. 아빠 바로 갈게.”여준재는 가볍게 두 아이를 밀며 답했다.
여준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심 가득히 원경하를 바라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구남준이 오히려 그녀를 비꼬며 말했다.“우연히 또 만났네요. 원경하 씨도 여기서 식사하셨나 봐요?”“그러게요,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죠. 저는 준재 오빠도 여기서 밥 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우리 진짜 인연인가 봐요.”원경하는 구남준의 비아냥거림은 알아듣지 못한 채 여준재를 향해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그런 그녀의 말에 여준재는 역겨운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가자.”말을 마친 뒤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떠났고, 구남준도 곧바로 그 뒤 따라 나갔다.원경하는 분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감히 여준재의 뒤를 따라가 그를 붙잡지는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어차피 앞날은 길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여준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몰랐고 그냥 별 의심 없이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게다가 자신의 일정 또한 모두 비밀리에 진행이 되고, 파파라치 기자들도 그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기에, 당연히 원경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리 그에게 혹독한 교훈을 주었고, 이 모든 건 그 뒤에 생긴 일이다.집에 도착한 여준재는 거실 소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다정을 보았고, 그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왜 아직도 안 자요? 나 기다리지 말라고 했잖아요?”그는 고다정 앞에 다가가며 물었다.그러자 고다정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오늘은 별로 안 졸려서요. 그래서 그냥 기다렸죠.”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를 끌어안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올라가는 도중, 그는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아침에 내가 말했던 거 생각 해봤어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미 생각해놓은 답을 그에게 알려줬다.“준재 씨 뜻대로 해요. 아니면 친구분들 언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준재 오빠라고 불러? 그럼 형이랑 친한 사이인 나는 지금보다 더 친밀하게 불러야겠네? 안 그래? 준재 오빠~”박재경은 일부러 수줍은척하며 장난스럽게 여준재의 팔을 살짝 내리쳤다.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현서와 서현규는 순식간에 소름이 쫙 돋았고, 여준재는 정색한 채 그를 바라봤다.“너 죽고 싶어?”그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어딘지 모를 위험 감이 살짝 섞여 있었다.박재경은 그제야 여준재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는 멋쩍은 듯 말했다.“농담이에요, 형.”“하나도 안 웃기거든.”여준재가 차갑게 답했다.말을 마친 뒤 그는 원경하를 지나쳐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친구들도 곧바로 그 뒤를 따라나섰다.여준재가 그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그들도 당연히 그녀를 신경 쓸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곧 그들 일행은 빠르게 원경하의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그 순간 원경하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삽시간에 굳어졌고,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왜?! 내가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다가가는데, 여준재 눈에는 내가 안 보이나?’여준재는 당연히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원경하를 만나고 난 뒤 기분도 많이 잡친 상태였다.그는 더 이상 놀 마음도 없었고, 곧바로 친구들과도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차에 탄 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구남준에게 말했다.“누가 내 일정에 대해 유출했는지 한번 찾아봐.”그의 일정은 회사 내부의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구남준은 조금 전 사격장에 같이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기에, 사격장 안에서 발생한 일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여준재는 그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나 조금 전 원경하와 마주쳤어.”여준재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구남준은 자연스레 그 말을 알아들었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여자 왠지 모르게 되게 찝찝한 거 같아요.”그 말에 여준재는 가타부타하지 않고
구남준의 말을 들은 데스크 직원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구 비서님, 조금 전 대표님과 같이 들어간 그 여자분, 대표님 여자친구예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주변에 있던 직원들은 전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귀를 쫑긋 세웠다. 구남준도 자연스레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눈치채고는 오히려 숨기지 않고 웃어 보였다. “아니요, 대표님 여자친구가 아니라 사모님, 즉 대표님의 와이프에요. 그러니 앞으로 사모님 오시면 바로 들여보내 줘요. 알겠죠?”“네, 알겠습니다.”안내 데스크 직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구남준의 말대로 간식 사러 나갔다.한편, 고다정은 여준재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왔다.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사무실의 인테리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웃어 보였다.“준재 씨가 있는 곳은 인테리어가 거의 다 비슷하네요.”“저는 보기에 편하기만 하면 돼서 이런 거에 별로 큰 요구가 없어요. 다정 씨가 맘에 안 들면 이따가 구 비서더러 다시 디자이너 찾아보라고 하면 돼요.”여준재는 고다정의 손을 잡은 채 그녀를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그 말에 고다정은 황급히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거예요. 절대 진짜로 받아들이지 말아요.”이윽고 그녀는 여준재더러 얼른 일하라고 재촉했다.하지만 여준재는 그녀의 옆에 앉아 그 손을 잡은 채 빙그레 웃어 보이며 답했다.“괜찮아요. 이따 구 비서 오면요.”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구남준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대표님, 사모님.”그는 정중하게 여준재 옆에 다가오며 오늘 업무 일정에 대해 보고했다.“오전에 회의 4개 잡혔습니다. 곧 시작할 회의는 10분 뒤이며, 고위층들과의 회의입니다. 10시 반쯤에는 이사회가 진행될 예정이며 연말 결산과 내년 계획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비즈니스 리셉션이 있습니다. 이따가 사모님과 대표님이 고를 수 있도록 파티복을 보내드리겠습니다.”몇 분 동안 구남준이 읊어주는 업무 일정을 들은 고다정은
여준재는 고다정의 행동을 살피더니, 옆에 놓인 빈 스낵 봉지를 보며 웃긴 듯 그녀의 코끝을 꼬집었다.“누가 이렇게 많은 간식 먹으랬어요?”“그건 저를 탓하면 안 되죠. 누가 준재 씨더러 이렇게 많은 간식 사 오래요?”고다정은 오히려 그의 말에 반박하며 말했고, 여준재는 그 모습이 귀여운 듯 웃어 보였다.“그러면 오후에는 사람 시켜서 간식 다 가져가라 해야겠네요.”“안돼요!”고다정은 생각도 않고 그의 말을 거부했다. 그러다 여준재 입가의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며 그제야 자신이 속히 운 걸 알고는, 주먹으로 그를 내리쳤다.“장난하지 마요!”하지만 그녀의 주먹이 떨어지기도 전에 결국에는 여준재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여준재는 힘껏 그녀를 잡아당겼고, 무방비 상태였던 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그러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퍼졌다.그렇게 둘이서 키스를 하려는 순간, 구남준이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사무실에 들어왔다.그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하던 거 계속하시죠.” 말을 마친 뒤 그는 얼른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그와 동시에 고다정의 얼굴도 새빨개졌고, 얼른 여준재를 밀어냈다.여준재는 구남준이 들어온 타이밍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일단 그를 불러세웠다.“잠깐만.”“대표님, 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구남준이 어색하게 뒤돌아보며 물었다.그러자 여준재는 언짢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뭔 일 때문에 왔어?”“다름이 아니라 회장님이 오늘 사모님이 회사에 오신 거 알아서요. 그래서 오늘 점심 대표님과 사모님더러 점심 식사하러 오라고 하십니다.”구남준은 솔직하게 그에게 말했고, 여준재는 알겠다는 듯 그에게 손짓해 보였다.“아버지한테 전달해줘. 우리 잠시 후 갈 거라고.”“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재빨리 사무실을 나왔다.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얼른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저희도 이제 가요
그 뒤로 고다정은 여준재와 함께 사무실에서 문서를 한참 동안 처리했다.그녀도 그 하루를 통해 여준재가 평소 얼마나 바쁜지를 알게 되었다.진짜 말 그대로 끊임없이 일만 하였고 그렇게 저녁이 되어서야 여준재는 어느 정도 휴식 시간이 나게 되었다.그 시각, 구남준은 메이크업 선생님을 데리고 들어오며 정중히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파티복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환복 하시면 됩니다.”“그래.”여준재는 그 말에 응한 후 고다정을 데리고 갈아입으러 갔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뒤, 그 둘은 환복 후 파티 장소로 출발했다.가는 동안, 곧 참여할 파티에서 YS 그룹의 고객 및 평소 여준재의 지인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고다정은 긴장되기 시작했다.“저도 진짜 준재 씨랑 같이 가도 되는 거예요? 저는 이런 파티에는 참석해본 적이 없는데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고다정이 불안한 듯 여준재에게 물었다.여준재는 그녀의 어색함을 눈치채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뒤 긴장을 풀어줬다.“너무 긴장할 거 없어요. 그때 가서 제가 다정 씨 옆에 계속 같이 있어 줄게요. 그리고 다정 씨는 제 약혼녀라 언젠가는 사람들한테 소개해야 해요. 그러니 그냥 미리 다른 사람들한테 앞당겨 소개해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빛나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준재 씨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제가 노력해볼게요.”“아니요, 제가 다정 씨한테 해주는 모든 일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여준재는 고다정이 조금 전 내뱉은 말을 부정했다.그의 진심 섞인 한마디를 들은 고다정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렇게 서로 말하는 동안 어느새 종점까지 도착했다.여준재는 매너있게 고다정을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다.그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그 이유는 여준재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여자 파트너를 데리고 와서이며, 그 사이 또한 무척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이때,
그 말에 고다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차갑게 원경하를 바라보며 물었다.“원경하 씨, 저한테 뭐 볼일이라도 있을까요?”“아니요, 그냥 와봤어요. 아, 근데 다정 언니는 여기 왜 있어요?”원경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그러고는 고다정의 대답하기도 전에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내 정신 좀 봐요. 준재 오빠 때문에 다정 언니도 여기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 요 며칠 준재 오빠 자주 만났었는데. 매번 제가 가는 곳마다 준재 오빠가 있더라고요. 그때 봤을 때 언니는 없어서 저는 준재 오빠가 언니는 데리고 안 나오는 줄 알았어요.”그 말에는 누가 봐도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다정은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입가를 살짝 올렸다.고다정은 전까지 여준재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여준재가 오늘 굳이 자신을 여기에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말이다.“원경하 씨는 인연이라는 뜻을 보통사람들과 살짝 다르게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고다정은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서로 기대하면서 만나는 걸 인연이라 해요. 얽히고 매달리는 건 악연이라고 하고요!”원경하는 고다정의 갑작스러운 얼굴 변화에 놀란 듯 주눅이 든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다정 언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진짜 우연히 준재 오빠와 만나게 된 거라고요.”“원경하 씨, 더 이상 연기 그만하시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고다정은 원경하가 분명히 여준재를 꼬시려고 온갖 궁리를 하는 게 보이는데, 여기서 무고한 척하며 친한 척하는 게 정말 역겨웠다.그 말을 들은 원경하는 잠시 얼굴이 굳어졌다.하지만 곧,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계속해서 억울한 듯 말했다.“다정 언니, 저는 언니가 뭔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원경하는 일부러 약간 큰 소리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눈치챈 고다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원경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방금 원경하가
“난 여대표가 한 여자한테 저렇게 부드럽게 대하는 거 처음 보네.”“나도 여대표의 저런 온화한 모습은 처음 봤어. 전에 우리랑 말씀하실 때는 차가운 데다 심지어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말이야. 진짜 이런 날이 올 줄 생각지도 못했어.”“근데 고다정 씨가 어느 가문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투나 행동이 단아한 걸 보면 부잣집 가문 출신임이 틀림없어.”고다정의 신분에 대한 모든 사람의 추측은 끊임이 없었다.많은 사람 사이에서 고다정에 대한 칭찬을 듣고 있던 원경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고다정이 뭔 부잣집 가문이야. 집에서도 쫓겨난 주제에.’…그다음 이틀 동안도 고다정은 원경하 때문에 매일 여준재와 함께 출근하고 식사 자리도 참석했다.그렇게 점차 운산시 상업계에서는 여준재에게 엄청 사랑하는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원경하도 자연스레 그 소식을 접하게 됐고, 속으로 다급해지기 시작했다.이렇게 가다가는 그녀가 실행하려고 하는 계획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니 말이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마음속으로 계획을 하나 세웠다.그날 저녁, 원경하는 고다정이 사는 곳에 찾아갔지만, 경비원에 의해 제지당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한테서 아무런 연락도 받은 적이 없는지라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만약 사모님과 친구 사이라면, 사모님께 전화라도 해주세요.”“…”그 말에 원경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왜냐하면, 그녀는 고다정에게 전화를 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그 차는 평소 고다정과 여준재가 두 아이를 데리러 갈 때 쓰는 전용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여 그녀는 생각지도 않고 바로 길가로 달려갔고,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섰다. 경호원과 운전기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그들은 원경하가 갑자기 뛰어들 줄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원경하는 차가 멈추는 것을 보고 뒷좌석으로 달려가 창문을 두드렸다.곧 차창이 내려지며 두 아이의 정교한 얼굴이 드러났다.“아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