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잊었나 했더니, 그것을 잊었네요.”임초연은 말을 꺼내고는 심해영이 묻기도 전에 먼저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영 이모, 오늘 제가 쇼핑하러 나갔을 때, 원준이 연락 왔었어요. 제가 말한 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전화를 끊더라고요. 아마 다른 방법을 써 준재 씨를 해하려 할 테니 우리 계획을 실행해도 될 것 같아요.”이 말을 들은 심해영은 즉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바로 경호원 대장을 불러 덫을 놓으라고 명했다.그날 밤 고다정도 이 사실을 듣고 협조하겠다고 했다. 다만 쌍둥이의 안전을 위해 그녀는 두 아이가 병원에 가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두 녀석은 기분이 상했지만, 집에 가만히 있겠다고 약속했다.……다음날, 고다정은 아침을 먹고 여느 때와 같이 여준재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입원 동에 도착한 그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그때 유난히 키가 큰 청소부 한 명이 청소차를 끌고 다가왔지만 고다정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고다정은 청소부를 먼저 들어가게 하고 뒤이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청소부를 등지고 있었기에 그의 위험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고 청소부는 CCTV를 한눈 보더니 손수건을 꺼내 고다정에게 악마의 손을 뻗었다."윽….…”고다정은 피할 겨를도 없이 몇 번 허우적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몇 분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청소차를 밀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청소부는 눈앞에 보이는 장면에 멍해진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다름이 아니라 복도 전체에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경호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모두 몸집이 상당한 데다 위엄있는 모습에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뭐 하는 사람입니까?”엘리베이터 입구의 경호원이 질문했다.청소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쭈뼛쭈뼛 대답했다. "청소부입니다. 여기도 청소 필요하신가요?”"아니요. 외부인은 들어오실 수 없으니 당장 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윤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무서워서 울기 시작했다."엄마에게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아요.”"할머니가 우리 엄마를 찾아주실 수 있으시죠?”하준이도 겨우 감정을 억누르며 눈시울을 붉혔다.엄마에게 일이 생겼다, 집안의 유일한 사내로 당황하지 말아야 했다, 아니면 동생이 더 무서워할 테니까.심해영은 눈앞에서 애써 진정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할머니가 엄마를 꼭 찾을 테니 집에서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기사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분부했다.하준이는 상황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머니, 우리도 같이 엄마 찾으러 가면 안 돼요? 말 잘 들을게요.”"하윤이도 말 잘 들을 테니 우리 같이 엄마 찾으러 가면 안 돼요?”하윤이도 눈물 젖은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그치려 애썼다.하지만 심해영은 두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임초연을 불러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 원준이 준재에게 손을 쓴 것이 아니라 고 선생님한테 손을 썼더구나. 나는 병원으로 가서 상황을 봐야 돼서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두 아이를 봐줄 수 있겠는지 물어보려고 불렀어.”"뭐라고요? 고 선생님이 납치됐다고요?”임초연은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앞에 있는 쌍둥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른 해결하러 가보세요, 이쪽은 제가 돌볼 테니 별일 없을 겁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머릿속에는 이 거슬리는 두 녀석을 처리해버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하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실행에는 옮기지 않기로 했다.심해영이 돌봐달라고 부탁했는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녀의 능력을 의심할 것이고, 이것이 그녀가 다시 여씨 가문의 호감을 사는 데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두 아이는 심해영이 떠난 후부터 걱정스러운 듯 문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임초연이 아무리 설득해도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초연 이모,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세요. 우리는 여기서
환한 거실에서 원시혁과 여진성이 팽팽한 기세로 대치하고 있었다.여진성의 낯빛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있었다."원시혁 씨, 당신 아들을 정말 데려오지 않을 겁니까?”"제 아들을 데려오려면 반드시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원시혁도 분명히 말했다.물론 그의 마음속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냉정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면 그의 등 뒤에 숨긴 손이 살짝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여진성은 당연히 아무런 증거도 내밀 수 없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당장 찾아내!”그는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고갯짓을 하며 분부했다.원시혁은 여진성이 이토록 무례하게 나올 줄 몰랐는지 고함을 질렀다. “감히!”“허, 감히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똑똑히 보라고!”여진성은 그를 향해 차갑게 웃으며 다시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렸다.경호원은 즉시 흩어져 원준을 찾아 나섰다.한편, 잡혀간 고다정은 비몽사몽 깨어났다. 아직 정신이 채 들지 않아 멍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정신이 돌아왔고 자신이 납치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그녀는 지금 포댓자루에 담겨 있었는데 자루의 틈을 통해 자신이 개조된 승합차에 실려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아무리 몸부림쳐봐도 자루의 아가리를 풀 수는 없었고, 오히려 넘어지면서 차 판자에 부딪히며 쿵 소리를 냈다.바로 이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어이 독수리, 저 여자 깼어.”말이 떨어지자마자 고다정은 누군가가 발길질을 해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끙 소리를 냈다. 누군가 그녀의 팔꿈치를 걷어찼고, 힘이 너무 센 나머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이어 또 한 차례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자루 단단히 묶어, 풀 틈을 주면 안 돼. 사주 받은 대로 바다에 던져버려.”"왜 그냥 죽이지 않고?”방금 발길질을 한 남자가 독수리라는 사람의 명령에 불만을 품은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고다정은 그 말을 듣고는 심장이
고다정은 저녁 무렵에야 몰골이 엉망이 되어 병원에 돌아왔다.이때쯤 심해영은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헤매다 플랜B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만약 고다정을 찾지 못한다면 신수 노인을 모셔 오라고 지시까지 했는데 그녀가 돌아와서 다행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심해영은 꼴이 엉망인 고다정을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먼저 좀 씻을게요. 오늘 치료부터 끝내고 말씀드리겠습니다.”고다정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심해영은 당연히 허락했고 아랫사람을 시켜 그녀를 세면실로 안내했다.조금 뒤 고다정은 한결 정갈해진 모습으로 병실로 향했다.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현준은 핏기 없는 얼굴로 들어오는 고다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려 했지만 입도 떼기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약은 달였어요?”“다 준비됐어요. 주방에 보온 상태로 뒀어요.”고급 VIP 병실에는 주방이 갖춰져 있다.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병상 옆으로 다가가 침 가방을 열면서 분부했다.“일으켜봐요”진현준은 그녀의 지시대로 혼수상태인 여준재를 일으켜 앉혔다.하지만 고다정은 손이 심하게 떨려 한동안 침을 놓지 못하고 들고만 있었다.그녀의 손바닥에는 3~4센티미터 길이의 상처가 나 있었고 피는 멎었지만 상처 주위가 감염되어 부어있었다.“선생님 손이…”진현준은 깜짝 놀라며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고다정은 손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억지로 참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괜찮아요.”그러고 나서 그녀는 정신을 집중해 침을 놓기 시작했다.이 상황에서 진현준도 계속 그녀에게 말시켜 방해할 수 없었다.거의 두 시간 만에 치료가 끝났다.마지막 침까지 거둔 후 그녀는 머리가 빙빙 돌아 휘청거렸다.다행히 날렵하게 침대 협탁을 붙잡았다.진현준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 선생님, 괜찮으세요?”“괜찮아요. 그런데 마무리는 진 선생님한테 맡겨야겠어요. 저는 의무실 가봐야 할 것 같아요.”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쪽을 바라보
“여 회장님이 무서워하실 분이 아니라는 거 당연히 알죠. 단지 회장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뿐입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돌아가셔서 여씨 집안의 인맥을 동원해 어떻게든 사람을 찾아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원시혁은 도리를 설명해 여진성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잠시 후 그는 뭔가 있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여 회장님, 어떤 때는 시간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마세요.”협박에 가까운 이 말을 들은 여진성은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러나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 부자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당신들은 내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길 비는 게 좋을 거야!”이 말을 남기고 여진성은 그 곳을 떠났다.잔뜩 긴장해 있던 원시혁과 원준은 그제야 몸이 스르르 풀렸다.원준은 심지어 뒷북을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여씨 집안은 진짜 안하무인이네요. 사람을 데리고 남의 집에 쳐들어오다니, 법을 너무 우습게 아는 거 같아요.”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을 한 대 얻어맞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아버지, 왜 저를 때려요?”“왜 때리는지 정말 모르겠어?”원시혁은 그를 매섭게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네가 뒤에서 꾸민 짓이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그러자 원준은 묵인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시혁은 화나다 못해 치가 떨렸다.“너는 여씨 집안에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길 비는 게 좋을 거야. 증거가 나오면 친아들이라도 봐주는 거 없으니까!”이 말을 남기고 그는 위층으로 올라갔다.나이는 못 속인다고 어제 밤새워 여진성과 대치하다 보니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어느새 거실에는 원준이 혼자만 남았다.음침한 눈빛을 하고 소파에 앉아있는 그는 온몸에서 금방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한 난폭한 기운이 감돌았다.“여준재, YS그룹, 당신들도 이제는 아래로 내려와야지.”……뉴욕, 여씨네 별장.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깨어난 고다정은 몸이 몹시 불편했다.손으로 이마를 만져보니 정말 미열이 좀 있었다.그러나 병원
“간호사가 오면 고 선생님이 빨리 정신 차려야 할 텐데요. 안 그러면 준재 몸에 꽂힌 저 침들은 어떻게 해요?”임초연은 여준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고다정이 직업 정신이 없어 환자를 절반 치료하고 팽개쳤다고 빈정댔다.심해영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가?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진현준이 언짢아하며 이쪽을 바라봤다.“고 선생님은 이 며칠간 줄곧 아픈 몸으로 준재 병을 치료했어요. 마음속에 집념이 없었다면 진작 쓰러졌을 거예요.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요 며칠 제가 고 선생님 조수로 일해서 침을 놓는 법은 모르지만 빼는 건 눈으로 배워서 알아요.”진현준은 임초연을 사정없이 비난했다.임초연은 즉시 얼굴이 굳어졌다.“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해영이 말을 가로챘다.“초연아, 요 며칠 나를 따라 양쪽으로 뛰어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오늘은 먼저 들어가.”어떻게 이럴 수가!임초연은 마음속에서 비명을 질렀다.요 며칠 매일 병원에 따라온 건 다 오늘을 위해 밑밥을 깐 거였다.오늘이 여준재의 치료가 끝나는 날이고 곧 의식을 찾게 된다는 거 그녀는 알고 있었다.여준재가 자신이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있는 동안 그녀가 항상 곁을 지켰다는 것을 알게 되기만 하면 호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에 틀어졌던 관계는 다소 회복될 것이다.“이모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말할 줄 몰라서 그래요. 여기 남아있게 해주세요. 준재 씨가 깨어나는 걸 못 보면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임초연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심해영을 바라보았다.이를 본 심해영은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남아있어도 되는데 잔꾀 부리지 마.”그러고 나서 임초연의 굳어진 표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밖에 있는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의사랑 간호사 불러와요.”조금 뒤 문밖에 의사와 간호사가 나타났다.“환자분은 줄곧 미열이 반복되는 데도 과로해서 까무러친 것입니다.
임초연은 고다정을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는 여준재의 모습을 보자 고다정에 대한 질투와 미움의 감정이 세찬 파도처럼 밀려왔다.이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두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애써 억제하였다.다만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는 반면 자신은 그 대화에 낄 틈새조차 없자 분노가 턱 밑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며칠 동안이나 깨어나길 기다렸는데, 여준재 눈에 자기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으니, 화가 치밀었다.임초연은 억울한 나머지 한숨 길게 들이쉬고는 억지로 그들의 대화 중에 끼어들었다."준재 씨도 깼는데, 아직 진현준 선생님께 알리지 않았네요. 제가 진 선생님을 불러올께요.""그럼 부탁해요. 초연 씨"심해영은 임초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하여 준재 쪽으로 눈을 돌려 상태를 살폈다.여전히 투명 인간 취급당한 임초연은 분에 겨워 이를 꽉 악물고 돌아서서 나갔다.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진현준과 함께 병실에 돌아왔다.의식이 돌아온 친구를 보며 진현준은 반갑다는 듯 웃었다."인제야 의식이 돌아왔네? 지금 느낌 어때?""온몸이 쑤시도록 아파."준재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진현준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당연히 아프지. 일주일 동안 누워있기만 했는데."그러면서 여준재의 상태를 체크하였다.사람들이 다 옆으로 물러나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잠깐 뒤, 진현준은 검사기구를 거두며 웃으면서 말했다."바이털은 많이 안정된 것 같아. 앞으로 고 선생 말대로 꾸준히 치료 잘 받고, 그러다 일주일 후면 몸 안에 남은 독소까지 깨끗해 질 거야."준재가 알겠다고 머리를 끄덕였다.위중한 상황에서 금방 벗어 난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준재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임초연은 이때다 싶어 눈에서 번뜩 빛이 나더니, 착한 어투로 심해영한테 말을 건넸다."준재 씨도 이젠 깼으니까 심 씨 아주머니는 걱정하지 마시고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여긴 제가 남아서 잘 돌볼게요.""아니에요, 여긴 제
구남준을 보더니 진현준은 씩 웃었다.“그 집 도련님은 깨셨나?”“네. 일어나셨습니다.”구남준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현준이 병실에 들어오게 한편으로 비켜섰다. 그리고는 문밖으로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병실안에서 진현준은 여준재 침상 옆으로 다가가서 여기저기 살피더니 물었다.“오늘 컨디션은 어때?”“괜찮아졌어.”여준재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잇달아 그는 옆에 누워있는 고다정을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다정 씨는 언제 깰 수 있어?”“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가능하게 하루, 아니면 이틀 될 수도 있고. 요즘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픈 몸으로 네 병시중도 해야 하고. 하루 이틀 동안 자는 것도 정상이야.”진현준이 설명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듯 그 둘을 엇갈아 보고서는 놀림조로 말했다.“너 이 자식, 언제 결혼을 한 거야?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네 비서가 널 여기로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너한테 그렇게 큰 애가 있는지도 몰랐잖아!”여준재는 현준을 힐끗 보더니 한없이 부드럽고 따사한 눈빛으로 옆 병상을 향했다.“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꼭 알려줄게.”“알겠어.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이 친구가 끝내 임자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진현준은 내심 놀랍기도 기쁘기도 하였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갑자기 그는 자기가 병실로 찾아온 목적이 생각나 부끄러운 기색으로 손바닥을 슬슬 비비며 말했다.“저기, 준재야. 오랜 친구 사이에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들어줄 거지?”“무슨 부탁?”여준재는 바로 응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 확인부터 했다.“나 혹시 네 여자 친구한테서 침술을 좀 전수받을수 있을까? 너 그거 알아? 네 여자 친구가 침놓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널 치료할 때 말이야, 마취도 안 하고 흘러나오는 피를 금방 멎게 하더라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야. 나도 속수무책인 네 몸 안에 독을 침술로 빼냈어. 어때, 넌 듣기만 해도 신기하지?”진현준이 사실대로 얘기를 털어놓는데, 막바지에 그는 아이같이 흥분되어 어쩔 줄 몰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