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뒤, 여준재는 더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시차 관계로 운산은 밤이었지만, 미국은 새벽이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간단하게 씻은 뒤, 책상에 앉아 구남준이 준 재료들을 살펴보던 그의 얼굴이 점점 엄숙하게 변했다.이번 ESL 그룹이 YS그룹의 화물을 압류한 배후에는 사실 ZH그룹이 있었다.그리고 ZH그룹은 늘 YS그룹과는 앙숙이었다.특히 요 몇 년 사이에 여준재가 YS그룹을 인수하면서 두 회사의 원한은 더욱 깊어졌다.여준재의 뛰어난 경영수단과 투자 안목으로 하여 YS그룹은 최근 몇 년간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회사가 더욱 발전했다.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사람이 있다는 옛말이 있다.지금 ZH그룹이 지는 쪽이다ZH그룹의 손실은 막대했다. 통계해 보면 YS그룹 때문에 ZH그룹은 수익이 배로 줄어들었다. 이 문제로 ZH그룹의 위원들은 여준재를 아주 미워했다.ESL 그룹과 협력해서 YS그룹의 물건을 압류한 것은 여준재를 상대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첫걸음은 아직 뒤에 있었다. YS그룹의 금광이 붕괴되어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실은 ZH그룹의 임원진들에 의해 알려져서 오늘날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YS그룹에게 엄청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다.곧 기간만료일이 다가오는 화물들과 사람이 죽어 나간 금광. ZH그룹에서는 여준재가 둘 중 하나를 고르기 힘들게 했다.이 사실을 알아차린 여준재의 눈빛이 무서운 속도로 차갑게 변했다.그는 걸상에 앉은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구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일어나셨습니까?”“들어와.”여준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구남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는 책상에 앉아 있는 여준재와 켜져 있는 노트북을 보며 물었다.“메일함의 재료들을 보셨습니까?”“봤어. ESL 그룹 사람들한테 가서 전해. 오늘 밤 YS그룹의 화물들을 내놓지 않으면 YS 그룹에서는 그
아파트를 나선 고다정은 차 옆에 서서 한 손에 장미꽃 다발을 들고 있는 선배를 보았다.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꽃을 못 본척하며 걸어가서 인사했다.“선배.”정성재가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미인한텐 예쁜 꽃이 어울리지. 잘 어울리네.”“고마워요…”고다정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차라리 지금 여기서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선배의 모습을 보아하니 뭔가 오해한 것 같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정성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15분만 더 있으면 8시야, 우린 지금 출발해야 해. 안 그러면 늦어서 입장 못 할지도 몰라.”말을 마친 정성재는 신사답게 차 문을 열어줬고 고다정은 웃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을 삼켰다.선배는 대학교 때 자신을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을 갚는 셈 치고 오페라가 끝난 후 다시 말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둘은 오페라를 보러 떠났다. 이 모든 장면을 두 아이는 베란다에 서서 폰으로 찍고 있었다.하윤이는 휴대폰 속에 사진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그러고 보니 준재 아저씨는 엄마에게 꽃을 선물해준 적이 없네.”“그러네.”하준이도 머리를 끄덕이면서 폰으로 여준재에게 사진을 보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아저씨,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엄마 뺏어갈지 몰라요.”사진은 여준재한테로 전송됐다. 금광 사건으로 두 날째 잠을 못 잔 여준재는 휴대푠속의 흐릿하게 보이는 사진을 보고 바로 고다정임을 알아봤다.그녀의 손에 꽃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여준재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는 바로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고다정은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는 방법 없이 두 아이에게 전화했다.“아저씨.”전화기로 흘러나오는 하준이의 목소리를 듣고 여준재가 바로 물었다.“엄마는 누구랑 나갔어? 뭐하러 나갔어?”“엄마는 전에 그 선배랑 오페라 보러 갔어요.”하준이가 사실대로 대답하며 잊지 않고 물었다.“아저씨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다정의 입꼬리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문득 외국과의 시차가 생각나서 독촉했다.“알았어요. 일찍 쉬어요. 그쪽은 지금 새벽이잖아요, 조금 더 자요.”여준재는 사실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았지만 고다정의 고집을 못 꺾고 동의했지만, 전화를 끊기 전까지 그는 시름이 안 놓이는 듯 말했다.“거기에서 꼼짝하지 마요, 이따가 금방 사람이 도착할 거에요.”“알았어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후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넣으려는데 귓가에 정성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화 통화 다 했어? 친구야?”고다정은 멈칫하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녀는 오늘 나온 목적을 생각하고 화제를 돌리며 완곡하게 말했다.“오늘 선배의 초청에 감사드려요. 오페라는 너무 멋졌지만 아쉽네요.”정성재도 예민한 사람인지라 고다정의 말을 듣고는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자신이 거절당한 걸 알았지만 그는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정성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다정을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왜인지 알려줄 수 있어?”“제가 봤을 때 선배님은 더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어요.”고다정이 솔직담백하게 대답했다.그녀는 선배의 마음을 깨끗이 없애려고 고의로 말했다.“선배도 알다시피 저에겐 아이도 둘이나 있어요. 애들 아빠는 누구인지 모르고요. 몇 년 전에 발생한 다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도 영향받고 있어요.”정성재가 듣자마자 눈썹을 찡그렸다.그는 고다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눈을 반짝였다.“네가 말한 것들 난 다 신경 쓰지 않아. 아이들도 몇 번 접촉은 못 해 봤지만 네가 아이들을 아주 잘 가르친 게 눈에 보였어. 철도 들었고, 난 걔들을 내 자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고다정은 목이 메어 한동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정성재는 그녀의 표정과 방금 전화 통화할 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속으로 불안한 추측을 했다.“다정아,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니?”좋아한다?고다정은 머뭇거리다가 인정하며 머리를
그날 아침, 임초연은 일찍이 여 씨 집안으로 갔다.비록 이전의 일로 두 집안이 사이가 멀어진 건 맞지만 그래도 친분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리고 임초연이 주동적으로 화해를 하러 왔기에 심해영은 그녀를 거절하지 않았다.“얼마 전에 아버지에 의해 프로젝트를 처리하기 위해 외국에 파견 나갔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어요, 저를 나무라지 않을 거죠?”심해영도 임초연의 영리한 척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맞춰줬다.“너를 나무라고 말고가 어딨어. 너희들처럼 젊은 사람이 열심히 분투해야지.”“맞는 말씀이에요. 이번에 외국 나가서 단련하면서 저 많이 성장했어요.”임초연이 심해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둘은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화재는 어느덧 지금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으로 넘어갔다.임초연은 미안한 척 말했다.“심 씨 아주머니, 사실 저 오늘 임무 하나 갖고 왔어요.”“무슨 임무?”심해영이 의아해하며 묻자 임초연이 사실대로 말했다.“그게요, 최근에 우리 아빠가 밖에서 떠도는 YS그룹에 대한 안 좋은 소리와 YS 그룹 주식도 지금 계속 동요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 아빠 뜻은 우리 임씨 집안에서 뭐 도울 게 있으면 아주머니와 아저씨 모두 어려워하지 말고 저에게 말해 주세요.”마지막 말을 하면서 임초연은 진심으로 심해영을 쳐다봤다.말을 들은 심해영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임초연이 지금 시기에 호의를 표한 것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을. 그녀는 흥미가 많이 떨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그렇긴 한데, 필요 없을 것 같네. 이정도 작은 일은 우리 존재가 해결할 수 있어.”“아줌마 말씀이 맞아요. 준재가 대단하긴 하죠, 그러니 이번 일도 완벽하게 잘해 낼 수 있을 거예요.”심해영이 아무리 잘 감추었다 하더라도 임초연은 여전히 그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몇 마디 아첨했다.둘 사이의 화목한 분위기는 전혀 영향받지 않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초연은 먼저 가보겠
고다정과 여러 사람은 화목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가장 기뻐하는 건 심해영이였다. 만약 여진성이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간단한 인사 후, 고다정이 심해영을 아파트 아래까지 배웅해 주며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사모님, 제가 이렇게 불쑥 물어보는 게 외람되긴 하지만 그래도 물어볼게요. 여 대표님 해외에서 잘 지내시죠?”이 말을 듣고 심해영은 머리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난 네가 안 물어 볼 줄 알았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복잡한 눈빛으로 말했다.“너는 내가 이전에 왜 너와 준재가 함께 있는 걸 인정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니? 왜냐하면, 너의 출생은 준재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야. 이번 일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만약 너의 신분이 어느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라면 준재가 부딪힌 일은 쉽게 해결되었을 거야. 지금처럼 준재가 혼자 밖에 나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이 말은 들은 고다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음도 복잡하고 괴로웠다.그녀가 입을 열고 말하기 전에 옆에 있던 심해영이 갑자기 말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나와 준재 아빠가 반대했지만 넌 그래도…”심해영은 아이들 엄마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아들이 고다정에게 아직 알려 주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준재가 널 맘에 들어 하고 널 선택했잖니. 너를 위해서 부모인 우리와도 인연도 끊을 뻔했어.”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거짓말임을 알고 기분이 나빴다.심해영도 그런 그녀를 보며 짠한 기분이 들었지만 억누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도 준재 강요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 일은 쉽게 동의할 생각이 없어. 네가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줘 봐. 네가 우리 여 씨 집안의 작은 사모님의 자격이 있다는걸.”심해영이 보내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고다정은 잠시 멈칫하며 의외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심해영이 이런 요구를 제기할 줄 몰랐다.그녀는 지금 여준재와 사귀는 사이도 아녔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불편했다.그녀는 자신이 이전에
원준은 화가 치밀었다.오랫동안 여준재를 지켜보다 이번에 주동적으로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여준재가 옆을 지키고 있던 주치의한테 홀려 집안 어른들과 벽을 쌓고 오래된 친구와도 멀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인간 관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자신이 우세에 처해있어 이번에 여준재를 죽게는 못해도 가죽은 벗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전세 역전이 되고 말았다.‘내가 정말 여준재보다 못하다고?’원준은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여준재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깊어졌다.기억이 생기고부터 늘 여준재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심지어 아버지마저도 여준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안심이 안 되는지 회사를 그에게 물려주지 않았다.원준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비서가 밖에서 노크하더니 들어왔다.“대표님, 회장님께서 잠깐 사무실에서 뵙자고 하십니다.”“알았어.”원준은 대답은 했지만, 어두운 안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버지가 자신이 한 일을 알고서 찾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예상대로였다.원시혁은 회사에 일이 벌어진 뒤로 사람 붙여 조사하다 YS그룹에까지 조사가 들어갈줄 몰랐다. 이리저리 조사하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것이 바로 분수를 모르는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때, 사무실로 들어오는 원준을 본 원시혁은 화가 치밀었다.“너 이 자식, 회사를 말아먹고 싶어?”원시혁은 화나서 호통을 쳤다.하지만 이것으로 화를 삭일수는 없었다.이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유리 재떨이를 집어던졌다.원준은 제자리에 서서 맞을 사람이 아니었다.고개를 비스듬히 원시혁이 던진 유리 재떨이를 피하더니 건방지게 물었다.“아버지,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나셨어요?”원준의 태도에 원시혁은 더욱 화가 났다.“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서 그래?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자신이 없으면 여준재를 건드리지 말라고. 너 때문에 이번에 회사에서 손해를 얼마나 입었는 줄 알아?”“제가 언제 자신이 없다고 그랬어요!”원시혁은 그를 힘껏 째려보았다.“어릴 때부터 훌
핸드폰을 내려놓은 여준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지금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하지만 보고받은 소식 때문에 기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구 비서님이 해럴드한테 협박당하고 있습니다!”“어떻게 된 일이야?”여준재의 표정은 순간 진지해졌다.부하직원은 차마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말했다.해럴드를 심문하던 구남준은 이 사람이 몸에 미니 총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 못 했던 것이다.그는 구남준이 경계심이 풀렸을 때 그에게 총을 겨누더니 풀어달라고 협박했다.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시키는 대로 하고 남준이 안전부터 확보해.”부하직원은 명을 받자마자 시킨 대로 했다.여준재도 시름이 안 놓이는지 따라갔다.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어 여준재는 뉴욕에 있는 한 개인 별장에 도착했다.밖에는 수십 명의 부하직원이 별장을 지키고 있었다.여준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해럴드가 구남준에게 총을 겨누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별장 밖으로 나가는 와중에 위협적인 말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경고하는데, 좋기는 수작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면 이 사람과 함께 죽을 거니까!”출혈 과다 때문인지 구남준의 얼굴은 아주 창백해 보였다.그는 별장 밖에 있는 여준재를 보고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오늘 있은 일은 입사하고부터 제일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하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잠시 후, 해럴드는 별장 입구까지 나왔다.자신이 요구한 대로 차 한 대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래도 경계심이 풀리지 않는지 턱으로 한 경호원을 짚더니 말했다.“빨리 시동 걸어. 차에 무슨 짓을 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이 말을 들은 다른 경호원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여준재가 옆에서 걸어 나오더니 명령했다.“시킨 대로 해.”아까 그
해럴드는 어쩔 수 없이 시내 밖으로 달렸다.차에 GPS가 달려있었기 때문에 어떤 길로 가든 여준재와 그의 부하직원이 바짝 뒤따를 것이 분명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해럴드는 바닷가에 도착했다.재수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맞았다.얼마 운전하지도 않았는데 기름이 바닥나고 말았다.“젠장!”그는 욕설을 퍼붓더니 이를 꽉 깨물고 차에서 내리더니 뒤를 쫓는 자들을 피해 비틀거리면서 바닷가로 달렸다.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사람들은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는 해럴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차에서 내린 여준재는 비틀거리면서 인파 속으로 도망가는 해럴드를 발견했다.그는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잡아 와!”“네!”명받은 경호원들은 하나둘씩 바닷가로 달려갔다.뒤늦게 동일한 복장에 살기가 가득한 채 달려오는 경호원 무리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사람들은 뒤로 물러서면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경호원들의 동태를 살폈다.여유적적 경호원들의 뒤를 따르던 여준재는 시선을 해럴드에게 고정했다.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한 남자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는 줄은 몰랐다.이 사람은 다름 아닌 원준이 고용한 세계랭킹 10위에 드는 킬러 울프였다.울프는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여준재에게 가까이 갔다.순식간에 여준재의 뒤에 나타난 그는 품에서 비수를 꺼내려고 했다.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마침내 여준재의 뒤에 바짝 붙은 그는 비수를 꺼내 여준재를 찌르려고 했다.이와 동시에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울프가 비수를 꺼내 여준재를 찌르려던 찰나 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여준재는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무의식적으로 뒤돌았다가 울프가 비수로 자신을 찌르려는 모습을 보았다.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울프의 손을 잡아 발로 차버렸다.하지만 울프도 세계랭킹 10위안에 드는 킬러였기 때문에 행동이 아주 민첩했다.이렇게 두 사람은 막상막하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