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은 여준재를 집으로 초대하는 데에 극도의 거부감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할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준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여 대표님, 저희 할머니께서 어제 너무 고마웠다고, 저녁을 대접하고 싶으시대요.]준재는 회의 중에 이 문자를 받았다.휴대폰 화면에 다정의 이름이 뜨자, 차갑고 어두웠던 그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이를 본 현장 임원들은 모두 숨을 돌릴 수 있었다.누가 보냈는지는 몰라도 대표님을 한층 기분 좋게 만들어 준 그 사람에게 고마울 뿐이었다.그날 밤, 준재는 하준과 하윤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다정의 집으로 향했다.준재가 도착했을 때, 다정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그는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놀았다.주방에 있던 다정은 종종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다정을 더욱 복잡하게 했으며, 이내 요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다정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몰라 더욱 심란해졌다.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순간, 칼날에 손이 베였다.“아!”그녀는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고, 손에 쥐고 있던 식칼을 이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준재는 다정의 소리를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주방에 들어선 그는 피가 철철 나는 다정의 손가락을 보고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손이 베였잖아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요?”그는 말과 함께 다정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손가락에 입을 가져다 대며 지혈했다.갑자기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운 그의 입술에 다정은 깜짝 놀라 당황스러운 눈으로 준재를 바라봤다.그녀는 준재가 이렇게까지 행동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다행히 다정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고, 손을 빼고 싶었지만 뺄 수 없었다.“저, 전 괜찮아요.”다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열었다.그녀의 말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뜻이었다.준재는 자연스레 다정의 뜻을 이해하고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다행히 그녀의 손에서는 더 이상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대표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세요? 도대체 왜요!”고다정은 이를 악물고 화를 내며 있는 힘껏 여준재를 밀어냈다.준재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다 벽에 부딪혔다.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다정을 바라봤다.준재를 쳐다보던 다정의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버럭 화를 냈다.“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저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아빠를 찾아달라는 부탁에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하셨잖아요. 저를 속이니 재밌으셨어요? 저 혼자 애쓰는 모습이 그렇게 재밌던가요?!”그제야 준재는 다정이 자신을 계속 피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임초연이 말했죠?”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임초연 말고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결국 요 며칠 동안 다정과 만난 사람은 그 여자뿐이었다.다정은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네, 맞아요. 그 사람이 말했어요. 임초연 씨가 아니었다면 전 아직도 당신에게 속고 있었겠죠!”이를 본 준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도 자연히 다정이 눈치챈 건 아닌지 생각하곤 했다. 그게 현실이 된 지금,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안도감과 함께 불안해졌다.“숨길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얘기를 못 했을 뿐이에요.”준재는 마음을 숨김없이 말했다.그는 다정을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저도 다정 씨가 지난 5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어요. 비록 다정 씨는 아이들을 위해 친아빠를 찾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아이들 때문에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제 신분이 아닌, 아이들과 다정 씨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절 받아주길 바랐어요. 정말 모든 걸 다 보상하고 싶었다고요!”하지만 다정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속았다는 분노와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다정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누가 보상해 달래요?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 당신이 정말 보상하길
여태 고다정도 증오하던 마음이 사라졌기에 아이들의 아빠를 찾는 데에 힘을 썼다.이를 생각하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다정한 여준재를 바라봤다.준재도 몸을 돌려 다정을 바라봤다.그의 표정은 분명 다정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지독한 적막만이 감쌌다.결국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준재였다.“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다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그녀도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준재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겨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다정을 기다렸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정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네, 충분히 생각하신 다음에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건 이해해 줘요.”준재는 다정을 이해하고 조건을 제시했다.다정은 분명하게 거절하지 않고 말했다.“너무 많이 집을 비웠어요. 들어가요.”그렇게 말하며 다정은 다시 준재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썼다.준재는 잡지 않았고 순순히 놓아줬다.떠나려는 여자를 바라보며 준재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두 아이가 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제가 말할게요.”다정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준재가 이해되지 않아 잠시 머뭇거렸다.‘아이들은 이미 여 대표님을 엄청나게 좋아하잖아. 받아들이지 않을 리 없어.’하지만 다정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복도에서 사라졌다.준재는 그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이제 다정 씨를 속이지 않아도 돼.’이를 생각하며 준재는 아파트를 빠져나왔다.한편, 다정은 문밖에 서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집으로 들어갔다.강말숙과 하준, 하윤은 그녀 혼자만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을 숨기지 못했다.“다정아, 여 대표는?”“엄마, 아저씨는 돌아가셨어요?”모
그 후, 며칠 동안 여준재는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매일 하준과 하윤을 보러 오곤 했다.오늘 아이들에게 줄 레고를 들고 오지 않았기에 내일 가장 유행하는 장난감 로봇을 가져오기로 했다.요즘 들어 준재는 아이들에게 더 잘하려 노력하고 있었고, 하루 종일 고다정의 집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스러웠다.물론 다정은 그런 그의 행동에 감동하였지만, 준재에게 티 내지는 않았다.다정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지도 못한 채, 준재가 여진성 부부에게 두 아이를 몰래 접촉할 수 있도록 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준재가 집에 올 때면 다정은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강말숙과 아이들은 두 사람 사이가 계속 신경 쓰였다.이날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준재를 방으로 데려가 물었다.“아저씨, 그날 엄마랑 어떻게 됐어요? 아직 화해하지 않으셨어요?”“아저씨가 엄마를 달래는 건 어때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화난 여자는 선물을 사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면 달랠 수 있대요.”준재는 그의 두 아이가 자신에게 대안을 알려주는 걸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물론, 그는 두 아이가 자신과 다정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준재는 입꼬리를 올리고 아이들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저씨는 다 생각이 있어.”이 말을 들은 하준과 하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렸다.하준은 반감을 드러내며 말했다.“아저씨가 계획이 있으셨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랑 냉전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셨겠죠.”“아휴, 아저씨는 사서 고생하시네요.”하윤도 한숨을 쉬었다.준재는 난감해 아무 말도 하기 어려웠다.저녁이 되자, 그는 어린 두 아이를 재우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준재가 막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그의 등 뒤에 있던 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다정이 잠옷 차림으로 문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목욕을 마친 그녀의 몸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다정도 준재를 보고 놀라 아무것도 못 본 척 뒤돌아 부엌으로
‘넌 어떻게 하고 싶어?’할머니의 질문이 고다정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물쩍거렸다.다정은 고개를 숙이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눈을 내리깔며 나지막이 말했다.“모르겠어요. 흘러가는 대로 놔두려고요.”그 말만 남겨두고 다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할머니도 얼른 주무세요.”강말숙은 도망치듯 떠나는 손녀를 바라보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지만 애써 그녀를 잡지 않았다.……다음 날 다정은 하준, 하윤과 함께 아침을 먹은 후, 아이들을 등원시켰다.그녀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하윤은 그녀의 팔을 잡고 애어른처럼 말했다.“엄마, 아저씨가 먼저 사과하면 받아주세요. 아저씨가 잘못을 인정하는 방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저씨는 오랫동안 홀로 지내면서 여자를 달래는 방법을 모를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아요. 전 아저씨랑 엄마가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이 말을 들은 다정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아무도 하윤이를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전 그냥 인터넷으로 알게 된 거예요.”하윤이는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올렸다.다정은 그런 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어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자, 얘들아, 어른들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유치원 가야지. 좀 있으면 지각이야.”두 아이는 다정의 회피성 대답에 만족스럽지 않아 입을 삐죽거렸다.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다정은 차에서 아이들을 내렸다.이때 다정은 유치원 입구에 몰린 사람들 뒤에 숨어 있던 여진성 부부를 우연히 발견했다.그녀는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렸다가 못 본 척 시선을 거뒀다.그날 오후, 다정이 집에서 약을 짓고 있을 때, 육성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오늘 밤에 시간 있어? 부탁할 게 있는데.]“또 여자친구인 척해달라는 부탁이면 미리 거절할게.”다정은 성준의 부탁을 듣기도 전에 거절했다.성준은 말문이 막혀 몇 초 동안 아
이를 본 고다정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여 대표님,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네요. 당신과 전 독신일 뿐이에요. 여 대표님이 절 잡을 이유는 없잖아요.”여준재는 다정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낯빛이 어두워졌고 기분이 더욱 안 좋아졌다.‘다정 씨가 괜찮아진 게 아니었구나.’이치대로라면, 다정과 준재가 대화를 나누었으니, 두 사람 사이가 서먹해졌을지언정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하지만 다정은 불편한 마음이 쉽사리 괜찮아지지 않았고, 준재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다정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잡는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어느새 육성준이 도착해 있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성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다정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가자.”이 말을 남겨두고 다정은 먼저 차에 올라탔다.이를 본 성준은 어깨를 들썩이고 운전석으로 가 차에 탔다.곧 검은색 자동차는 준재의 시선 아래, 유유히 사라졌다.하준과 하윤은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제안했다.“아저씨, 엄마를 따라가는 게 어때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고개를 숙여 애써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는 걱정 어린 두 아이를 바라봤다.“아니야, 방에 들어가자. 아저씨가 모르는 문제 있으면 가르쳐줄게.”그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이전의 준재였다면, 성준과 다정의 사이를 몰라 긴장을 놓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육성준 씨랑 다정 씨는 서로에게 아무런 이성적인 마음이 없어.’‘그리고 다정 씨는 지금 날 보기 껄끄러울 거야. 매일 아이들을 보러 오는 걸 허락해 준 것만으로 도 많이 봐준 거지. 만약 내가 또 선을 넘는다면, 정말 다정 씨를 화나게 할지 몰라.’잠시 후, 성준은 다정을 데리고 한 비즈니스 호텔에 도착했다.
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숙여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수 년간 만나지 못했기에 반가움도 잠시, 다정은 낯을 가렸다.정인규는 그런 상황을 눈치채고 먼저 대화 주제를 꺼냈다.“그러고 보니, 넌 뭐 하고 지내는지 안 물어봤네.”“전 그동안 한의학 공부를 했고, 이제야 간신히 의사가 됐어요.”다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인규는 이 말을 듣고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한의학을 공부했어? 네 전공이랑 다른 걸로 알고 있는데.”“맞아요, 나중에 진로를 바꿨거든요. 참, 선배 회사는 어떤 회사예요?”다정은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 급히 화제를 돌렸다.인규가 대답하려던 찰나, 육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얘기 중이야? 나도 껴도 되지?”성준은 다정의 옆에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인규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인규도 성준의 정체를 알아봤지만,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눈빛에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성준아, 너도 오랜만이네. 급한 성격은 여전하구나.”“…….”성준은 이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며 침묵했다.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에 대한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었으며, 다정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다정은 성준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입을 가리고 웃은 뒤, 소개했다.“대학생 때 조교 선생님으로 계셨던 인규 선배잖아.”이 말을 들은 성준은 마침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정인규 선배였군요. 마지막으로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못 알아봤어요.”그는 다시 인규에게 인사했다.그리고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저녁 10시쯤, 파티는 끝이 났다.다정은 성준과 함께 돌아갔다.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작별 인사를 건넸다.“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그래.”성준은 차를 돌려 멀어졌고, 다정도 돌아서서 아파트에 들어섰다.그리 멀지 않은 모퉁이에 차를 세워놓았던 준재는 다정의 집 거실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한 후, 구남준
고다정이 제시한 진단 및 치료 방법은 침술과 한약을 배합한 것이었다.잠시 후, 그녀는 침을 놓고 옆에 앉아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윤성미는 옆에 앉아 그녀의 아름다운 손글씨르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그 표정은 마치 ‘이렇게 괜찮은 여자를 왜 곁에 두고만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정인규는 어머니의 눈빛을 이해하고 피식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를 본 윤성미의 눈은 빛났다.‘반대하지 않은 걸 보니, 분명 가망이 있어.’그 순간 다정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더욱 열정적으로 변했다.“다정아, 말 편하게 해도 될까?”윤성미는 다정과 더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호칭을 바꿨다.다정은 당연히 어른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다정아, 올해 몇 살이니? 남자친구 있어? 우리 인규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선후배로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 그렇지 않니?”“…….”다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미소를 지으며 선배를 바라보곤 도움을 청했다.인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다정을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게 했다.“엄마, 너무 장난치지 마세요. 계속 그러시면 다정이가 다음에 치료하러 오기 부담스러울 거예요.”“알겠어, 알겠어.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발전해 나가 봐.”윤성미는 두 사람을 가늘게 바라보며 말했다.다정은 너무 당황스러워 재빨리 처방전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지금은 이 처방전에 필요한 약재 중 일부만 있어요. 남은 재료는 나중에 선배에게 가져다드릴게요.”“준비되면 연락해. 내가 가지러 갈게.”인규는 배려심이 넘쳐 다정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정은 그런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그날 오후, 그녀는 약을 준비한 후, 인규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정의 집에 도착한 인규는 거실에 계신 강말숙을 향해 먼저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할머님. 정정하시네요.”“누구니?”강말숙은 인규가 낯익었지만, 그를 기억할 수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