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중점은 이 웨딩드레스 세트입니다. 결혼식 중 찍힌 듯한 장면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부부의 사진 그리고 아이들과의 합이 필요한 사진도 있습니다. 먼저 아이들과 먼저 찍을 계획이에요. 라파예트 씨께서 두 분이 부부도 아니고 전문 모델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두 분은 촬영 중 호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희 팀이 디자인한 대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에드워드는 말을 마치고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의견을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봤다.준재는 침착하게 말했다.“고 선생님께서 고르세요, 거기에 따를게요.”그가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을 본 다정은 왠지 모르게 항상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는 기분이었다.그러나 이제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마침내 그녀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팀이 디자인한 컨셉에 따를게요. 전문가이시니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실 것 같아요.”“그렇다면 첫 번째 컨셉의 웨딩 시리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몇 분 뒤, 그는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런 내용입니다. 가능하실까요?”“네, 어렵지 않아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인 후 준재를 바라보았다.준재도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가 없다고 표했다.두 아이는 손을 잡고 신이 나서 말했다.“저희도 열심히 할게요.”마침 스태프가 다가와 준비가 끝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알렸다.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다들 괜찮으시다면 한번 찍어볼게요.”다정과 준재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 촬영 장소로 향했다.웨딩 시리즈는 실제 결혼식과 비슷하게 진행됐다.두 아이는 화동으로서 꽃바구니를 들고 다정의 뒤를 따라 꽃을 뿌리면 됐다.반면 다정은 반대편에 있는 준재를 향해 걸어간 후, 사회자의 말에 따라 다정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면 끝이었다.그런데 이때 다정에게 문제가 생겼다.“컷, 다정 씨 눈빛이 이상해요. 사랑스러움 아시죠? 오늘 저 사람은
여준재의 설명이 끝나자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고다정은 준재의 제안에 따라 그를 미래의 남편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더니 효과는 놀라웠다.두 사람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던 꼬맹이들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다.덕분에 그들은 더욱 활발하게 꽃을 뿌렸다.꽃잎이 눈처럼 내리고 다정과 준재는 멀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때, 서로의 눈빛은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느껴졌고, 공기마저 달콤해졌다.이 장면을 본 주변 스태프들 모두 달콤해졌다.“안 되겠어요,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정말 잘 어울려요. 이 자리에서 바로 결혼했으면 좋겠어요!”“전 일하러 왔는데 왜 꽁냥거리는 모습을 봐야 해요!”에드워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했지만 다정과 준재의 촬영 상황에 매우 만족했다.그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자, 사회자분 다음 장면을 준비하세요. 결혼반지를 끼울 타이밍이에요.”그의 말과 함께 사회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곧바로 자리를 잡았다.또한 스태프들도 준비한 결혼반지를 가져와 화동인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곧이어 두번째 촬영이 시작됐다.사회자는 다정과 준재를 신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축사를 하기 시작했다.“신랑 여준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부 고다정을 사랑하겠습니까?”“네!”낮은 자성의 목소리가 준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이 말을 들은 다정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이때 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신부 고다정은 언제나 신랑 여준재를 존중하며 사랑하겠습니까?” “네.”다정은 마음을 진정시킨 후 침착하게 말했다.사회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웨딩 반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이 말을 들은 두 아이는 즉시 결혼반지를 들고 달려가 반짝이는 눈으로 다정과 준재를 바라봤다.반지를 약지에 끼자 순간 다정은 정말 준재와 결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다정이 준재에게 반지를 끼워줄 때 준재도 다정과 같은 마음이 만연했다.그러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한 시리즈의 사진 촬영이 끝났고, 어느덧 정오에 가까워졌다.에드워드는 잠시 쉬었다 가자고 말하며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촬영을 계속했다.오후 2시가 되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다정의 메이크업을 수정했다.수정 화장을 마친 후, 모두 촬영을 이어갔다.이번 촬영의 콘셉트는 커플 웨딩 사진이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스텝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에드워드는 가장 아끼는 SLR카메라를 들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두 사람의 스킨십을 지시하며 사진 촬영을 준비했다.“고다정 씨, 더 자연스럽게 여준재 씨한테 더 가까이 다가가세요. 두 분은 오늘 서로를 잘 아는 커플입니다. 오전의 그 감정을 끌어올리세요.”이 말을 들은 다정은 재빨리 자세를 고치고 준재의 품에 안겨 편안히 기대었다.순간, 그의 시원하고 달콤한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파고들어 잠시 혼미했다.준재도 다정의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일찍 촬영을 끝내고 싶으면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에드워드가 말한 것처럼 오전의 느낌을 생각해 보세요.”다정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귓가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에 그녀의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다행히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혀끝을 세게 깨물어 카메라 앞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그녀는 마음속의 낯선 감정을 억누르고 촬영에 열중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에드워드의 다음 요구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에드워드는 손에 든 만족스러운 필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오늘 컨디션이 좋으시네요. 다음은 키스신입니다. 조수, 가서 고다정 씨의 면사포로 여준재 씨를 덮어.”곧 주재와 다정은 얇은 면사포로 함께 덮여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다정은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그리고 그녀의 작은 움직임은 모두 한눈에 들어왔고, 준재의 눈에는 옅은 웃음기가 떠올랐다.이때 다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렸
다음 날 아침, 고다정이 깨어났을 때 자신이 호텔 방에 있다는 걸 알았다.분명 어젯밤에 여준재가 그녀를 데려다줬을 것이다.이를 생각하며 그녀의 마음은 왠지 행복하고 달콤했다.그러나 다정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손가락에 껴 있는 빛나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앗, 어제 반지를 돌려주는 걸 깜빡했어.”그녀는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준재를 찾아가려 했다.이때 그녀는 발뒤꿈치가 따끔거려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하이힐을 신고 피부가 까졌던 자리에 반창고가 붙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반창고가 좀 헐거워졌지만, 다정의 마음은 한없이 따뜻해졌다.아무런 의심없이 이것도 준재가 한 것임을 알고 마음속에 다시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간단히 씻은 후, 방에서 나오자 준재가 거실에서 두 아이와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엄마 일어나셨어요?”하준은 가장 먼저 다정을 발견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다정은 미소를 지은 후 준재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이어 그녀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여 대표님, 어제 데려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별거 아니에요.”준재는 그녀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살짝 눈썹을 비틀고 화제를 돌렸다.“일어나셨으니 이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갈까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식사 중 그녀는 반지에 대해 말했다.“맞다, 어제 촬영이 끝나고 반지를 돌려주는 걸 잊어버렸어요. 이따가 구 비서님을 통해서 절 NECOCO회사로 데려다주실 수 있으실까요?”“네, 같이 가요.”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다정은 오히려 의아했다.“여 대표님은 무슨 일로 가세요?”준재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엄마 잊으셨어요? 어제 턱수염 아저씨가 오늘 사진을 고를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사진을 챙겨서 외증조할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요.”하윤의 말을 듣고서야 다정은 이 일을 기억했다.하지만 다정은 하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의 의심은 품고 있었
사진을 다 고른 후, 고다정과 사람들은 F국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귀국했다.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운산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두 아이는 이미 여준재와 다정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제가 데려다줄게요. 혼자서 위층까지 올라가기 힘드실 거예요.”준재가 선뜻 제안했다.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부탁드릴게요.”집에 도착한 후, 다정은 두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준재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권했다.시간은 이미 너무 늦었고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으니 많이 피곤할 것이다.……다음 날, 강말숙은 다정과 아이들이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언제 돌아왔어? 왜 미리 전화를 안 했니?”“한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밤중이어서 주무시고 계실까 봐 일부러 전화하지 않았어요.”다정은 말을 마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요 며칠 무슨 일 없으셨죠?”강말숙은 웃으며 말했다.“별일 없었어. 너희들은 외국에서 재밌게 잘 놀았니? 어디 갔었어?”“외증조할머니, 저희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정말 재밌었어요!”하윤은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해외여행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강말숙은 다정과 준재가 다른 사람의 웨딩드레스 광고 촬영을 도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가십거리에 무언가 묻고 싶어 다정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다정은 강말숙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고, 사 온 선물을 건네며 화제를 돌렸다.“할머니, 제가 해외에서 사 온 선물이에요. 마음에 드세요?”강말숙은 선물을 쥐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녀는 손녀가 자신과 여 대표에 관한 질문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생각한 후,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결국 이건 그들의 일이니 말하고 싶으면 스스로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바로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두 아이가 문을 열러 간 후, 그들의 행복한 목소리가 들렸다.“이모, 삼촌, 왜 여기 계세요?”임은미와 육성준은 두 아이와 거실에 앉아 있는 다정을 보
구남준의 말을 들은 여준재의 눈이 차가운 빛으로 번쩍였다.그러다가 준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얇은 입술을 살짝 벌리며 물었다.“누구야?”“경찰과 저희 쪽에서 얻은 단서에 따르면 모든 증거는 임씨 가문을 가리킵니다.”그 후, 남준은 배후에 대해 설명했다.준재는 매서운 눈을 가늘게 떴다.“그럼 임초연이라는 말이야?”“네, 그 사람입니다.”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말을 들은 준재는 즉시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눈에는 의심의 빛이 번쩍였다.“도대체 이 여자는 왜 그런 짓을 한 거야?”그는 이해하기 어려웠다.뭐가 됐든 고다정과 임초연은 잘 모르는 사이다.남준은 잠시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두 분이 사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임초연 씨는 고 선생님의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고 선생님을 대표님에게서 빨리 제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그럼 나에게 들킬까 봐 두렵지는 않았나 보지?”준재의 안색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남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제 생각엔 임초연 씨는 자신이 철저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뭐라고?”준재는 냉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그의 차가운 표정에 남준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그동안 경찰이 조사한 관련된 그 사람에 따르면 임초연 씨가 고 선생님을 모함하기 위해 일련의 수법을 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준재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남준은 그의 대표가 그에게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기에 계속 말했다.“임초연 씨는 먼저 이메일을 통하여 관련된 자에게 연락하여 이동철을 찾아보라고 지시하고 고 선생님의 무고함이 확인된 후, 이메일의 IP주소를 변경했습니다. 임초연 씨의 계산은 매우 치밀했지만 IP주소가 복원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신 것 같습니다.”남준은 이 말을 전하며 다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그러므로 이번 일은 고 선생님께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일 뿐입니다. 분명히
김지원이 떠나는 모습을 본 임초연의 얼굴은 매우 흉악했고 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안 돼, 가만히 앉아서 겁먹고 있을 수만은 없어.’그녀는 고개를 숙여 책상 위에 놓인 변호사 서신을 바라보며 마침내 여준재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YS그룹, 대표실.김지원이 준재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대표님의 분부대로 임초연 씨에게 변호사 서신을 전달했고, 대표님의 말씀도 전했습니다.”“좋아, 그래서 뭐래?”준재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김지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임초연 씨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그가 이 말을 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구남준이 걸어 들어왔다.남준은 대표실 중앙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보고했다.“대표님, 임초연 씨가 오셨습니다. 지금 아래층에 계시는데,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준재는 이미 그녀가 온 목적을 짐작하고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러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데리고 와.”“알겠습니다.”남준은 그의 지시를 받고 몸을 돌려 대표실을 빠져나갔다.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김지원은 자진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가 봐.”준재는 그에게 떠나라는 손짓했다.김지원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준은 초연을 데리고 대표실에 나타났다.초연은 들어오자마자 사무실 책상에 냉랭하게 앉아 있는 준재를 바라보며 억울한 기색을 보였다.“준재 씨…….”그녀는 더듬거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러나 준재는 그녀를 불쌍히 여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초연의 두 눈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임초연 씨, 무슨 일입니까?”이렇게나 냉랭한 그의 모습에 초연의 마음은 괴롭고 달갑지 않았다.그러나 초연은 자신이 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숨을 깊이 들이쉬고, 감정을 억눌려 천천히 말을 꺼냈다.“준재 씨, 왜 저에게 변호사 서신을 보내라고 하셨어요? 저는 고다정 씨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제가 고다정 씨를 모함했겠어요?”“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준재는 한 마
“여준재, 이 나쁜 놈아!”임초연은 슬픔과 분노로 뒤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뛰쳐나갔다.그녀는 더 이상 머물러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문밖에 있던 여진성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쳐나온 초연을 보며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초연은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초연도 여진성을 보았지만 당시 그녀의 상실감은 너무나도 컸다.물론 그녀도 속으로는 여진성이 자신이 울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여준재에게 물어보길 바랐다.그녀의 뜻대로 여진성은 준재에게 이 일을 물었다.“방금 초연이가 울며 나가는 것을 봤단다. 무슨 일이니? 초연이를 괴롭힌 거야?”“아닙니다.”준재는 한사코 부인하며 차분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무슨 일로 오셨어요?”그는 분명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여진성도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코웃음을 쳤다.“네 엄마가 너한테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았니? 이건 대답해 줄 수 있지?”“정말요? 일하느라 듣지 못했나 봐요.”준재는 매우 태연하게 대답했다.사실 그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 어머니는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맞선을 주선했기 때문이다.여진성은 태연한 아들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어찌 아들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걸 모르겠는가?결국 그는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다.“네 엄마가 오늘 밤에는 집에 오라더구나. 그렇지 않으면 직접 회사에 찾아오거나 고 선생을 찾아갈 모양이야.”이 말을 들은 준재는 아버지의 말에 다소 놀랐고 얼굴이 좋지 않았지만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임초연은 YS그룹에서 나와 답답한 마음에 뒤를 돌아 높은 건물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준재가 두 집안의 사이를 고려하지 않고 다정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이를 생각하자 초연의 눈에는 맹렬하고 어두운 빛이 번쩍였고, 결국 인내심이 폭발했다.“사과야 하면 그만이지. 근데 너희들도 함께할 생각을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