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재의 말에 고다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렸다.“내일 제가 침을 놓으러 갈게요. 쌓인 피로가 풀릴 거예요.”“그럼 부탁드릴게요.”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구남준은 차를 몰고 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다정을 본 그는 전보다 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고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안녕하세요.”다정은 미소를 지으며 준재에게 나지막이 말했다.“구 비서님께서 오셨으니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후, 차를 탔다.남준은 그의 대표가 차에 오르자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소리 없이 물건을 찾았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자연히 눈치챈 준재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머리카락을 넣은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얼른 가져가서 검사를 해 봐,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받아야 해.”“알겠습니다.”남준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받은 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돌아가는 길에 그는 참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있는 준재를 보았다.그의 마음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어쩌면 남준의 눈빛의 존재감이 강했을까, 준재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고, 그를 엿보는 남준의 눈과 마주쳤다.“무슨 일이야?”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딱 들킨 남준은 약간 민망해졌지만 마음속의 호기심들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고 선생님의 말씀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나도…… 잘 모르겠어.”준재는 머뭇거렸다.하루아침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이 때문에 지금 그의 머리도 복잡했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준재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나머지는 차근차근 해
밝은 방에는 여준재가 반쯤 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그는 침을 맞으며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고 선생님, 외람되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무슨 질문이요?”고다정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준재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왜 아이들의 친아버지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질문을 들은 다정은 준재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다소 놀랐다.다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살기 바빠서 찾을 생각을 못 했어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찾을 수 있겠어요?”준재는 다정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생각에 잠긴 그는 다시 물었다.“그러면 왜 갑자기 그 사람을 찾으려는 거예요?”다정은 이 말을 듣고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이제 아이들도 컸고 예민한 시기이니 아빠의 자리가 필요할 거예요. 전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어요. 무작위로 사람을 구한다면 아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친아빠를 찾아주고 싶어요.”다정은 말을 하다 잠시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그녀의 모습을 준재는 물었다.“왜 그러세요?”“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 호텔을 찾는 손님도 많고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결국 다정은 그 사람을 찾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느꼈다.준재는 침묵을 유지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다정은 그가 난처할까 봐 급히 분위기를 바꿨다.“여 대표님도 부담 갖지 마세요. 못 찾아도 상관없어요.”그녀의 말에 준재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찾고 난 다음은요?”그는 다정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그리고 그 사람이 만약 결혼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다정은 순간 멍해졌다. 이것은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만약 결혼을 했다면 방해할 수 없겠
고다정의 말을 들은 여준재는 불편한 마음에 눈빛이 흔들렸다.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자신이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이 여자는 요구 사항이 너무 낮은 거 아니야?’ 골똘히 생각하던 준재는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고 선생님이 바라는 건 너무 사소하지 않나요? 어차피 그 사람의 자식인데 그가 져야 할 책임은 그가 져야 하지 않겠어요?”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이 말을 들은 다정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도리가 아니에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단지 그 사람이 여유가 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바랄 뿐이에요. 그의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전 누군가가 아이의 양육권을 놓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상대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아이를 바라지 않아.’‘그러니 그 사람이 어떤 책임을 가지고 아이를 빼앗으려 하지 않겠지.’‘상대방이 아이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억지로 부탁할 생각은 없어.’물론 그녀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이 사실을 모르는 준재는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문이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렇게 이 대화는 끝이 났다.시간이 꽤 지나 침 치료가 끝난 후, 다정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돌아가기 전, 그녀는 또다시 준재에게 몇 마디 당부를 했다.“일은 끝나지 않으니 중간중간 쉬면서 하세요. 앞으로는 일찍 주무시고 야근할 생각은 하지 말아요, 건강에 정말 안 좋습니다.”“알겠어요, 틈틈이 쉴게요.”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그는 구남준을 불러 다정을 데려다주라는 지시를 내렸다.남준은 그녀를 불렀다.“고 선생님, 따라오세요.”“구 비서님, 제가 또 신세 지네요.”다정은 준재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집에 돌아가는 것은 위험했다.그 후 이틀 동안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어느덧 3일이 흘렀고 DNA 검사 결과가 나왔다.남준은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를 받은 후 곧바로
구남준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계를 발전시키다니…….’그는 자기가 한 말에 놀라 그의 대표를 바라보았지만 대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설마 정말 그럴 생각인 거야?’‘내가 아직 대표님을 잘 모르고 있는 건가?’‘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표님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확실히 대표님이 고 선생님을 대하는 게 다르긴 했어.’남준의 변화하는 표정을 본 여준재는 그의 생각을 간파하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할 생각이 없었고 단지 경고했다.“이 일은 입 밖에 꺼내지 마. 그리고 나한테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은 절대 발설될 일 없을 겁니다!”남준은 그에 말에 재빨리 약속했다.준재는 그를 믿었고 뒤이어 지시를 내렸다.“가서 장난감 좀 구해 와.”그날 저녁 퇴근 후 준재는 남준에게 시킨 장난감을 가지고 고다정의 집으로 향했다.다정은 두 손 가득히 든 채 문 앞에 서 있는 준재를 보고 매우 의아했다.“여 대표님, 어떻게 오셨어요? 그리고 이것들은 또 뭐예요?”다정은 그 말과 함께 그를 집에 들였다.하준과 하윤은 준재를 보자마자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인사를 했다.“여준재 아저씨!”강말숙도 준재의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여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앞으로 며칠간 일이 많아져서 야근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아마도 고 선생님께서 자주 침을 놔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준재는 손에 든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이건 그 전에 고 선생님께 드리는 뇌물이에요. 미리 받는다고 생각하세요.”다정은 잠시 경악을 금치 못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그녀는 감정이 동요될까 두려웠다.“귀찮게 왜 그러셨어요? 제가 치료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이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어요.”“부담 갖지 마세요.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았어요. 그냥 아이들의 장난감일 뿐이에요.”말은 그렇게 했지
고다정은 뭔가 이상했지만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그냥 아이들이 많이 반가워서 그런 걸 거야.’ 한동안 아이들을 놀아주던 여준재는 다정에게 치료를 부탁했다.침을 다 맞고 나니 시간은 많이 흐른 상태였다.준재는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먼저 가 볼게요. 하준아, 하윤아, 다음에 또 보자.”“아저씨, 잠깐만요.”하준과 하윤은 급히 그를 잡았다.준재와 다정은 의아한 상태로 서 있었다.“왜 그래?”준재가 물었다.뜻밖에도 하준과 하윤은 조심스럽게 준재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사라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다정은 어리둥절했다.마치 자기가 모르는 비밀이 그 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방 안에 들어선 준재도 어리둥절했다.준재가 멀뚱히 서 있을 때, 아이들은 침대 밑에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꺼내 과자와 사탕을 집어 들었다.“아저씨, 이건 모두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아저씨 드릴게요.”아이들은 간식들을 소중히 들고 준재 앞에 서 있었다.하윤은 더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아저씨, 엄마한테 말하시면 안 돼요. 엄마가 이 썩는다고 뭐라고 하셔서 저희가 몰래 숨겨 놓은 거예요. 아저씨가 선물을 주셨으니 저희도 이걸 드릴게요.”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준재는 그저 귀엽기만 했다.그도 과자와 사탕을 받고 진지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건 우리 세 사람만의 비밀이야. 절대 너희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게.”“헤헤, 역시 아저씨예요!”아이들은 준재를 껴안았다.세 사람은 한동안 속삭인 후 방에서 나왔다.다정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봤다.“방에서 뭐 했어?”“엄마, 이건 아저씨랑 저희만의 비밀이니까 묻지 마세요.”하윤은 개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다정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알겠어, 안 물어볼게.”이어 그녀는 준재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이제 가시는 거예요?”“네, 이제 가야죠.”그는 그들과 인사를
YS그룹, 대표실. 구남준은 장엄한 초대장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그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초대장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오늘 밤 문성 노인의 70번째 생신입니다. 지금 문씨 집안에서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보내왔습니다. 대표님께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알겠어, 그들에게 시간 맞춰 가겠다고 전해.”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대장을 받았다.여씨 집안과 문씨 집안은 친밀한 사이일뿐더러 상업상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날이면 필연적으로 여씨 집안을 초대했다.남준은 지시를 받고 다시 질문했다.“그럼 어르신께 드릴 선물은 어떻게 할까요?”준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했다.“제란원에 있는 괜찮은 서예를 골라 문성 어르신께 드리고, 가는 김에 내 정장도 들고 와.”“알겠습니다.”남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대표실을 나왔다.그날 저녁, 준재는 퇴근 후 사무실에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그가 문씨 저택으로 가려고 할 때, 신수 노인의 전화를 받았다.[준재야, 출발했니?]“아직요, 무슨 일 있으세요?”준재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물었다.신수 노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가 다정이를 데리고 왔으면 싶구나.]“고 선생님 말씀입니까?”준재는 의아함에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설마 고 선생님도 문씨 저택에 가는 거야?’신수 노인은 놀란 준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그래, 데려와 줄 수 있겠니?]“네, 곧 갈게요.”준재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후, 그는 남준에게 먼저 다정의 집을 들리자고 지시했다.남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고 선생님도 문성 어르신의 생일 잔치에 참석합니까?”“아마도.”준재는 그 한마디를 남긴 채 뒷좌석에 등을 기대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남준은 그의 모습을 보고 얌전히 운전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정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준재는 휴대폰을 꺼내 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휴대폰에서는 다정의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
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준재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말씀을 듣고 나니 긴장이 덜어지네요.” 준재는 그녀의 얼굴에 퍼진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오직 준재의 말을 향해 있었기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선생은 문씨 집안이랑 친분이 없는데 신수 어르신은 왜 그녀를 초대했을까?’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자 준재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런데 고 선생님은 문성 어르신과 아무런 친분이 없는데 신수 어르신께서는 왜 생일 잔치에 초대한 건가요?”“말하자면 좀 길어요. 혹시 지난번에 그 약식당에서 식사했던 날을 기억해요?”다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암묵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그날과 관련이 있나요?”“맞아요, 그날 신수 어르신께서 저에게 처방전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그 처방전이 어르신께 도움이 됐나 봐요, 그래서 이번에 초대받게 되었다고 들었어요.”다정은 처방전을 개선해 준 일을 간략적으로 말했다.준재는 상황을 이해한 후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런 거라면 문성 어르신은 고 선생님을 매우 좋아하실 거예요.”“왜요?”다정은 미심쩍게 입을 열었다.‘내가 의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처방전을 개선해서 그런 건가?’하지만 준재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미소 짓기만 할 뿐,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다정은 말문이 막혔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준재에게 이번 생일 잔치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은 문씨 저택에 도착했다.연회장은 손님들로 붐볐고, 길가에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준재를 따라 나와 이 상황을 본 다정은 주눅이 들었다.준재는 단번에 그녀의 희미한 표정 변화를 알아차렸다.준재는 활짝 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제 팔을 잡으세요.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그의 말을 들은 다정은 준재의 얼굴과 걷어붙인 셔츠 사이로 탄탄한 그의 팔
심해영과 고다정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이 다가왔다.심해영과 여진성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랐다. “아……? 신수 어르신께서 초대하신 거예요?”신수 노인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준재에게 시선을 돌렸다.준재는 침착하게 말했다.“어르신 말씀대로 고 선생님을 모시고 왔습니다.”“잘했다.”신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미소를 되찾은 그는 문성 노인을 끌어당겼다.“문성 영감, 이분이 바로 당신에게 처방전을 내려 준 고 선생이야.”문성 노인은 그의 말을 듣고 눈앞에 있는 앳되고 아름다운 다정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신수 영감과 있을 때 고 선생 칭찬이 자자했어.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네.”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은 다정은 조금 쑥스러웠다.“저도 벌써 스물다섯이에요.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닙니다.”“아이고, 스물다섯이 어린 게 아니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게냐?”문성 노인은 허허 웃으며 농담을 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신수 노인은 참지 못하고 불평을 했다.“내가 훨씬 젊으니 영감이야 말로 살아있는 화석이지.”그 말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한껏 웃고 떠든 후, 문성 노인은 본론으로 들어가 상냥한 표정으로 다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처방전을 개선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고 선생을 초대한 거야.”“아닙니다, 어르신.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다정은 웃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문성 노인은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고 선생이 부족하다니, 난 잘 모르겠네. 겸손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 몸이 나날이 좋아지는 건 전부 고 선생이 고쳐준 처방전 덕이야. 정말 고맙다.”그의 말에 다정은 더 이상 사양하기 어려웠다.“어르신, 너무 마음에 담아두실 필요 없습니다. 어르신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그렇게 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심해영과 여진성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