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잠시 휴식을 가졌다. 온천에 가기 전 소화를 시켜야 했지만 여준재의 몸 상태를 고려해 외출 대신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저씨, 우리랑 영화 볼래요?”두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준재는 남준에게 적당한 영화를 찾아달라고 한 뒤, 아이들과 함께 시청했다. 다정도 함께 했다.영화가 끝나자, 다같이 온천에 같다. 물론, 준재는 하준을 데리고 갔고, 다정은 하윤과 함께였다. 온천탕은 서로 맞닿아 있었는데, 중간이 나무벽으로 막혀 있었다.물론 방음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호텔이 공들여 설계한 것이었다.가족이나 커플이 다른 온천탕에 있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다정은 하윤과 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수건으로 싸맨 뒤 천천히 물에 들어갔다.“엄마, 진짜 따뜻해요!”어린 하윤은 온천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다정은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온천을 즐겼다. “온천에 오니 어때?”“편안하고 따뜻해요.”하윤은 물속에서 신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다정은 오랜만에 즐겁게 노는 딸을 잠시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가산 못 가에 기대어 편안하게 몸을 담그고 있었다.한편, 활기찬 그녀들에 비해 준재와 하준 쪽은 조용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온천에 온 적이 처음이라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준은 너무 신났지만 아저씨가 옆에 있으니 얌전한 척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흥분된 빛이 가득했다. 준재도 하준이 놀고 싶어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놀고 싶으면 마음껏 놀아! 참을 필요 없어!”“아녜요, 지금도 좋아요.”하준이 얌전하게 대답했다. 어린 하준은 준재가 두 팔을 들어 온천탕 벽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자기도 똑같이 따라했다. 하지만, 다리가 짧아서 서 있어야 했다. 그는 하준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하준아, 아저씨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 넌 아직 이런 자세가 무리야. 나중에 크면 해.”하준은 괜히
하윤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란 여준재가 소리쳤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다정은 그에게 자신이 넘어진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겨우 걸음을 뗐지만, 복사뼈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하윤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엄마, 더 이상은 갈 수 없어요. 이러다 발이 더 부을 거예요.”다정이 민망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도와주실래요? 엄마가 발이 부어서 걸을 수가 없어요.”준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이어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정은 너무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지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에 너무 놀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니 옷걸이에 목욕 수건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얼른 그것을 잡아당겨 몸에 둘렀다. 막 몸을 가리자마자, 유카타를 입은 준재가 도착했다. 하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다정은 목욕 수건을 걸치고 복도로 나갔다. 머리에 썼던 수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대신, 새까만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준재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로 향했다. 정말 발목이 부어올라 있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있어요!”그가 소리치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다정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의 날렵한 턱 선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다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구남준은 대표님에게 안겨온 고 선생님을 보며 의아했다.‘분명 갈 때는 멀쩡했는데, 왜 지금은 안겨서 왔지?’그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준재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직원에게 약상자를 달라고 해줘.”“누가 다쳤어요?”남준은 물어보고 나서 후회했다.‘내가 지금 뭐라는 거지? 보면 바로 알 수 있잖아? 우리 대표님이 고 선생님을 안고 들어온 걸 보니 당연히 다쳤겠지!’그는 민망한 얼굴로 대답했
준재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무언인가 용솟음쳤다. 하지만, 다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신경은 온통 발목에 집중되어 있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다정은 두 손으로 목욕 수건을 꼭 쥐면서 신음했다. “으, 아파요…….”“조금만 참아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준재가 그녀를 달랬다.그녀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조금 전 자신의 신음소리가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다정은 준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더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두 아이는 엄마의 괴로운 표정을 보며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 겁내지 마요. 우리가 같이 있어 줄게요.”“엄마, 조금만 참으면 돼요.”두 아이가 위로하는 말을 들으면서 다정은 마음은 따뜻했다. 하지만 발목에서 오는 통증은 똑같았다. 5분 정도 지나자 마사지가 끝났다. “됐어요. 좀 있으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그는 다정의 발을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그녀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 다리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녀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준재를 바라봤다. “여 대표님, 감사합니다.”“천만에요. 고 선생님이야말로 수고했어요. 참, 우선 옷 먼저 갈아입어요. 감기에 걸리겠어요.”준재는 그녀가 흠뻑 젖은 목욕 수건을 싸매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좀 쑥스러웠다. 옆에 있는 두 꼬마가 영리하게도 상황을 알아챘다.“제가 엄마 옷을 가지고 올게요.”“그럼 난 드라이기를 가져와서 엄마 머리를 말려 줄게요.”하윤과 하준은 각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재는 그런 두 아이가 대견했다. 잠시 후, 아이들은 각각 옷과 드라이기를 들고 왔다.준재와 남준은 밖에 나가 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선생님,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요.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프런트에 연락하거나 구 비서에게 말해요.”그는 방을 나서기 전에 세심하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늘 착했어.’‘아빠가 없는 탓인지 두 아이는 모든 면에서 조숙했지.’‘최근에 여 대표님이 옆에 있어줘서 그나마 보통 아이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어.’다정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같은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는 분명히 여 대표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특별해.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대표님에 대해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 돌아가면 여 대표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한창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준이 준재에게 물었다. “아저씨, 잠깐 물어볼 게 있어요.”“그게 뭐지?”준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정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하준은 그에게 핸드폰을 건넸다.“아저씨, 이 게임은 아저씨 회사가 개발한 거죠? 제가 해봤는데, 항상 약간의 끊김 현상이 나타나서 게임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요. 전에는 제가 기술도 못써보고 괴물에게 죽고 말았어요.”준재는 휴대폰 속의 게임이 YS그룹 산하에서 연구개발한 것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잘 모르는 게임이라 일단 아이가 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하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 화면에 확실히 끊김 현상이 나타났다. 만약 하준이 손이 빠르지 않았다면 진작 괴물에게 맞았을 것이다.남준은 어안이 벙벙했다.‘요즘 아이들은 모두 이런가?’‘방금 하준이 보여준 게임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버그 역시 아이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하준은 자신이 준재와 남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모르고 있었다.아이는 게임을 끝냈다. 목소리는 아이지만 말하는 것은 프로 같았다. “아저씨, 방금 그 버그는 백그라운드 데이터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아저씨가 회사 개발자에게 다시 점검하라고 하거나 정기적인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이 문제
지명산 그린 온천 리조트는 YS그룹이 몇 년 동안 만든 휴양지로 곧 개업 예정이었다. 이 사실은 운산 전체가 아는 것으로 임초연도 개업하는 날을 기다렸다. 틀림없이 여준재도 리조트에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때, 심해영을 찾아가 리조트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본 후, 그와 리조트에서 만나 서로를 깊이 알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일찍 리조트에 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고다정을 데리고 가다니!“왜 하필 그 여자를 데리고 간 거지? 왜?!”임초연은 휴대폰을 든 채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설마 여준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반한 건 아니겠지? 그래서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 건가?”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여자의 접근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해!’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갔다. “엄마, 자요?”방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신해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 아직 안 자.”그 말에 임초연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혼자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아빠는 아직 안 오셨어요?”“응, 접대가 있다고 하던데, 좀 더 있어야 올 거야.”신해선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그녀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엄마, 내일 해영 이모에게 지명산 그린 온천 리조트의 개업 VIP초대권을 한 장 받아다 주면 안 돼요?”“알았어, 바로 약속을 잡을게.”신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것으로 딸이 무엇을 할 건지는 묻지 않았다.틀림없이 여준재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 우아한 카페 안.신해선과 심해영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해선이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요.”“무슨 일인데 이렇게 예의를 차리죠?”심해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신해선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우리
심해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의사는 왜 같이 있어?”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우리 아들이 고 선생과 너무 가까운 것 아닐까?’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어쩐지 오늘 신해선이 VIP초대권을 달라고 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아마도 임씨 집안은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심해영은 임초연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녀는 임초연이 계획적이고 이익을 따지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순진한 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심해영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아들이 그 개인 의사와 너무 가까워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들,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너 고 선생님이랑 도대체 어떤 사이야?”준재는 그녀의 질문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고 선생님이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이 내 몸에 좋다고 했어요. 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고 선생님도 함께 오는 게 생각했고요.]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유는 상관없어. 하지만 네 마음만음 분명히 해야 해. 고 선생은 네 개인 의사일 뿐이야. 절대 선을 넘어선 안 돼.”그는 그녀의 말에 불쾌한 기분이 들어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여러 번 강조하실 필요 없어요.]그녀도 아들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이제 그만 할게. 참, 몸은 어때?”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려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이 알아서 잘 하겠다고 했지만, 세상에는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고 선생을 만나봐야 할 거 같았다. 다정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다쳐서 이곳에 하루 더 머물게 되었지만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두 아이도 함께 방에 남아 텔레비전을 봤다. 사실, 아이들은 나가서 놀고 싶지만 엄마 혼자 둘 수가 없어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다정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여준재는 쌍둥이를 데리고 근처 놀이공원으로 갔다. 아이를 동반한 손님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리조트 내에 미니 놀이공원을 설계했다.비록 미니 놀이공원이라지만 있을 건 다 있었고 최신 놀이기구들도 갖추고 있었다.아이들은 신나게 날아다녔다.물론 그들은 준재를 잊지 않고 수시로 밖에서 기다리던 준재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아저씨, 여기 보세요.”하윤은 놀이기구를 탄 상태로 준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하준이도 모처럼 또래 아이들처럼 행동했다.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본 준재는 휴대폰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약 2시간 정도 놀고 나서야 그들은 흥이 가시지 않은 채로 호텔로 돌아갔다. 하윤은 준재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아저씨, 여기는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오빠, 오빠도 재밌었지?”“재밌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엄마랑 다시 오자.”하준은 눈을 반짝이며 하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던 준재는 괜스레 뿌듯해져 웃고 있었다.호텔에 돌아온 그는 호텔 매니저를 불렀다.“여 대표님,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호텔 매니저는 서둘러 달려와 정중히 물었다.준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가서 VIP 멤버십 카드 두 장을 준비해 주시고 이 아이들의 이름을 등록해서 아이들이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세요.”호텔 매니저는 의아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곧이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VIP 멤버십 카드 2장을 등록해 아이들에게 각각 건네주었다.“하준 도련님, 하윤 아가씨, 이건 여러분들의 멤버십 카드입니다. 이 카드를 들고 오시면 평생 무료로 사용하실 수 있어요.”하준과 하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준재를 바라볼 뿐이었다.준재는 그들이 망설이는 걸 보며 직감적으로 고다정이 남이 주는 건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는 걸 깨달았고, 동시에 아이들의 심성에 한 번 더 놀랐다.보통 아이들 같은 경우, 공짜라는 말을 들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저녁 늦은 시간, 구남준이 여성 직원을 데려와 고다정을 도와 짐을 싼지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정리를 마친 그들은 리조트를 떠났다. ……강말숙은 자신의 외손녀가 여준재에게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괜찮아요, 제 부주의로 살짝 접질렸을 뿐이에요.”다정은 걱정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대략적으로 설명했고 이를 들은 강말숙은 마음이 아팠다.“조심 좀 하지 그랬어…….”그녀는 속상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다정을 바라봤지만, 준재를 향한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여 대표님,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주시고……,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괜찮아요, 별일 아닙니다.”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후, 다정에게 말했다.“고 선생님, 앞으로 이틀 정도는 집에서 쉬세요. 얼른 낫길 바랄게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후, 준재는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그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그가 더 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쳐다보고 있었다.강말숙은 그들의 행동이 웃기기만 할 뿐이었다.“하준아, 하윤아, 얼른 문 닫고 들어와. 외증조할머니가 너희들한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으시대.”아이들은 그녀의 말에 순순히 문을 닫고 돌아서 재빨리 달려왔다.“외증조할머니, 무슨 일이세요?”하준과 하윤은 그녀를 껴안고 어리광을 피우며 물었다.강말숙은 아이들을 껴안은 뒤, 세 가족의 여행에 대해 물었다.“가서 뭐 하고 놀았어?”“저희는 단풍이 엄청 많은 숲이랑 호수도 갔어요.”“아저씨는 엄마랑 저희를 데리고 온천도 가주시고 오늘은 저희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주셨어요.”아이들은 그들의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할머니에게 말했다.강말숙은 관심을 가지고 듣는 내내 미소를 지었다.“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왔구나, 너희가 행복했으면 됐어.”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엔 걱정이 앞섰다.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다정은 옆에 앉아 외할머니와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