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목도 파티장에 있었다.그는 주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 두 남녀를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여준재와 고다정은 이미 만나는 사이잖아, 지금은 왜 또 임씨 집안 큰딸이랑 약혼했다는 거야?”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아 결국 그는 그 문제를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다정의 아파트.다정은 두 아이와 함께 종이공예를 하고 있었다.오늘 유치원 선생님이 주신 숙제인데 내일까지 제출해야 했다.“엄마, 여기 삐뚤어졌어요. 안 돼요. 다시 붙여야 해요.”하준은 다정이 실수한 부분을 매우 엄격하게 지적하며 완벽주의 성향을 띠었다.다정도 아들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다시 색종이를 자르기 시작했다.하윤도 옆에서 돕기 시작했다.밟은 방에는 어른 한 명과 아이 두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종이 조각들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참 따뜻해 보였다.특히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농담은 훈훈함을 자아냈다.한 시간 후, 세 가족은 마침내 종이공예를 끝냈다.눈앞에 있는 완벽한 작품을 바라보던 다정은 참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자랑했다.동시에 그녀는 텍스트를 첨부했다.[하준, 하윤이와 함께 완성한 작품. 뿌듯하다.]파티장에 있던 준재는 임초연을 보낸 뒤, 휴게실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이때 그의 휴대폰에는 SNS 추천 게시물 알람이 울렸다.그가 게시물을 확인했을 때, 다정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았다.짧은 문장을 통해 그는 다정과 아이들이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그리고 그 작품은 정말 아름다웠다.준재는 바로 좋아요를 눌렀고 동시에 다정도 자신의 게시물에 준재가 좋아요를 눌린 것을 보았다.마치 뭐에 홀린 듯, 그녀는 준재와의 채팅창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일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아직 휴대폰을 보고 계세요?]다정의 메시지를 읽은 후, 준재의 무뚝뚝한 표정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그는 눈앞에 펼쳐진 시끄러운 파티장을
전화를 끊은 여준재는 파티장을 일찍 떠날 계획이었다. 그는 신해선을 찾아가 말을 건넸다.“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벌써 가는 거야?”신해선은 의아했다.준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준비를 했다.신해선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다.그녀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준재와 자신의 딸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날 밤, 임초연은 준재와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준재는 이제 곧 떠나는데, 내가 여기서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거야.’이 생각을 마친 그녀는 황급히 준재를 불러 주도적으로 말했다.“초연이에게 배웅하라고 할게.”“그럴 필요 없어요, 초연 씨는 손님들을 맞이해야죠.”준재는 단호하게 거절한 후 바로 떠났다.신해선은 그 상황을 보고 한숨만 쉴 뿐이었다.시간이 흘러 파티가 끝나자 초연은 부모님과 함께 마지막 손님을 배웅함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초연은 풀이 죽어 있었다.신해선과 임광원은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렸고,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초연이 왜 저래요?’‘몰라. 파티할 때는 멀쩡했는데, 당신이 물어볼래?’임광원은 아내를 향해 눈짓했다.신해선은 이해한 뒤, 초연에게 물었다.“연아, 왜 그래, 엄마는 네가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였어. 내 생각이 맞아?”이를 들은 초연은 마치 하소연하듯 마음속의 답답함을 털어놓았다.“엄마,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전 분명히 사과했는데 왜 준재 씨는 여전히 저를 차갑게 대하는 거예요?”그녀는 말을 할수록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더욱 애처로웠다.“그리고 떠나기 전에 저한테 인사도 안 했어요.”상황을 본 신해선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했다.“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어쩌면 준재에게 정말 급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잖니. 너도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초연은 입을 다물었다.실제로도 준재는 늘 공과 사가 분
그날 밤, 고다정은 야식을 다 만들고 냄비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자 여준재가 거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뜨고 웃으며 외쳤다.“야식 준비가 다 됐어요, 이리 와서 드세요.”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즉시 손에 들고 있던 바둑돌을 내려놓고 준재를 끌고 다이닝 룸으로 갔다.잠시 후,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야식을 먹기 시작했다.구남준은 음식을 한입 베어 물고는 너무 맛있어서 눈을 번쩍 떴다.그는 종종 할아버지를 따라 세상의 별미를 많이 먹어봤는데 눈앞에 놓인 하얀 국물의 만두전골이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다.그 순간, 그는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고 선생님이 하는 요리는 늘 맛있을까요? 만두전골 맛이 정말 끝내줘요.”그렇게 말하면서 남준은 다정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다정은 웃음이 터졌다.“구 비서님, 과언이세요. 그냥 이것저것 넣어서 했어요.”“전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어요. 고 선생님은 너무 겸손하세요.”남준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이때 준재도 인정하며 칭찬했다.“정말 맛있어요.”그 말을 들은 다정은 그를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여 대표님은 산해진미도 안 드셔보시고, 아무리 봐도 구 비서님처럼 과장하시는 것 같아요.“정말이에요, 전혀 과장하지 않았어요. 못 믿겠으면 하준이랑 하윤이에게 물어보세요.”준재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얘들아 엄마가 해준 야식 맛이 어때?”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너무 맛있어요!”그렇게 말한 뒤, 아이들은 입맛을 다셨다.눈앞의 모습을 본 다정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야식을 먹은 뒤, 준재는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깨닫고 남준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아저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구남준 아저씨도 천천히 운전하세요.”아이들은 마지못해 그들을 문까지 데려다주었고 어린 티를 내며 당부했다.준재는 마음이 따
임초연이 떠난 후, 여준재는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다이닝 룸으로 갔다.그는 그녀가 가져온 아침식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서둘러 식사를 하고 회사로 향했다. 오전부터 회의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다국적 회의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 한 무더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오후가 되어서야 그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구남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대표님, 괜찮으세요?“괜찮아.”사실, 그는 괜찮지 않았다. 여준재는 손으로 부은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머리를 너무 많이 썼는지 멍하니 무거운 느낌이었다.“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이 또 있나?”“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참, 대표님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지명산 그린 온천 리조트가 완공되어 곧 개업 예정인데, 대표님께서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긴장도 풀 겸 말입니다. 요즘 너무 바쁘셔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으니 이번 기회에 쉰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그는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여준재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지명산은 원래 민둥산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천연 온천이 발견돼 정부가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 개발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을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YS그룹이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마침내 리조트가 완공되었다.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온천에 갈 상황이 될까? 일단 먼저 고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해.”남준은 의아했다. 대표님이 언제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고 결정한 것이 있었나? 하지만, 그 대상이 고 선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대표님은 고 선생 앞에서는 원칙 따위는 잊어버렸다.그는 무엇이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럼, 겸사겸사 고 선생님과 두 아이도 초대할까요?”구남준은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니 동의하는 듯했다. 남준은 그의 반응에 아까보다 더 놀랐다. ‘고 선생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다르군.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 달라질 지 몰라.’
쌍둥이는 멋쟁이 아저씨와 함께 온천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두 꼬마는 그 날을 기다리며 매일 날짜를 셌다. 다정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마침내 그날 아침, 두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엄마, 일어나요! 오늘은 멋쟁이 아저씨와 온천에 가는 날이예요!”두 꼬마는 신이 나서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직 아침 6시 밖에 안 됐지만 다정은 아이들의 성화에 할 수 없이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마칠 무렵,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멋쟁이 아저씨가 왔을 거예요. 제가 문을 열게요.”“나도 갈래!”두 꼬마는 경쟁하듯 달려갔다.문밖에는 정말 여준재가 서 있었다. 그는 캐주얼한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귀공자처럼 멋있었다. 하윤은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늘 정말 멋있어요!”“네, 정말 멋있어요.”하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여준재는 둘의 칭찬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너희들도 오늘 정말 멋있어.”다정이 그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여기 있을게요. 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준비 다 했어요? 그럼, 출발해요.”“네, 준비됐어요.”그녀는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짐을 챙겨 나갔다. 운전은 구남준이 맡았다.준재는 조수석에 앉았고 다정은 두 아이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아이들은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그에게 계속 말을 시켰다. 다정은 아이들이 너무 떠들면 그에게 방해가 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가 아이를 낳는다면,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았다. 가는 내내 웃고 떠드는 바람에 목적지에 금방 도착했다. 지명산의 서쪽 일대는 특별히 개발된 곳으로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두 아이는 창밖 풍경에 매료되어 감탄을 연발했다.“엄마, 이것 좀 봐요. 너무 아름다워요!”다정이 얼른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겹겹의 산봉우리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
호텔 레스토랑 측은 그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식재료는 모두 오늘 아침에 비행기로 운송해 온 것들이었다. 게다가 주방장이 정성껏 요리했기 때문에 음식 하나하나의 색과 향이 모두 완벽했다. 두 아이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볼록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은 막을 수는 없었다. 구남준의 말처럼 호텔 뒷산에는 정말 단풍숲이 있었다. 가을이라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미풍과 함께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두 아이는 눈앞의 경치를 보며 감탄하며 신나게 뛰어 놀았다.아이들은 이곳이 정말 좋았다.“와! 오빠 이 나뭇잎 좀 봐! 빨간색이야.”하윤이 붉은 단풍을 주워 들고 자랑했다.아이들의 노는 모습에 보며 다정은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녀는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늘 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준재는 나무 아래 서서 온화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에 흰 셔츠를 입은 그는 귀티가 물씬 풍겼다. 다정은 경치보다 아름다운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준재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다정은 마치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그윽하고 깊은 눈동자와 부딪혔다.순간,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를 불렀다. “고 선생님, 호수 보러 갈까요?”그녀는 애써 마음속의 파동을 가라앉히고는 그를 돌아보았다.“좋아요.”“갑시다. 산 위로 좀 더 가야 해요.”준재가 말했다.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서 놀고 있는 두 꼬마를 불렀다.“엄마, 이것 보세요. 내가 찾은 빨간 잎이에요. 엄마한테 줄게요.”하준은 꽃처럼 예쁜 단풍잎을 보물처럼 소중히 건넸다.다정은 고마워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하윤은 손에 들고 있던 단풍잎을 엄마가 아닌 준재에게 건넸다. “엄마는 오빠가 준 나뭇잎이 있으니까, 이건 아저씨께 드릴게요.
준재는 다정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했다.그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요?”“괜찮아요, 별일 아녜요.”다정은 그의 손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그랬어요. 다행히 조금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 많이 돌아다녔으니 이제 그만 가서 쉬세요. 제가 마사지해 드릴게요.”그는 다정이 자신의 몸이 불편한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난 괜찮아요, 계속 있어도 돼요.”그는 고개를 저었다. 두 아이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아직 아이들은 충분히 놀지 못한 것 같았다.다정도 그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일부러 화가 난 척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환자는 의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의사가 쉬라고 하면 쉬세요!”구남준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고 선생님은 우리 대표님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 최초의 사람이야!’준재는 할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다정은 방으로 돌아와 그를 소파에 눕힌 뒤 어깨와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한창 마사지 중일 때 아이들이 들어왔다. “아저씨, 우리도 안마해 드릴게요.”그새 두 꼬마는 그의 팔을 잡고 마사지를 시작했다.구남준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꼬마들아! 너희들은 이런 것까지 할 줄 아니?”“엄마한테 배웠죠! 엄마는 집에서 항상 우리 외증조할머니를 안마해드려요. 우리는 그걸 보고 배웠어요. 아저씨!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아저씨, 우리 잘 하죠? 어때요, 편하죠?”하윤은 칭찬을 기다리는 얼굴로 준재를 바라보았다. 하준 역시 눈빛에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준재는 아이들이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정말 대단해! 아저씨는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누워서 피로를 풀고 있어.”“그럼요, 우리는 엄마에게서 최고의 안마 기술을 전수받았으니까요.”하윤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고개를 쳐들었다. 다정은 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시간이 지나자, 준재는 몸이 많이 회복됐다.
저녁 식사 후, 잠시 휴식을 가졌다. 온천에 가기 전 소화를 시켜야 했지만 여준재의 몸 상태를 고려해 외출 대신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저씨, 우리랑 영화 볼래요?”두 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준재는 남준에게 적당한 영화를 찾아달라고 한 뒤, 아이들과 함께 시청했다. 다정도 함께 했다.영화가 끝나자, 다같이 온천에 같다. 물론, 준재는 하준을 데리고 갔고, 다정은 하윤과 함께였다. 온천탕은 서로 맞닿아 있었는데, 중간이 나무벽으로 막혀 있었다.물론 방음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호텔이 공들여 설계한 것이었다.가족이나 커플이 다른 온천탕에 있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다정은 하윤과 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수건으로 싸맨 뒤 천천히 물에 들어갔다.“엄마, 진짜 따뜻해요!”어린 하윤은 온천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다정은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온천을 즐겼다. “온천에 오니 어때?”“편안하고 따뜻해요.”하윤은 물속에서 신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다정은 오랜만에 즐겁게 노는 딸을 잠시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가산 못 가에 기대어 편안하게 몸을 담그고 있었다.한편, 활기찬 그녀들에 비해 준재와 하준 쪽은 조용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온천에 온 적이 처음이라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준은 너무 신났지만 아저씨가 옆에 있으니 얌전한 척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흥분된 빛이 가득했다. 준재도 하준이 놀고 싶어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놀고 싶으면 마음껏 놀아! 참을 필요 없어!”“아녜요, 지금도 좋아요.”하준이 얌전하게 대답했다. 어린 하준은 준재가 두 팔을 들어 온천탕 벽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자기도 똑같이 따라했다. 하지만, 다리가 짧아서 서 있어야 했다. 그는 하준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하준아, 아저씨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 넌 아직 이런 자세가 무리야. 나중에 크면 해.”하준은 괜히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