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은 식사에 집중한 나머지 근처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식사를 마친 다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육성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화장실 안.다정이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의 그림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그 여자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렸다.“정말 우연이네요, 다정 씨. 여기서도 당신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다정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임초연을 보았다.모르는 사람이 그들의 모습을 봤다면 두 사람 사이가 친하다고 오해할 법도 했다.초연을 발견한 다정은 의아해했다.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맞받아쳤다.“정말 우연이네요, 초연 씨.”“다정 씨도 여기 밥 먹으러 오셨어요?”초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계속 물었다.‘식당에 밥 먹으러 오지 영화 보러 오나.’다정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초연 씨, 전 이만 먼저 가볼게요.”그 말을 끝으로 다정은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이때 초연은 그녀를 다시 불렀다.“잠시만요, 다정 씨!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초연은 관대하고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다정은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나랑 초연 씨는 따로 할 말이 없는 것 같은데.’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초연은 다정을 데리고 빈방으로 들어와 마주 보고 앉았다.초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다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초연 씨,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다정은 상대방이 빙빙 둘러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오히려 할 말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리고 그녀는 줄곧 초연의 행동이 이상하다 느껴졌지만, 오늘 그녀가 보인 집착은 정말 이상했다.초연은 웃으며 말했다.“사실 별일 아니에요, 예전에 준재 씨를 치료해주신 다는 말을 들었어요. 항상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연회장에서도 그
룸으로 돌아온 고다정의 표정은 평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엄마, 왜 이제야 왔어요!”다정을 보자마자 두 아이가 소리쳤다.다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얼른 먹어.”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위가 작아 얼마 지나지 않아 배부르다고 소리쳤다.“이제 배도 부르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데려다줄게.”육성준은 일어서며 다정에게 말했다.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성준의 뒤에 있는 장난감들은 한 사람이 가져갈 수 없는 양이었다.아이들은 한 손에 장난감을 하나씩 들고 다정도 적지 않은 장난감을 가져갔다.남은 장난감들은 모두 성준의 몫이었다.‘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장난감 가게를 통째로 들고 온 줄 알겠다.’다정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다음에는 이렇게 많이 사지 마, 이거 봐, 얼마나 번거로워.”‘주려고 들고 오는 것도 일이고 집으로 가져가는 것도 일이잖아, 정말 귀찮아!’성준은 눈썹을 치켜떴다.“그건 안 돼, 내가 우리 강아지들한테 주는 선물인데 어떻게 귀찮을 수가 있어?”다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음에는 직접 가져오고 나한테 부탁하지 마!”“그건 안 돼!”……그렇게 장난을 치다가 성준은 차를 몰고 그들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원래 성준에게 차라도 내어주고 싶었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그의 말에 포기해야 했다.방으로 들어온 다정은 침대에 앉아 오늘 밤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그녀는 생각을 하다 여준재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렸다.[고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다정은 입술에 힘을 준 채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저, 여 대표님…….”다정이 주저한다는 것을 느낀 준재는 직접적으로 말했다.[고 선생님, 하실 얘기 있으시면 편하게 하셔도 돼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임초연 씨랑 여 대표님이 약혼한 사이인지 묻고 싶었어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어리둥절해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는 확실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다정
“네, 오늘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얼른 쉬고 주무세요.”[네, 잘 자요.]잘 자라는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여준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얼굴이 굳어졌다.‘정말 임초연은 날 갖고 시험하려는 건가?’‘이젠 정말 역겨울 정도야.’‘후, 안돼. 지금은 무시보다는 이 여자를 상대해야 해.’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눈에는 더욱 무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다음날.사무실에 있던 준재는 구남준을 향해 말했다.“임초연 씨한테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전해.”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대표님.”남준의 전화를 받은 초연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좋아요!”그녀는 점심에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준재가 오기도 전에 도착한 초연은 이미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너무 설레어 손거울을 들고 오늘 얼굴 상태를 반복해서 확인했다.완벽하다는 걸 확인한 후, 그녀는 그제야 손거울을 내려 놓았다.‘아무래도 준재 씨 어머니가 말을 잘해주셔서 그런가 봐.’그녀가 생각을 하던 중, 준재와 남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초연은 얼른 일어서 말했다.“준재 씨, 왔어요?”준재는 가볍게 대답했지만 매우 쌀쌀맞았다.“준재 씨, 여기 메뉴판 좀 보세요. 제가 이미 요리를 몇 가지 시켰지만 더 추가할 게 있는지 확인해 봐요.”초연은 메뉴판을 들고 열정적으로 준재에게 건네주었다.그러나 준재는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필요 없어요.”메뉴판을 들고 있던 초연의 손도 머쓱해졌다.그녀는 멋쩍게 웃었다. “알겠어요.”그제서야 그녀는 오늘 준재의 기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평소에도 준재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쌀쌀맞고 혐오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맞아, 그냥 날 혐오하는 거야.’“준재 씨, 오늘 절 찾아오셨잖아요. 무슨 할 말 있으세요?”초연은 울컥한 마음에 말을 꺼냈다.준재는 차
고다정은 자신의 말로 인해 임초연이 미운털이 박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다정은 두 아이를 깨워 등원 준비를 했다.아이들은 뭉기적거리다가 세수하며 물었다.“엄마 나중에 뭐 하러 가실 거예요?”다정은 하윤이에게 겉옷을 입히며 말했다.“엄마가 어딜 가겠어, 너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산 중턱에 있는 별장으로 갈 거야. 요즘 약재에 관한 일이 많네, 집에 있는 옛날 약재 중에 희귀한 약재를 별장에 있는 땅에 심어야 해서 너무 바빠.”이 말을 들은 하준은 눈을 깜빡이며 진지하게 말했다.“엄마, 너무 바쁘시면 저랑 하윤이가 도와드릴게요.”하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맞아요, 엄마!”“유치원은 너무 지루해요, 하나도 재미없어요. 차라리 저희가 일을 도와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목소리가 사랑스럽게 들려왔다.다정은 웃으며 그들의 통통한 볼을 꼬집었다.“너네는 가서 일을 도와주고 싶은 거야, 아니면 놀러 가고 싶은 거야?”아이들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남은 몰라도 다정이 어찌 모를 수 있을까?하윤은 혀를 내두르며 얼른 대답했다.“엄마, 당연히 엄마를 도와주러 가는 거죠, 저랑 오빠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면 되잖아요!”하윤은 말을 하며 마치 자기 능력을 보여주려는 듯 가슴과 배를 두드렸다.그들의 모습을 본 다정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말로는 도와준다지만 놀러 가기 위한 속셈인 걸 알고 있다.예전부터 아이들은 줄곧 별장, 별장 노래를 불렀지만, 현재로서 다정은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수업 열심히 듣고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그때 얘기하자.”아이들은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엄마는 진짜 쪼잔해요!”“맞아, 쪼잔한 엄마가 얼른 유치원에 데려다줄게.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거야.”엄마와 아이들은 웃으며 집을 나서서 유치원으로 향했다.……아파트 입구에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길가에 세워져 있고 차 안에는
집사는 옆에 서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작은 상처가 아니야.’‘좀 더 깊으면 뼈도 보일 것 같아.’생각하다 집사가 입을 열었다.“고 선생님, 그래도 병원에 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그녀가 스스로 붕대를 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병원에 가서 붕대를 감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직접 하시다가 세균에 감염이라도 되면 어떡해요?”집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그러나 고다정은 고개를 젓고 웃으며 말했다.“제가 의사인데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심각하면 병원에 갔겠지만 이건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다정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지 경미한 부상일 뿐이지 병원에 갈 필요는 없었다.그녀의 고집을 본 집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여준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이 뒷마당에서 약재를 재배하고 있을 때, 준재가 찾아왔다.“고 선생님, 왜 아직도 약재를 재배하고 계세요?”준재의 말을 들은 다정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요?”‘약 밭을 가꾸러 왔는데 내가 여기 없으면 난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거야?’준재는 말을 덧붙였다.“심하게 다쳤다고 집사한테 들었어요. 어때요, 어디가 다친 거예요? 심각한 거예요? 지금 못하겠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돼요. 다쳤으면 쉬는 게 더 중요하죠.”이 말을 들은 다정은 그제야 알아차렸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여 대표님, 전 괜찮아요. 그냥 조금 베였을 뿐이에요. 정말 괜찮아요.”“하지만 출혈이 꽤 심하셨다면서요. 아니면 지금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세요. 나중에 상처가 감염되면 어떡해요?”준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완곡히 거절했다.“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여 대표님. 전 의사예요. 정말 심각했다면 저도 알았겠죠. 그리고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그녀는 굳은 얼굴로
“없어요.”고다정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연 뒤 잠시 멈칫거리고는 설명했다.“이 근처 이웃들은 모두 친해요,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그렇기에 CCTV를 설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일이 복잡하게 됐네요.”다정은 마음이 뒤숭숭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준재는 개의치 않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본 뒤 훼손된 약밭을 자세히 훑어보았다.“그렇다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손을 댔다는 건데, 분명히 고의적인 짓이네요.”다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침묵을 유지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준재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단지 그녀는 지금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고경영?’‘아니면 고다빈?’고다정은 주먹을 꽉 쥐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그녀의 어두운 안색을 본 준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남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근처에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는지 확인해 봐.”“알겠습니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 떠났다.이를 본 다정은 준재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감사해요.”“고 선생님, 그렇게 감사해하지 않으셔도 돼요.”웃으며 말하는 준재의 얼굴에는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다정은 지금 모든 신경이 약밭에 쏠려 있어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강말숙은 아수라장이 된 약밭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다정아,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머리속이 어지러운 다정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경황이 없었다.준재도 그녀가 경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저 약재 중에 다시 구할 수 있는 게 있나요?”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은 다정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약 밭을 둘러보니, 비록 아수라장이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약재들이 남아있었다.“있어요.”그녀는 말을 하는 도중 약밭에 들어가 손상된 약재들을
저녁이 되자, 유치원이 끝났다.하준과 하윤이 손을 잡고 나오다가 유치원 앞에 여준재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멋쟁이 아저씨!”두 아이들의 눈이 곧바로 반짝이더니 한달음에 달려갔다.하준은 얌전히 준재와 두세 걸음 떨어져 있을 때 멈춰 섰다.하윤은 오히려 반갑게 준재를 껴안았다.“멋쟁이 아저씨, 오늘 엄마랑 같이 오셨어요?”“아니, 아쉽지만 오늘은 나 혼자만 너희를 데리러 왔어.”자신의 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쳐다본 준재의 인상은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고 미소로 화답했다.이 말을 들은 두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동시에 물었다.“멋쟁이 아저씨, 엄마는 왜 안 왔어요?”“엄마가 많이 바빠서 아저씨한테 너희를 데리러 가달라고 부탁하셨어. 엄마가 일을 다 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가는 건 어때?”준재는 나긋나긋하게 설명하고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아이들은 그를 좋아하고 또 그와 함께 놀고 싶었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좋죠.”이 말을 들은 준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옅은 웃음을 자아냈다.처음엔 다정이 없어 아이들이 그와 함께 있는 걸 꺼려하면 어쩌지 걱정을 했지만, 지금 보니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다.“그럼 아저씨랑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가자, 어때?”준재는 허리를 약간 구부려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아이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윤은 준재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멋쟁이 아저씨, 그럼 제가 먹고 싶은 거 말해도 돼요?”준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당연하지, 뭐 먹고 싶어?”“저는 스테이크 먹으러 가고 싶어요. 그곳에 진짜 맛있는 케이크가 있거든요.”그 소녀는 입맛을 다시며 기대에 찬 눈으로 준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준재는 빙그레 웃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이 욕심꾸러기!”그렇게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급스러운 양식 레스토랑에 갔다.“저희 메뉴판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었다.준재는
집에 돌아갔을 때는 날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거 받아요, 고 선생이랑 할머니께서 아직 밥을 안 드셨을 것 같아서 음식을 포장해 왔어요.”여준재는 포장된 음식을 건네며 말했다.고다정은 그의 섬세한 면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고마워요.”그녀는 감사를 표하며 음식을 건네받았지만, 이 남자가 이렇게 세심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날 밤, 다정과 외할머니는 밥도 먹지 않고 줄곧 약밭을 정리했다.강말숙도 옆에서 감사를 표했다.“오늘 저희 하준이랑 하윤이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아니에요, 아이들이 너무 얌전해서 제가 한 것도 없어요.”준재는 웃으며 그쪽을 바라봤다.그때 아이들이 외증조할머니와 다정을 안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멋쟁이 아저씨와 저녁을 먹으러 간 이야기를 꺼냈다.하윤이는 준재의 팬이라도 된 것처럼 온갖 칭찬을 했다.“엄마, 전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오늘 저랑 오빠한테 밥도 사주셨어요. 오빠랑 저는 완전 배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하윤이한테 진짜 맛있는 케이크도 사주셨어요.”하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는 하윤보다 말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똑 같은 생각이었다.준재는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떴다.아이들이 이렇게 칭찬할 줄은 몰랐지만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아이들을 위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다정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그렇게 몇 사람이 몇 마디 웃고 떠들자 준재는 약밭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약밭은 다 정리됐어요?”“아직이요. 날이 어두워져서 약재가 잘 안 보여요. 나머지는 내일 다시 처리하려고요.”다정은 순식간에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워진 채 고개를 저었다.준재는 왠지 마음이 아파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내일 제가 사람들을 보낼게요. 도움이 될 거예요.”이 말을 들은 다정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 했다. ‘결국, 오늘도 여 대표님께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어. 이 정도의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있을 거야.’그녀는 준재에게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