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야. 갑자기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지? 설마, YS그룹 미래의 사모님은 아니겠지?”사람들은 멋대로 추측했다. “설마!”“아니야, 가능성이 있는 얘기야. 언제 여준재의 곁에 여자가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어?”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정말 대단한데?”다정은 사람들이 자신을 놓고 수군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준재를 따라갔다.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굽 때문에 발목이 불편했다. 평소에 그녀는 하이힐을 거의 신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높은 신발을 신으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정의 불편함을 알아차린 준재는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물었다.“괜찮아요?”준재는 그녀의 작은 동작 하나도 모두 눈 여겨 보고 있었다.다정은 그의 세심함에 놀라며 대답했다.“평소에 하이힐을 잘 신지 않아서 좀 불편해요.”그녀의 말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상하게 말했다.“저쪽으로 가서 좀 쉬어요.”멀지 않은 곳에 앉을 곳이 있는 것을 본 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준재가 막 그녀를 따라 함께 가려고 할 때, 갑자기 멀리 있는 남자가 그를 불렀다.“여 대표님!”“오랜만입니다. 우리 한잔해요.”그는 자리에 선 채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막 거절하려고 하자 다정이 말했다. “괜찮아요, 나 혼자 가도 돼요.”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나를 불러요.”“알았어요.”그때, 고다빈과 진시목이 홀로 들어왔다.지위도 명예도 잃은 후, 두 사람이 이런 자리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홀에 도착하자마자 먼 곳에 다정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시목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고다정이잖아? 쟤가 어째서…….”다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들은 고다정 때문에 죽을 맛인데, 쟤는 오히려 이렇게 잘 먹고 잘살고 있다니!’그녀는 옆에 있는 진시목이 다정에게 빠져 있는 것을 알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바로 다정에게 돌진했다.다빈은
“이 여자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들어왔어요! 그러니 빨리 쫓아내세요!”고다빈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그러자 경비원이 달려와서 다정에게 물었다.“아가씨, 초대장 좀 보여 주십시오.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다정은 난감했다.여준재를 따라왔을 뿐, 초대장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다빈은 다정이 당황해하는 것을 보며 더욱 기세등등했다.그리고는 곧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이 여자를 쫓아내지 않고 뭣들 하는 거예요?”경비원은 할 수 없이 다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가씨, 죄송해요. 초대장이 없으니 나가셔야 합니다.”“흥!”다빈이 콧방귀를 끼며 소리쳤다.“빨리 안 나가? 초대장도 없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내가 너라면,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거야!”다정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무언가 설명하려 했다. 그 때, 저쪽에서 노민재와 여준재가 급히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하도 시끄러워서 달려온 것이었다. 노민재는 차가운 얼굴로 호통을 쳤다.“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경호원은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순간, 노민재와 준재가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군요.”“고다정 씨는 준재가 데리고 온 분입니다. 누가 그런 근거 없는 말을 하는 겁니까?”그는 잔뜩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경호원은 깜짝 놀라 머뭇거리며 변명했다.“이 아가씨가 그렇게 말했습니다.”순간, 노민재와 준재의 시선이 고다빈을 향했다.그녀는 순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여준재가 고다정을 데리고 왔다고?’‘정말 어이가 없어!’‘고다정에게 창피를 주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다빈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그랬군요. 제가 잘 몰라서 오해했나 봐요. 이제 알게 됐으니 오해는 풀렸네요.”그녀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여준재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오해했다고 말하면 끝인가요?”그의
“조금 전 일은 고마웠어요.”다정이 준재에게 인사했다.하지만 오히려 그는 미안한 얼굴이었다.“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내가 고 선생님에게 미안하죠.”“고 선생님을 데려와 놓고서 잘 챙겨주지 못해 이런 난감한 일이 생겼잖아요.”다정은 고개를 저었다.“여 대표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자신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고다빈이 일부런 꾸민 짓이었다. 다정이 누구와 왔든 상관없이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고 선생님, 발은 괜찮아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한결 나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있으면 연회가 끝날 거예요.”다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와 함께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그때, 임초연이 준재를 발견하고 인사하려고 다가왔다.하지만, 곧 옆에 서 있는 다정을 보고 멈춰 섰다. 샴페인을 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저 여자가 왜 또 여기 있는 거지?’‘지난번 회사에 온걸로도 모자라 이젠 연회까지 와? 설마, 준재 씨가 데리고 온 거야?’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준재 씨!”“네.”그는 성의 없이 대답하며 냉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임초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그녀는 옆에 있는 다정을 보며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준재 씨, 당신 옆에 있는 이 아가씨는 누구예요? 지난번에 회사에서 보긴 했지만, 아직 소개를 안 해줬잖아요.”그녀는 아무런 사심이 없는 듯 웃어보였다.그러자 그가 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오늘 내 파트너로 온 고다정 씨예요.”그의 말에 다정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임초연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고다정 씨, 안녕하세요. 저는 임초연이라고 해요. 그냥 초연이라고 부르면 돼요.”“다정 씨, 우리 두 사람, 전에 회사 앞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않아요?”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다정에게 물었다.그리고 얼른 준재를 바라봤다. 그의
임초연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여준재와 고다정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얼굴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했다.‘준재 씨는 저 여자랑 도대체 무슨 관계지?’‘둘 사이가 왜 저렇게 다정한 거야?’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한편, 술을 몇 잔 마신 다정은 얼굴이 빨개졌다.사실 그녀는 평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연거푸 몇 잔을 마시니 금세 취하고 말았다. 준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걱정이 됐다.“이제 그만 마셔요.”다정이 빨간 얼굴로 대답했다.“네.”그녀는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준재는 얼굴에 염려가 가득했다.……화장실.다정은 찬물을 손에 받아 얼굴에 묻힌 뒤 손끝으로 뺨을 두드렸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임초연과 마주쳤다.“다정 씨, 또 만나네요!”그녀가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다정도 웃으며 인사했다.그러자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다정 씨, 아까 보니 다정 씨는 준재 씨와 가까운 사이 같던데, 정확히 두 사함 무슨 사이예요? 설마, 남녀가 친구 사이는 아니겠죠?”그녀는 다정을 떠봤다.그리고는 혹시라도 그녀가 오해할까 한마디 덧붙였다.“설마, 오해하는 건 아니죠? 전 아무 뜻도 없어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저는 준재 씨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요. 어릴 때부터 말예요. 그런데 그동안 준재 씨가 여자와 이렇게 가깝게 지낸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아, 그랬군요.”고다정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에요.”하지만 임초연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요? 하지만 준재 씨가 여자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에요.”“다정 씨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다닐 때는 여자는 물론, 남자도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어요.”그녀는 마치 준재와의 친밀함을 과시하듯 예전 일을 끄집어 냈다.다정은 여
준재는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돌아보니 다정은 벌써 잠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그의 어깨에 기댄 것은 처음이었다.그녀를 밀어낼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꼼짝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30분 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응.”준재는 얼른 다정을 깨웠다.“고 선생님, 집에 도착했어요.”“이제 정신 좀 차려요.”하지만 다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꼬대를 했다.“하윤아, 떠들지 마! 엄마는 좀 더 자고 싶어.”그는 난감한 얼굴로 할 수 없이 다정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구남준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대표님 곁에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누구가를 친밀하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심지어 자진해서 고 선생님을 안다니!’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시간이 늦어 두 아이는 이미 잠들었고 강말숙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똑똑-그 소리에 강말숙이 일어나 나왔다.“다정이 왔니?”그 말이 끝나자마자 준재가 다정을 안고 들어왔다.강말숙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 계집애는 왜 이러는 거예요?”다 큰 여자 애가 한밤중에 남자에게 안겨 오니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준재가 자세히 설명했다.“어르신, 별 일 아니에요. 고 선생님이 술을 좀 마셨는데 잠들었어요.”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계집애, 주량이 좋지도 않으면서 무슨 술을 마신다고.”“여 대표님이 괜히 고생이시네요. 얼른 들어오세요.”강말숙은 얼른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그는 다정을 침대에 눕혔다.“여 대표님, 정말 죄송해서 어쩌죠? 얼른 댁에 가서 쉬세요. 다음에는 편하게 놀러 오시고요.”준재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방 안.다정은 그대로 아침이 될 때까지 푹 잤다. 다음날, 잠에서 깬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역시 숙취는 힘들어.’‘다음부터는 술을 함부로 마시
임초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엄마 신해선은 딸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진한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초연아, 너 왜 그래? 밤새 못 잤어?”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주저 않았다. “엄마, 그만 해요.”지금은 초조한 마음에 죽을 것만 같았다.신해선이 다가오며 물었다.“왜 그래?”어릴 때부터 그녀는 부모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그런 그녀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자 걱정이 절로 됐다. “엄마, 준재 씨한테 여자가 생긴 것 같아요.”임초연은 답답한 표정으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하지만, 신해선은 생각이 달랐다.“네 말 대로라면 그 여자는 그리 좋은 집안의 아가씨가 아닌게 분명해. 권력도 지위도 없는 평범한 여자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했다.“내가 평소에 말했듯이, 별일 없으면 해영 이모와 많이 만나렴. 같이 쇼핑도 하고 말이야. 여씨 가문 같은 대단한 집안은 자식을 결혼시킬 때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형편을 따지기 마련이야. 거긴 아무나 시집갈 수 집안이 아니야.”“하지만…….”그녀는 여준재와 고다정의 친밀한 모습이 생각났다.신해선이 얼른 그녀의 말을 끊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진 거지? 그런 평범한 여자가 여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해영 이모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네가 준재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틀림없이 아무 문제없을 거야!”그녀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결혼은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 그녀는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래요, 엄마. 알았어요.”신해선은 그녀의 손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우리 딸이 얼마나 예쁘고 훌륭한데, 아무 걱정할 것 없어!”그날 오후, 임초연은 직접 떡을 만들어 여씨 저택으로 향했다.심해영은 그녀를 보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초연아, 어서 와. 뭘
준재는 사무실에 앉아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때, 핸드폰 알림이 울리면서 다정이 보낸 사진과 함께 토끼 표정이 떴다.그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빛이 부드러워졌다.하던 일을 잠시 멈춘 그는 바로 답장했다.[고 선생님, 약재들을 돌보느라 고생했어요.]다정도 곧 답장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참, 대표님!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대표님의 현재 몸 상태로 봐서는 매일 적어도 8시간 정도의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구요.]그녀는 일에 몰두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당부했다. 그는 웃으며 답장했다. [걱정 마세요, 고 선생님. 저도 잘 알고 있어요.]그는 다정에게서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몸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몸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이대로만 간다면 얼마 안가 많이 회복될 것 같았다.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 다정이 나타나면서부터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정은 아침 일찍부터 약재 밭에서 바쁘게 일하다 겨우 끝냈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은침을 꺼내 들고 강말숙에게 갔다. 그녀는 아이가 들면서 다리가 자주 시큰거리며 아팠다. 특히, 요즘은 장마철이라 더 많이 힘들어했다.“외할머니, 긴장 푸세요.”다정은 그녀의 바지를 걷어 올리고 침을 놓기 시작했다.강말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손녀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사람이 늙으면 쓸모가 없어. 시간은 갈수록 더 빨리 지나가고 말이야.”그녀 앞에서 울고 보채던 계집애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다정은 웃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예요? 아직 정정하시잖아요.”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나마 내가 지금 건강이 괜찮아서 너를 돌보지, 만약 내가 죽으면 누가 널 돌보니?”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아이들도 커서 철이 들었으니 너도 남자를 만나서 보살핌을 받아야지.” 강말숙의 소원은 다정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저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요!”“계속 이렇게
“만약 정말 저와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할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강말숙은 다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안심할 수 있어.”오후가 되자, 다정은 쌍둥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갔다.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맞다! 엄마, 이틀 후에 유치원에서 학부모회를 연대요. 엄마, 아빠 다 오라고 했어요!”‘학부모회?’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엄마가 꼭 갈게.”하윤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그럼 아빠는요? 아빠도 올 수도 있어요?”그 말에 다정은 할 말이 없었다.쌍둥이가 희망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다정은 아이들의 마음은 알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하준아, 하윤아,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좀 특별한 상황이야. 하지만 엄마 혼자 가도 아무 문제없단다.”하지만, 하윤은 실망한 얼굴이었다.아이는 어깨가 축 처진 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다정은 하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오늘따라 왜 저러지?”평소에 하윤답지 않은 모습이었다.오빠 하준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엄마…….”하준은 입술을 꽉 깨물고 주저했다.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 하준아?”“엄마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돼.”하준은 겨우 입을 열었다.“엄마, 오늘 어떤 애가 나랑 동생을 보고 아빠 없는 호래자식이라고 했어요.”그 말에 다정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평소에 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 알고 있었다.하준은 철이 든 아이였지만, 사실 매우 예민한 아이였다. 그녀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참만에야 겨우 입을 뗐따. “하준아, 너희들은 아빠 없는 호래자식이 아니야.”그녀는 아이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다 엄마 잘못이야.”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말을 했겠지만, 그건 쌍둥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