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여준재는 병원에 왔다. 그는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고다정 앞에 다가와 진지한 얼굴로 건넸다.“오면서 샀어요.”“와~”두 아이는 옆에서 소리쳤다.금세 주위 사람들의 이목이 고다정쪽에 집중되었다.고다정은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남자가 건네준 꽃다발을 받아 고개를 숙이고 살짝 냄새를 맡았다.“센스 있으시네요. 제가 한 말을 단번에 알아듣다니. 이만 집에 돌아갑시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여준재에게 손을 뻗으며 부축하라고 했다.여준재는 꿀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이때 두 아이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오빠, 아빠랑 엄마가 다시 예전에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지 않아요?”“돌아간 게 아니라 쭉 뜨겁게 사랑했었어.”고하준은 애어른처럼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네 식구가 빌라에 도착했다.저녁은 역시나 고다정이 준비했으나 도우미가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분위기는 매우 아늑했다.늦은 시각까지 저녁 식사를 마친 여준재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대뜸 고다정을 끌고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는 방으로 갔다.두 아이도 그들의 뒤를 따라오다가 방안의 대형 스크린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소리쳤다.“아빠, 우리 여기서 영화 보는 거예요?”“엄마랑 같이 영화 본 지가 오래되어서.”그의 말에 고다정은 고개를 돌려 옆에 남자를 쳐다보면서 진짜 영화 보러 온 줄 알고 그녀도 물었다.“무슨 영화인데요?”여준재는 일부러 비밀인 척 답했다.“조금 있으면 알게 돼요.”말을 마치고 고다정더러 의자에 앉게 한 뒤 자신도 그녀의 옆에 앉았다.두 아이도 그들의 옆에 앉게 되었다.이때 갑자기 스크린이 밝아지더니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얼마 안 가서 두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환호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엄마예요.”화면 속의 고다정은 차에서 내린 뒤 꽃밭을 걷고 있었다.가만히 보고 있던 고다정은 그제야 미간
그 뒤로부터 고다정은 비록 기억이 안 나지만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았다.낮에는 병원에 가서 외할머니랑 같이 있다가 저녁이 되면 여준재가 그녀를 데리고 예전에 자주 갔던 곳에 데려가 기억을 찾는 데 힘썼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갔다.고다정은 일부 기억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흐릿한 상태였다.이날 여준재는 특별히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30분 뒤 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여 대표님, 사모님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핏덩어리도 작아졌고 요 며칠 아마 돌아온 기억이 몇 개는 있었을 겁니다.”“있긴 있었어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요 며칠 동안 기억났던 장면들을 말했다.의사는 듣고 난 뒤 답했다.“아직 기억나는 장면이 흐릿한 건 정상입니다. 어쨌든 지금 사모님 머릿속에 핏덩어리가 아직 깨끗이 제거된 게 아니니까요.”병원에서 나온 뒤 여준재는 고다정을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고다정은 사윤영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다정 씨, 제가 쉬는 데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이때, 사윤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고다정은 수화기 너머에서 구영진이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 지금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면 된다니까.”“운산에 왔군요.”고다정은 약간 놀란 듯 입을 열었다.사윤영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네, 고다정 씨가 어디 사는지 모르는데 혹시 저희가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네, 제가 주소 알려 드릴게요.”고다정을 말을 마친 뒤 빌라 주소를 읊어줬다.대략 30분이 지났을 무렵 빌라 마당에서 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고다정이 나가보니 사윤영과 구영진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고다정, 드디어 만났네. 너 때문에 내가 죽을뻔했잖아!”구영진은 고다정을 보자마자 씩씩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러다 고다정과 곧 닿으려고 할 때 화영이 그를 막아섰다.화영은 구영진을 노려보더니 그에게 경고했다.“말로 하세요.”왠지 건드리면
구영진의 말에 고다정은 어이가 막혔다.구영진이 행동파인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이렇게나 빨리 시합을 위해 찾아올 줄은 몰랐다.사윤영도 고다정이 말문이 막힌 표정을 보고 눈치챈 뒤 다급히 해명했다.“이 자식이 마음이 급해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만약 여 대표님이 시간이 없다면 상대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성가시면 어디에 가둬도 된다고 했거든요. 물론 괜찮으시다면 여 대표님께서 그들을 대신해서 구영준을 가르쳐주면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때려도 되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된대요.”이 말은 여씨 부부 내외가 한 말이었다.하지만 구영진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사윤영에게 불같은 화를 냈다.“이 여자야, 넌 대체 누구 편이야?”“네가 보기에는 어떤데? 아버님 어머님께서 나한테 직접 부탁한 일이야.”사윤영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구영진은 또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고다정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입을 열었다.“이렇게 온 게 그 시합 때문이라면 그 사람 회사에 가보세요. 제가 두 분을 데려다 달라고 말씀드릴게요.”말을 마친 뒤 그는 이상철을 불러 구영진을 YS 그룹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구영진은 냉큼 그들을 따라나섰다.하지만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사윤영을 본 고다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같이 안 가요? 저 사람이 말썽을 부리면 어떡해요?”“괜찮아요. 여 대표님 앞에서는 어차피 꼼짝도 못 해요.”사윤영은 정말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그녀의 말이 맞다.여준재 앞에서의 구영진은 순진하기 그지없었다.“저랑 시합하러 왔다고 하던데요?”“네, 맞습니다!”구영진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냈다.“근데 괜찮아요. 저는 지금 있는 게 시간이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구영진은 진작에 이 시합이 그리 순리롭지 못할 걸 예상했다.그러면서 소파에 앉더니 여준재를 지켜보았다.여준재도 이 사람이 오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빌라 안.사윤영의 털털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고다정은 그녀와 같이 점심을 하기로 했다.식사할 때도 두 사람은 점점 의기투합하며 우정을 쌓아갔다.그렇게 오랜 시간의 식사를 마치고 고다정이 적극적으로 먼저 요청했다.“점심도 다 먹었고, 제가 주변을 구경시켜 드릴게요.”“괜찮아요? 제가 너무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사윤영은 설레지만 고다정의 몸 상태가 신경이 쓰였다.고다정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웃으면서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어차피 윤영 씨가 오지 않았어도 밖에 나가려고 했어요. 그리고 제 친구도 소개해 드릴게요. 두 사람 성격도 비슷하고 아마 잘 맞을 겁니다.”“그래요. 그럼 잘 부탁해요.”사윤영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이날 오후 2시, 고다정과 사윤영의 점심시간이 끝났다.이때, 임은미도 마침 도착했다.아직 거실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문밖에서 그녀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정아, 내가 왔다!”“왔네요.”고다정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더니 사윤영에게 웃으며 말했다.빠르게 임은미가 깡충깡충 뛰면서 들어왔다.그녀는 옆 소파에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고다정을 보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오늘 네가 나한테 전화했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 갇혀있었을 거야.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이런 건지, 여자가 임신했다고 하면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이 이것도 하지 말라고 저것도 안된다하고, 심지어 이젠 불량식품도 못 먹게 해, 진짜 짜증 나!”말하다가 그녀는 고다정의 옆에 앉으면서 그녀의 팔을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여 대표님은 이렇게 많이 신경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우리집 사람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 TV도 오래 못 보게 하고 운동하라고 잔소리하고. 하, 임신한 게 이렇게 성가시단 걸 알았다면 애초에...”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끝내는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몰라서 머뭇거렸다.고다정은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놀렸다.“애초에 뭐?”임은
세 사람은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근처 커피숍에서 쉬기로 했다.그러던 중 고다정이 사윤영에게 대뜸 물었다.“저번에 구영진한테서 두 사람이 약혼했다고 들었는데 왜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었죠?”“아, 그저 두 집에서 식사하면서 임시 정한 겁니다.”사윤영은 말을 마친 뒤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다정 씨도 아시다시피 이 약혼도 제가 고집을 피워서 겨우 얻어낸 결과입니다. 저희 엄마 아빠는 제가 구영진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결혼 전까지는 미리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만약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 저한테 피해가 덜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결혼 날짜까지 잡히고 우리 두 사람이 여전히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때 공개하겠죠.”그녀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고다정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가네요. 솔직히 저도 윤영 씨랑 구영진이 분명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거든요.”임은미는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하니 그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이때 사윤영이 고다정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무슨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고다정도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다가 사윤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마 저랑 구영진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을 동경하고 그의 천진함을 지켜주고 싶었나 봐요.”“음... 윤영 씨, 상황이 반대로 된 게 아닐까요?”임은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이런 상황이면 보통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지 않나?하지만 사윤영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해명했다.“은미 씨가 보기에는 저랑 구영진의 상황이 반대로 된 것 같죠. 근데 우리 두 사람은 자라왔던 환경도 서로 반대에요. 똑같이 집안에 자식이 하나뿐이면 보통 부모님들은 남편감을 찾아서 집안의 사업들을 맡기곤 하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아니었어요.”“그들은 항상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한다면서 제가 사업을 이어받기를 바랐습니다. 하여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키워주셨죠.
사실 여준재의 말대로 옷은 아주 잘 맞았다.눈앞의 훤칠한 몸매의 남자를 보고 고다정은 두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제가 이 옷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한테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제 안목이 틀림없었네요.”그녀의 말을 듣고 여준재는 참다못해 말을 내뱉었다.“이런 식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여기 있잖아요.”고다정은 눈을 찡긋거리며 웃더니 갑자기 생각나는 일에 대해 물었다.“오늘 구영진이 당신네 회사로 찾아가서 시합에 관해 말했죠? 하겠다고 했어요?”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그래서 시간을 다음 주 수요일로 정했어요.”그의 말을 듣고 고다정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이길 자신 있어요? 제가 예전에 들은 바로는 구영진이 몇 년 동안 자동차 레이스에 대해 많이 연구했고 해외 대회에도 참가했대요.”“왜요? 제가 못 미덥나요?”여준재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그의 모습에 고다정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럴 리가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그녀의 어색해 보이는 웃음을 보고 여준재도 더 이상 따져 들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합의 날이 돌아왔다.그동안 구영진이 소문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여준재와 무릉 시 구영진이 레이스 시합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때문에 현장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왔다.박재경 등 그 무리도 왔다.그들도 여준재가 오늘 다른 사람과 시합한다고 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서 왔다.“준재 형, 구영진이 누구야? 왜 그 사람과 시합하겠다고 했어?”“그것도 자동차 레이스라니. 형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준재 형, 우리한테 숨기는 일이 있지?”세 사람은 한마디씩 앞다투어 묻기 시작했다.고다정은 옆에 서서 그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역시나 훌륭한 사람의 곁에는 친구들조차 모두 훌륭했다.이 세 사람은 비록 외모는 여준재에 비해 약간 떨어지지만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빠르게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
대회 현장에는 여준재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평소 장난기 많은 구영진의 친구들도 함께했다.멀리서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여준재를 보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자식, 진짜 여준재랑 시합하네.”“그게 뭐, 이래도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구영진이 자랑스럽게 턱을 들어 올렸다.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중 몇몇은 호기심에 물었다.“어떻게 여 대표와 경기하게 된 거야?”“그래, 여대표님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말해봐.”다른 사람들도 거들었다.구영진은 하나같이 호기심 어린 그들의 눈빛을 보며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들여다보고는 비밀스러운 척 말했다.“그건 비밀이니 묻지 말고 조금 있다가 지켜보기나 해. 이번에는 내가 여준재를 꼭 이길 테니 그때 가서 응원이나 하라고!”“당연하지. 너 아니면 우리가 누구를 응원하겠어?”사건의 내막을 알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들 웃으며 구영진에게 맞춰주었다.한편 유라 역시 여준재에게 다가갔다.캐주얼한 차림에 평소보다 조금 더 나른한 모습의 남자를 보자 유라의 눈빛이 요동치며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시합에 동의할 줄은 몰랐어. 전에는 안 그랬잖아.”“전에는 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지.”여준재는 덤덤하게 대꾸하다가 고다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곧바로 앞으로 다가가 고다정을 붙잡고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누가 다정 씨를 화나게 했어요?”고다정은 사실 옆에 유라가 있는 것을 눈치챘지만 못 본 척하며 절친한 친구가 꽁냥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알려주었다.“준재 씨가 거기 있었다면 나도 복수하는 건데.”고다정은 잔뜩 씩씩거리며 말했다.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모습이 여준재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모습이 유라의 눈에는 가식처럼 보여 순간 참지 못하고 조롱했다.“고다정 씨 기억을 잃었다더니 성격이 전과 많이 달라지셨네요.”“제 성격이 달라진 게 그쪽과 무슨 상관이죠?”고다정이 덤덤하게 되물었다.마치 유라에게 당신은 누구고, 무슨 자격으로 참견하
총소리와 함께 레드와 블랙 차량이 시위가 당겨진 활처럼 출발선 밖으로 전광석화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지금 선두는 여 대표님이 타고 있는 블랙 사이클론이고, 구영진 도련님의 붉은 적토마가 백 미터 뒤에서 쫓고 있습니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데요!”사회자는 흥분한 표정으로 무대에 서서 내레이션을 진행했다.그의 리드 하에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구영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구영진, 속도 올려!”“달려, 추월하라고. 가속 페달을 밟아!”“더 빨리, 더 빨리, 거의 다 왔어!”구영진은 관중들의 함성을 들었는지 눈앞의 검은색 레이싱 카를 응시하며 가속페달을 밟았고, 마침내 코너를 빠져나오자마자 여준재를 추월했다.이를 본 사윤영은 너무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구영진, 잘했어. 가속해. 계속 그렇게 하면 이길 거야!”두 손을 나팔처럼 입가에 가져간 그녀의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옆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압도했다.고다정과 임은미도 그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특히 임은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윤영 씨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방방 뛰는 모습도 있을 줄은 몰랐네.”“우리가 사윤영 씨를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거야. 약혼자를 응원하는 건 당연하지!”고다정은 사윤영을 흘깃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임은미는 이렇게 물었다.“넌 여 대표님 전혀 걱정 안 되나 봐. 질까 봐 걱정 안 돼?”“준재 씨가 질 리 없잖아.”고다정은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준재의 블랙 사이클론이 구영진의 붉은 적토마보다 뒤처져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둘 사이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한마디로 여준재는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이를 모르는 임은미는 절친의 확신에 찬 표정을 보며 여준재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확고해졌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가고, 트랙 위에서 구영진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뒤에서 바짝 따라붙는 검은색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두 손으로 핸들을 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