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는 사람을 보내 여준재 쪽의 움직임을 알아보라고 하다가 고다정의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이번이 여준재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먼저 그를 찾아갔다. “고다정 씨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들었어. 나도 같이 갈게. 그러면 내가 두 아이를 돌볼 수 있고 너도 안심하고 다른 일들을 처리할 수 있잖아.”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여준재는 갑자기 차가운 눈빛으로 유라를 쏘아보았다.유라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겁에 질린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왜 그래?”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여준재가 차갑게 물었다.“날 감시 하라고 시켰어?”“뭐... 뭘 감시 하라고 시켜. 네 쪽 움직임이 너무 요란해서 우리 쪽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리면서 나까지 알게 된 거지.”유라는 완강히 부정했다. 여준재가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걸 유라도 잘 알고 있었다.여준재는 당연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 일에 유라가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던지라 그는 차갑게 거절했다.“우리집 일에 외부인이 끼어들 필요 없어.”말을 마치고 여준재는 유라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아 재빨리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유라는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가지 말라고 해도 난 꼭 갈 거야!”말을 마치고 유라도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날 밤, 여준재와 성시원은 밤을 새우면서 운산으로 향했다.그들이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라도 출발했다.이 소식 곧 구남준이 알게 되었고 곧바로 여준재에게 알렸다.“대표님, 유라 씨도 따라왔습니다.”“정말 거머리 같은 여자야.”성시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여준재도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외교부 쪽에 신고해. 위험한 사람이 입국했다고.”구남준은 가볍게 인사한 뒤 그가 시킨 대로 일 처리하러 떠났다.열 몇 시간의 비행 끝에 여준재 일행은 마침내 운산에 도착했다.이미 비행기에서 휴
심해영의 말을 듣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야 여준재는 비로소 복잡해진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그리고 다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임초연의 입에서 고다정 씨가 이미 아이를 임신한지 한 달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뭐라고!”심해영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급히 입을 막더니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다행히 두 아이는 깨지 않았다.심해영은 안도의 한숨을 한번 내뱉은 뒤 여준재를 끌고 구석진 곳에 가서 다시 물었다.“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 고다정 쪽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지금까지 저는 고다정 씨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랑 어르신이 상의해 봤는데 어쩌면 다정 씨가 구출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이와 동시에 구해준 사람이 고다정 씨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여준재는 자기 어머니가 고다정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 성시원과 추측했던 몇 가지 가설을 말해줬다.“아직도 저는 고다정 씨가 유라 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유라라는 사람이 너무 주도면밀해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고요.”“또 그 여자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심해영은 화살을 여준재에게 돌렸다. “네가 건드린 여자들은 어떻게 제정신인 사람이 한 명도 없니. 만약 배 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너는 그때...”그녀는 한참 동안 생각했지만 여준재에게 어떤 독설을 퍼부으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결국에는 씩씩거리면서 겨우 말을 내뱉었다.“아무튼 만약 다정이랑 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너는 할아버지한테 된통 깨질 줄 알아!”여준재의 침묵은 마치 이러한 엄벌도 받아들이겠다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그는 확실히 모든 게 후회되었다. 유라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일을 깔끔하게 해결했어야 했다. 앞으로의 이틀 동안 여준재는 병원에서 강말숙을 간호하고 두 아이도 돌봤다.눈 깜작할 사이에 사흘째가 되었다.고다정은 일찍 일어나 구영진에게 산부인과 병원에 데려다
구민석 부부 내외는 고다정의 말을 듣고는 순간 멍해졌다. 곧바로 주혜원은 조수석에 앉아 있던 구영진의 귀를 잡고 세게 잡아당기면서 물었다.“말해, 너 설마 예전에 수경이 괴롭힌 적 있니? 그러고 수술을 받게 했었어?”구영진은 비명을 지르면서 해명하기에 급급했다.“정말 제 친엄마가 맞아요? 수경이가 예전에 어쩌면 아파서 병원에 갔을 수도 있는데 왜 제가 괴롭혀서 간 거라고 단정지어요.”말하고 나니 구영진은 매우 억울했다.주혜원은 그제야 자기 아들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떼면서 입을 삐쭉거렸다.“네가 평소 행실이 미덥지 못해서잖아.”“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들은 믿어야죠. 제가 비록 밖에서 좀 날라리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친 적은 없어요.”구영진은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다.고다정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역시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구영진을 골탕 먹이면 많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그렇다. 방금 고다정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티격태격하다가 구영진의 별장에 도착했다.구민석 부부 내외는 끝내 고다정을 데려가지 못했다.먼저는 구영진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고다정이 완곡하게 거절했다.고다정은 구영진과의 관계가 가짜라고 생각했다. 하여 그녀가 만약 구민석 부부 내외의 보살핌까지 받아들였다면 마음속으로부터 큰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저녁이 다돼서 구영진은 부모님을 모셔다드린 뒤 고다정 곁으로 쭈뼛거리면서 다가오더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고다정도 당연히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눈치채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뭘 그렇게 쳐다봐요?” “저기, 아까 차에서 뭔가 생각났다고 했잖아, 그러면 지금 벌써 기억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는 거야?”구영진은 떠보는 식으로 물었다.고다정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실대로 말했다.“맞아요. 점점 회복되고 있어요.”“어때? 뭔가 생각나는 게 있어?”구영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다시 한번
그 뒤의 시간은 예상했던 것과 같이 고다정은 또다시 감금되었다.구영진이 무슨 수법을 썼는지 구민석 부부 내외도 그 뒤로는 보이지 않았다.고다정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의 몸 상태를 고려해 결국에는 포기했다.그렇게 여준재는 고다정이 그에게서 고작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그가 병실을 지킨 지 3일째 되던 날, 강말숙이 드디어 깨어났다.그녀는 여준재를 본 순간 제일 먼저 고다정의 행적부터 물었다.하지만 그는 강말숙의 병이 더욱 악화될까 봐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이미 단서를 찾았다고 말했다.그러나 강말숙은 여준재가 자신이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챘다.그래도 그녀는 여준재를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모른 척 회복에 전념했다.드디어 여준재와 여진성 부부 내외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이날, 여준재가 강말숙을 간호하고 있는데 유라가 꽃을 사 들고 병문안을 왔다.“준재야, 할머니.”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여준재와 강말숙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두 아이도 유라를 경계하듯 째려보았다.비록 어른들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누가 엄마를 데려갔는지 말해주지 않았으나 그들의 대화를 들어봤을 때 아마 이 여자한테 끌려갔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나쁜 사람, 우리 엄마를 돌려줘요!”“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그리고 여기 누구도 환영해 줄 사람이 없으니 가세요!”한 성격 하는 고하윤은 유라를 향해 돌진했다.여준재는 막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유라도 이 계집애가 자신에게 손을 댈 줄은 몰랐고, 그녀에게 부딪혀 두 발짝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다행히 그녀는 재빨리 몸의 균형을 잡았다.순간 눈빛이 살벌해지면서 이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 녀석을 콱 밀어버리고 싶었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손은 대지 않았다.그녀도 알다시피 만약 여준재 앞에서 아이한테 손을 댔다가는 고다정이 있든 없든 여준재와의 결혼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여준재도 유라
임시 거처로 돌아온 유라는 여전히 화가 났다.그녀는 디카프리도에게 강말숙의 병세를 알아보라고 했다.같은 시각, 성시원도 유라가 왔다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여준재를 병실 밖으로 불렀다.“유라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날 수 있어? 네가 대사관 쪽에 이미 알렸다고 했잖아?”“유라가 사업가로 위장해서 오는 바람에 대사관 쪽에서도 별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나 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풀어준 것 같습니다.”여준재는 그가 추측한 대로 말했다.성시원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정말 보기보다 끈질긴 여자야.”여준재는 부정할 수 없었다.그리고 주제를 돌려 다시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유라랑 끝장내려고요. 그리고 살짝 자극해서라도 고다정 씨를 만나러 가는지 봐야겠어요.”그의 말을 듣고 성시원은 냉큼 그러라고 하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만약 고다정에게 손이라도 대면 어떡해? 다정이는 지금 홑몸도 아니고, 비록 지금까지 잘 지켜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디까지나 신중해야 해.”“저도 압니다. 몰래 사람 시켜서 유라를 지켜보면서 절대로 고다정 씨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고다정 씨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여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솔직히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고다정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이런 방법까지 쓰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유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교활하고 주도면밀했다.그렇게 또 조용하게 두 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평온해 보이기만 했지 사실상 곳곳마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밤, 여준재는 여명호가 외국에서 보내온 파일을 받았다.그는 한번 훑어본 뒤 옆에 있던 구남준에게 파일을 넘겨주면서 당부했다.“여기 있는 비율대로 분할계약서를 하나 만들어.”“네.”구남준은 가볍게 인사한 뒤 자료를 가지고 옆에 가서 작업하기 시작했다.그 사이 여준재도 쉬지 않고 회사의 다른 일들을 처리했다.거의 두 시간이 지난 뒤
여준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유라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나와의 관계를 아예 끝내자고?”그녀는 분노의 눈길로 여준재를 쏘아보았다.서로의 눈이 그렇게 마주쳤다.그러나 여준재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그저 비즈니스 사이었어. 그리고 이 일에 대해 너랑 상의하자는 게 아니라 통보야. 네가 받아들이든 말든 결과는 변함없어. 내가 만약 너라면 지금 당장 계약서에 어디 빈틈은 없는지 찾아볼 거야.”“...”말문이 막힌 유라는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여준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계약서를 확인했다.유라는 뭐라도 트집잡고 싶었지만 이 계약서는 한 마디로 공정하고 깔끔했다.하지만 그녀는 여준재와 비즈니스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이는 즉 이제 더 이상 여준재 앞에 나타날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고다정의 죽음이 확실해진다고 해도 자기한테는 많이 불리하기 때문이다.그녀가 완강히 거절할 걸 여준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래도 그는 펜을 구남준더러 넘겨주라고 한 뒤 차갑게 말을 이었다.“문제없으면 사인 해. 우리 쪽 사람들은 이미 다 정리했어. 네가 사인만 하면 모든 걸 계약서대로 진행하고 떠날 거야.”“여준재, 진짜 일을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처리해야겠어? 우리는 생사를 함께한 사이었잖아!”유라는 과거의 우정을 들먹이면서 여준재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하지만 이 우정이 그녀가 고다정을 데려간 일로 이미 깨졌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유라의 호소에 여준재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갑게 그녀를 쏘아보았다.“너도 우리가 예전에 생사를 함께했던 시절을 기억하는구나. 난 네가 잊어버린 줄 알았어. 그러면서 내 약혼녀랑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한테 손을 댔네. 유라야, 진짜 매정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란 걸 넌 알아야 해!”그의 말을 들은 유라는 고다정의 일을 또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는 여준재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러면서 유라도 일부러 쓴웃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여준재는 다급히 병실 쪽으로 갔으나 허탕을 쳤다.구남준도 눈치채고는 다가오는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혹시 여기 있던 환자분은 어디 갔나요?”“강씨 할머니를 말씀하는 건가요?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가족들도 모두 그쪽에 있을 겁니다.”간호사는 사실대로 말했다.여준재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즉시 응급실로 달려갔다.그가 도착했을 때는 두 아이가 심해영 곁에서 울고 있었다. “우리 아기들, 엄마, 대체 무슨 일이에요?”“흑흑... 아빠...”두 아이는 여준재를 보자마자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그리고 그에게 달려와서는 더욱 슬피 울면서 겨우 말을 내뱉었다.“아빠, 어떤 사람이 와서 알려줬는데 우리 엄마는 배 속의 아이랑 같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대요. 사실이에요?”“으앙... 엄마, 죽지 마요... 돌아와요. 아빠, 빨리 엄마를 데리고 와요. 분명 아빠가 꼭 엄마를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요.”여준재는 두 아이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더니 가슴 한쪽이 아려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그리고 어느새 두 눈이 빨개진 채 쪼그리고 앉더니 두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울지 마. 엄마는 실종되었을 뿐 죽은 게 아니야.”“그런데 아까 그 사람이 분명 엄마는 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바다에 뛰어든 뒤 총에 맞은 동영상도 보여줬어요. 증조 외할머니는 그걸 보고 나서 충격받고 피를 토했던 거예요.”고하준은 눈물이 글썽해서 여준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여준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 사람이 직접 두 아이와 할머니 쪽에 와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저 나쁜 사람이 엄마를 숨겼을 뿐이야.”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히며 최대한 다정하게 두 아이를 안심시켰다.두 아이는 코를 훌쩍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는 아빠를 믿어요.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엄마를 구해주
또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강말숙은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그동안 여준재는 강말숙을 계속 자극하며 입이 마를 때까지 말을 걸었다.성시원을 포함한 의사, 간호사들의 뒤를 따라 강말숙을 응급실 밖으로 내보냈다.그때 그의 귓가에 성시원의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수술실에서 한 말은 그냥 해본 말이어야 할 거야. 준이, 윤이를 막 대했다가 내가 널 가만두지 않아.”“...”여준재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을 테니까요.”아까 했던 말들은 강말숙을 자극하기 위한 것일 뿐, 두 아이를 더없이 사랑하는 그가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나.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심해영은 곧바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어르신은 괜찮으세요?”“고비는 넘겼지만 더 자극을 받았다간 신령님이 오셔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주치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심해영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저녁 늦은 시간, 일행은 강말숙을 병동으로 데려다주었다.여준재는 성시원의 피곤한 표정을 살피며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어르신. 많이 힘드셨을테니 돌아가서 쉬세요. 여긴 제가 있을게요.”“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내가 강말숙 씨를 구한 건 다정이 외할머니이기 때문이야.”성시원은 거만하게 코웃음치면서도 쉬라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나이가 나이인 지라 몇 시간 동안의 응급조치로 인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그가 떠나고 여준재는 심해영에게도 돌아가서 쉬라고 말했다.하루 종일 조마조마하던 심해영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심해영은 여준재가 고다정에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그러자 여준재가 이렇게 말했다.“오늘은 제가 여기서 지켜볼 테니 가서 좀 쉬었다가 내일 저랑 교대해요. 다정이는 부하들이 찾는 중이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이 말을 들은 심해영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곧 여준재는 병실에 혼자 남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