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유라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나와의 관계를 아예 끝내자고?”그녀는 분노의 눈길로 여준재를 쏘아보았다.서로의 눈이 그렇게 마주쳤다.그러나 여준재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그저 비즈니스 사이었어. 그리고 이 일에 대해 너랑 상의하자는 게 아니라 통보야. 네가 받아들이든 말든 결과는 변함없어. 내가 만약 너라면 지금 당장 계약서에 어디 빈틈은 없는지 찾아볼 거야.”“...”말문이 막힌 유라는 결국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여준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계약서를 확인했다.유라는 뭐라도 트집잡고 싶었지만 이 계약서는 한 마디로 공정하고 깔끔했다.하지만 그녀는 여준재와 비즈니스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이는 즉 이제 더 이상 여준재 앞에 나타날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고다정의 죽음이 확실해진다고 해도 자기한테는 많이 불리하기 때문이다.그녀가 완강히 거절할 걸 여준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래도 그는 펜을 구남준더러 넘겨주라고 한 뒤 차갑게 말을 이었다.“문제없으면 사인 해. 우리 쪽 사람들은 이미 다 정리했어. 네가 사인만 하면 모든 걸 계약서대로 진행하고 떠날 거야.”“여준재, 진짜 일을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처리해야겠어? 우리는 생사를 함께한 사이었잖아!”유라는 과거의 우정을 들먹이면서 여준재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하지만 이 우정이 그녀가 고다정을 데려간 일로 이미 깨졌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유라의 호소에 여준재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갑게 그녀를 쏘아보았다.“너도 우리가 예전에 생사를 함께했던 시절을 기억하는구나. 난 네가 잊어버린 줄 알았어. 그러면서 내 약혼녀랑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한테 손을 댔네. 유라야, 진짜 매정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란 걸 넌 알아야 해!”그의 말을 들은 유라는 고다정의 일을 또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는 여준재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러면서 유라도 일부러 쓴웃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여준재는 다급히 병실 쪽으로 갔으나 허탕을 쳤다.구남준도 눈치채고는 다가오는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혹시 여기 있던 환자분은 어디 갔나요?”“강씨 할머니를 말씀하는 건가요?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가족들도 모두 그쪽에 있을 겁니다.”간호사는 사실대로 말했다.여준재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즉시 응급실로 달려갔다.그가 도착했을 때는 두 아이가 심해영 곁에서 울고 있었다. “우리 아기들, 엄마, 대체 무슨 일이에요?”“흑흑... 아빠...”두 아이는 여준재를 보자마자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그리고 그에게 달려와서는 더욱 슬피 울면서 겨우 말을 내뱉었다.“아빠, 어떤 사람이 와서 알려줬는데 우리 엄마는 배 속의 아이랑 같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대요. 사실이에요?”“으앙... 엄마, 죽지 마요... 돌아와요. 아빠, 빨리 엄마를 데리고 와요. 분명 아빠가 꼭 엄마를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요.”여준재는 두 아이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더니 가슴 한쪽이 아려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그리고 어느새 두 눈이 빨개진 채 쪼그리고 앉더니 두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울지 마. 엄마는 실종되었을 뿐 죽은 게 아니야.”“그런데 아까 그 사람이 분명 엄마는 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바다에 뛰어든 뒤 총에 맞은 동영상도 보여줬어요. 증조 외할머니는 그걸 보고 나서 충격받고 피를 토했던 거예요.”고하준은 눈물이 글썽해서 여준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여준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 사람이 직접 두 아이와 할머니 쪽에 와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저 나쁜 사람이 엄마를 숨겼을 뿐이야.”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히며 최대한 다정하게 두 아이를 안심시켰다.두 아이는 코를 훌쩍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는 아빠를 믿어요.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엄마를 구해주
또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강말숙은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그동안 여준재는 강말숙을 계속 자극하며 입이 마를 때까지 말을 걸었다.성시원을 포함한 의사, 간호사들의 뒤를 따라 강말숙을 응급실 밖으로 내보냈다.그때 그의 귓가에 성시원의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수술실에서 한 말은 그냥 해본 말이어야 할 거야. 준이, 윤이를 막 대했다가 내가 널 가만두지 않아.”“...”여준재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을 테니까요.”아까 했던 말들은 강말숙을 자극하기 위한 것일 뿐, 두 아이를 더없이 사랑하는 그가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나.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심해영은 곧바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어르신은 괜찮으세요?”“고비는 넘겼지만 더 자극을 받았다간 신령님이 오셔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주치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심해영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저녁 늦은 시간, 일행은 강말숙을 병동으로 데려다주었다.여준재는 성시원의 피곤한 표정을 살피며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어르신. 많이 힘드셨을테니 돌아가서 쉬세요. 여긴 제가 있을게요.”“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내가 강말숙 씨를 구한 건 다정이 외할머니이기 때문이야.”성시원은 거만하게 코웃음치면서도 쉬라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나이가 나이인 지라 몇 시간 동안의 응급조치로 인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그가 떠나고 여준재는 심해영에게도 돌아가서 쉬라고 말했다.하루 종일 조마조마하던 심해영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심해영은 여준재가 고다정에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그러자 여준재가 이렇게 말했다.“오늘은 제가 여기서 지켜볼 테니 가서 좀 쉬었다가 내일 저랑 교대해요. 다정이는 부하들이 찾는 중이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이 말을 들은 심해영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곧 여준재는 병실에 혼자 남게 되
디카프리도는 자신과 주인이 여준재의 계략에 넘어간 것을 알면서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구남준이 몇 번이나 잔인한 형벌을 주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밤이 지나고 구남준은 마침내 심문을 끝냈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겨우 숨을 헐떡이는 남자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죽지 않게 잘 지켜봐.”“네!”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따랐다.이후 구남준은 거점을 떠나 병원으로 향했다.어제 밤새 여준재는 강말숙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고다정이 없으니 그녀 대신 그녀의 유일한 가족을 돌봐야 했다.하지만 자신도 몸이 불편한 터라 밤을 새우지는 않았다. 그저 얕은 잠을 자며 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뿐이었다.그 결과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간단히 씻고 화장실에서 막 나오려던 순간 구남준이 다가왔다.“대표님.”“심문한 건 어떻게 됐어?”여준재는 구남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구남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디카프리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온갖 고문 방법을 다 써도 말을 안 합니다.”이 말을 듣고도 여준재는 놀라지 않았다.디카프리도는 유라의 가장 충성스러운 심복인만큼 그럴 만도 했다.이윽고 그가 물었다.“유라 쪽에서는 디카프리도가 사라진 걸 몰라?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아직까지 어떤 정보도 들리지 않는 걸 보아 아직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구남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여준재를 바라보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렸다.유라는 디카프리도를 할머니에게 보낸 것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이윽고 여준재는 여기가 유라의 본거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유라는 중요한 인질인 고다정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그리하여 구남준에게 이렇게 명령했다.“디카프리도를 유라가 묵고 있는 호텔에 보내.”“대표님, 디카프리도를 풀어주라는 말씀이세요?”구남준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여준재를 바라봤다.여준
저녁 늦은 시간, 여준재는 강말숙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앉아 있는 강말숙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깨어나셨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괜찮아, 어젠 고마웠어.”강말숙은 여준재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제 응급조치할 때는 혼수상태였지만 의식은 또렷했다.여준재가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버티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여준재 역시 강말숙이 고마워하는 이유를 잘 알았기에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온 다정 씨가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고 원망할 테니까요.”“다정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강말숙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준재는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올 겁니다.”“아빠가 그렇다고 하니까 엄마는 꼭 올 거예요. 그러니까 할머니 건강해야 해요. 할머니가 아프면 엄마가 돌아와서 슬퍼할 거예요.”하준은 애늙은이처럼 강말숙을 위로했다.여준재도 고다정을 꼭 찾겠다고 약속하며 강말숙에게 몸조리를 잘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고다정이 돌아와서 그녀가 이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면 너무 슬퍼할 거라고 말했다.단지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말뿐일지라도 강말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고 다정이 찾아. 나도 더 이상 쓸데없는 요행 안 바랄 테니까.”그렇게 며칠 동안 강말숙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데 적극 협조했다.두 아이는 매일 심해영과 함께 병원에서 강말숙을 보살폈다.여준재는 밤에는 이쪽을 지키고 낮에는 몇 시간만 쉬면서 회사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구남준과 여명호를 시켜 유라를 성가시게 굴었다.하지만 그가 아무리 일을 만들어도 유라는 펄쩍 뛰며 화를 낼 뿐 고다정에게 가서 분풀이하지 않았다.유라는 여준재가 굴하지 않는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다.“젠장, 여준재는 대체 왜 이렇게 성가시게 구는 거야!”호텔 방에서 유라는 부하들이 전해오는 악재를
유라의 마지막 말이 여준재의 마음을 움직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왼손을 오른손 위에 겹쳐 올렸다.유라는 그가 생각할 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방해할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후 여준재는 결심한 듯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검은 눈동자로 유라를 바라보았다. “내 사람들이 해외에서 수색하고 있어. 너에 대한 의심을 풀고 싶으면 내 사람들이 네 구역에 들어가서 확인하게 해줘.”그가 떠올린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사실 고다정이 유라의 손에 없다면 그녀에게 시간을 쓰는 건 고다정을 찾는 것을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오히려 당황한 건 유라였다.여준재가 그런 제안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자신을 의심하는 여준재 때문에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그녀는 다른 꿍꿍이가 떠올랐다.“좋아. 내 영역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 영역에서 고다정을 찾지 못하면 나한테 사과해.”“그래. 하지만 혹시라도 너희 쪽 사람들이 몰래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마.”여준재는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곧 두 사람은 출발 시간을 합의했고, 고다정은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거의 보름 동안 구영진 별장에 갇혀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서둘러 탈출하지 않았다. 전에 어떻게 지냈든 이곳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고다정의 모습에 줄곧 그녀를 살피던 구영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이날 구영진은 결국 마음속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저택으로 찾아갔다.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고다정을 본 그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신이 온 걸 알리려는 듯 헛기침했다.고다정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힐끗 바라보고는 구영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구영진은 그녀의 태도에 무척 불쾌했다.“어이, 내가 여기 떡하니 서 있는데 안 보여?”“봤는데 말 섞기 싫
구영진이 떠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빼어난 분위기를 자랑하는 여자가 저택 밖에 도착했다.그녀는 초인종을 누르고는 옆으로 물러나 조용히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씨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가씨, 여긴 웬일이세요?”장씨 아저씨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잘 알았다. 사씨 가문의 큰아가씨, 사윤영이었다.동시에 그는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예의상 사윤영을 저택 안으로 안내해야 하지만, 지금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니 안으로 데려가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사윤영은 사장님과 사모님이 점찍어둔 도련님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으니까.사윤영도 그런 장씨 아저씨의 표정을 눈치챘지만 못 본 척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구영진 씨 만나러 왔어요. 집에 있죠? 아까 오는 거 봤는데.”“그게... 도련님께서 돌아오시긴 했는데 조금 전에 가셨어요. 지금 가면 아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장씨 아저씨는 사윤영이 도련님을 쫓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불행히도 그는 사윤영이 오늘 온 목적이 구영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사윤영이 무식해 보이는 구영진에게 정말로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특히 그녀의 주선으로 두 집안은 이미 결혼을 논의하고 있었다.그 결과 구영진이 해외에서 돌아온 뒤로 정략결혼은 흐지부지되었고, 게다가 구영진이 외국에서 여자까지 데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그녀였다.그리하여 사윤영은 두 집안의 결혼을 취소하게 만든 사람이 이 여자일 거라고 짐작했다.대체 어떤 여자기에 망나니 구영진을 휘어잡았는지도 무척 궁금했다.“쫓아갈 바엔 그냥 들어가서 기다릴게요.”사윤영은 말을 마치고 곧장 별장으로 들어갔다.장씨 아저씨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얼른 도련님께 돌아오라고 연락해야겠다.’곧 사윤영이 거실로 들어왔고, 이때 고다정은 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아까 구영진이 돌아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
#사윤영이 고다정에게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고 있을 때, 밖에서 구영진이 황급히 뛰어 들어와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씩씩거리던 그는 사윤영을 노려보며 말했다.“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내가 안 왔으면 네가 아저씨 아줌마 몰래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것도 몰랐을 거야.”사윤영은 구영진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네가 이러면 아저씨 아줌마한테 얼마나 성가신 일이 생기는지 알아?”“이건 내 집안일이야. 네가 참견할 필요 없어. 잔소리쟁이가 몇 년 만에 봐도 계속 남 일에 간섭하네.”구영진은 짜증스럽게 말하더니 이윽고 경고를 날렸다.“미리 말하는데, 저 여자가 여기 있다는 걸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안 그러면 네 어릴 적 못생긴 사진 다 퍼뜨릴 거니까!”“...”이 순간 고다정과 사윤영 둘 다 할 말을 잃었다.사윤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퍼뜨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도 절대 이번 일 숨기지 않을 거니까!”말을 마친 그녀가 고다정을 바라보며 한결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오늘은 더 얘기 못하겠네요. 전 이만 돌아갈 테니까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만나요.”“네, 조심히 가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두 여자가 자신을 무시한 채 둘이서만 대화하자 구영진은 다가가 사윤영의 앞을 막아서며 위압적으로 말했다.“내 말대로 따르기 전까지 여기서 못 나가!”“나를 안 보내고 여기 남겨두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아? 내가 너 찾으러 여기 온 거 우리 엄마 아빠가 다 알거든.”사윤영은 전혀 가지 못할까 봐 두려운 기색 없이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았다.구영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그래서 뭐, 내가 너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지.”이 말을 들은 사윤영은 크게 웃었다.고다정 역시 소파에 앉아 흥미롭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왜 웃어?”구영진은 사윤영의 예쁜 미소를 바라보며 살짝 흔들렸다.사윤영은 웃으며 말했다.“네가 뒷일 생각 못하고 이러는 게 웃겨서. 네가 날 못 봤다고 말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