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예요?”진원우가 물었다.강세헌은 보스라는 마을에 있다고 대답했다.“빨리 거기를 떠나요.”진원우가 재촉했고 강세헌이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상대방의 전화가 끊어졌다.강세헌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자.”심재경이 말했다.“우리 아직 밥 안 먹었어.”“빨리 나가야 해.”강세헌은 그놈들이 쫓아왔다는 걸 알았다. 아니면 진원우가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방금 전화가 갑자기 끊겼는데 원우는 괜찮을까?’송연아가 임지훈에게 말했다.“가서 차를 가져와요.”“아직 수리가 끝나지...”“괜찮아요. 어서요.”송연아가 재촉했다. 뒷유리창만 깨진 거지, 운행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괜찮았다.임지훈은 바로 차 가지러 갔고 송연아는 강세헌을 부축해서 밖으로 향했고 심재경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놈들인데 이렇게 집요하게 쫓아오는 거야?”강세헌은 놈들이 들키면 안 되는 무언가를 들켰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유출되어 그들의 거대한 수입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법정 제재를 받을까 봐 가능한 사람을 모두 죽여 입막음하려는 거라고 짐작했다.그들이 식당을 나서려고 할 때 펑 하는 총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송연아는 강세헌을 데리고 테이블 뒤로 숨었고 총소리 때문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살길을 찾아 도망 다녔다.펑! 펑! 펑!“악!!”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때 심재경이 송연아한테 말했다.“뒷문이 있어.”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두 사람은 강세헌을 데리고 허리를 굽혀 테이블과 의자 뒤에 숨어서 인파를 뚫고 뒷문으로 갔다. 심재경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임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식당 뒤에 문이 있으니, 이쪽으로 돌아와요. 바로 뒷골목에 있어요.”임지훈이 알았다고 했다.임지훈이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총소리가 들렸는데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그들을 겨냥한 총소리가 아니라 쌍방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현장은 순식간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심재경이 말했다.“또 다른 한 패가 있네?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그녀는 협조하려고 노력했다. 강세헌은 밖에 자기편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조금은 긴장을 풀었다. 어쨌든 지금 곤경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런데 밖에서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알을 아끼지 않고 줄곧 쏴댔다. 아마도 놈들인 것 같았다. 진원우가 그 많은 총과 총알을 갑자기 구했을 리가 없었다. 진원우의 무기가 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에 진원우가 질까 봐 심재경은 다시 우울해졌다.진원우가 지면 그들 모두 도망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화 시대에 태어나서 평생 처음 이러한 총격전에 겪어보는 것이다. 국내는 그래도 치안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총소리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놈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것 같았다. 놈들이 골목 뒤까지 후퇴하자, 임지훈이 차를 운전해 문 앞으로 왔다. 심재경이 먼저 나가서 문을 열고 그다음 송연아가 강세헌을 데리고 나와 차에 타자 임지훈이 액셀을 밟고 출발했다.임지훈은 차의 스타가 빠른 장점을 충분히 이용해 출발했는데 차의 움직임이 놈들의 주의를 끌었는지 놈들이 갑자기 차 쪽으로 총알을 연거푸 발사했다. 진원우 측은 사람 수로든 무기 수로든 모두 부족했기에 놈들을 철저히 막을 수 없었다.그리고 차의 뒷유리 창문이 없었기에 놈들은 차 안의 사람들을 아주 잘 볼 수 있었는데 한 명의 서양인의 얼굴을 한 놈이 그들을 겨냥하는 것을 보고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세헌을 감쌌다.펑!임지훈은 더 힘 있게 액셀을 밟았고 진원우도 놈들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했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그곳에서 탈출했지만, 심재경의 표정은 심각했다.“원우 괜찮을까?”놈들의 공세가 너무 강력해서 걱정되었는데 임지훈이 운전하면서 말했다.“반드시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거예요.”심재경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 놈들이 대량의 무기로 여기까지 집요하게 쫓아온 걸 보면 이번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죽이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연아야.”뒷좌석
송연아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세헌 씨, 나 너무 졸려요.”강세헌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볼에 뽀뽀하며 말했다.“자면 안 돼.”송연아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네.”“재경아, 근처에 병원이 있는지 찾아봐.”강세헌의 말을 듣고 심재경이 확인해 봤지만, 근처에 병원은 없었다.“내가 한 번 볼게!”심재경도 의사였기에 이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다.임지훈이 길옆에 잠깐 차를 세우고 심재경이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다시 출발했다. 그가 상처를 확인했는데 총알은 송연아의 어깨에 깊게 박혀 있었고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는 지혈하기 위해서 옷에서 한 가닥의 천을 찢어서 송연아의 팔을 들고 상처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을 꼭 묶고는 또 천 조각을 찢어서 팔에도 묶었다.그때 송연아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메스를 심재경에게 건넸는데 그는 송연아의 뜻을 알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피가 많이 흐르는 걸 보면 대동맥을 다친 것 같아. 섣불리 총알을 제거하다가 대출혈이 생기면 차에 아무것도 없어서 지혈할 수 없어. 이제 출혈이 줄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자.”송연아는 창백해진 입술로 힘없이 대답했다.“네.”그녀는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썼지만, 눈꺼풀은 계속 천근이나 되는 듯 아래로 내려왔다.“세헌 씨, 나 너무 추워요. 안아줘요.”강세헌은 조금만 더 세게 힘주면 부러질 것만 같은 연약한 송연아를 꼭 껴안았다.심재경도 옆에서 응원했다.“정신줄 놓지 말고 조금만 더 버티자.”이제 대답할 힘조차 없어 가만히 있는 송연아를 보는 심재경은 걱정이 태산이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서 임지훈은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도시로 진입해서 병원을 찾고 있었는데 심재경이 말했다.“약국도 돼요.”메스가 있어 직접 총알을 제거할 수 있기에 약품들만 필요했다.“알았어요.”임지훈이 대답했다. 그런데 심재경이 지도를 펼쳐봤지만, 근처에 병원은 물론이고 약국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은 모두 변두리가 아닌 시내에 있었다.심재경은 주변에 지도에
“웁!”송연아는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녀의 손톱은 강세헌의 살까지 파고들었다.강세헌은 그녀가 많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 어떤 말이라도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그는 송연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심재경에게 말했다.“조금 더 빨리 해.”심재경은 될수록 빨리 상처를 처리하고 있었다.그는 집중해서 총알을 꺼냈는데 다행히도 다른 도구를 빌리지 않고서도 총알이 또렷하게 보여 순조롭게 꺼낼 수 있었다.총알을 꺼낸 그 순간, 피는 더 빨리 흘렀고, 그는 지혈약으로 상처를 꾹 눌렀다.송연아는 고통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고 방금 샤워한 것처럼 땀을 흠뻑 흘렸다.심재경은 밖에 있는 임지훈에게 말했다.“출발해요.”임지훈이 차에 올라타고는 물었다.“총알 다 빼내셨어요?”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이곳은 프랑스와 멀지 않았다. 이 도시를 지나고 앞으로 조금만 더 간다면 노르웨이 국경이 보일 것이다.심재경이 송연아에게 말했다.“잠깐 쉬고 있어.”송연아는 그에게 대답할 힘도 없어 그저 힘없이 강세헌의 품에 안겨 있었다.강세헌이 말했다.“좀 자.”송연아는 그의 품을 파고들고는 눈을 감았는데 입술은 창백했고 얼굴도 혈색 하나 없는 백지장 같았다.얼마 지났는지 그들은 노르웨이를 지나 프랑스 국경에 도착해 훨씬 안전해졌다. 적어도 상대는 프랑스에서 막무가내로 총을 겨누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강세헌 일행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바로 리조트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들이 전에 보스에 있을 때도 상대는 그들을 쉽게 찾았는데 누군가가 그들을 계속 미행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차를 바꾸고 길을 돌아갔다.아무도 미행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리조트로 돌아갔다.차에서 내릴 때 심재경이 자진해서 나섰다.“내가 연아를 안을게.”강세헌이 대답했다.“필요 없어.”그는 고집스럽게 송연아를 안아 들었고 심재경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심재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또 그 광기를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감히 이곳으로 올 배짱이 없지? 이러는 건 어때? 주소 하나 줘. 이 사람 다리를 잘라서 선물로 보낼 테니까. 어때?”“원우를 건드리기만 해봐. 그럼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심재경이 이를 뿌득뿌득 갈며 말했다.상대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난 왜 그 말을 못 믿겠지? 능력이 되면 어디 한 번 와봐. 기다리고 있을게.”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그는 상대가 자기 위치를 추적할까 봐 두려웠다.진원우가 잡혔다니.상대는 모두 탈옥범이었기에 그 어떤 미친 짓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그는 다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어떡하지?어떻게 하면 진원우를 구할 수 있지?강세헌이 그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기에 해결 방법을 찾으려면 결국 강세헌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다만...그는 침실 쪽을 향해 바라봤다.송연아가 총을 맞았고 지금 총알을 꺼냈다고 하지만 안정이 필요했으며, 강세헌은 두 눈이 실명했다.의사를 찾으러 간 임지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들은 며칠 동안 고생을 하고 밥 한 끼 먹지 못했지만, 진원우의 일은 절대 지체할 수 없었다.그는 고민 끝에 방 문을 두드렸다.한참 후, 기척이 들리더니 곧이어 방문이 열렸다.강세헌이 문 앞에 서 있었고 곧바로 팔을 들었다.심재경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그를 부축했다.강세헌이 덤덤하게 말했다.“서재 가서 얘기하자.”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데리고 서재로 갔다.가는 길에 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원우에게 일이 생겼어.”강세헌의 얼굴색이 확 바뀌더니 이내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급한 일이 생길수록 당황하고 갈팡질팡하면 절대 안 되었다.하지만 심재경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그 사람들이 원우 다리 하나를 자르겠대. 어떻게 해야 하지? 설마 진짜 자르는 건 아니겠지?”강세헌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그 얘기를 들은 임지훈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는 바로 의사에게 물었다.“그럼 쉽게 치료할 수 있다는 거네요?”“외부적 원인이라면 자체적으로 생긴 실명보다는 낫겠지만, 치료가 쉬운지 안 쉬운지는 제대로 검사를 한 후에야 알 수 있어요.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실명하셨는지 알아야 확실히 말할 수 있거든요.”실명한 이유가 아주 중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 임지훈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뭐야? 쓸데없는 말이잖아. 전혀 소용이 없어.’의사가 그를 힐끔 보며 말했다.“조용히 하세요, 검사할 때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임지훈은 강세헌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꾹 다문 채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강세헌의 얼굴색은 이미 어두울 대로 어두웠다.만약 임지훈이 한마디 더 한다면 그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의사는 강세헌의 눈을 벌리고는 불빛을 비추며 물었다.“불빛이 느껴져요?”조금은 느껴졌지만 아주, 아주 희미했다.“아파요?”의사가 또 물었다.“아니요.”강세헌이 대답했다.“초보적인 판단에 의하면 망막이 손상되었어요.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는 걸 추천해요. 만약 뇌진탕으로 인한 망막 손상이면 쉽게 치료할 수 있거든요.”강세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의사가 의료 기구를 챙기고 박스를 들었다.강세헌이 임지훈에게 말했다.“가서 배웅해 드려.”임지훈이 제자리에 선 채 말했다.“병원에 가서 검사는 안 받으실 거예요?”의사의 말대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하루빨리 치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지체했다가 더 엄중해지면 어떡하겠는가?강세헌은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내 말대로 해.”임지훈은 그제야 의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이쪽으로 가시죠.”의사가 나간 후 문이 닫혔고 강세헌은 심재경더러 들어오라고 했다.앞이 보이지 않으니 많이 불편하긴 했다.하지만 그는 지금 상대에게 전화해 진원우가 진짜 잡힌 건지 확인해야 했다. 먼저 방법을 강구해 진원우를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강세헌이 심재경
강세헌이 말했다.“눈치가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고 있어.”“...”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세헌아,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나갈래?”강세헌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심재경이 한참 침묵을 지키며 계속 컴퓨터를 조작했다.“내가 나가면 네가 메일을 보낼 수 있겠어? 내가 네 옆에 없으면 넌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변기도 못 찾을 거잖아.”강세헌이 실명해서 그런지 심재경의 배짱도 점점 커졌다.그의 말에 강세헌은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어 소리를 질렀다.“꺼져!”하지만 심재경은 가지 않았다.“안 꺼져도 네가 날 어떻게 할 수 없잖아.”강세헌이 미간을 찌푸렸다.“너 그거 배불러서 하는 소리야?”“나 아직 밥 안 먹었거든.”심재경이 말했다.“내가 메일을 다 보내면 같이 뭐 좀 먹으러 가. 집사님이 음식을 다 준비했을 거야. 나 배가 고파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강세헌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래도 입맛은 있나 봐? 음식이 지금 목구멍에 넘어가?”심재경이 말했다.“내가 조급해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차라리 희망을 너한테 거는 게 낫지.”“희망을 나한테 건다면 좀 조용히 해. 그 입 닥치란 말이야, 괜히 나 짜증 나게 만들지 말고.”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심재경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내가 지금 너의 눈이잖아. 무조건 너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어. 나도 너 짜증 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하지만 지금 네가 나 없이 되겠어? 나도 어쩔 수 없다고.”심재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세헌의 눈이 보이지 않아 망정이지, 아니면 지금 분명 심재경을 발로 걷어찼을 것이다.심재경은 평소 강세헌의 뒤에서나 까불었지, 절대 그의 앞에서는 나댈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강세헌이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강세헌을 도발한 것이다.서재를 나선 후 임지훈도 돌아왔는데 강세헌은 그더러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강세헌은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이때 심재경이 또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앞이 보이지도 않아
“연락은 되었어.”“그런데 왜 행방이 묘연하다고 해요?”송연아가 눈살을 찌푸렸다.심재경도 더는 숨길 수가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원우가 그놈들에게 잡혔나 봐. 하지만 걱정하지 마. 세헌이가 이미 사람 시켜 원우를 찾으라고 했으니까.”송연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설마 원우 씨에게 무슨 위험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심재경은 송연아가 걱정을 할까 봐 차마 그녀에게 전에 있었던 통화 내용을 말할 수 없었다.“너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거 아니잖아. 먼저 쉬고 있어. 원우 찾는 건 나랑 세헌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송연아는 얼굴색이 창백했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어깨에 난 상처는 아직도 많이 아팠다.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소식이 있으면 바로 나에게 알려요.”“그래, 나 지금 애린 씨 데리러 갈게.”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심재경이 리조트를 나선 후 집사가 다가왔다.“사모님.”송연아는 음식을 들고 있는 도우미를 보며 말했다.“식탁에 놓아요, 세헌 씨랑 같이 먹을게요.”“알겠습니다.”집사는 도우미더러 음식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으라고 했다.송연아가 강세헌의 옆자리에 앉았다.강세헌이 그녀에게 물었다.“왜 일어났어?”“어깨가 아파서요, 누워 있으면 더 아파요.”강세헌이 대답했다.“이따가 다시 병원 가서 치료받아.”“안 가도 돼요, 재경 선배가 상처를 잘 처리해 줬어요. 얼른 밥 먹어요.”송연아가 강세헌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내가 먹여줄게요.”“...”강세헌은 불편한 얼굴을 드러냈다.송연아가 웃었다.“우리 부부 사이잖아요, 왜요, 부끄러워요?”“...”강세헌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이따가 같이 병원 가요.”송연아가 말했다.“나 괜찮은 안과 의사를 알고 있거든요.”“이미 의사를 집으로 모셔서 진찰을 받았습니다.”임지훈의 말에 송연아가 물었다.“의사가 뭐라고 해요?”“아마 망막이 손상됐을 수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