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조금 주저하며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가 고민 끝에 다시 돌아가려던 그때, 뒤에서 강세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안 들어가?”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세헌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재경 선배가 왜 여기에 있어요?”“재경이가 오늘 밥을 먹자고 한 거야. 밥을 사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있어야지.”강세헌은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거의 한 시가 다 되어가는데 안 배고파?”송연아가 말했다.“재경 선배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응? 두 사람 친한 친구 아니었어? 재경이가 선배라며.”강세헌은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기분이 조금 불쾌했다.어쨌든 심재경은 그보다 먼저 송연아를 알았으니 말이다.심재경과 송연아는 남녀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단순한 친구 사이라 질투까지 느끼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그도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송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이슬 언니가 곧 결혼을 한대요. 재경 선배가 이슬 언니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강세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말했다.“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송연아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그럴 수밖에 없죠.”그녀는 강세헌과 같이 걸어 들어갔다.그들을 본 심재경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왜 이제야 온 거야?”송연아가 대답했다.“일이 있어서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어요.”강세헌의 전화를 받은 송연아는 강세헌이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심재경이 주선한 자리일 줄이야.“음식은 다 주문했어.”심재경이 말했다.“두 사람 입맛은 내가 그래도 어느 정도 아니까.”송연아와 강세헌이 나란히 앉았고 심재경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왜 갑자기 밥을 사는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혹시 어디서 무슨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확인차 묻기 위해 밥을 사려는 게 아닌지 생각되었다.“요즘 너무 바빠서 두 사람 얼굴도 자주 못 봤잖아. 오늘 마침 시간이 나서 세헌
강세헌은 덤덤한 얼굴로 그를 힐끔 보더니 마치 진작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말해!”심재경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아까 연아에게 이슬이 소식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연아가 나 엄청 경계하는 거 같아서 더는 안 물었어. 연아가 뭐 알고 있지?”“괜한 생각을 하는 거 아니야?”강세헌이 단호하게 부인했다.“요즘 일에 몰두하더니만. 잘했어, 계속 그렇게 해.”“...”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넌 지금 행복하니까 내 신세를 퍽이나 잘 이해하겠다.’심재경은 강세헌과 송연아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다급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알겠어.”심재경이 의자에 기댔다.강세헌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마음이 맞는 사람 만나면 좀 사귀어 봐. 세상에 여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심재경은 전에 강세헌이 송연아 때문에 우울해하고 괴로워하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강세헌이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너를 생각해서 한 말이니까 잘 새겨들어. 괜히 내 과거 들추지 말고.”심재경이 웃으며 물었다.“삐졌어?”강세헌은 그의 말에 대답하기도 귀찮아 자리에서 일어섰다.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다시 발걸음을 멈췄는데 심재경이 단념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에게 말했다.“연아한테서 들었어, 안이슬이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고. 그러니까 더 생각하지 마.”말을 마친 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몇 걸음 걷다가 또 멈추었다.이때 심재경이 그를 따라 나왔다.“그게 무슨 말이야?”강세헌이 덤덤하게 말했다.“혼자 생각해.”그리고 떠나기 전에 심재경에게 경고했다.“앞으로 연아라고 부르지 마.”“...”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나 계속 그렇게 불러왔는데? 당분간은 고치기 힘들어.”심재경은 모든 걸 쉽게 동의하면 너무 강세헌의 뜻에 따르는 것 같아 일부러 딴지를 걸었다.‘강세헌을 너무 마음 편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지.’“고치려고 노력할게. 다만 시간
왕호경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섰고 송연아가 직접 그를 배웅했다.왕호경이 도와 준다고 하니 송연아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그녀는 이 박사와 약속을 잡고 그더러 먼저 신일제약에 연락해 계약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다.이 박사가 물었다.“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면서요?”왜 이렇게 진전이 빠르지?송연아가 대답했다.“이 일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예정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이 박사가 물었다.“같이 갈 건가요?”“아니요, 저는 가지 않을게요.”만약 그녀가 따라서 같이 간다면 신일제약 사람들에게 이 일에 참여했다고 대놓고 알려주는 셈이었으니 말이다.“박사님의 안전을 책임질 제 경호원을 보낼게요.”송연아는 이 박사가 혼자면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네, 고마워요.”이 박사가 말했다.송연아는 이영더러 이 박사를 데리러 가라고 한 다음, 또 신일제약으로 가라고 했다.그녀는 연구센터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점심에서 저녁으로 되었다.7시가 다 되어서야 이영이 이 박사를 데리고 돌아왔다.송연아가 물었다.“일은 잘 해결되었어요?”“네,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이 박사가 말했다.“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일이 풀린 것 같아요.”“그게 무슨 말씀이죠?”“연아 씨는 몰라서 그러는데.”이 박사가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그 사람들이 내가 계약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계약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연락했다는 걸 알고 단체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어요. 분위기가 살벌했죠. 그래서 연아 씨가 말한 대로 솔직하게 말했죠. 당신들을 안 무서워한다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물었어요, 사진을 내가 훔쳤냐고. 나는 그렇다고 했죠. 당신들이 먼저 비열한 수법을 썼기에 나는 그냥 내 정당한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나에게 폭력을 가하려고 했어요. 다행히도 이영 씨가 있어서 그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못했죠. 그러다가 책임자가 갑자
평소의 진원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강세헌은 의문을 품고 진원우가 건넨 서류를 펼쳤다.서류를 봤는데도 그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회사 서류일 뿐이었다.“이 회사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요?”강세헌은 진원우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지 미간을 살짝 구겼다.이 회사는 미국의 화장품 회사였다.‘왜 이 회사랑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지? 회사에 이쪽 업무도 없는데 말이야. 업무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이쪽은 아닐 텐데.’진원우가 서둘러 설명했다.“애린 씨가 이 회사에서 출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만약 우리 회사와 이 회사가 비즈니스를 한다면 당당하게 애린 씨를 볼 수 있잖아요.”“...”강세헌은 어이가 없었다.‘말을 계속 빙빙 돌리면서 한 게 구애린 때문이었어?’“만약 너를 보고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해?”“...”진원우는 할 말이 없었다.“식제품 회사에 출근하면 우리가 레스토랑 하나 열어야 하나?”강세헌이 그에게 묻자, 진원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강세헌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만나고 싶으면 가서 만나. 이렇게 빙빙 돌리지 말고. 남자답게 직진하란 말이야.”진원우는 직진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구애린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강세헌은 마음이 답답했다.“가지도 않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거야?”진원우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만약 직접 만날 수 없다면 뒤에서 몰래 보고 오면 그만이었다.그녀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면 마음도 좀 놓일 것이고, 자꾸 마음에 걸려 신경 쓸 일도 없을 것이다.진원우는 그 생각에 바로 휴대폰을 꺼내 티켓을 예약했다.티켓을 예약한 후 진원우가 말했다.“제가 지난번에 말했던 일 말이에요, 가능할까요?”강세헌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아직 얘기를 나눠보지 않았어.”요즘 송연아는 워낙 바빴기에 집에 늦게 돌아와 강세헌은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만약 강세헌이 가능하다고
그녀는 자기 몸을 짓누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했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그리고 코끝에에 술 냄새가 감돌았다.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술 마셨어요?”“많이는 아니고 조금만.”강세헌은 머리를 그녀의 목덜미에 묻고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송연아는 다시 그를 밀었다.“무거워...”강세헌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는데 대답도 까먹지 않고 곧잘 했다.“안 무거워.”그의 숨결은 점점 거칠어지고 무거워졌다.송연아는 그의 호흡 속에서 점점 이성의 끈을 놓았다.얼마나 지났는지, 송연아는 너무 피곤해서 움직일 힘도 없었고 팔다리는 모두 시큰거렸다.하지만 강세헌은 아직도 기운이 넘쳤는지 계속 송연아를 괴롭히고 있었다.“나 내일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세헌은 다시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한참 지나고서야 강세헌은 그녀를 놓아줬다.송연아는 침대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약 가져다줘요.”강세헌이 서랍을 열었더니 약이 들어있지 않은 빈 통을 발견했다.그는 물 한 잔을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건넸다.“약이 없어.”송연아는 그제야 마지막 한 알의 약을 지난번에 먹었던 게 생각이 났다.“이런 약을 먹으면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야?”강세헌은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괜찮아요,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말을 이어갔다.“다음에 약 한 통 더 사 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잠이 들었다.강세헌은 그녀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지, 혹은 그가 대신 약을 먹으면 안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송연아가 워낙 피곤한 얼굴을 보였기에 끝내 깨우지 않았다.그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아니나 다를까, 송연아는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깨어났을 때는 벌써 9시가 다 되었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지만 강세헌은 이미 가버렸다.다른 식구들은 아침을 먹고
“애린 씨.”진원우가 그녀를 불렀다.안 불렀으면 모를까, 진원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수록 그녀는 더 빨리 걸어갔다.진원우가 달려와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빨리 가요?”그의 말투는 가벼웠고 전혀 짜증이 섞여 있지 않았다.하지만 구애린은 똑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진원우를 마주할 수 없었다.그녀는 진원우를 매우 거부하였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더럽다는 느낌이 들었다.“이것 놔!”구애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진원우는 놓지 않았다.“멀리서 애린 씨 보러 왔는데 왜 속상하게 피해요.”구애린이 과거의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성의를 봐서라도 저녁에 같이 영화 보러 갈까요?”하지만 구애린은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또 한 마디 내뱉었다.“이것 놔!”진원우는 여전히 안 놓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만해요.”구애린은 아무리 그를 떨쳐내려고 해도 떨쳐낼 수 없어 멘탈이 무너졌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구애린은 그의 손을 콱 물었다.하지만 그녀의 입에 피비린내 날 때까지 진원우는 꿈쩍하지 않았다.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도 나 물었었죠.”구애린의 머릿속에서 그녀와 진원우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서로 함께 쥐어뜯었던 장면을 떠올렸다.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는데 복잡한 심경 변화를 겪어 더는 아무 걱정도 없이 살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그녀는 진원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야...”“애린 씨는 그대로예요. 내 마음속의 애린 씨는 계속 처음 그대로라고요. 절대 바뀌지 않아요.”진원우가 웃으면서 그녀를 품에 안으려고 했다.구애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나 만지지 마!”그녀는 절규하며 소리까지 쳤는데 진원우는 놀란 나머지 그녀를 놓아줬다.흥분한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의 많은 시선을 끌어모
진원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기에 한발 먼저 뜻을 밝혔다.“시간이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애린 씨가 받은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힐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은 끔찍한 기억과 고통에 시달리겠지만 그게 영원히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애린 씨의 곁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주고 싶어요. 안심하고 애린 씨를 저에게 맡기셔도 돼요. 평생 애린 씨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약속 드릴게요.”구진학은 원하던 말을 듣게 되어서 마음이 놓였다.“애린이가 아직 진정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시간을 줘요.”진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애린 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런데 제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저렇게 감정이 격해질 줄은 몰랐어요.”구진학이 말했다.“애린이는 우리에게 모두 큰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보고 감정이 격해졌다는 건 그만큼 당신이 신경 쓰이고 저도 모르게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죠. 그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라요.”“저도 알아요.”진원우는 똑똑한 사람이라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구진학이 물었다.“어디에세 지내요? 내가 집이 한 채 더 있는데 혹시...”“저 레이라 호텔에 묵고 있어요. 일이 있는데 시간을 내서 온 거예요. 이제 바로 가야 하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호텔도 엄청 편해요.”구진학이 고개를 끄덕였다.“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진원우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구진학은 구애린에게 진심을 다하는 진원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진원우를 벌써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구진학이 말했다.“내가 애린이를 잘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애린이 상황을 알고 싶다면 언제든지 전화를 해도 되고요.”카페에서 돌아온 후, 구진학은 구애린이 거실에서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구애린에게 다가가서 웃으면서 물었다.“괜찮아졌어?”구애린은 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진정되었다.그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구애린인 걸 발견하고는 구겨진 그의 미간이 바로 펴졌다.곧이어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는 얼굴로 물었다. “차마 내가 헛걸음을 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었죠?”그는 기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구애린이 고개를 숙이자 바로 그의 손등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가슴이 아팠지만 그녀는 곧바로 감정을 숨겼고, 가방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만 점점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원우 씨를 찾아온 건 할 얘기가 있어서야.”진원우가 그녀를 방 안에 들이며 말했다.“먼저 들어와요.”그녀가 방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놓인 한술도 뜨지 않은 음식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아직 점심도 안 먹은 거야?”진원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배고프지 않아서요. 뭐 마시고 싶어요? 내가 갖다줄게요.”구애린이 자리에 앉았다.“목 안 말라. 자리에 앉아, 좀 얘기를 하자고.”컵을 들고 있던 진원우는 잠깐 멈칫하고는 다시 컵을 내려놨다.구애린이 하려는 말이 대충 헤어지자는 얘기일 게 짐작이 갔다.그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애린 씨와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구애린은 자기가 하려는 말에 진원우가 미리 선수를 치니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진원우가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애린 씨에게 시간을 줄 수 있어요.”“10년이 필요한데 기다려줄 수 있어?”구애린은 일부러 긴 시간을 말해 그가 스스로 물러서기를 바랐다.하지만 진원우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평생 기다릴 수도 있어요.”“미친놈.”구애린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나 미친놈이 아니에요, 그냥 애린 씨를 놓치기 싫어요.”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애린 씨가 무슨 바람을 피웠나요? 애린 씨와 헤어질 이유가 없는데요.”구애린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난 원우 씨를 더는 안 좋아해.”진원우가 말했다.“언제 나를 좋아한 적이 있나요? 나를 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