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예걸은 바로 안이슬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그는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그동안 어디 간 거예요? 사람들이 다 누나가 죽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왜 아직도 심재경이랑 같이 있어요? 심재경 때문에 그 많은 일을 당하고서도 말이에요.”안이슬은 버럭 화를 내는 송예걸을 보더니 마음이 움직였다.‘이 사람은 정말 나를 관심하는 거 맞지? 아니면 심재경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화를 내진 않을 테니 말이야.’“송예걸, 이슬이는 항상 너를 동생으로만 생각했으니까 다른 마음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심재경은 안이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슬아, 저 사람 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쟤 완전 철없는 어린애야.”하지만 송예걸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심재경의 말을 들은 송예걸은 벌컥 역정을 냈다.“헛소리를 하는 당신은 참 매너 있네. 당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건 맞지만 난 적어도 양심 있는 사람이라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는 어떻게 뻔뻔스럽게 다시 이슬 누나 앞에 나타날 수 있지? 정말 낯가죽이 두껍네, 이슬 누나 다시 찾아갈 생각도 하고.”말을 마친 그는 안이슬을 보며 말했다.“저 사람에게 말해요. 싫어한다고, 놓아달라고, 앞으로 다시는 누나의 삶을 방해하지 말라고요.”송연아가 무슨 말을 하려던 그때, 강세헌은 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송연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예걸이는 쉽게 흥분하는 애예요, 저러다가 재경 선배랑 싸움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요.”“저 사람들 일은 저 사람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강세헌이 명령조로 말했다.“저 일에 끼어들지 마, 넌 잘 쉬고 있어.”송연아는 움직이기도 불편해 강세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밖에서.안이슬이 먼저 심재경을 밀어내지 않았기에 송예걸이 직접 심재경을 밀어내려고 했다.그러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고, 누구도 먼저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곧 싸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자 진원우가 두 사
손에 막대기를 쥔 안이슬을 보고 심재경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그는 안이슬이 뒤에서 자신을 습격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이슬아?”‘무슨 생각으로 나를 때린 거지?’심재경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안이슬은 바로 겁먹은 척하며 말을 더듬었다.“저... 저는 송예걸 씨를 때리려고 했어요...”송예걸이 그 말을 듣더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심재경이 방심한 틈을 타 뒤에서 발로 그를 걷어찼다.심재경이 넘어졌고 송예걸은 이 기회를 빌려 그의 몸 위에 올라타 두 주먹으로 마구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심재경은 안이슬의 한 방에 머리가 띵해져 송예걸에게 반격할 수가 없었다.집 안에서 CCTV를 보고 있던 진원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서 좀 말릴까요?”아니면 심재경은 곧 맞아 죽을 것 같았다.강세헌이 힐끔 보고는 말했다.“두 사람 떼어놔.”진원우는 그제야 나서며 송예걸을 심재경 몸 위에서 끌어내고는 경고했다.“계속 싸우면 이 집에서 쫓아낼 거야!”송예걸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심재경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송예걸이 심재경을 때릴 때, 안이슬은 그저 옆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다.그래서 진원우는 이상하다 싶어 안이슬을 보며 물었다.“재경이가 맞았는데 도와주지도 않아요?”“제가 너무 놀라서요.”안이슬은 아무 감정도 없이 설명했다.진원우는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그저 안이슬이 심재경에게 한없이 차갑다는 걸 느꼈다.“다 들어가요.”말을 마친 진원우가 먼저 집에 들어섰다.심재경은 온몸이 아프면서도 안이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만 가자.”송예걸은 맨 뒤에 서 있었다. 심재경과 안이슬의 맞잡은 두 손을 보고는 눈이 벌게졌다!안이슬이 고개를 돌려 송예걸의 모습을 보더니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그녀는 송예걸의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송예걸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안이슬은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심재경의 팔을 잡으며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괜찮아요?
일기장을 본 강세헌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의 안색도 한껏 어두워졌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 옛 추억에 잠긴 거야? 아니면 두 사람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거야?”“...”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요즘 강세헌은 워낙 신경질적이라 송연아는 그의 비꼬는 말에도 끄떡없었고, 오히려 덤덤하게 말했다.“이만 나가요.”그녀는 손을 내밀어 강세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하지만 강세헌은 화가 났는지 꼼짝하지도 않았다.송연아는 바로 손을 거두었다.그녀도 굳이 강세헌의 도움이 필요 없었기에 스스로 걸으려고 했다.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살며시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강세헌은 그런 그녀가 눈에 거슬렸다.“일부러 내 앞에서 불쌍한 척하는 거 아니야?”송연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강세헌은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질투가 밥 먹듯이 잦았기에 송연아는 그런 강세헌을 건드리고 싶지도, 그에게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고집을 부리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강세헌이 걸어 와서 그녀를 안아 들었고, 송연아가 그에게 물었다.“세헌 씨, 말해봐요, 요즘 무슨 약을 잘못 먹었어요?”강세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밥 먹어.”그는 송연아를 식탁까지 안아 가고는 그녀를 의자 위에 앉혔다.오은화가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송연아는 배고파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이때, 안이슬은 상처를 처리한 심재경을 부축하며 걸어왔다.“얼른 앉아.”진원우가 말했다.심재경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어이구, 이거 괜히 쑥스럽네.”진원우가 웃으면서 그를 놀렸다.“네 모습이 웃기긴 하네. 얼룩덜룩한 네 얼굴만 봐도 배불러, 밥을 안 먹어도 되겠어.”“꺼져.”심재경이 호통을 치는 척했지만 전혀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맛있는 음식이 이렇게도 많은데 내가 왜 꺼져야 해?”진원우가 말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식탁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안이슬이 식탁을 떠나 화장실로 가는 틈을 타 진원우가 심
송연아는 자기가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기억을 더듬어 보니 송연아는 한 번 송태범과 싸우고 나서 화가 나 집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 같은데 그날 마침 비가 와서 온몸이 흠뻑 젖었다.그때 하동훈이 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중이었고 혼자 있는 그녀를 발견한 하동훈은 우산으로 비를 막아줬다.그때 송연아는 하동훈이 정말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자상한 왕자님 말이다.그때 송연아는 겨우 열네다섯 살이었던 것 같은데, 첫사랑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라 하동훈에게 느꼈던 호감을 일기로 적어놨었다.지금 다시 일기장을 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웠다.‘내가 이런 짓도 한 적이 있다고?’그제야 송연아는 강세헌이 왜 이상한 말만 골라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이 일기장이 ‘원흉’이었다!‘그런데 세헌 씨는 언제 이 일기장을 본 거지? 하긴, 일기장이 서재에 있었으니 언제든지 볼 수 있었겠지. 이제 일기장을 버리고 세헌 씨에게 잘 설명해야지. 이 일기는 내가 멋모르고 쓰던 거니까.’그 생각에 송연아는 아예 일기장을 버리려고 했다, 아니면 강세헌이 또 오해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때, 검은 그림자가 문틈으로 스쳐 지나갔다.송연아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서재에서 나왔다.이때, 아기가 배고픈지 어딘가 불편한지 울기 시작했고, 송연아가 방문을 열자 한혜숙은 아기의 엉덩이를 씻기고 있었다.송연아는 한혜숙을 도와 분유를 탔다.“가서 쉬어, 내가 하면 돼.”한혜숙이 말했다.“다 내려왔는데 제가 먹일게요.”한혜숙이 말했다.“그래, 알겠어.”한혜숙은 기저귀를 씻으러 갔고, 송연아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다.아기는 분유를 먹으면서 서서히 잠이 들었다.송연아는 아기를 안은 채 침대에 누웠고, 아이를 재우다 보니 그녀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기저귀를 씻은 한혜숙은 깊이 잠든 송연아를 깨우지 않았다.위층에서.강세헌은 침대 옆에 앉아 달빛을 보고있었다.그는 방금 서재에서 송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봤었다.송연아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도
거즈를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송연아는 차에서 내려 회사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프런트 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진원우가 걸어 나왔다.“어떻게 오셨어요?”진원우가 물었다.송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세헌 씨를 찾아요, 세헌 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대표님 나갔어요.”진원우가 말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많이 급해요? 급하면 전화해서 돌아오시라고 할까요?”송연아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그냥 세헌 씨가 돌아온 다음에 말하는 게 좋겠어.’송연아는 다시 나와 병원으로 돌아갔다.마침 하동훈이 회진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위해 약을 바꿔 주었다.“나 퇴원하고 집에서 요양해도 될까요?”송연아가 물었다.하동훈이 웃으며 말했다.“본인도 의사면서 병원 냄새가 싫은 거예요?”송연아가 대답했다.“냄새가 싫은 게 아니고 너무 답답해서요.”“네, 그래도 되죠. 병원에 오기 싫다면 제가 격일로 집에 가서 약을 바꿔드릴까요?”하동훈이 말했다.송연아는 바로 거절했다.강세헌은 원래도 하동훈에 적의를 품었는데 그를 집까지 들이면 오해는 더 깊어질 것이다.“됐어요, 그냥 병원에 있을게요!”하동훈이 웃으며 물었다.“제가 집으로 가는 게 많이 불편한가 봐요?”“아니에요.”송연아가 부인했다.“참, 왜 외국에서 돌아온 거예요?”하동훈이 고개를 숙이자 그의 표정이 감춰졌다.“국내의 성형 업계가 돈 벌기 쉬워서 그렇죠.”그가 눈썹을 들썩이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병원 사람 꽉 찬 거 안 보여요? 대부분 다 젊은 여성들인데 자신의 외모에 항상 만족하지 못하나 봐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긴 하네, 요즘 외모에 신경 쓰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어? 오히려 신체 건강을 소홀히 해서 문제지. 이것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닌데 말이야.’“안 좋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 병원은 망했을 거예요.”하동훈이 웃으며 말했다.“참, 도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었는데도 강세헌은 돌아오지 않았다.송연아는 그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진원우에게 물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강세헌은 그녀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출장을 떠났다고 한다.송연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해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가 전화를 걸어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강세헌의 전화가 아닌 어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 혹시 심재경 씨 친구분이나 가족분인가요?”송연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누구세요?”“여기 구급센터인데요, 환자님 번호를 찾아 연락을 드렸거든요. 만약 가족분이 맞으시면 이쪽으로 와줄 수 있어요?”송연아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어요?”“화재가 일어났어요, 사람들 다 다쳤어요. 여기는 아성 병원 구급 센터예요.”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는 운전 기사더러 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밤에는 차가 적었기 때문에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송연아는 다급하게 병원에 들어섰고 운전기사가 그 뒤를 따랐다.상황을 물어보니 심재경은 아직 검사와 수술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지금 얼굴을 보지 못하니 송연아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송연아는 심재경을 만날 수 있었다.그의 팔에는 넓은 면적의 화상이 있었는데 지금 치료 중이었다.심재경은 허약하게 병상에 누워 있었다.“어떻게 된 거예요?”송연아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심씨 저택은 단독 빌라라 인테리어 할 때 분명 화재경보기가 작동할 텐데. 게다가 오작동으로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고 해도 빌라에서 탈출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고층 주택이 아니었으니.심재경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유난히 깊이 잠이 들었다. 짙은 연기에 잠에서 깰 때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심재경도 한때 의사였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별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는 먼저 안이슬을 안고 나왔고,
송연아가 안이슬을 만나러 갔을 때, 안이슬은 적잖게 놀랐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런 안이슬을 본 송연아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자책하기도 했다. 확실히 겁에 질린 안이슬을 의심했으니 말이다.송연아는 왠지 모르게 안이슬은 절대 이런 일에 놀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지금은 좀 괜찮아요?”송연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병원에서 잘 쉬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나랑 같이 돌아가서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요. 재경 선배는 며칠 쉬어야 퇴원할 수 있대요...”“괜찮아요, 가지 않을 거예요.”안이슬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송연아는 선을 긋는 안이슬에 소외감을 느꼈다.“선배.”송연아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우리는 엄청 친한 친구 사이였어요. 나를 남처럼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 예전에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던 사이라고요.”안이슬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그래요? 기억이 잘 안 나서요.”송연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자기에게 냉담하게 구는 안이슬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돌아가요, 난 재경 씨 보러 갈 거예요.”안이슬이 병상에서 내리더니 송연아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혼자 갈 길을 갔다.송연아는 내심 서운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안이슬이 자신에게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것도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자기가 많이 양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안이슬이 병실로 왔을 때, 심재경은 어머니의 부상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안이슬은 차가운 얼굴로 덤덤히 이 모든 광경을 지켜봤는데 심재경이 돌아섰을 때, 그녀는 또다시 놀란 모습으로 변했다!냉기를 뿜던 그녀의 눈망울은 금세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어머님, 괜찮으세요?”안이슬이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심재경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괜찮아. 넌 얼른 가서 쉬어.”안이슬은 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그 집은 더 있을 수 없죠?”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되도록 빨리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게.”“이번 화재는 어
‘세헌 씨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가?’송연아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한혜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아야, 너 밤에 나갔어?”송연아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애써 실망을 감추려고 했다.“무슨 일이 있었는데 꼭 나가야 했어?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지금 네가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그래?”한혜숙이 송연아를 나무랐다.송연아는 웃으면서 한혜숙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계속 똑같은 말만 하잖아, 그런데 언제 한 번 약속을 지킨 적이 있어?”한혜숙은 그녀를 혼내고 싶지 않았지만 매번 송연아 때문에 걱정이 가득했다.“엄마, 이 일로 전화하신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 있어요?”“응, 빨리 돌아와.”“네.”“돌아와서 보면 알 거야.”송연아가 말했다.“저 곧 집에 도착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들더니 잠깐 망설이고는 다시 한번 강세헌에게 전화를 걸었다.프랑스에서.브리언트 본사 빌딩은 국내 지사보다 더 으리으리하고 호화로웠다.대표 사무실은 독특한 프랑스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진중함을 잃지 않았다.강세헌이 이번에 프랑스로 온 건 송연아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열기를 좀 식히려는 것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확실히 프랑스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었다.널찍한 테이블 위에는 두툼한 서류가 쌓여 있었다.옆에 서 있던 임지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진원우 이 자식은 안 오려는 거야?”말하는 사이에 임지훈은 강세헌을 힐끔 바라봤다.강세헌은 임지훈을 프랑스 본사로 발령 보냈는데 다시 국내로 발령하지 않을 생각인지 궁금했다.그의 말을 들은 강세헌은 바로 그의 속셈을 알아채고는 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원우가 일을 너보다 잘해. 넌 여기 남아있는 게 좋을 것 같아!”“...”임지훈은 말문이 막혔다.‘윙윙.’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강세헌이 고개를 들자 발신자를 보고는 시선을 휴대폰에 멈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