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녀에게 물도 주지 않고 밥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계속 가두어 놓았다. 가끔은 아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학대받고 있는 비명 같았다.그때마다 송연아는 몸을 움츠리고 자신의 배를 끌어안았다. 하루, 이틀...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그녀는 시간조차 알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마치 시간도 빛도 없는 세상에 홀려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문을 두드려 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고 빈 메아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가만히 있었다. 체력 보존을 위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더 목마르고 배가 고팠다. 빛을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누가 날 좀 구해주세요.”그녀는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때로는 환각까지 나타났다. 가끔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는 무서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두바이, 강세헌은 윌슨을 만났다. 7성급 호텔은 그야말로 돈으로 쌓아 올린 그 웅장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지의 인테리어 스타일에 맞게 금과 레드, 벨벳, 크리스털 등 그 민족의 색채를 담은 모습이었고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진 것이 궁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호텔의 외형 디자인은 매우 현대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윌슨은 그야말로 최고의 갑부였다. 그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에 구레나룻, 뚜렷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입에 시가를 문 채 붉은 가죽 소파에 편히 기대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는데 그 와인의 값은 한 병에 1억 5천을 호가하는 비싼 와인이었다. 다만 그에게 그 와인은 평범한 와인일 뿐이었다. 그가 힘껏 시가를 한 모금 피우자 흰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라 그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참 이해가 안 되네요. 왜 당신이 이번 합작을 포기했는지? 우리 사이의 합작이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요...
윌슨은 강세헌의 처리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나라의 지도자들은 늘 한국의 발전을 막으려 하고 있죠. 만약 그들한테 꼬투리라도 잡히게 된다면 그들은 일을 크게 만들 거예요. 만약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난 당신이 이럴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해요...”“윌슨, 이번 일은 나한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강세헌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사람을 구해내려면 미국 쪽에 충분한 이익을 줘야 할 것이다. 미국의 석유 자원을 장악한 로픽 패밀리는 분명 이 거래를 원할 것이다. 누군가 이의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어떻게든 그 사람을 설득할 것이라고 강세헌은 굳게 믿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 대사를 찾아보는 건 어때요?”“나한테 그럴 시간이 없어요.”강세헌이 미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희망을 걸지 않은 건 일의 절차가 복잡하고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송연아를 하루 빨리 구해야 했고 기다릴 시간도 기다릴 인내심도 없었다. 꿍꿍이가 많은 미국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옆구리를 찔러보는 거, 물론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손실은 송연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윌슨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에게는 어느 쪽과 합작하든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만 그는 미국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괜찮은 미녀들 불렀어요. 모처럼 왔으니까 저녁에 내 개인 별장에 가서 푹 쉬어요.”강세헌은 단칼에 거절했다.“관심 없습니다.”그의 말에 윌슨은 피식 웃었다.“매번 이러는 걸 보면 혹시 병이라도 있는 거예요?”자리에서 일어난 강세헌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쩔 수 없어요. 와이프가 무서워서요.”...‘무슨 상황이지?’“세헌 씨, 결혼했어요? 난 왜 모르고 있었죠? 언제 결혼한 거예요? 일부러 날 속인 거예요?”‘솔로인 줄 알았는데 언제 결혼한 거야? 어떤 여자지?’강세헌은 나중에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강세헌은 매우
구애린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왔다.“원우 씨가 의식불명인 상태라고요?”주석민은 친구가 입양한 딸 구애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원우를 알아?”주석민은 그녀를 향해 물었고 구진학도 딸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구애린은 황급히 변명했다. “강세헌한테서 엄마의 묘비에 관한 행방을 알아내고 싶어 그 옆에 있는 진원우한테 접근했었어요.”“그랬구나.”주석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구진학은 다른 생각이었다. 만약 단순히 알고 지낸 사이라면 진원우가 의식불명인 상태라는 걸 들었을 때 딸아이는 절대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딸아이가 이젠 다 커서 집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서 보거라.”구진학의 말에 구애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빠...”“가 보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돼.”구진학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아빠.”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말을 하고는 이내 방으로 돌아가 짐을 쌌다. 주석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눈치 못 챘어. 애린이와 진원우 두 사람...”구진학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고 주석민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애린와 진원우가 연인 사이란 말이야?”“쉿, 알고만 있어. 떠들어 대지 말고.”주석민은 단지 놀랬을 뿐 떠들어 댈 생각은 없었다.한편, 구진학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자.”“어딜?”주석민은 그한테 물으면서도 구진학을 따라나섰다. “강세헌, 6시 비행기로 도착할 거야. 마중하러 가자.”주석민은 구진학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너랑 강세헌 사이가 많이 안 좋았던 거 아니었어?”“나도 잘 모르겠어. 그가 왜 갑자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는지.”“송연아의 물건을 본 뒤 너에 대한
문을 연 남자는 키가 강세헌보다 조금 더 컸다. 그 남자의 피부는 하얗지만 매끄럽지는 않았다. 뒤로 넘긴 헤어 스타일, 짙은 남색 눈동자는 매우 깊었으며 이목구비는 빚어낸 듯 뚜렷했다. 한눈에 사람의 시선을 끄는 타입은 아니라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 매력 있었다. 그는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오래 기다렸어.”강세헌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다 보니 갈아입을 여유가 없었던 그의 양복은 이미 많이 구겨져 있었지만 셔츠 깃은 여전히 꼿꼿하게 세워져 있었다.그의 턱에는 풋풋한 수염이 나 있었지만 전혀 그의 잘생긴 외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성숙한 남자의 거친 향기가 조금 더해졌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목덜미가 뻣뻣해진 그는 소파에 앉아 목을 움직였다. 잭슨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물건은?”강세헌은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잭슨은 로픽 패밀리의 사람이다. 로픽 패밀리의 최고 권력자는 이미 나이가 80이 넘었고 심장병을 앓고 있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가문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일도 자연히 논의되고 있었다. 사실 상속권을 위해 자격을 갖춘 상속인들 사이에서 암투는 끊이지 않았다. 잭슨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그가 강세헌과 손을 잡은 이유도 가문의 상속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잭슨이 서류에 손을 뻗자 강세헌이 이내 서류를 잡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당신은 알잖아.”“알아, 난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야. 당신이 나와 손을 잡은 이유도 내 배경이 마음에 들어서 아니었나?”강세헌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잭슨에게는 강력한 외가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내각의 일원이었고 정부에서 꽤 위신이 높은 사람이었다. 송연아의 일은 단지 미국 쪽에서 문제로 삼으려고 한 것뿐이었다. 때문에 그녀를 구하는 일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돈이 제일 중요하니까. 예를 들어 잭슨의 외할아버지가 정부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
송연아는 목이 너무 말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강렬한 불빛 때문에 눈이 따끔거려 손도 내려놓지 못했다. 이때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음식이 있는 곳을 찾으려 했지만 불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은 송연아를 이용 하고 싶었지만 그녀에 대해 가혹하게 형벌을 쓸 수는 없었다.형벌을 쓰면 갈등이 증폭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이번 행동은 다른 정당에서 반대한 일이었다. 주위의 압박 때문에 그들은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방식을 취해 그녀의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물 마시고 싶어요? 뭐 좀 먹고 싶죠?”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물을 송연아 앞에 놓아두었다. “당신이 스파이라고 당신이 일부러 데이터를 유출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이거 다 줄게요.”송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입술은 피가 나올 정도로 말라 있었고 목이 너무 말라 통증이 밀려왔다. “고집이 세군.”송연아의 의지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난 저 여자가 계속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아요. 여기서 지켜보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그 중 한 사람은 송연아가 음식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잠깐은 참을 수 있지만 계속 참을 수 있다고? 그것도 아이를 가진 임산부가? 배가 너무 고팠는지 후각도 예민해진 상태였다. 음식 냄새는 중독성 있는 독약처럼 그녀의 의지를 끊임없이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음식을 쳐다보며 입술을 가볍게 꿈틀거렸다.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그 사람은 그녀의 입에 음식을 가져다 댔다.“자신을 이렇게 괴롭힐 필요가 뭐가 있어요? 난 이 음식들을 모두 당신에게 줄 수 있어요.”송연아는 눈앞이 흐려졌고 그녀는 갑자기 음식으로 입을 가져다 댔다. 요즘 세상에 이런 배고픔을 맛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경험한 적이 있었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은 강세헌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거의 3일 동안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었다. “자신을 생각하
안으로 쳐들어온 사람들은 잭슨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일당이었다. 두 정당 사이에는 워낙 불화가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두 정당은 또 대립했다. 잭슨의 외할아버지는 비교적 권력이 큰 사람이었다. 두 무리의 사람들은 대치 중이었다. 소리 없는 칼날이 그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 일을 충분히 이용해 한국을 겨냥할 수 있어요. 근데 사람을 풀어주는 게 웬 말이에요?”“임산부를 이용하여 허황한 글을 만드는 게 당신들의 능력인가요? 한국 측의 외교관들이 우리를 비난하는 걸 보지 못했어요? 다른 나라의 국민을 임의로 구속하고 있다고 불만이 많아요. 이미 이 사건은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어요. 정말 일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게 만들 작정인가요?”“그들은 입만 놀릴 뿐 우리가 이 여자의 입에서 증거를 끄집어내면 아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이 여자의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사람이 죽어 나가게 생겼어요.”송연아는 피를 많이 흘려서 치마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잭슨의 외할아버지는 송연아가 죽을까 봐 두려웠다. 그녀가 죽는다면 외손자가 로픽 패밀리의 후계자로 되는 데 도움을 준 강세헌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반드시 살아있는 송연아를 강세헌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는 더 이상 상대방과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사람을 시켜 송연아를 데려가게 했다.두 개의 정당에서 불화가 생기고 의견이 충돌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서로에게 칼을 빼 든다고 해도 결국은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 정당 간의 대립이 더 심해질 뿐. 한편, 차 옆에 서 있던 잭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안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갔다.“할아버지...”말을 하면서 그는 외할아버지 뒤에 있는 남자가 송연아를 안고 있는 걸 발견하였다.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걸 보고 잭슨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였다.“당장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해야 이 죽을 것 같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을까?“송연아 씨 괜찮을 거야.”자신을 위로하는 잭슨을 향해 강세헌은 말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고 허울이 좋은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이상 누구도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그는 잭슨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송연아는 내 와이프야.”“미안, 좀 더 일찍 송연아 씨를 구했어야 했어.”“실례지만 환자분 가족 계신가요?”간호사가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접니다.”강세헌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들을 까봐 두려웠던 그는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연아는...”“환자분께서 출혈이 심한 상태예요. 병원에 너무 늦게 왔어요. 산모와 아이 둘 중에 한 사람만 선택하셔야 할 것 같은데...”“산모요.”간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만약 아이와 송연아 둘 중에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송연아를 선택할 것이다.“그럼 사인해 주세요.”간호사는 그에게 수술 동의서를 건네주었다.강세헌은 펜을 들고 사인하였고 그 사인으로 인해 아이는 살 희망이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별다른 방법은 없었고 그는 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세헌은 사인을 하면서 손이 떨렸지만 애써 참고 사인을 마쳤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어렵게 선택을 한 적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한 손으로 벽을 붙잡고 서 있었다.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고 있듯 한 답답함에 그는 허리조차 곧게 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송연아가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병원 후문에서 한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를 한 남자에게 건네주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정성을 들여 키워야 할
그는 몸을 숙이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연아야, 몸이 조금 회복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자. 찬이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왜 자꾸 말을 돌리는 거예요?”“나...”강세헌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송연아가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는 그녀의 몸 안에서 몇 개월 동안 자랐으니까...“알아요. 그때 내 상황이 안 좋은 건 맞지만 그래도 이미 임신 8개월 차잖아요. 아이가 일찍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북받쳐 오는 감정을 애써 참으려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울먹이며 말했다.“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말하지 말아요. 난 믿을 수 없으니까.”“나도 믿고 싶지 않아...”강세헌은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두 볼이 축축한 것이 누구의 눈물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강세헌의 말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말해준다. 감정이 격해진 송연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처음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는 기쁘지 않았어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우리한테는 찬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난 결국 이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사랑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딸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난 이 아이가 딸이길 바랐어요...”그녀의 입술은 바들바들 떨렸고 목소리는 슬픔에 가득 잠겨있었다. “우읍...”그녀는 갑자기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왜 그래?”강세헌은 이내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러나 이불을 덮고 있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강세헌은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발견하지 못하였다. “세헌 씨, 당신이 날 가두었던 걸 기억해요? 당신이 화가 나서 날 가두었던 것 같은데...”강세헌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기억해, 네가 나한테서 자꾸 도망치려 하니까. 내가 홧김에 널 가둔 거야.”“그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