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물건을 깨뜨리는 소리 같았다.그녀는 문을 밀고 들어가 큰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송예걸?”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송연아가 방으로 들어가 보려던 찰나, 강세헌이 그녀를 끌어당겼다.“들어가지 마.”그는 그녀의 앞에 가로막으며 말했다.“내가 들어가 볼 테니, 넌 여기서 기다려.”방에 상황이 현재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혹시나 위험할까 봐 본인이 들어가겠다고 했다.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였다.강세헌이 들어가 보니, 송예걸은 소파에 있었다.조금 전의 그 소리는 테이블 위의 술병이 떨어지면서 깨진 소리였다.방에는 온갖 술 냄새가 풍겼고, 바닥에는 빈 술병이 굴러다녔다.송예걸은 술을 적게 마시진 않은 듯했고,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술 냄새는 마치 방금 술독에서 나온 사람 같았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다.“송예걸 맞아요?”송연아가 문밖에서 조심스레 방에 들어오려 했으며, 강세헌은 그 말에 응했다.송예걸은 방에 얼마 정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방의 커튼은 닫힌 상태였고, 그 커튼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어두운 방에 비치는 수준이었다.송예걸은 그 밝기에 적응하기 힘든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송예걸.”송연아가 그에게 다가갔고 송예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를 본 그는 깜짝 놀란 듯했다.“누나, 나보러 온 거야?”그는 송연아의 영혼이 집에 온 줄 알고 웃어 보이며 말했다.“근데 강세헌은 어떻게 같이 온 거야?”송연아의 영혼이 돌아온 건 이해는 해도 강세헌이 온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강세헌이 안 죽었다고?그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혼란스러운 듯했다.송연아는 이 진한 술 냄새를 맡고는 코를 막으며 말했다.“나 너한테 물어볼 거도 있으니, 얼른 가서 샤워하고 정신 좀 차려.”“뭐가 묻고 싶은 건데? 물어볼 거 있으면 말해봐. 내가 다 알려줄게. 아니면 뭐가 부족해서 왔나? 내가 뭐라도 태워줄...”송연아와 강세헌은 말이 없었다.“...”“정신 좀 차려.”송연아는 그제야 송예걸이 자신을
송예걸은 머리를 자른 지 오래된 듯 머리가 길고 까칠했으며, 턱에는 길고 짧은 수염도 자라났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관리를 하지 않았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만 봐서는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거지와 다름이 없었다.“잠깐만, 가지 마.”그는 정신이 든 듯 밖에까지 달려 나와 송연아를 불러 세웠다.“안이슬의 일에 관해 너의 도움이 필요해.”송연아는 차에 타려다 멈칫했고,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그래, 씻고 와. 기다릴게.”송예걸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고, 빠르게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면도도 했다...그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송연아는 조급함은 없었지만, 배가 더욱 커진 관계로,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부어오곤 했다.강세헌은 그걸 캐치하고 그녀의 팔을 부축하며 말했다.“우리 차에 가서 기다리자.”송연아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대략 30분이 지났다.비록 시간은 조금 오래 걸렸지만, 송예걸이 나왔을 때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그의 몸에서 술 냄새는 거의 맡을 수 없었고, 지금은 은은한 바디워시 향기만 풍길 뿐이었다.그의 방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던 이유는, 그가 며칠 동안 집을 나가지 않고, 어제까지 방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씻지 않기까지 해서 몸에서의 술 냄새도 아주 강했던 것이었다.이렇게 씻고 나니 사람 자체가 보기에도 깔끔해졌다.송연아는 그에게 차에서 말하자고 했다.방안은 역겨운 냄새 때문에 들어가기 힘들고, 밖에서의 적합한 장소는 그나마 차뿐이었다.다행히 강세헌의 차가 좋은 차라 공간도 크고 널찍했다.“이슬 언니 지금 어디 있어?”송예걸이 앉자마자, 송연아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송예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나도 몰라. 나도 지금 계속 찾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회사에서도...”그가 이토록 무너지게 된 건 회사가 망하고, 안이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이 두 가지 일은 그에게 있어 타격이 컸고,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누나, 미안해.”송예걸은 머리를 푹 숙였고 마치
“왜 그래?”송예걸이 물었다.“언니가 절대 피할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사라졌다는 건 설마 누구한테 납치당하거나 해코지당한 건 아니겠지?”송연아는 안이슬의 실종이 심씨 가문이나 윤씨 가문과 상관이 있을 거로 확신했다.그리고 윤소민도 착한 사람인 것 같진 않았다.만약 안이슬이 정말 납치당하거나 해코지당했다면...그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고 가슴이 답답했다.‘어떡하지?’강세헌도 송연아와 같은 생각이었다.멀쩡히 살아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리는 없었다.그럼 안이슬은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거나, 어딘가에 갇혔을 것이다.그는 송연아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무 조급해하지 마, 내가 꼭 찾아줄게.”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왜 이 일을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지지 않았냐는 듯이 말이다.하지만 강세헌에게 그럴 의무가 없다는 것도 송연아는 잘 알고 있었다.다만 안이슬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송연아는 초조해졌고 평소보다 냉정하지 못했다.송예걸도 송연아의 원망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강세헌에게 일렀다.“나 대표님 찾아갔었어. 그런데 대표님이 나 안 만나주신 거야.”송예걸은 다급한 나머지 강세헌을 매형이 아닌 ‘대표님’이라고 불렀다.그만큼 송예걸은 강세헌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연아야...”그는 설명하려고 했다.하지만 송연아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알아요, 이 일은 세헌 씨 잘못이 아니에요.”‘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내 잘못밖에 더 있겠어?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뜨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내가 있었다면 이슬 언니는 날 찾아왔을 텐데... 그러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쁘진 않을 건데.’송연아는 머리가 복잡해 진정이 필요했다.“예걸아, 더는 술 마시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송예걸이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알겠어.”...돌아가는 길에 송연아는 계속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그녀는 강
강세헌이 화를 내기도 전에 고훈은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다가오며 말했다.“연아 씨!”그는 강세헌이 던져준 골칫거리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송연아를 찾아왔다.하지만 송연아와 강세헌이 벌써 같이 있을 줄이야.‘지금 나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연아 씨는 강세헌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왜 두 사람 또 같이 있는 건데?’“연아 씨, 저한테 설명하셔야죠.”고훈은 마치 자기를 배신당한 것처럼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송연아는 고훈이 왜 자기한테 화를 냈는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제가 뭐 잘못했어요? 왜 고훈 씨한테 설명해야 하는데요?”고훈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연아 씨가 그랬잖아요. 세헌이한테 신분을 숨기는 거 도와달라고요. 전 연아 씨를 도와드렸죠. 그런데 왜, 왜 또 저놈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우리의 약속에 어긋난 행동이잖아요.”고훈은 강세헌과 송연아 사이에 오해가 있는 틈을 타서 송연아의 마음을 사로잡아 강세헌의 여자뿐만 아니라 그의 아이까지 뺏어가려고 했다.하지만...모든 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내가 먼저 연아를 찾아온 거야. 문제 있어?”강세헌도 차에서 내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훈을 바라봤다.고훈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송연아의 신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강세훈을 속였다.만약 강세훈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에게 못생긴 여자를 보내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가 영원히 남자 노릇 할 수 없게 제대로 일격을 가했을 것이다.고훈은 송연아 앞이라고 절대 기세가 꺾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당연히 문제 있지. 연아 씨가 네 여자도 아니고. 내가 찾아오고 싶다면 찾아오는 거지.”그 말을 들은 강세헌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아가 내 여자가 아니면, 네 여자야?”강세헌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래, 연아 씨가 네 아이를 낳아준 건 맞아. 하지만 연아 씨가 네 아내
고훈은 상대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상대가 어마어마한 실력의 소유자라 뒤로 물러선 게 아니라 고훈은 같은 편이 없었기 때문이다.‘이 일과 전혀 상관없는 진원우가 왜 이곳에 왔을까? 그것도 인적이 드문 대로변에서 마주친다는 건 과연 우연일까? 연아 씨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는데 설마 연아 씨가 전화한 건 아니겠지?’“연아 씨, 연아 씨가 진원우 씨를 불렀어요?”고훈은 미덥지 못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화했을 거라고 여전히 생각하지 않았다.송연아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녀는 고훈을 본 순간부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다만 걱정하는 상대는 강세헌이 아닌 고훈이었다.고훈은 단 한 번도 강세헌을 이긴 적이 없으니까 그가 또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마침 강세헌은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렸고, 그녀는 강세헌의 휴대폰으로 재빨리 진원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세헌을 도와 고훈을 내쫓으려고 진원우를 부른 건 아니었다. 송연아는 진원우가 고훈을 이 자리에서 데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니면 두 사람 사이에 정말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송연아는 고훈을 한참 지켜보고는 대답했다.“고훈 씨를 생각해서 부른 거예요.”“...”고훈은 미간을 구기더니 말을 이어갔다.“저를 생각해서 부른 건 같진 않은데요. 오히려 강세헌이랑 함께 저를 괴롭히려는 건 아니고요?”송연아를 그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포기한 듯 어깨를 들썩였다.“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싸워요.”그녀는 좋은 마음에 진원우를 부른 거였지만, 고훈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니 더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다.“...”고훈은 침묵을 지켰다.‘나 혼자서 두 사람 상대해야 한다고? 승산이 있을까? 당연히 없겠지. 이거 완전 나 골탕 먹이려는 거 아니야? 나 분명 연아 씨한테 잘해줬잖아. 친구로 생각하고 잘 챙겨줬기도 하지만 연아 씨는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네. 오히려 더 매정하게 굴고 말이야.’“좋아요, 연아 씨 뜻을 알겠어요.”그는 빠른 걸음으로 차로 향했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날 수 있어? 엄마를 버릴 수는 있어도 찬이까지 어떻게 버려? 임신까지 했어? 나랑 세헌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너 정말 대단하다...”한혜숙은 딸이 죽는 척을 했단 사실을 알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 끊임없이 송연아를 꾸짖었다. 송연아도 감히 말대꾸하지 못했다.강세헌은 찬이를 안은 채 옆에서 그저 듣고 있었다. 어쩌면 한혜숙이 그가 감히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혜숙에게 꾸중을 들으면 송연아도 정신을 차려 앞으로 더는 이런 짓을 벌이지 못할 것이다.아무리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한들 송연아는 죽은 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너 임신하고 있잖아. 배 속의 아이에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세헌이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거야? 넌 어린애가 아니야, 다 큰 성인이라고. 곧 두 아이의 엄마일 텐데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막 나가면 돼?”한혜숙은 찬이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봐봐, 찬이가 얼마나 컸는지. 지금 찬이는 널 못 알아보잖아. 그게 엄마로서 할 짓이야?”찬이는 어리둥절한 채 똘망똘망한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흑포도 같은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한혜숙과 같이 보낸 시간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찬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강세헌이었다.“네가 말해봐. 잘못했어 안 했어?”한혜숙이 물었다.송연아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한혜숙의 꾸중도 허심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옆에서 깨고소해 하는 강세헌을 보고 그녀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분명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녀가 혼나는 것을 옆에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말이다.“잘못했어요.”한혜숙이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끝내게 하려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하지만 한혜숙은 그녀가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꾸중을 끝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거세게 송연아를 혼냈다.“연아야, 앞으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생각이라
송연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의문의 눈빛으로 옆에 있는 동료들을 바라봤다.“서원 연구센터에서 우리 병원의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한발 먼저 논문을 발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죠.”동료가 말했다.송연아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어떻게 그런 일이?”주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몰랐어?”“네, 몰랐어요.”송연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그래?”주임은 송연아를 의심 했기에 그녀를 일부러 떠보았다.“제인 선생이 우리 연구 성과를 빼돌려서 한국의 서원 연구센터에 넘긴 거 아니야?”이 말을 할 때 주임은 계속 송연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만약 그녀가 범인이 맞는다면 긴장한 마음이 들 것이고, 그럼 분명 표정에 허점이 드러날 것이다.훌륭한 흉부외과 의사로서 송연아는 당연히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녀는 주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저 아니에요.”주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떠보았다.“전에 내가 자료를 정리하라고 했을 텐데. 그때 우리 병원의 핵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을 거야. 그때 정보를 빼돌려서 한국에 보냈을 수도 있잖아.”송연아는 여전히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주임이 반박했다.“제인 선생은 한국 사람이라서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어.”“하지만 저는 미디브 소속의 의사이기도 하죠. 저는 그 어떤 정보를 빼돌리지 않았습니다...”“제인 선생, 오늘 열린 세미나에서 제인 선생은 작성된 연설문대로 말하지 않았어. 모두 한국 연구 쪽에 대한 얘기였지. 미디브 내부에서는 이미 조사를 시작했어. 제인 선생이 그 데이터를 빼돌렸는지 안 빼돌렸는지는 곧 결과가 나올 거야.”몸 옆으로 손을 늘어뜨린 송연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그녀의 눈에 띄지 않은 행동을 알아차린 주임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송연아는 뒤가 꿀린 게 분명했다.주임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송연아를 측은하게 여겼지만 절대 엄폐해 줄 생각은 없
“제인 쌤, 왜 그래요?”동료가 물었다.송연아가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주임이 돌아오고는 자리에 앉았다.“왜 먹고 있지 않았어?”동료가 말했다.“교수님 기다리고 있었어요.”“얼른 먹어.”주임이 젓가락을 들었다.“교수님, 젓가락 쓸 줄 아셨어요?”동료의 물음에 주임이 대답했다.“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한국에 왔으니 당연히 한국의 문화를 체험해야지.”이때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동료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커피는 안 시켰는데?”주임이 대답했다.“내가 시켰어.”그는 우유를 송연아에게 건네며 말했다.“제인 선생은 커피 마시면 안 되잖아. 특별히 우유 주문했어.”이에 동료가 말했다.“저랑 교수님이 커피를 마실게요.”그는 커피 한 잔을 자기 앞에 놓았다.송연아는 주임이 건넨 우유를 받고는 말했다.“교수님, 감사해요.”송연아는 목이 말라서 한 모금 마셨다....식사를 하는 사이에 송연아는 머리가 어지러웠다.동료는 그녀가 몸이 불편한 것을 알아채고는 물었다.“제인 쌤, 왜 그래요?”송연아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나 괜찮아요, 너무 피곤했나 봐요.”주임이 말했다.“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송연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럼 저 먼저 들어갈게요.”그녀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다.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녀는 우유가 담긴 유리잔을 보더니 뭔가를 눈치챈 듯이 물었다.“이 우유에 약 탔어요?”아니면 멀쩡하던 그녀가 갑자기 무기력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주임이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그래도 눈치가 빠르네. 나 우유에 약을 탄 거 맞아. 아까 전화를 받았는데 반드시 제인 선생을 데리고 오라고 하네. 제인 선생이 데이터를 빼돌린 걸 다 알아냈으니까. 내가 제인 선생을 데려가지 않으면 해고는 물론, 아마 평생 이 업계에서 취직하지 못할 거야. 퇴직하기 전에 해고되지 않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어.”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인지, 아니면 단호하고 얄짤없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