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은 감히 그 영상들을 보여주지 못했다.고훈은 자신의 컴퓨터가 해킹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암호화 처리도 하지 않고 컴퓨터를 그대로 뒀다. 그래서 임지훈이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영상을 구하자마자 임지훈은 먼저 보았고 지금은 이미 봤기 때문에 강세헌이 보면 무조건 화낼 것 같아 선뜻 꺼내지 못했다.“오해일 수도 있어요.”임지훈이 말했다.강세헌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가 설명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지금 이렇게 설명을 하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아닌가?“아주머니.”강세헌이 소리쳤다.곧 오은화가 다가왔다.“네, 도련님”“찬이 안고 먼저 내려가 계세요.”“네.”오은화는 찬이를 안고 나갔다.평소에 오은화가 자주 안아줬기에, 찬이는 오은화의 품이 익숙했다.오은화가 방에서 나간 뒤에야 강세헌은 임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져와.”임지훈은 망설이다가 내용을 복사한 USB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별일 없으면 전 이만 가볼까요?”임지훈이 말했다.강세헌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렇게 무서워?”임지훈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해명했다.“아닙니다. 제가 회사의 일을 항상 감독해야 하지 않습니까. 참, 오늘 오후 4시에 화상 회의가 있습니다.”강세헌은 USB를 집어 들고 알았다고 말했다.임지훈은 고개를 숙였다.“그럼 저 갑니다?”강세헌이 대답하지 않았는데, 묵인하는 셈이었다.임지훈은 방을 나와 더는 강세헌을 마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세헌은 서재로 들어가 USB를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꽂고 의자에 앉아 아무렇게나 팔을 걸치고는 마우스로 내용을 눌렀다.고훈이 남긴 CCTV 내용은 모두 앞뒤가 잘린 편집된 영상들이었다.예를 들어 송연아가 그를 쓰러뜨리고 토한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그는 송연아가 그를 쓰러뜨린 부분만 남겼고, 토한 부분은 모두 잘라냈다.고훈은 애초에 강세헌을 화나게 하는 데 쓸 작
송연아는 고훈인 것을 보고 안색이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송예걸을 바라보았다.“네가 말한 일이 고훈이야?”송예걸은 송연아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얼른 설명해 주었다.“고훈 씨가 나를 찾아와서 부탁 하나 했는데, 누나를 데려오라는 거야. 난 별일도 아닌 것 같아서 승낙했고, 게다가 최지현이 자기 어머니를 죽인 증거를 찾아달라고 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고훈은 얼른 다가와 사과했다.“내가 잘못했어요. 당신이 나한테 화내고 있는 거 알고 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알아요, 그래서 내가 송예걸한테 당신을 만나서 사과할 기회를 달라고 한 거예요. 그것도 안 돼요?”송연아는 이제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나는 단지 그쪽이 앞으로 그렇게 유치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난 이미 화 풀렸고 사과할 필요 없어요.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송연아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향했다.고훈이 다가와 송연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이미 왔는데, 같이 밥이나 먹어요. 이 집 음식 맛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다고요...”송연아는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손 놓으세요.”말만 하면 되지, 왜 붙잡고 난리인가?고훈은 뻘쭘해서 손을 놓았다.“왜 이렇게 차갑게 대해요? 전에는 괜찮았잖아요.”송연아는 그가 정말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야, 고훈. 너 때문에 세헌 씨와 사이가 틀어졌는데, 설마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니?”송연아는 그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정말 나한테 사과하고 싶다면, 그냥 내 눈앞에서 꺼져.”“...”“우린 친구잖아요.”고훈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송연아가 말했다.“난 항상 나를 귀찮게 하는 친구는 원하지 않아.”“...”그는 단지 강세헌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했을 뿐이었다.일이 왜 이렇게까지 심각해졌다는 말인가?“오늘 강세헌한테 해명하려고 만나러 갔는데, 옆에 있던 임지훈이 너무 얄밉게 말해서 제대로 해명할 기회가 없었어요...”“잠깐만...”송연아는
송예걸은 차를 길가에 멈춰 세우고는 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밖을 내다보다가 그 여자가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송예걸은 너무 뜬금없어 계속해서 물었다.“누나, 왜 그러는데?”송연아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면서 송예걸에게 말했다.“일단 주차하고 일로 와.”송예걸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기에 일단 송연아의 말대로 해야 했다.그는 차를 호텔 주차장으로 몰아갔다.송연아는 일찌감치 따라 들어갔고 데스크에 가서 물었다.“방금 왔던 여자의 옆방 하나 잡아주세요.”“어느 여자요?”데스크 직원이 물었다.송연아가 말했다.“방금 들어온 구민, 구 여사 말이에요.”“아하.”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여사님의 방은 구 선생님이 잡았어요.”“구진학...”송연아가 말했다.데스크 직원은 그녀가 그들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물었다.“혹시 아는 사이세요?”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잘 알 수 있는가?송연아는 맞다고 했다.데스크 직원은 그녀를 도와 방을 잡아주었다.“그들은 로얄 스위트룸에 묵고 있는데, 하루 숙박비만 350만 원이에요. 그래도 옆방으로 잡아드릴까요?”데스크 직원이 재차 물었다.그러자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곧 데스크에서 방을 잡아주었다.송연아는 송예걸을 끌고 방으로 향했다.“가자.”송예걸이 물었다.“누나, 하룻밤에 350씩 하는 방을 도대체 왜 잡은 거야? 그리고 방금 말한 그 사람들은 누군데 이래?”“나도 모르겠어.”“모르는 사람을 왜 미행하는 건데?”“잘 모르니까, 확실히 해두겠다는 거 아니야.”송연아가 말했다.“...”그는 송연아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먼저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방도 잡았고 돈도 썼는데 로얄 스위트룸이 어떤 건지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송예걸은 이렇게 비싼 호텔에서 묵어 본 적이 없었다.방에 들어간 후, 그는 이리저리 샅샅이 훑어보았다. 확실히 비싼 방은 달랐는데, 엄청 넓고 호화로웠다.송연
여자는 문 앞에 서 있었고 긴 머리를 우아하게 늘어뜨리고 맞춤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몸에 장식을 많이 하지는 않았고 진주 귀걸이만 하고 있어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녀는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구...?”송연아는 그 여인을 바라보았는데 사진 속 모습과 똑같았다.그녀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살려주세요...”그러자 송예걸은 타이밍에 맞게 뒤에서 소리쳤다.“야, 너 빨리 따라오지 못해? 이걸 확 죽여버릴까, 네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송연아는 구민을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지금 그 사람과 함께 돌아가면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제발 살려주세요.”다행히 구민은 송연아가 뒤에 있는 남자에게 붙잡힌 것을 보고 말했다.“이 여자 놔줘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내 사람이야. 내가 잡으면 잡았지, 너랑 무슨 상관인데?”송예걸은 기세등등했고 생김새가 좀 사납지 않다는 것만 빼면, 정말 나쁜 사람 같았다.그는 사실 잘 생겼다.터프한 타입이 아니라 순둥순둥한 타입이었는데, 백수연을 많이 닮았다.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여기 CCTV가 있는 건 알고 있죠? 당신 계속 이러는 거 범법행위예요. 당장 호텔 직원을 부르도록 하죠.”송예걸은 냉담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그 틈을 타 송연아를 놓아주었다.“직원들을 불러도 난 두렵지 않아. 내가 딱 옆방에서 기다릴 테니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해.”말하고 그는 가버렸다.송연아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구민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에요.”그녀가 막 문을 닫으려 하자 송연아는 얼른 손을 들어 문을 막고는 입을 열었다.“차 한 잔만 주시겠어요?”구민은 머뭇거리다가 들어오라고 했다.송연아는 서둘러 고맙다고 말했다.구민은 테이블로 다가가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일단 물 한 잔 마시면서 마음 진정시켜요. 방금 그분은 남자친구예요?”“네... 다혈질이라..
송연아가 설명하려 하자 구민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분이 맞을 것 같아서 내가 도와줬어요. 그리고 내가 방에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라고 권했어요.”구진학은 송연아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그래요?”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근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진학 씨, 아는 사이에요?”구민은 송연아를 한 번 보고는 구진학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구진학이 다가와 구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분은 주석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제자인데, 내가 지난번에 석민이를 만나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났어.”구민의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의사였어요?”송연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구민은 갑자기 이마를 짚고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구진학은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두통이 또 시작됐어?”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방에 가서 약 먹자.”구진학은 구민을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송연아를 돌아보며 경고했다.“난 다른 사람이 나의 사적인 일을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만약 송연아 씨가 오늘 고의로 그녀를 접근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송연아는 시치미를 뗐다.“아니에요.”“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구진학은 쾅 하고 문을 닫았다.어렴풋이 송연아는 구민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왜 그렇게 무섭게 굴어요, 그냥 여자애예요.”구진학이 말했다.“나쁜 사람 일까 봐 그러지.”송연아는 원래 자신이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고 느꼈지만, 구진학의 태도는 너무나도 의심스러웠다.그는 다른 사람이 구민을 만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왜 두려워하는 걸까?“누나, 누나!”송예걸은 쭈뼛쭈뼛하면서 송연아를 향해 작은 소리로 외쳤다.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송예걸은 기둥 뒤에 몸을 움츠리고 숨어 있었다.송연아가 방으로 들어가자 송예걸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때? 뭐 좀 알아냈어?”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그럼 괜히 온 거 아니야? 350만 원을
텅 빈 방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찬이도 안 보였다.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다급해졌다.‘사람은 다 어디 간 거야?’그녀는 몹시 당황스러웠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그러나 곧 들어오는 차가 보였고 차 문이 열리자, 강세헌은 찬이를 안고는 차에서 내렸다.오은화의 손에는 많은 물건이 들려져 있었다.그녀가 다가와 물었다.“어디 간 거예요?”찬이의 볼이 약간 붉다.평소의 잘 웃는 기색도 없이 나른하고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오래 울었던 것 같다.“찬이 어디 아파요?”그녀는 찬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강세헌은 그대로 무시한 채, 찬이를 안고 방안으로 향했다.오은화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찬이가 열이 심하게 났어요.”“아주머니.”강세헌은 낮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오은화는 더는 말하지 못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송연아가 입을 앙다물고 방에 들어갔을 때, 강세헌은 찬이를 안고 창가에 서 있었고 찬이는 그의 어깨에 얌전히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는데, 긴 속눈썹은 눈물로 촉촉해져 있었다.“찬이가 자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내가 달래줄게요.”그녀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강세헌은 한쪽으로 걸어가며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송연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일찍 돌아오려고 했는데, 도중에 일이 생겨서 늦었어요. 일부러 이렇게 늦은 건 아니에요...”“말 다 했으면, 나가.”강세헌이 말을 끊었다.“...”그녀는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방을 나갔다.이럴 때는 찬이가 자야 한다.송연아는 먼저 나가 있고 난 뒤에 강세헌에게 설명하려고 했다.오은화는 송연아가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밥은 먹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내가 먹을 것 좀 만들어 줄게요.”오은화가 말했다.송연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요.”오은화는 한숨을 쉬었다.“도련님 이해 해주세요. 찬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우리 모두 멍해 있었고 찬이는
송연아는 미처 숨기지 못한 채 눈물을 참는 모습을 강세헌에게 보이고 말았다.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억울해?”송연아는 힘껏 눈물을 닦았고 고집을 쓰며 말했다.“아니요.”“그래.”강세헌은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송연아는 두 손에 주먹을 쥐었고 그의 냉철함에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그를 막았다.“아직도 날 못 믿는 거예요? 그럼 계속 그러세요, 내가 지금 당장 나가서 남자 하나 찾을 테니까!”그녀는 화가 나서 말을 다 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강세헌은 한발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다른 남자를 찾아?”송연아는 몸부림을 쳤다.“어쨌든 당신은 날 믿지 않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당신이 괜히 화를 내지 않도록 착실하게 있을게요...”강세헌이 조금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송연아는 그의 품에 안겼고 그는 이 기회를 틈타 더 꽉 껴안았으며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송연아는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녀는 더 심하게 몸부림쳤다.“이거 놔요...”강세헌은 몸을 굽혀 찐하게 그녀의 입을 맞춰 말을 못 하게 했다.그는 진한 키스를 했고 그녀의 입술을 깨물기까지도 해 그녀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다.송연아는 한동안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그녀의 유일한 느낌은 아프다는 것뿐이었다.아프다.강세헌은 허리를 잡고 그녀를 들어 안아 침대로 향했다.송연아는 그의 품속에 얌전하게 있었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직도 화났어요?”“너 하는 거 봐서.”말을 마치고 그는 침대에 그녀를 내려놓았다.송연아의 가냘픈 몸이 부드러운 침대로 빠져들어 갈 것만 같았다.그녀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몹시 가련해 보였다.핑크빛 입술은 강세헌의 유린으로 더욱 붉게 물들었고, 그 위에 이빨 자국이 있었다.그녀는 두 다리를 들어 강세헌의 깡마른 허리를 잡아당겼다...그의 눈동자는 심해보다 더 깊었고 가장 깊은 곳에서는 끝없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사람을 다 삼켜 버릴 것만 같았
송연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집에서 찬이를 잘 돌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하지만 오늘 주석민이 구민에게 수술에 관련된 진찰을 해주기로 했기에 그녀가 참가한다면 구민의 몸에 있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그래서 그녀는 오늘 무조건 병원에 가야 했다.“나 될수록 일찍 들어올게요. 괜찮죠?”송연아는 애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어색했다.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탁이에요. 네?”그녀는 두 팔로 강세현의 목을 감쌌다.송연아는 이런 것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강세헌은 송연아가 자신에게 애교 부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다섯 시까지 돌아와.”“네. 다섯 시전에 무조건 집에 올게요.”“그래.”강세헌은 동의한 셈이었고 송연아는 너무 기뻐서 그의 얼굴에 뽀뽀했다.“저녁에 돌아와서 할 말 있어요.”강세헌은 가볍게 알겠다고 말하고 한마디 당부했다.“고훈을 멀리해.”“네. 꼭 멀리 있을게요.”송연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약속했다.어쩌다 강세헌이 화를 내지 않았는데 그를 다시 돋구면 안 되었다.송연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이젠 날 믿어요? 그런데 왜 아직도 화가 나 있어요?”강세헌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영상의 장면들은 분명 누군가 편집을 한 것이었다.그가 화난 이유는 고훈과 송연아가 확실히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연아는 그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가까이 있는 것이 싫었다.“그놈을 빨리 돌려보내야겠어.”송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강세헌이 소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이런 유치한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평소의 압도적이고 차분한 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의 모든 면이 다 매력적이었다.사실 이런 유치한 모습들이 더 마음이 설레게 만들었다.강세헌도 피와 살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도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는 사람이었다.송연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