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꾸도 안 했다.“네가 송연아인 거 다 알아. 처음엔 내가 방심했어. 진작 네 목소리를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까 검사받을 때야 네가 일부러 내 겨드랑이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어.”심혜진은 송연아에게 들킨 이상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송연아가 고개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당신 나 알아?”“네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굳이 뭘 더 숨기겠어?”그녀는 아예 가면을 벗어버렸다.“얘기 좀 할까?”최지현이 물었다.송연아는 그녀가 무슨 꼼수를 부릴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너 뭐 하려는 거야?”“그냥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네가 싫으면 됐어.”최지현은 몸을 홱 돌리고 떠날 기세였다.송연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계단 입구로 갔다.“제일 먼저 날 알아챈 사람이 송연아 너일 줄은 정말 몰랐어.”최지현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때문에 강세헌이 날 죽음으로 몰아세웠어. 내가 널 미워해? 말아?”“그건 네 업보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잊었어? 너 때문에 난 한 아이를 잃었어. 세헌 씨가 애 아빠인데 널 가만둘 리 있겠니? 만약 그저 방관했다면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자격도 없지.”최지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강세헌이 다 알았나 보네.”“물론이지.”송연아가 말했다.최지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끓어오르는 증오와 질투를 가슴 깊이 숨겼다.“그래서 너한테 그렇게 잘해준 거야? 널 지키려고 본인이 폭탄을 막는다고?”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야. 세헌 씨는 나한테 진짜 너무 잘해줘. 주혁 씨는 비할 바도 못 된다는 걸 너도 인정하지? 날 위해 폭탄을 막아주는 건 물론이고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 못 믿겠으면 폭탄을 제외한 다른 무기를 사용해봐.”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일부러 최지현을 자극했다.예리한 최지현은 그녀가 덫을 놓고 있는 걸 바로 알아챘다.“폭탄이라니,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세
콰당...“으악!...”최지현이 계단에서 굴러내렸다!그녀는 마침 아이도 낳기 싫었는데 일부러 계단을 굴러 송연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이렇게 되면 주혁도 송연아를 원망할 테니까.주혁은 아빠가 되는 기대에 차 있었고 이 아이를 엄청 사랑했다.다만, 죽을 만큼 아팠다.“읍...”그녀는 몸을 움츠렸다.비록 대가가 좀 크지만 송연아를 불행하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가치가 있었다.송연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최지현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를 괴롭혔다.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했다.‘최지현, 너 정말 독한 여자구나. 아이도 버릴 만큼.’“최지현, 난 네가 하나도 안 불쌍해. 제 손으로 아이까지 죽이는 너 같은 매정한 여자는 몸에 흐르는 피도, 뛰고 있는 심장도 한없이 차가울 따름이야.”말을 마친 그녀는 계단 입구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송연아는 사람을 불러오지 않았다.최지현이 자초한 일이니까.“우리 와이프 못 봤어요?”주혁은 줄곧 최지현을 찾아 헤매다가 송연아와 마주쳤다.“네, 못 봤어요.”그녀는 바로 가버렸고 주혁도 계속 찾아 나섰다.송연아는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주석민에게 불려갔다. 오늘 희귀성 심장병 환자가 한 명 와서 그녀에게 더 많이 가르치고 견문을 넓혀주고 싶었다.마무리하고 돌아갈 때 복도에서 고훈을 마주쳤는데 그는 은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송연아가 물었다.“약 잘못 먹었어요?”“아니요. 연아 씨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매일 뭐가 그렇게 바빠요? 나 한참 기다렸단 말이에요.”고훈이 걸어오며 말했다.“우리 엄마 수술을 연아 씨가 했다면서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송연아가 대답했다.“난 의사이고 수술해서 환자를 구하는 건 내 직책이에요. 억지로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아니요, 무조건 감사의 뜻을 표할 거예요.”고훈이 말했다.송연아는 어이없다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마음대로 하시던가요.”그녀가 막 자리를 떠나려 할 때 간호사 한 명이 부랴부랴 달려왔다.“큰일
고훈은 그녀가 동의한 거로 여겼다.멀리서부터 주혁의 포효와 물건을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당장 송연아 내 앞에 데려와!”분노에 찬 고함이 울려 퍼졌다.고훈은 몰래 송연아를 쳐다봤는데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이 여자도 참 대단해. 이렇게 큰 소란이 일어났는데 차분함을 잊지 않는 것 좀 봐. 점점 더 매력적이야.’사무실 문이 반쯤 열렸고 송연아가 가볍게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원장님...”“송연아!”주혁이 미친 듯이 달려들자 고훈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말로 합시다, 손 쓰지 말고. 여자한테 손대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죠.”주혁은 충혈된 두 눈으로 고훈을 째려봤다.“넌 뭐야?! 뭔데 남의 일에 끼어들어? 이 여자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어. 당장 비켜!”“아이가 죽은 건 나랑 상관없어요.”송연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주혁을 쳐다봤다.“조사해보시던가요.”“계단 입구에 CCTV가 없는데 어떻게 조사해?”주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내가 증거 없을 줄 알고 일부러 조사하라고 한 거지? 송연아, 나도 널 눈감아주고 있는데 네가 먼저 시비를 걸어오네?”“내가 무슨 시비를 걸었죠?”송연아가 물었다.주혁이 생각해보았지만 그녀와 딱히 깊은 원한이 없었다. 단지 최지현이 물에 빠졌을 때 송연아를 잡아서 강세헌을 협박하려던 것뿐이니 원한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나랑은 원한이 없어도 지현이랑은 있잖아. 걔 때문에 네가 아이를 한 명 잃었다고 들었어. 그래서 너도 지현이를 계단 아래로 밀쳐서 아이를 유산하게 한 거잖아. 내 말 틀려?”주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언제든지 휘두를 것 같았다.“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 아빠가 될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아이를 잃었어.”송연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당신 아이를 잃었으면 최지현한테 가서 따져야죠. 걔가 날 모함하기 위해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내렸어요.”“헛소리하지 마. 내가 널 믿을 것 같아?”주혁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넌 그냥 책임을 전가하고 싶을 뿐이야.
“네가 여긴 웬일이야?”송연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송예걸이 대답했다.“누나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계속 찾아다녔는데 전화는 또 왜 안 통하냐고?”송연아는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켰지만 배터리가 다 됐는지 자동으로 꺼졌다.“무슨 일인데? 이따가 얘기해. 나 지금 좀 바빠.”그녀가 말했다.송예걸은 마음이 초조해서 눈앞의 상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이슬 누나에 관한 일이야. 누나가...”그 시각 고훈과 주혁이 바짝 붙어 당장 싸울 기세였다.송연아는 예걸의 말을 들어줄 겨를 없이 앞으로 다가가 고훈을 말렸다.“이런 사람한테는 손댈 가치도 없어요. 게다가 지금 여긴 병원이라고요.”“송연아, 똑똑히 들어. 내가 오늘 반드시 널 병원에서 내쫓을 거야. 그렇게 못하면 내 성을 고친다.”주혁은 송연아가 주눅 든 줄 알고 턱을 치켜세우며 그녀에게 삿대질했다.“지금 뭐라는 거야?”이때 송예걸이 불쑥 뛰쳐나와 그에게 쏘아붙였다.“너 지금 누구한테 삿대질이야?”주혁이 미간을 구겼다.“넌 또 뭔데?”“송연아는 우리 누나야. 인제 내가 누군지 알겠어? 한판 붙으려고? 와봐, 얼른!”송예걸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곧장 달려들었다.고훈도 코웃음 치며 말했다.“어때? 계속해? 말아?”주혁은 두 남자를 상대하기엔 힘에 부칠 것 같아 바로 주눅 들었다.“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리가 있는 건 아니야.”그는 몸을 돌려 원장에게 말했다.“하루 시간을 줄게요. 무조건 송연아를 병원에서 내쫓으세요. 안 그러면 내가 이 병원 운영 못 하게 하는 수가 있어요!”주혁은 으름장을 놓고 문틈을 비집으며 나갔다.송예걸은 내키지 않아 계속 덮쳐들려고 했지만 송연아가 재빨리 가로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여기 병원이야. 소란 피우지 마.”송예걸이 그녀를 위해 앞장서는 행동은 몹시 훈훈하지만 병원에서 다투면 안 된다.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지 싸움장이 아니니까.원장은 뒷짐을 지고 한숨을 내쉬었다.이번 일은 평소처럼 그렇게 단순한 의료분쟁이 아니
송연아가 차갑게 쏘아붙였다.“말 함부로 하지 마...”“예걸 씨 말이 맞아요. 세헌이가 먼저 낚아채지만 않았어도... 나 실은 연아 씨 엄청 좋아하거든요.”고훈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송연아는 그를 힐긋 노려보았다.“예걸이가 장난치니까 고훈 씨도 장난치고 싶어요? 재밌어요 이게? 난 지금 소송에 휘말려서 자칫하다 또 직장을 잃게 생겼다고요. 더이상 직업을 날릴 순 없어요. 내가 병원 일 때문에 세헌 씨까지...”그녀는 말이 길어진 걸 눈치채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송예걸이 곧바로 물었다.“누나 세헌 씨를 어떻게 했는데?”고훈도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송연아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남의 일에 신경 끄고 최지현을 어떻게 상대할지나 생각해. 아 참, 너 방금 나한테 하려던 말이 뭐야?”“이슬 누나가 떠난대.”송예걸이 말했다.“누나가 가서 설득해봐.”송연아는 안이슬의 상황을 다 알아 무턱대고 설득할 순 없었다.“나중에 만나서 상황을 알아보고 다시 얘기할게.”“그래.”송예걸이 말했다.“난 그래도 누나가 이슬 누나를 여기 남도록 설득했으면 좋겠어.”송연아는 그를 지그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자식, 왜 이렇게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건데? 설마 사심을 품은 거야?’고훈은 송예걸이 송연아의 동생인 걸 알고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최지현을 조사하는 일은 우리 둘이 함께할까?”송예걸은 흔쾌히 동의했다.“좋아요. 최지현의 살인 증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 사건은 이미 종결됐거든요. 그 여자가 감히 살인을 저지른 이상 절대 증거도 안 남겼을 거예요. 아까 그 미친개가 계속 우리 누나를 병원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죠?”송예걸이 물었다.“미친개라니?”고훈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박장대소했다.“주혁이를 말하는 거지? 걔 펄쩍 날뛰는 꼴이 미친개나 다름없지. 아주 정확한 표현이야.”송예걸도 미소 지었다.“그러게 말이에요.”“다만 네 말처럼 최지현의 살인 증거를 찾는 건 하루 이
‘엥? 왜 아무도 없지? 서재에 있나?송연아는 눈을 깜빡이다가 문을 닫고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서재 문을 열고 보니 임지훈이 책상 앞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임 비서님? 세헌 씨는요?”“아까는 제가 채 말하지 못했어요. 도련님이 오신 게 아니라 임 비서님이 오셨어요.”오은화가 말했다.송연아는 순간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임지훈은 서류 한 뭉치를 안고 안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문 앞에 서 있는 송연아를 보더니 친절하게 한마디 건넸다.“안 바쁘실 때 대표님께 연락 한번 드리세요.”말을 마친 임지훈은 서류를 챙기고 떠나갔다.송연아가 강세헌과 함께 출국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그 날부터 강세헌의 안색은 줄곧 어두웠고 기분도 가라앉았다.그는 휴대폰만 자꾸 들여다보며 자존심 때문에 먼저 송연아에게 전화를 걸지 못하고 그녀가 연락하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송연아는 전화 한 통 없었다.그녀는 강세헌을 깜빡 잊은 게 아니라 종일 한가할 새가 없었다.송연아가 재빨리 임지훈을 쫓아갔다.“임 비서님.”임지훈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물었다.“네?”송연아가 다가오며 말했다.“세헌 씨 이번에 회사 일로 출국했나요?”임지훈이 머리를 내저었다.“아니요.”“그럼 뭔데요?”송연아가 캐물었다.임지훈은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아꼈다.“이번 일은 대표님께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사실 연아 씨도 함께 따라갔어야 했는데...”“대체 무슨 일이냐고요?”송연아가 간절하게 물었다.“이 일은 대표님께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임지훈이 차 문을 열고 안에 탔다.송연아는 한걸음 나서며 그에게 물었다.“그럼 세헌 씨는 언제쯤 돌아와요?”“당분간은 못 돌아올 겁니다.”임지훈이 대답했다.“뉴스에서 장진희 씨 재판 결과가 곧 나온다던데 과연 어떤 결말을 얻을지 보러 안 온대요? 그 여자는 세헌 씨 부모님을 해친 원수잖아요.”송연아는 임지훈을 바라보며 제발 말해주길 바랐다
사진 속 사람은 그녀도 본 적이 있었다.주석민이 예전에 그녀에게 한 특별한 환자의 진찰 기록을 정리하라고 했는데 그때 그 환자가 강세헌의 어머니와 너무 비슷해서 몇 번 더 봤었다. 그런데...강세헌이 왜 이 사진을 갖고 있는 걸까?이번에 출국한 이유가 이 사진과 연관이 있을까?그녀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고개 들어 보니 오은화가 문 앞에 서 있었다.“주무신 거 아니었어요? 저는 또 깜빡하고 서재 등을 안 끈 줄 알았어요.”송연아는 손에 쥔 사진을 봉투에 넣어서 원래 자리에 놓았다.“잠이 안 와서 책 좀 보려고 왔어요.”“네.”오은화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제 말 진짜예요.”오은화도 웃었다.“저는 또 도련님이 안 계셔서 사모님이 못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송연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오은화는 역시 눈썰미가 예리했다!“일찍 쉬세요, 저도 이젠 자야겠어요.”그녀는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어 들고 서재를 나갔다.오은화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사모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방해 안 할게요.”송연아는 실소를 터트렸다.오은화는 지금 그녀가 강세헌의 물건을 보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여긴 걸까?송연아는 솔직히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다.강세헌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녀는 병원 일에 최지현 일까지 더해 남편을 그리워할 시간은 잠잘 때뿐이다.송연아는 책을 들고 방에 돌아가서 고작 두 페이지를 읽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들어버렸다.고요한 밤, 그녀도 깊은 잠에 빠졌다.깨나 보니 어느덧 다음 날 아침이었다.주석민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휴대폰을 아직도 서재에서 충전하고 있다는 게 생각났다.그녀는 휴대폰을 가져와 전원을 켰지만 부재중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실망스럽기도 하고 살짝 화가 나 강세헌에게 전화하지 않고 바로 주석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저 오늘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갈게요.”주석민은 그녀가 최지현 일 때문에
송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물었다.“무슨 말이요?”장진희는 어차피 이제 곧 죽을 사람이라 남들이 들을까 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맞아, 내가 세헌의 부모를 해쳤어. 이번에 세헌이가 법원에 증거를 제출하고 뒤에서 수단을 쓴 탓에 나도 이렇게 어이없이 사형을 선고받았어. 게다가 바로 집행한다지. 난 내가 한 모든 일에 후회는 없어. 그저 이 말만 묻고 싶어. 내가 죽는다고 세헌의 부모가 살아 돌아올 것 같아? 네가 대신 물어봐 줘.”“이게 바로 당신의 가장 가증스러운 점이야.”송연아가 담담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사람을 해칠 때 알았어야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야.”장진희가 하찮다는 표정에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저지른 일이 얼만데. 세헌이를 해치는 일만 해도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래도 수년간 자유롭게 살았어! 강세헌이 지금 날 죽여도 달라질 건 없어. 걔는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자라온 아이야! 나보다 더 가엽다고, 하하하...”송연아는 이토록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죽어버려.”송연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노려봤다.“당신은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당신 아들은 어떨 것 같아? 지금도 충분히 고통스럽게 살거든.”장진희가 아무리 사악하고 매정해도 그녀는 결국 한 아이의 엄마였다.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아마 아들뿐이겠지.“세헌 씨가 놓아주지 않는 한 강세욱이 편하게 살 것 같아? 당신 아들이 세헌 씨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점은 당신한테 고마워해야겠어. 당신 덕분에 세헌 씨는 어릴 때부터 조심스럽게 지냈고 차갑고 매정한 사람으로 변했으며 머릿속에 온통 계략으로 가득 찼어. 당신은 세헌 씨를 해쳤지만 도와주기도 했지. 만약 세헌 씨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지금 같은 수단과 박력이 없었을 거야. 한편 당신 아들은 줄곧 당신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는데 인제 당신이 떠나면 뭘 할 수 있을까?”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세헌 씨를 대신해서 당신에게 감사해야겠네. 당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