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욱은 장진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엄마, 아버지가 잠시 미쳤나 봐요. 다시는 안 그럴 거예요.”장진희는 강윤석이 지금 당장 그 여자와 헤어진다고 해도 구역질이 났다.그녀는 그렇게 자존심이 센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녀 또한 어쩔 수 없었다.“말해, 저 여자 누구야?!”장진희는 오히려 그 여자가 자신보다 어디가 더 잘났는지 보고 싶었다.강윤석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윙윙.그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장진희와 강세욱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강윤석은 그들이 그렇게 보는 것을 매우 싫어했는데, 마치 그가 무슨 극악무도한 일을 한 것처럼 불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그는 단지 애인 한 명 찾았을 뿐이다!“이 강윤석이 여자 하나 만난 게 그렇게 큰일이야?”말을 마치고 강윤석은 뒤돌아 방에서 나갔다.한동안 침묵이 흘렀다.강세욱도 강윤석의 행동에 화가 났다!하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장진희가 다시 쓰러질까 봐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전 항상 엄마 편이에요.”장진희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이제 강세욱만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넌 반드시 회사를 잘 운영해야 해. 그러면 난 너를 믿고 네 아버지 기세를 눌러버릴 수 있고 이렇게까지 억울할 필요도 없어. 그 사람은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진짜 너무했다고!”“알아요.”강세욱은 장진희를 위로하려고 애썼다.병실에서 나온 강윤석은 계단 입구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아무 때나 전화하지 말라고 했잖아.”장진희 때문에 매우 짜증이 난 강윤석은 말투가 그리 좋지 않았다.이지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임신했어요. 당신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당신이 가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이 아이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지금 병원에 가서 지우려고요. 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젊으니까 몸이 빨리 회복될 거예요...”“뭐
강세욱은 너무 피곤했다. 하필이면 회사에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때, 집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너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강세욱은 장진희를 데리고 강윤석과 이지안의 ‘보금자리’로 갔다. 장진희는 마음속의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정말이지, 그녀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그 불륜녀가 이지안이라니, 심지어 이렇게 고급스러운 주택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강윤석은 이지안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그녀가 임신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강윤석은 결과를 보고는 매우 기뻐했다.그는 항상 자식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딸을 더 낳고 싶어 했는데, 장진희는 자신의 몸매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아이 낳기를 꺼렸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그가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이지안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으니,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강윤석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그의 아이가 생기자, 자신이 아직 젊다는 느낌이 들었고 젊었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강윤석은 이지안에게서 또다시 불타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장진희의 엄격한 통제하에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암울했지만 지금은 이지안과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이지안은 애교를 부릴 줄도 알고 의지할 줄도 알아서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게 해줬다.그는 이지안을 껴안고 주택으로 돌아왔다.마침 문 앞에 있는 장진희가 이 장면을 보았고 그녀는 정말 달려들어서 이지안의 뺨을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미 진정된 상태였기에 때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고 강윤석이 이지안을 싫어하게 만들어야, 그 염치없는 여자를 버릴 것 같았다.“강윤석, 우리가 이 나이 되어서 이혼하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겠어? 그리고 다른 여자 찾을 수 있어. 근데 여자를 찾겠으면 좀 깨끗한 사람을 찾지 그래? 이렇게 더러운 여자를 찾다니, 넌 네 자신도 더럽히고, 강씨 가문도 더럽혔어...”지금 강윤석이 한창 흥이 나
“임신?”장진희는 몸을 휘청거렸다.강윤석이 바람을 피운 소식이 청천벽력이라면, 이지안이 임신한 소식은 그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강세욱은 화가 치밀어 강윤석에게 주먹을 한 방 날렸다.강윤석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아 일어날 수가 없었다.장진희는 2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얼른 아들을 가로막고는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아무리 화가 나도 손을 대면 안 되었다.강윤석이 어쨌든 강세욱의 윗사람인데, 어떻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남자는 체면을 그렇게 중시하는데, 지금 그녀는 강윤석이 강세욱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을 원치 않았다.장진희는 강세욱을 끌고 갔는데, 이번 일이 잘 수습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할 수 없이 저 인간을 너의 할아버지한테 맡겨야겠어.”장진희가 말했다.그녀는 더는 강윤석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강세욱은 너무 열이 받아 얼굴에 있는 근육까지 떨고 있었다.“사람 찾아서 이 년을 꼭 죽여버려야겠어요.”장진희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먼저 차에 타.”장진희는 아들을 잡아당겼다. 혹시라도 강윤석의 앞에서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되었다.강세욱은 몸을 구부려 차에 올라탔고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강세욱이 주머니에서 꺼내어 보니, 진원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문제가 생겼어요.”강세욱은 지금 충분히 화가 난 상태였기에 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뭐라고?”진원우는 또박또박하게 말했다.“문제가 생겼다고요. 제가 사기를 당했어요. 지난번에 강 대표가 나한테 투자했던 돈으로 칩을 샀는데 지금 상대방이 잠적했어요.”강세욱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는데, 욕사발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는 화가 나서 앞 좌석을 세게 걷어찼는데, 그가 너무 힘을 줘서인지 등받이가 앞으로 기울었고 차도 덩달아 같이 흔들렸다.장진희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날카롭게 물었다.“말해요, 무슨 일인지.”진원우는 거의 순식간에 우울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방금의 여유는 사라지고 없었다.“부품에 관한 연구가 마지막 단계까지 왔는데, 칩이 하나가 모자란 거예요. 근데 우리가 직접 이 칩을 만들려면 힘이 들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서 해외의 한 회사에서 사려고 계약을 했죠. 그들이 우리한테만 공급을 해주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다 산 셈이에요.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 회사가 유령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쪽에서 준 샘플도 다른 회사에서 산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이미 경찰에 신고해서 그 돈은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강세욱은 어두운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다시 찾아와? 해외 회사?”그는 이를 갈았다.“상대방이 어떤 회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그런 거액을 지급한 거야?”“내가 샅샅이 조사했는데, 상대방의 계획이 너무 치밀해서 속을 수밖에...”“이런 일에서 어떻게 그 큰돈을 되찾을 수 있겠어?”지금 강세욱은 그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었다.이건 분명한 함정이었고 진원우가 해외에서 사기를 당했는데 어떻게 돈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신분마저 모두 가짜일 것이 뻔한데 또 어디 가서 사람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내가 더 조심해야 했는데...”진원우가 말했다.“조심성이 없었다는 말 한마디로 이 일을 그냥 넘기려는 거는 아니겠지?”강세욱도 어리석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진원우가 저지른 것이니, 그가 이 결과를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강세욱은 바로 진원우의 자리에 앉았다.진원우는 눈을 내리깔았고 다시 강세욱을 바라볼 때, 아첨하는 웃음을 지었다.“이번 일은 제가 일부러 한 게 아니...”“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강세욱이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끊었다.진원우는 매우 난처한 모습을 보였다.“내 전 재산이 이 프로젝트에 묶여 있는데, 강 대표가 돈을 내라고 해도 나는 낼 돈이 없어요...”“돈을 낼 수 없다
뉴스를 보았을 때, 강세욱은 동진그룹과 같은 이름의 회사가 파산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어제 그는 금방 진원우와 계약을 맺었는데, 절대 그가 투자한 그 사람은 아니여야 했다.책상 앞에 서서 모니터를 끄고는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자신을 진정시켰다.“진정해, 진정해, 내 투자엔 아무 일도 없을 거야.”그는 그곳에 우뚝 서서 한참 멍을 때린 후에야 전화를 들고 진원우의 번호를 누를 생각을 했다.역시나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마침내 그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며, 결연히 사무실에서 나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다.그가 천주그룹의 대문 앞에 이르자 멀지 않은 곳에서 장진희가 총총히 걸어왔다.“세욱아, 동진그룹에 일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야?”장진희도 뉴스를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강세욱이 말했다.“지금 막 동진으로 가려던 참이었어요.”“같이 가자.”장진희가 말했다.이 일은 너무 규모가 큰일이었고 만약 동진그룹이 정말 파산했다면, 그들의 투자는 물 건너갈 뿐만 아니라 진원우와 계약을 체결했기에 이변이 없는 한 책임도 져야 했다.“나 혼자면 돼요, 아버지 일이나 처리해요.”강세욱은 말을 마치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장진희는 아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고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윤석이 바람을 피우는 것부터 동진그룹의 파산까지 이 모든 것이 마치 짜여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녀가 생각을 더 하기도 전에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 집사의 전화였는데, 강의건은 이미 강윤석을 집으로 불러들었으니, 이제 그녀도 들어오라는 것이었다.그녀는 알았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차에 타려고 할 때, 멀지 않은 커피숍에 앉아있는 이지안을 보았는데, 혼자가 아니었고 그 맞은편에는 진원우가 있었다.이지안과 진원우가 어떻게 아는 사이지?불길한 예감이 저절로 들었다.진원우와 이지안의 조합이라...그녀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재빠르게 핵심을 찾아냈다.‘이지안이 강세헌의 문서를
이지안은 코웃음을 쳤다.진원우가 말했다.“이제 들어가요. 그리고 조심해요, 그 여자가 당신을 찾아갈지도 몰라요.”“미안한데, 난 그 여자가 두렵지 않아요.”이지안은 지금 마음이 든든했다. 강윤석을 믿고 두려울 게 없는 그녀는 넘어진 장진희에게 위세를 떨쳤다.“아저씨가 너보고 늙어빠진 여자라던데, 넌 늙어빠진 여자라는 호칭도 안 어울려. 넌 악마야. 네가 내 순결을 빼앗아버리고 날 이용해서 네 아들을 구했다지? 그럼 내가 도대체 뭘 얻었을까? 장진희, 너 이제 끝이야!”이지안은 장진희의 몸을 힘껏 걷어찼다.“네 모든 것을 다 빼앗을 거야. 기다려, 이 천하의 나쁜 년아. 날 강세헌과 다시는 함께 있을 수 없게 만들어? 그래, 그러면 난 네가 아저씨한테 차이고, 벌거벗겨서 강 씨네 집안에서 널 내쫓아버리게 할 거야. 그때 가서 넌 모든 걸 잃게 되고 길거리에 나앉아, 모든 사람에게 쥐새끼 취급을 받겠지.”진원우는 장진희의 끈질긴 악독함을 알고 있었는데, 이지안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막지 않았고 다만 이지안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는데, 마치 그녀의 비참한 미래를 예측한 듯싶었다.장진희는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지만 이지안이 지금 우세에 처해있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진희를 모욕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마지막으로 그녀는 독한 말을 몇 마디 뱉고는 의기양양하게 가버렸다.장진희는 지금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억울한 적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가 강 씨네 저택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뒤였고 강윤석은 진작에 싫증이 나서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장진희가 뒤늦게 왔다.“어디 갔다 온 거야? 왜 이제야 왔어?”장진희는 마치 시체처럼 넋이 나간 듯 소파에 앉아 욕 한마디조차도 하지 않았다.강윤석은 지금 장진희를 보기도 귀찮았고 대화를 나눌 인내심도 없었으며 심지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지안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 그냥 이혼하자
강윤석이 무방비한 상태에서 습격당했다!그는 처음에 그저 등이 따끔거려서 아직 일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는 돌아섰다.“장...”그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장진희 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칼을 보고는 너무 놀라 동공이 움츠러들었다.“이년이...”강윤석은 즉시 장진희의 손을 잡았다. 지금 그녀는 강윤석을 죽이려고 작정했기에 눈에 온기는 없고 강한 증오심만 가득했다. 이런 배신을 당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강윤석에게 칼을 빼앗기지 않도록 얼른 손을 빼냈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채, 심지어 방금보다 더 사납게 강윤석의 가슴에 피가 묻은 칼날을 찔러 넣었다.“강윤석, 난 널 배신한 적 단 한 번도 없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강윤석의 상처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곧바로 옷을 새빨갛게 물들였고 그는 반격할 힘이 없어져 고통스러워하며 장진희를 쳐다보았다.“이 악독한 여자가...”“내가 악독하다고?”장진희는 냉소하였다.“내 악독함은 당신한테서 비롯된 거야!”강윤석은 힘껏 그녀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장진희는 그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그녀는 코웃음을 쳤다.“강윤석, 내가 죽으면 반드시 네가 내 죗값을 대신해서 치르게 할 거야.”장진희의 눈 밑은 차갑고 매몰찼다.이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나는 여태껏 그 누구한테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고, 더더욱 그 누구한테도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당신 때문에 난 체면을 잃었고 그 어린 계집애한테서 욕을 먹은 건 내가 겪은 가장 큰 수모였어.”“악마...”강윤석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장진희가 깔끔하게 칼을 뽑자, 강윤석의 상처에서는 피가 더 세차게 흘렀고 땅바닥은 온통 검붉은 액체로 흥건했다. 강윤석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꽈당.장진희
이지안은 죽기 살기로 몸부림을 쳤고 장진희를 힘껏 밀쳤다. 하지만 장진희는 바짝 뒤쫓았고 우르르, 와르르, 집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장진희는 한 손으로 이지안의 옷자락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들어 그녀의 몸을 찔렀다.이지안은 몸을 피할 수 없었기에 옆구리가 찔렸고 장진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몇 번 더 찔렀다. 이지안은 더는 몸부림치지 않았다.“네가 감히 나를 상대해? 네가 그럴 자격은 있어? 내가 강세헌의 계략에 걸려들지 않았어도 네가 사는 게 죽는 것보다도 못하게 만들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 시간이 없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날 배신하고 괴롭힌 사람들은 다 처리하고 갈 거야!”장진희는 일어서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그녀가 손에 든 칼을 버리자 ‘탁’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하지만 장진희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이지안의 옷을 찢고, 그녀의 몸을 향해 수십 발을 마구 걷어찼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세수한 뒤 살인현장을 깨끗이 치우고나서야 그 집을 나왔다.그녀는 차에 올라타서 이지안이 사는 층을 올려다보고는 시동을 걸었고 천주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강세욱은 이미 동진그룹에서 돌아왔고 넋을 잃은 채,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자, 그는 예의 없다고 꾸짖었다.“말했잖아,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나야.”장진희가 걸어왔다.강세욱은 이제 더는 감추지 않았고 담담한 척도 하지 않았다.“엄마, 문제가 생겼어요. 동진이 개발한 그 부품 안에 금지 용품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세욱아, 겁내지 마. 일단 진정해, 다 아니까.”장진희가 강세욱을 보는 눈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상냥함이었다.“내 말 좀 들어봐, 우리는 모함을 당했어. 동진그룹도 다 함정이야...”“강세헌?”강세욱도 이때 반응했다.“내가 그를 찾아가 볼게요...”“안돼.”장진희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