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찬이를 안고 일부러 그녀를 못 본 척하며 아주머니와 함께 조용한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한편 임설은 저번에 송연아에게 망신 주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본인이 이틀 동안 스포츠센터를 청소하여 직장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어떤 동료들은 이 일로 대놓고 그녀를 놀려대기까지 했다.그녀는 사직할 충동이 몇 번 생겼지만 강세욱을 못 보면 의지할 곳이 없을까 봐 마지못해 비난을 감수하며 계속 일했다.송연아는 분명 아무것도 안 했지만 임설은 왠지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송연아, 너 너무 우쭐대지 마. 딱 한 번 위기를 넘겼을 뿐인데, 그렇다고 평생 안일할 것 같아?”임설은 어느샌가 송연아의 테이블 앞에 다가갔다.송연아는 찬이와 한창 놀아주다가 앙칼진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뜩 약 오른 임설을 보며 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나도 내가 평생 안일할 거라고 장담 못 해. 하지만 지금 네가 힘들게 살아간다는 건 충분히 알 것 같아. 잘 지내고 있다면 어떻게 이런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겠어.”“뭐라고...”임설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넌 뭐가 그리 잘났는데? 듣기로 네 남편 천주그룹에서 쫓겨났다며? 너도 이젠 더 이상 강씨 일가의 사모님이 아니겠네...”“내 남편이 회사에서 물러난 건 맞지만 날 버린 건 아니야. 난 여전히 넉넉하게 살고 있고 외출할 때도 경호원과 기사, 그리고 도우미까지 한 무리 사람들이 따라다녀. 천주그룹 대표가 아니어도 내 남편은 여전히 날 호의호식하게 해줄 능력이 되지. 반면 넌 요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 사는 게 순탄치가 않나 봐?”송연아는 신랄하고 까칠한 성격이 아니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지금은 임설을 자극하기 위해 이런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임지훈과 강세헌의 대화에서 강세욱이 요즘 매우 바삐 돌아친다는 걸 알았다. 매일 회사에 틀어박혀 있다고 하는데, 이제 막 대표직에 부임한지라 성과를 내서 모두가 그에게 복종하도록 할 의도인 듯싶었다.게다가 임설의 안색
강세헌이 물었다.“왜 걔를 선택했어?”임지훈이 대답했다.“그 여자는 멍청하고 통제하기 쉬워요. 게다가 이미 더러워진 몸이니 다시 새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고요.”강세헌은 그를 힐긋 바라볼 뿐, 더 말하지 않았다.이는 묵인한 거나 다름없었다.사실 임지훈이 감히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강세헌이 이지안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임지훈이 봤을 때, 강세헌이 그녀를 매정하게 차버리지 않은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첫 번째는 그녀가 강세헌의 생명의 은인이기에 좋아하지 않더라도 너무 가혹하게 굴지는 못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녀가 아직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임지훈은 속으로 생각했다.‘두 사람 너무 대비되는 거 아니야?’이지안과 송연아는 모두 강세헌에게 은혜가 있는 여자이지만, 한 명은 그저 이용당하는 처지로 몰락했고 다른 한 명은 과분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강세헌이 송연아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쯧쯧...이래서 비교는 금물이다. 비교할수록 화만 더 나니까!다 같은 사람이어도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니고 있다.“요즘 그쪽 상황은 어때?”강세헌이 물었다.그는 이지안에 관해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임지훈은 줄곧 회사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에 제 사람을 심어두기도 했는데, 수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제 사람을 몇 명 심어두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지금 강세욱과 장진희는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실행 가능한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거창한 첫 시작을 알리고 싶나 봐요. 강세욱도 막 부임했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하려면 큰 프로젝트 두 개 정도는 진행해야겠죠. 안 그러면 회사에 남아있기 힘들 겁니다. 요즘 장진희도 매일 강세욱과 함께 있느라 강윤석을 돌볼 겨를이 없어요. 지금이 바로 다른 배려심 있는 여자가 그의 곁을 지켜줄 때입니다.”임지훈의 마지막 한마디는 매우 함축적이지만 그와 강세헌은 모두 알고 있었다.방금 말한 이지안이 바로 그들이 강윤석에게 보낼 여자였다.이지안은 예쁘고 젊기 때
송연아는 활짝 웃었다.“찬이가 엄마라고 하네.”강세헌은 그녀를 보더니 썩 내키지 않은 듯 아들을 가르쳤다.“아빠라고 해봐.”“엄마.”“아니, 아...빠.”“엄...마.”강세헌이 계속 가르치려 하자 송연아는 차마 봐줄 수 없었다. 찬이는 너무 어려 엄마라는 말도 겨우 했다. 게다가 그저 발음이 엄마랑 비슷할 뿐인데 어떻게 아빠를 부를 수 있겠는가?그녀는 아이를 가져오며 말했다.“분유 먹일 시간이에요.”그리고 그녀는 찬이와 함께 오은화를 찾으러 갔다.강세헌은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송연아가 그를 거들떠보지 않을수록 그는 더 가까이하고 싶어 쪼르르 따라 나갔다.“내가 찬이를 안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가서 분유 타와.”강세헌의 말에 송연아가 바로 거절했다.“아주머니가 다 해줄 거예요.”강세헌은 말문이 막혔다.혹시 그녀의 심기라도 건드린 걸까?오은화는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찬이를 안아갔다.“제가 분유 먹일게요. 이따가 곧 잘 거예요.”송연아는 한숨을 내쉬고 방에 돌아갔고 강세헌도 따라가서 문까지 잠갔다.“이지안 씨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어요!”송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그제야 알아챘다. 좀 전에 심술부린 이유가 이지안 때문이란 것을!그는 저도 몰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기분이 왜 나쁜지 알게 되자 그는 더는 당황하지도 않았다.강세헌은 침대 옆에 앉아 나른하게 침대 머리맡에 머리를 기대고 두 다리를 우아하게 포개고는 송연아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송연아는 그의 시선이 너무 불편했다.“왜 그렇게 봐요?”강세헌이 진지하게 물었다.“너 요즘 살쪘지?”송연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마음 같아서는 너나 살쪘다고, 너희 온 가족이 뚱뚱하다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이리 와, 살쪘는지 만져봐야겠어.”강세헌이 가볍게 웃었다.송연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남자가 약을 잘못 먹었나?!’그녀는 몸을 홱 돌리고 밖에 나가려 했다. 더 있다가 그가
송연아는 말문이 막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날카롭게 쏘아붙였다.“그땐 세헌 씨 다리를 부러뜨리겠어요.”강세헌은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며 미소 지었다.“나한테 이렇게 모질게 굴 거야?”송연아는 일부러 사나운 척하며 말했다.“고작 이게 뭐라고요? 세헌 씨가 감히 날 배신하면 다리를 부러뜨릴 뿐만 아니라 나가서 잘생긴 오빠들을 엄청 많이 만날 거예요. 세헌 씨 돈으로 실컷 놀아야죠...”강세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너 너무해.”그의 돈으로 딴 남자랑 논다고?송연아는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그러니까 감히 날 배신하면 세헌 씨보다 더 잘생긴 남자들이랑 실컷 놀 거라고요...”“연아야, 나보다 더 잘생긴 남자는 없어.”그는 말하면서 송연아를 침대에 눕혔다.송연아는 그의 키스를 피하고 간지러운지 그를 살짝 밀쳤다.“대낮부터 왜 이래요...”“응.”강세헌은 대답했지만 멈출 기미가 없었다.그는 점점 더 거리낌 없이 그녀의 옷까지 벗겼다.당황한 송연아는 바로 항복했다.“잘못했어요. 딴 남자 안 만날게요. 난 세헌 씨만 좋아해요...”강세헌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나도 너만 좋아해.”송연아는 문득 정색하며 물었다.“그럼 이지안 씨는...”강세헌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또 그 얘기야. 왜 자꾸 그 여자를 언급하는 건데? 기분 잡치게!’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송연아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 같았다.강세헌은 그녀에게 계획을 말해주었다....다 들은 후 그녀는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말했다.“세헌 씨 진짜 간사하고 교활하네요.”이간질하는 스킬이 최고봉에 이를 수준이었다.장진희는 현재 일에만 몰두해 있고 강윤석은 적적하고 외롭게 보내고 있다. 이때 여자를 투입하는 건 그와 장진희의 감정을 이간질하는 것밖에 안 된다!부부의 갈등은 가정의 불화를 일으킬 것이고, 회사 일까지 더하면 장진희는 아마 머리가 터질 지경이겠지.그녀가 일단 차분함을 잃으면 일을 그르치기에 십상이다.장진희는
당연히 서로를 위해줘야지 무조건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하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옷깃을 매만졌다.강세헌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녀의 손을 확 잡았다.“언제는 대낮에 이러면 안 된다더니?”송연아는 그를 힐긋 노려봤다.“세헌 씨 상처를 보고 있어요. 뭘 생각하는 거예요?”그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그녀가 먼저 다가와 그의 옷을 벗기고 있는데 대체 뭘 생각해야 하는 걸까?강세헌은 정상적인 남자이고 몸이 허약하지도 않다....어느 한 사설 클럽 안에서.강윤석이 홀로 따분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장진희를 못 본 지도 며칠이 다 돼갔다. 그녀는 강세욱과 함께 회사 일에 전념하느라 남편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강윤석은 소외당한 느낌이 들어 홀로 여기 와서 술을 마셨다.위스키를 몇 잔 마셨더니 머리가 알딸딸해졌다.그는 술값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한 아름답고 여리여리한 여자가 그의 품에 안겼다.안 그래도 기분 나쁜 강윤석은 막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 길도 안 보고 어딜 감히 그에게 부딪히냐고,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고개 숙여 보니 아리따운 미인이 서 있었다.이지안은 그의 품에 안겨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가여운 표정을 지었다.“살려주세요. 저 사람들이 날 잡으려 해요.”“응? 누가?”이지안의 가여운 모습은 순간 이 남자의 보호 욕구를 불러일으켰다.강윤석은 이 기회를 틈타 그녀를 꼭 안았다.장진희는 비록 똑똑하고 관리도 잘 받고 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피부가 다소 처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지안은 달랐다. 젊고 생기가 넘치며 피부도 탱탱하여 안고 있으니 나른하고 좋은 향기까지 났다.강윤석은 저도 몰래 심장이 쿵쾅댔다.이지안은 벌벌 떨며 뒤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몇몇 건달 같은 남자가 이지안을 가리키며 말했다.“계속 돈 안 갚으면 널 잡아가서 확 팔아버리는 수가 있어.”강윤석은 그제야 그녀가 빚진 걸
이지안이 그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다.강윤석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전에 술 마실 땐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술은 유난히 독한 것 같았다. 게다가 자꾸 흥분되고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이지안은 돈이 없으니 호텔 비용은 당연히 강윤석이 선뜻 냈다.방으로 들어간 후 이지안은 제법 능청스럽게 그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그럼 푹 쉬세요.”강윤석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이지안은 놀란 척하면서 그를 밀쳐내지 않고 못 이기듯 옆에 누웠다.짜인 각본대로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관계를 마친 후 이지안이 베개를 안고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가여운 표정을 지었다.강윤석은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을 빤히 쳐다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가 처음일 줄은 전혀 몰랐어. 걱정 마, 널 가졌으니 끝까지 책임질 거야.”이지안의 눈빛은 살짝 떨렸고 그녀는 감히 그를 마주 보지 못했다.그녀가 피를 흘리게 된 것은 임지훈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 복구 시술을 마쳤기 때문이다.임지훈은 그녀가 깨끗한 여자일수록 강윤석이 더 아끼고 사랑해줄 거라고 했다.아니나 다를까 강윤석은 매우 신경 썼다.이지안은 베개를 더 세게 잡고 속으로 장진희를 죽도록 원망했다.장진희 때문에 그녀가 순결을 잃었고 강세헌한테도 버림받았으니 이지안은 가슴 가득 원한으로 차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장진희에게 복수하리라 마음먹었다.이제 장진희의 남편을 빼앗았으니 이것도 나름 복수였다!여기까지 생각한 이지안은 연기에 더 힘주었다.“이해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나 아저씨 탓 안 해요.”이지안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몸이 너무 지쳐서 그런지 또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강윤석은 지금까지 이렇게 불타오른 적이 없었다.그는 이지안한테서 청춘의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자신은 아직 젊으니 더 도전할 수 있을 듯싶었다....둘은 결국 또 한바탕 뜨겁게 침대 위에서 나뒹굴었다.끝난 뒤 강윤석은 통쾌하게 그녀에게
장진희를 떠올리자 강윤석의 낯빛이 돌변했다.“와이프는 늙어 빠져서 보기만 해도 짜증 나.”이지안이 눈썹을 들썩거리며 속으로 은근 기뻐했다!솔직히 장진희는 관리를 잘 받은 편인데 늙어 빠졌다는 말을 듣다니, 보아하니 그녀도 집에서 위엄이 없는 듯싶었다!“아저씨 미워요. 어떻게 자기 와이프를 그렇게 말해요.”이지안이 그의 품에서 애교를 부렸다.“나 아저씨 와이프보다 예쁘죠?”강윤석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럼. 네가 더 이뻐.”사실 장진희는 젊었을 때 이지안보다 더 예뻤지만 이젠 나이가 들었고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만약 장진희가 예쁘지 않았다면 강윤석도 여태껏 얌전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수년간 스캔들 한 번 안 났다.“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해.”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을 더 만질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장진희를 조금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소란을 피울까 봐 걱정됐다. 강윤석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일 있으면 연락해.”이지안이 머리를 끄덕였다.강윤석은 옷을 입고 자리를 떠났다.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장진희도 마침 돌아왔다. 남편이 밖에서 오는 걸 보더니 그녀는 저도 몰래 미간을 찌푸렸다.“어젯밤에 외박했어요?”강윤석은 불안한 눈길로 딴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 술 마시러 갔다가 취해서 결국 룸에서 잤어.”장진희는 그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씻어요.”그녀도 요즘 남편을 소홀히 했다는 걸 알고 있어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반평생 살아오며 강윤석은 남녀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니까.“그래.”강윤석은 일부러 그녀를 피해 욕실로 달려갔다.장진희는 기지개를 쭉 켰다. 요 며칠 줄곧 회사 일로 바삐 돌아쳤는데 다행히 헛수고한 건 아니었다. 그녀와 강세욱은 한 프로젝트를 성사했고 내일 협력사의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다.이를 생각하니 그녀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장진희는 다른 욕실에 들어가 깨끗이 씻은 후 란제리 옷으로 갈아입고
장진희가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강윤석이 덥석 휴대폰을 낚아챘다.“내 전화를 당신이 왜 받아?”그녀는 흠칫 놀라서 몇 초간 넋 놓고 있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윤석이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한편 그도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뺏어왔다. 만에 하나 이지안한테서 걸려온 전화라면 바로 들통나버리니까!“휴대폰 이리 내놔요, 얼른.”장진희가 손을 내밀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강윤석은 주지 않았다.“여보, 설마 밖에서 날 배신하는 일이라도 저질렀어요?”장진희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당신을 배신해? 당신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강윤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진희가 다시 휴대폰을 뺏어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수님? 윤석이 형은요?”이 목소리는 장진희도 아는 목소리였다. 상대는 바로 강윤석의 친구였고 그녀와도 아는 사이였다.강윤석도 그 목소리를 듣고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깨를 쭉 펴고 장진희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종일 의심병만 도져서, 쯧쯧. 내가 친구들 앞에서 머리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누가 보면 나 당신한테 꽉 잡혀 사는 줄 알겠네. 이래놓고 앞으로 나더러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라는 거야?”장진희가 웃으며 해명했다.“당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요. 절대 의심한 거 아니에요.”강윤석은 휴대폰을 가지고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장진희도 몰래 따라가서 엿들었는데 확실히 수상한 낌새가 없었다.하지만 좀 전에 남편의 표정은 정말 이상했다. 그녀가 대신 전화를 받을까 봐 마음이 찔린 게 분명했다.“당신 요즘 많이 힘든가 봐.”강윤석은 통화를 마치고 다시 걸어오며 말했다.“방금 도우미한테 전복죽 끓이라고 했으니 먹고 눈 좀 붙여. 며칠 사이에 왜 이렇게 초췌해진 거야?”장진희는 남편의 관심 어린 말투에 감동하며 웃었다.“이게 다 세욱이랑 당신을 위해서잖아요? 다 같은 강씨 일가의 사람인데 왜 모든 걸 맏이에게 줘야 하죠? 하지만 앞으론 당신이 강씨 일가를 휘어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