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다름아닌 송예걸이었다!“예걸아!”백수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녀는 아들이 잘못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백수연은 쇠로 만들어진 틀을 걷히고 기절한 아들을 안으며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예걸아, 정신 좀 차려봐. 엄마 놀라게 하지 말란 말이야. 엉엉...”백수연은 식겁하여 진짜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에게 핏줄이라곤 아들밖에 없어 모든 희망을 그에게 걸었다.송예걸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제 명에 못 살 것이다.이렇게 갖은 애를 쓴 것도 다 아들을 위해서였다!“너 왜 이렇게 멍청해? 너랑 유산을 뺏는 저 여자를 뭣 하러 구하냐고?”송연아는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철철 흘렀지만 상처를 신경 쓸 겨를 없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했다.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송예걸에게 다가가 심하게 다쳤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백수연은 제 아들을 해칠까 봐 그녀를 확 밀쳐냈다.“내 아들 건드리지 마!”송연아는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예걸이 아무 일 없길 바라면 나한테 보여야 할 텐데. 난 의사예요, 예걸이 해치지 않는다고요.”송연아가 차갑게 말했다.백수연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쉴 새 없이 울어대며 질책했다.“너만 아니었어도 예걸이 이렇게 되지 않았어...”“당신이 악한 마음을 품어서 예걸이까지 다친 거잖아!”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보여주기 싫으면 관둬. 이대로 죽어버리면 나랑 유산을 뺏을 사람이 없어지고 좋지 뭐!”송연아는 일부러 백수연의 정곡을 찔렀다!백수연은 그녀를 한껏 째려봤다.“넌 역시 독해 빠졌어!”송연아는 자기랑 아무 상관없는 척 주인 행세를 하며 빈소를 장식하는 사람들더러 구경하지 말고 얼른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고 지시했다.“으악!”백수연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피, 피야!”송연아는 재빨리 송예걸에게 다가갔다. 송예걸의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에 피가 흘렀다.아무래도 머리를 다친 듯싶었다.그녀는 얼른 가서 흉터를 검사했다.백수연도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우리 예걸이 죽는
그녀는 엄마로서 불합격이었다.아이에게 온전한 가정도 선사하지 못하고 아이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다.“네 아빠는...”한혜숙이 입을 열었다.송연아는 그제야 고개 들어 엄마를 쳐다봤다. 한혜숙은 낯빛이 어두웠는데 방금 운 게 분명했다.“미안해, 엄마. 내가 일찍 알렸더라면 아빠랑 마지막으로 만날 수는 있었을 텐데.”송연아는 너무 미안했다.한혜숙은 딸을 원망하지 않았다. 저번에 송연아가 한번 언급을 했었고 그녀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한혜숙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비록 그 사람한테 불만도 많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젠 이 세상에 없으니 과거의 일은 청산해야지. 그래도 한때 부부였던지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려고 왔어. 찬이는 아직 너무 어려. 넌 일단 찬이 데리고 돌아가. 나 혼자 갈게.”한혜숙이 찬이의 물건을 송연아에게 건넸다.송연아는 엄마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내가 함께해줄게...”“찬이 아직 어려서 빈소 같은 곳에 데려가면 안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한혜숙은 무척 강인해 보여도 실은 침착한 척 할 뿐이다.송연아도 엄마가 아빠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아직도 이혼하지 않겠는가.송태범이 너무 갑작스럽게 죽었으니 한혜숙은 분명 상심이 클 것이다.그녀는 딸아이가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한혜숙은 큰 병치레를 한 후 많은 걸 깨달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송태범과 이혼하지 않은 것도 당연히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송태범은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는 딴 여자랑 바람이 났으니까.그에게 남은 건 미련일 뿐 절대 그때의 순수한 감정으로 돌아갈 수 없다.그리고 이젠 실망이 더 컸다!“걱정 마, 연아야.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야. 그때처럼 연약하지 않아. 다시 살아 돌아오면서 많은 걸 깨달았어. 전에는 내가 너무 연약해서 너만 더 고생시켰는데 이젠 더는 그럴 일 없어.”한혜숙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이젠 다시 백수연을 마주해도 절대
오은화는 말하면서 송연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더니 재빨리 달려왔다.“이 아기는 뭐죠?”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은화가 먼저 추측했다.“이슬 씨 아기예요?”안이슬은 송연아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도 그러고 싶은데 운이 따라주지 않네요.”이에 오은화는 더 어리둥절해졌다.“그럼 누구 아이라는 거죠?”“제 애예요.”송연아가 말했다.오은화는 문득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모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아기가 누구 애라고요?”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설마 도련님 애예요?”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네?!”오은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도련님 애가 아니면 누구 애란 말이에요? 사모님이 딴 남자랑 낳은 애라고요?!”송연아는 부인하지 않았다.“네.”“연아야.”이때 분노기가 어린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울려 퍼졌다.송연아가 고개 돌리자 강의건이 지팡이를 짚고 문 앞 계단에 서 있었다. 보아하니 그도 방금 오은화가 한 말을 다 들은 듯싶었다. 강의건은 사색이 되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따라와.”말을 마친 강의건은 강세헌의 서재로 들어갔다.전 집사도 차가운 눈길로 송연아를 쳐다봤다. 마치 그녀가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고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전에 강의건은 송연아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고 그녀에게 기대치도 매우 높았다.그랬던 그녀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송연아는 아이를 안이슬에게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먼저 방에 가 있어요.”안이슬은 알겠다며 조심스럽게 찬이를 안고 방에 들어갔다.오은화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송연아를 쳐다봤다.“사모님...”송연아는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었다. 강의건이 조만간 알게 될 일이니까.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서재로 들어갔고 전 집사가 문을 닫았다.“이리 와.”강의건이 엄숙하게 말했다.송연아는 책상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너 정말 바람났어? 세헌이 배신한 거야?”강의건이 물었다.비록 그도 이 일을 알고
송연아는 무언가에 옥죄인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설마 싫다고 하려는 건 아니지?”강의건은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걸 보더니 말을 이었다.“너 그럼 근본도 없는 잡종이 세헌이를 아빠라고 부르길 원하는 거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세헌이가 받아들일 것 같아? 내가 받아들일 것 같냐고?!”송연아는 확실히 주도면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 가지 일을 소홀히 했다.강세헌은 강씨 일가의 상속자라 재산이 어마어마하다.이런 대가족일수록 혈연관계에 대해 더 까다로운 법이다.강세헌이 전혀 신경 안 쓴다고 해도, 친자식처럼 대한다고 해도 강의건이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겠는가? 제 손주가 강씨 일가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걸 어찌 용납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평범한 가정이면 몰라도 강씨 일가는 재벌 가문이다.황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정도는 아니어도 부자들의 상속권 전쟁을 소홀히 할 순 없다.송연아는 생각이 너무 짧았다.자신과 강세헌만 고려할 뿐 수많은 외부적인 요소를 신경 쓰지 못했다.게다가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찬이 생각은 전혀 못 하고 나만 신경 썼어. 찬이에게 안일한 환경을 제공해줘야 해. 이렇게 복잡한 가정환경에 처하게 하는 게 아니라.’“떠날게요.”송연아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강의건은 그녀의 태도에 흡족한 듯 대답했다.“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더는 난처하게 안 할게. 너랑 세헌의 혼인신고서는 내가 해준 거니까 파기하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해.”“할아버지 분부대로 할게요.”송연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저를 도와 저희 엄마를 구해주셨는데...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했어요...”“그만해. 일이 이 지경으로 됐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아이 더는 우리 집안에서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도와야 할 게 있어.”강의건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송연아가 먼저 잘못했으니 그녀가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여겼다.“말씀하세요.”송연아는 회
“우유 먹이고 달래서 재웠어. 지금도 자.”안이슬이 대답했다. 지금은 송연아가 더 안쓰러웠다. 좀 전에 강의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그가 괜히 송연아를 괴롭힌 게 아닌지 걱정됐다.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우리 먼저 가요.”“어딜 가?”안이슬이 물었다.사실 송연아도 어디 갈지 몰랐다...일단은 찬이를 데리고 무작정 여길 떠나야 한다.안이슬이 그녀를 도왔다.“연아 너 진짜 괜찮아?”송연아의 안색이 너무 어두웠다.“내가 일을 너무 많이 그르친 것 같아요...”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강의건의 등장으로 그녀는 많은 걸 깨달았다.사랑에 눈이 멀어 강세헌과 함께할 생각만 했을 뿐 찬이의 존재가 두 사람에게 가져올 타격은 아예 뒷전이었다. 강세헌의 집안 배경이 워낙 복잡하여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는 아예 끼어들 수 없다.송연아도 찬이가 서러움을 당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찬이를 강씨 일가에 들이면 아이는 무조건 서러움을 당한다!“네가 무슨 일을 그르쳤는데?”안이슬이 물었다.“찬이를 이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어요. 회장님은 오늘 저를 많이 참아주셨어요. 아마도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러신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나랑 찬이 진작 이 집에서 쫓겨났을 거예요.”그녀가 생각이 짧았을 뿐 회장님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안이슬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연아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나 괜찮아요.”송연아는 잘 알고 있다. 모든 건 그녀의 잘못이니 회장님이 그런 요구를 제안했을 뿐이다.‘내가 생각이 짧았어!’송연아는 일단 환경 좋은 호텔에 묵기로 했다.안이슬이 그녀를 도와 짐 정리를 했다.“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야. 앞으로 어디서 지낼지 잘 생각해봐!”어른은 괜찮지만 찬이가 너무 어려 거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없다.“장례식 마치거든 집 사서 엄마랑 찬이랑 함께 지낼 거예요.”송연아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찬이를 내려다보았다.“찬이 낳은 이후로
“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 자격 없는 건 너야.”한혜숙은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반박했는데 이에 백수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송태범과 결혼하지 못해서 아무런 명분이 없는 게 바로 백수연의 가장 큰 고통이다.그 사실을 한혜숙에게 들으니 송연아가 건드렸을 때보다 더 화났고 송예걸이 다친 것까지 생각하자 꾹 참았던 울화가 한순간 폭발해버렸다. 백수연은 한혜숙의 뺨을 내리치려 했는데 송연아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빠 빈소에서 막무가내로 굴지 말아요!”백수연은 고개 돌려 송연아를 보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아주 쌍으로 들이대네. 네 아빠 아플 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더니 죽으니까 재산이라도 나눠 가지려고? 똑똑히 들어, 송씨 집안의 재산은 전부 예걸의 몫이야!”그녀는 곧이어 표독스러운 눈길로 쏘아붙였다.“송연아, 네가 내 아들 다치게 했어. 너 절대 가만 안 둬!”송연아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아예 한쪽 옆으로 패대기쳤다.“적당히 해요!”모든 일은 장례식을 마친 후에 해결해야 한다.백수연은 홀로 송연아와 한혜숙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기에 마지못해 참았다.그녀는 또다시 제 아들이 생각났다. 송예걸이 있었다면 그녀도 한혜숙 모녀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한혜숙은 백수연 같은 인간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송연아를 끌고 한쪽 옆으로 가서 나지막이 물었다.“넌 왜 왔어? 찬이는?”“이슬 선배한테 맡겼어요...”“연아야.”송연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혜숙이 불쑥 가로챘다.송연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 엄마?”한혜숙의 시선이 줄곧 그녀 뒤를 향했다. 송연아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 뒤돌아보니 강세헌이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여긴 왜 왔어요?”강세헌이 대답했다.“너 보러 왔어.”한혜숙은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여긴 엄마가 있으니까 얼른 가봐.”송연아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이제 막 걸어가려는데 강세헌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도
변호사가 내용을 채 읽기도 전에 안달이 난 백수연이 덥석 가로채 갔다. 그녀는 초조하게 서류를 열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송씨 집안의 전 재산을 물려받을 설렘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읽을수록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결국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아니야, 말도 안 돼. 태범 씨 나한테 이럴 수 없어. 이건 가짜야, 가짜라고!”그녀는 미친 듯이 서류를 찢었다.변호사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라 찢어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다들 한패가 되어 날 해칠 셈이지?!”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변호사와 한혜숙, 그리고 송연아까지 째려봤다.“너희 둘, 분명 너희 둘이 수작 부린 거야!”송연아는 백수연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읽으라고 했다!이대로 가만히 있을 백수연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송예걸이 엄마를 말리며 말했다.“엄마, 최 변호사님은 아빠가 생전에 가장 신뢰하시던 분이야. 거짓말할 리가 없다고. 엄마 제발 그만해.”“예걸아, 난 네 엄마야...”“알아, 내 엄마란 걸. 지금 이렇게 난리 친다고 해결되는 게 있어?”송예걸이 되물었다.백수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는 마지못해 변호사가 읽는 유언장의 내용을 들었다.“저는 송태범 씨의 의뢰를 받아 이 유언장을 발표합니다. 송태범 씨는 다음과 같이 재산을 분배했습니다. 송씨 일가의 저택, 펀드, 예금은 아내 한혜숙에게 전부 물려주며 회사는 송연아 씨와 송예걸 씨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여기까지 읽은 변호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여기 특수 사항이 하나 있는데 송연아 씨의 허락 없이 송예걸 씨는 회사의 그 어떤 사무에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회사의 모든 업무를 송연아 씨가 전적으로 책임질 것입니다. 말인즉슨 회사의 지분을 송예걸 씨도 절반 차지하지만 발언권이 없습니다. 발언권을 줄지 말지는 온전히 송연아 씨에게 달렸습니다.”송에걸은 이 말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분노와 원망이 전혀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있었다.
송연아는 곧이어 한혜숙에게 말했다.“가요, 엄마.”한혜숙은 송연아와 함께 송씨 일가에서 나왔다.송태범이 죽으니 송씨 일가도 매우 처량했다.“네 아빠가 편지에 뭐라고 썼어?”한혜숙이 궁금한 듯 물었다.그녀는 진작 묻고 싶었지만 방금 백수연 모자가 방에 있어 말을 아꼈다.송연아가 대답했다.“예걸이를 나한테 맡길 거래.”한혜숙이 쓴웃음을 지었다.“네 아빠 대체 무슨 생각이야? 예걸이를 너한테 맡겨? 네가 무조건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이라도 한 거야? 설사 네가 원한대도 내가 허락 못 해.”송예걸은 어릴 때부터 백수연의 손 밑에서 커왔기에 보고 배운 게 그녀뿐이라 인품이 어디 가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날 위로하느라고 백수연이 날 해치려던 증거를 찾아주셨어.”송연아도 송태범이 너무 매정하다고 느껴졌다.백수연은 젊은 나이에 그와 함께 지내며 명분 없이 아들까지 낳아줬는데 결국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는다니.실로 비참할 따름이었다.세상에서 가장 야속한 게 사람 마음이었던가.한혜숙은 깨달았다.“네 아빠는 일부러 너를 화풀이하게 했어. 이래야만 네가 예걸이를 받아들일 테니까.”송연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엄마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엄마는 아빠를 사랑한 적 있어?”딸의 물음에 한혜숙은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녀는 한참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는데 약간 실망스러운 말투였다.“당연히 사랑했겠지. 안 그러면 결혼할 리도 없잖아. 밖에 여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혼하지 않았어. 실은 네 아빠한테 조금이라도 기대를 품었던 거야.”“아빠가 미워?”“다 죽은 마당에 밉고 말고가 뭐가 중요해. 내가 죽다 살아나니 많은 걸 깨달았어.”한혜숙은 지금 훨씬 활달해졌다.전에 분명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겠지만 정작 남편이 죽으니 과거를 깨끗이 청산했다.최 변호사는 업무 효율이 엄청 빨랐다. 짧디짧은 며칠 사이로 백수연의 일을 모두 끝마쳤다. 그녀가 사람을 해친 증거도 있고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지라 일 처리가 더 깔끔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송씨 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