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다름아닌 송예걸이었다!“예걸아!”백수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녀는 아들이 잘못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백수연은 쇠로 만들어진 틀을 걷히고 기절한 아들을 안으며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예걸아, 정신 좀 차려봐. 엄마 놀라게 하지 말란 말이야. 엉엉...”백수연은 식겁하여 진짜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에게 핏줄이라곤 아들밖에 없어 모든 희망을 그에게 걸었다.송예걸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제 명에 못 살 것이다.이렇게 갖은 애를 쓴 것도 다 아들을 위해서였다!“너 왜 이렇게 멍청해? 너랑 유산을 뺏는 저 여자를 뭣 하러 구하냐고?”송연아는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철철 흘렀지만 상처를 신경 쓸 겨를 없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했다.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송예걸에게 다가가 심하게 다쳤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백수연은 제 아들을 해칠까 봐 그녀를 확 밀쳐냈다.“내 아들 건드리지 마!”송연아는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예걸이 아무 일 없길 바라면 나한테 보여야 할 텐데. 난 의사예요, 예걸이 해치지 않는다고요.”송연아가 차갑게 말했다.백수연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쉴 새 없이 울어대며 질책했다.“너만 아니었어도 예걸이 이렇게 되지 않았어...”“당신이 악한 마음을 품어서 예걸이까지 다친 거잖아!”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보여주기 싫으면 관둬. 이대로 죽어버리면 나랑 유산을 뺏을 사람이 없어지고 좋지 뭐!”송연아는 일부러 백수연의 정곡을 찔렀다!백수연은 그녀를 한껏 째려봤다.“넌 역시 독해 빠졌어!”송연아는 자기랑 아무 상관없는 척 주인 행세를 하며 빈소를 장식하는 사람들더러 구경하지 말고 얼른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고 지시했다.“으악!”백수연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피, 피야!”송연아는 재빨리 송예걸에게 다가갔다. 송예걸의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에 피가 흘렀다.아무래도 머리를 다친 듯싶었다.그녀는 얼른 가서 흉터를 검사했다.백수연도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우리 예걸이 죽는
그녀는 엄마로서 불합격이었다.아이에게 온전한 가정도 선사하지 못하고 아이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다.“네 아빠는...”한혜숙이 입을 열었다.송연아는 그제야 고개 들어 엄마를 쳐다봤다. 한혜숙은 낯빛이 어두웠는데 방금 운 게 분명했다.“미안해, 엄마. 내가 일찍 알렸더라면 아빠랑 마지막으로 만날 수는 있었을 텐데.”송연아는 너무 미안했다.한혜숙은 딸을 원망하지 않았다. 저번에 송연아가 한번 언급을 했었고 그녀가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한혜숙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비록 그 사람한테 불만도 많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젠 이 세상에 없으니 과거의 일은 청산해야지. 그래도 한때 부부였던지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려고 왔어. 찬이는 아직 너무 어려. 넌 일단 찬이 데리고 돌아가. 나 혼자 갈게.”한혜숙이 찬이의 물건을 송연아에게 건넸다.송연아는 엄마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내가 함께해줄게...”“찬이 아직 어려서 빈소 같은 곳에 데려가면 안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한혜숙은 무척 강인해 보여도 실은 침착한 척 할 뿐이다.송연아도 엄마가 아빠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아직도 이혼하지 않겠는가.송태범이 너무 갑작스럽게 죽었으니 한혜숙은 분명 상심이 클 것이다.그녀는 딸아이가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한혜숙은 큰 병치레를 한 후 많은 걸 깨달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송태범과 이혼하지 않은 것도 당연히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송태범은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는 딴 여자랑 바람이 났으니까.그에게 남은 건 미련일 뿐 절대 그때의 순수한 감정으로 돌아갈 수 없다.그리고 이젠 실망이 더 컸다!“걱정 마, 연아야.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야. 그때처럼 연약하지 않아. 다시 살아 돌아오면서 많은 걸 깨달았어. 전에는 내가 너무 연약해서 너만 더 고생시켰는데 이젠 더는 그럴 일 없어.”한혜숙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이젠 다시 백수연을 마주해도 절대
오은화는 말하면서 송연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더니 재빨리 달려왔다.“이 아기는 뭐죠?”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은화가 먼저 추측했다.“이슬 씨 아기예요?”안이슬은 송연아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도 그러고 싶은데 운이 따라주지 않네요.”이에 오은화는 더 어리둥절해졌다.“그럼 누구 아이라는 거죠?”“제 애예요.”송연아가 말했다.오은화는 문득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모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아기가 누구 애라고요?”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설마 도련님 애예요?”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네?!”오은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도련님 애가 아니면 누구 애란 말이에요? 사모님이 딴 남자랑 낳은 애라고요?!”송연아는 부인하지 않았다.“네.”“연아야.”이때 분노기가 어린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울려 퍼졌다.송연아가 고개 돌리자 강의건이 지팡이를 짚고 문 앞 계단에 서 있었다. 보아하니 그도 방금 오은화가 한 말을 다 들은 듯싶었다. 강의건은 사색이 되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따라와.”말을 마친 강의건은 강세헌의 서재로 들어갔다.전 집사도 차가운 눈길로 송연아를 쳐다봤다. 마치 그녀가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고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전에 강의건은 송연아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고 그녀에게 기대치도 매우 높았다.그랬던 그녀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송연아는 아이를 안이슬에게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먼저 방에 가 있어요.”안이슬은 알겠다며 조심스럽게 찬이를 안고 방에 들어갔다.오은화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송연아를 쳐다봤다.“사모님...”송연아는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었다. 강의건이 조만간 알게 될 일이니까.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서재로 들어갔고 전 집사가 문을 닫았다.“이리 와.”강의건이 엄숙하게 말했다.송연아는 책상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너 정말 바람났어? 세헌이 배신한 거야?”강의건이 물었다.비록 그도 이 일을 알고
송연아는 무언가에 옥죄인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설마 싫다고 하려는 건 아니지?”강의건은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걸 보더니 말을 이었다.“너 그럼 근본도 없는 잡종이 세헌이를 아빠라고 부르길 원하는 거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세헌이가 받아들일 것 같아? 내가 받아들일 것 같냐고?!”송연아는 확실히 주도면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 가지 일을 소홀히 했다.강세헌은 강씨 일가의 상속자라 재산이 어마어마하다.이런 대가족일수록 혈연관계에 대해 더 까다로운 법이다.강세헌이 전혀 신경 안 쓴다고 해도, 친자식처럼 대한다고 해도 강의건이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겠는가? 제 손주가 강씨 일가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걸 어찌 용납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평범한 가정이면 몰라도 강씨 일가는 재벌 가문이다.황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정도는 아니어도 부자들의 상속권 전쟁을 소홀히 할 순 없다.송연아는 생각이 너무 짧았다.자신과 강세헌만 고려할 뿐 수많은 외부적인 요소를 신경 쓰지 못했다.게다가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찬이 생각은 전혀 못 하고 나만 신경 썼어. 찬이에게 안일한 환경을 제공해줘야 해. 이렇게 복잡한 가정환경에 처하게 하는 게 아니라.’“떠날게요.”송연아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강의건은 그녀의 태도에 흡족한 듯 대답했다.“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더는 난처하게 안 할게. 너랑 세헌의 혼인신고서는 내가 해준 거니까 파기하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해.”“할아버지 분부대로 할게요.”송연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저를 도와 저희 엄마를 구해주셨는데...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했어요...”“그만해. 일이 이 지경으로 됐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아이 더는 우리 집안에서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도와야 할 게 있어.”강의건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송연아가 먼저 잘못했으니 그녀가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여겼다.“말씀하세요.”송연아는 회
“우유 먹이고 달래서 재웠어. 지금도 자.”안이슬이 대답했다. 지금은 송연아가 더 안쓰러웠다. 좀 전에 강의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그가 괜히 송연아를 괴롭힌 게 아닌지 걱정됐다.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우리 먼저 가요.”“어딜 가?”안이슬이 물었다.사실 송연아도 어디 갈지 몰랐다...일단은 찬이를 데리고 무작정 여길 떠나야 한다.안이슬이 그녀를 도왔다.“연아 너 진짜 괜찮아?”송연아의 안색이 너무 어두웠다.“내가 일을 너무 많이 그르친 것 같아요...”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강의건의 등장으로 그녀는 많은 걸 깨달았다.사랑에 눈이 멀어 강세헌과 함께할 생각만 했을 뿐 찬이의 존재가 두 사람에게 가져올 타격은 아예 뒷전이었다. 강세헌의 집안 배경이 워낙 복잡하여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는 아예 끼어들 수 없다.송연아도 찬이가 서러움을 당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찬이를 강씨 일가에 들이면 아이는 무조건 서러움을 당한다!“네가 무슨 일을 그르쳤는데?”안이슬이 물었다.“찬이를 이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어요. 회장님은 오늘 저를 많이 참아주셨어요. 아마도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러신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나랑 찬이 진작 이 집에서 쫓겨났을 거예요.”그녀가 생각이 짧았을 뿐 회장님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안이슬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연아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나 괜찮아요.”송연아는 잘 알고 있다. 모든 건 그녀의 잘못이니 회장님이 그런 요구를 제안했을 뿐이다.‘내가 생각이 짧았어!’송연아는 일단 환경 좋은 호텔에 묵기로 했다.안이슬이 그녀를 도와 짐 정리를 했다.“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야. 앞으로 어디서 지낼지 잘 생각해봐!”어른은 괜찮지만 찬이가 너무 어려 거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없다.“장례식 마치거든 집 사서 엄마랑 찬이랑 함께 지낼 거예요.”송연아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찬이를 내려다보았다.“찬이 낳은 이후로
“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 자격 없는 건 너야.”한혜숙은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반박했는데 이에 백수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송태범과 결혼하지 못해서 아무런 명분이 없는 게 바로 백수연의 가장 큰 고통이다.그 사실을 한혜숙에게 들으니 송연아가 건드렸을 때보다 더 화났고 송예걸이 다친 것까지 생각하자 꾹 참았던 울화가 한순간 폭발해버렸다. 백수연은 한혜숙의 뺨을 내리치려 했는데 송연아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빠 빈소에서 막무가내로 굴지 말아요!”백수연은 고개 돌려 송연아를 보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아주 쌍으로 들이대네. 네 아빠 아플 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더니 죽으니까 재산이라도 나눠 가지려고? 똑똑히 들어, 송씨 집안의 재산은 전부 예걸의 몫이야!”그녀는 곧이어 표독스러운 눈길로 쏘아붙였다.“송연아, 네가 내 아들 다치게 했어. 너 절대 가만 안 둬!”송연아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아예 한쪽 옆으로 패대기쳤다.“적당히 해요!”모든 일은 장례식을 마친 후에 해결해야 한다.백수연은 홀로 송연아와 한혜숙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기에 마지못해 참았다.그녀는 또다시 제 아들이 생각났다. 송예걸이 있었다면 그녀도 한혜숙 모녀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한혜숙은 백수연 같은 인간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송연아를 끌고 한쪽 옆으로 가서 나지막이 물었다.“넌 왜 왔어? 찬이는?”“이슬 선배한테 맡겼어요...”“연아야.”송연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혜숙이 불쑥 가로챘다.송연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 엄마?”한혜숙의 시선이 줄곧 그녀 뒤를 향했다. 송연아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 뒤돌아보니 강세헌이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여긴 왜 왔어요?”강세헌이 대답했다.“너 보러 왔어.”한혜숙은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여긴 엄마가 있으니까 얼른 가봐.”송연아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이제 막 걸어가려는데 강세헌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도
변호사가 내용을 채 읽기도 전에 안달이 난 백수연이 덥석 가로채 갔다. 그녀는 초조하게 서류를 열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송씨 집안의 전 재산을 물려받을 설렘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읽을수록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결국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아니야, 말도 안 돼. 태범 씨 나한테 이럴 수 없어. 이건 가짜야, 가짜라고!”그녀는 미친 듯이 서류를 찢었다.변호사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라 찢어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다들 한패가 되어 날 해칠 셈이지?!”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변호사와 한혜숙, 그리고 송연아까지 째려봤다.“너희 둘, 분명 너희 둘이 수작 부린 거야!”송연아는 백수연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읽으라고 했다!이대로 가만히 있을 백수연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송예걸이 엄마를 말리며 말했다.“엄마, 최 변호사님은 아빠가 생전에 가장 신뢰하시던 분이야. 거짓말할 리가 없다고. 엄마 제발 그만해.”“예걸아, 난 네 엄마야...”“알아, 내 엄마란 걸. 지금 이렇게 난리 친다고 해결되는 게 있어?”송예걸이 되물었다.백수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는 마지못해 변호사가 읽는 유언장의 내용을 들었다.“저는 송태범 씨의 의뢰를 받아 이 유언장을 발표합니다. 송태범 씨는 다음과 같이 재산을 분배했습니다. 송씨 일가의 저택, 펀드, 예금은 아내 한혜숙에게 전부 물려주며 회사는 송연아 씨와 송예걸 씨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여기까지 읽은 변호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여기 특수 사항이 하나 있는데 송연아 씨의 허락 없이 송예걸 씨는 회사의 그 어떤 사무에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회사의 모든 업무를 송연아 씨가 전적으로 책임질 것입니다. 말인즉슨 회사의 지분을 송예걸 씨도 절반 차지하지만 발언권이 없습니다. 발언권을 줄지 말지는 온전히 송연아 씨에게 달렸습니다.”송에걸은 이 말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분노와 원망이 전혀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있었다.
송연아는 곧이어 한혜숙에게 말했다.“가요, 엄마.”한혜숙은 송연아와 함께 송씨 일가에서 나왔다.송태범이 죽으니 송씨 일가도 매우 처량했다.“네 아빠가 편지에 뭐라고 썼어?”한혜숙이 궁금한 듯 물었다.그녀는 진작 묻고 싶었지만 방금 백수연 모자가 방에 있어 말을 아꼈다.송연아가 대답했다.“예걸이를 나한테 맡길 거래.”한혜숙이 쓴웃음을 지었다.“네 아빠 대체 무슨 생각이야? 예걸이를 너한테 맡겨? 네가 무조건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이라도 한 거야? 설사 네가 원한대도 내가 허락 못 해.”송예걸은 어릴 때부터 백수연의 손 밑에서 커왔기에 보고 배운 게 그녀뿐이라 인품이 어디 가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날 위로하느라고 백수연이 날 해치려던 증거를 찾아주셨어.”송연아도 송태범이 너무 매정하다고 느껴졌다.백수연은 젊은 나이에 그와 함께 지내며 명분 없이 아들까지 낳아줬는데 결국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는다니.실로 비참할 따름이었다.세상에서 가장 야속한 게 사람 마음이었던가.한혜숙은 깨달았다.“네 아빠는 일부러 너를 화풀이하게 했어. 이래야만 네가 예걸이를 받아들일 테니까.”송연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엄마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엄마는 아빠를 사랑한 적 있어?”딸의 물음에 한혜숙은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녀는 한참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는데 약간 실망스러운 말투였다.“당연히 사랑했겠지. 안 그러면 결혼할 리도 없잖아. 밖에 여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혼하지 않았어. 실은 네 아빠한테 조금이라도 기대를 품었던 거야.”“아빠가 미워?”“다 죽은 마당에 밉고 말고가 뭐가 중요해. 내가 죽다 살아나니 많은 걸 깨달았어.”한혜숙은 지금 훨씬 활달해졌다.전에 분명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겠지만 정작 남편이 죽으니 과거를 깨끗이 청산했다.최 변호사는 업무 효율이 엄청 빨랐다. 짧디짧은 며칠 사이로 백수연의 일을 모두 끝마쳤다. 그녀가 사람을 해친 증거도 있고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지라 일 처리가 더 깔끔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송씨 일가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