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어 피하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임지훈이 말했다.“강 대표님 오셨는데 가서 인사하실래요?”그의 목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강세헌이 고개를 돌리자 송연아는 숨을 곳이 없어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비서님한테 볼 일이 있어서 왔어요.”“무슨 일인데?”강세훈이 물었다.사실 강세헌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물었다.목적은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지 보기 위해서였다.송태범의 장례식이 있던 지난 며칠 동안 그녀는 바쁘다는 이유로 빌라에 자주 돌아가지 않았고, 강세헌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송연아가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별일 아니에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강세헌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날 따라와.”그렇게 말한 후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갔다.송연아가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며 따라가지 않자, 임지훈은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지금 강 대표님께서 연아 씨한테 잘해준다고 해서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시니까 사무실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송연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알아요. 그런데 저분은 해고되지 않았나요? 왜 아직 회사에 있죠?”송연아가 물었다.임지훈은 고개를 들어 이지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했다.“해고된 건 맞는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 대표님께서 다시 일자리를 마련해 주셨어요. 지금은 홍보부 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방금은 서류를 전달하러 온 것뿐이에요.”임지훈도 그 점이 의아했다.강세헌은 분명히 송연아에게만 관심이 있다.그는 이지안을 싫어한다.그런데 또 갑자기 일자리를 마련해 줬다.지금 임지훈은 강세헌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혹시 강세헌이 이지안에게 관심이 생긴 걸까?송연아는 웃으며 물었다.“세헌 씨의 행동이 이상하지 않나요?”임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재빨리 반응하여 다시 고개를 저었다.“강 대표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시니까 오해하지
“비즈니스에 대해 잘 몰라서 조언을 구하려고 임지훈을 찾아온 게 아니야?”강세헌의 목소리는 낮게 눌려 차분한 듯 들렸지만 사실은 은근히 격앙되어 있었다!송연아는 그의 시선에 뻔뻔하게 맞섰다.“제가 당분간 저희 아빠 회사를 맡게 되었어요. 전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회사 경영에 전혀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임 비서님 도움을 받으러 온 거고요. 세헌 씨가 바쁠 것 같아서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찾지 않은 거예요...”“그래?”강세헌의 목구멍에서 코웃음이 흘러나왔다.“말해봐, 또 무슨 일 있어!”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없어요...”“계속 숨길래?”강세헌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할아버지가 불러서 무슨 말을 한 거 아니야?”송연아 얼굴의 미소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졌다.“너더러 나를 떠나라고 했어?”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아니요.”“그럼 요즘 왜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했어?”그는 추궁하듯이 질문을 던졌다.송연아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왜냐하면 내가 감히...”‘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깊게 빠질까 봐 두려워요.’“감히 뭐?”강세헌은 앞으로 나아갔고 송연아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피할수록 강세헌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송연아는 강세헌을 쳐다보지 못하고 말했다.“난 아직 다른 볼 일이 있어요...”강세헌은 이 시점에서도 그녀가 자신에게 정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그녀를 문으로 밀쳤다. 쾅! 그녀의 뒤통수가 문짝에 부딪혔고 머리가 윙윙거렸다!고통으로 인해 의식이 흐릿해졌다!강세헌은 불도저처럼 가까이 와서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힘껏 입에 키스했다!아프다!송연아가 느낀 것은 아픔뿐이었다.키스라고 하기엔 깨무는 것에 가까웠다.강세헌은 난폭했고 그녀를 점유하려는 듯이 요구했다.송연아는 저항하지 않았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그의 분노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하지만 강세헌은 점점 더 무자비해졌고, 셔츠 자
“임 비서님은 세헌 씨 옆에 오래 계셨으니 세헌 씨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저한테 알려주시면 안 돼요?”이지안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임지훈은 경계했다.그녀는 “강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강 대표님께서는 이미 결혼하셨고 아시다시피 방금 전에 보셨던 송연아 씨가 대표님의 부인이세요. 강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왜 묻는 거예요?”임지훈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이지안이 이렇게 묻자마자 그는 이지안이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지 알아챘다.그는 말할 때 일부러 “강 대표님”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그녀에게 여기서 일하는 이상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하는듯했다.그리고 선을 넘지 말라고!이지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저는 그저...”“일하러 왔으면 본분에 충실하게 일만 해요. 문제 일으키지 말고요. 여자는 자중할 줄 알아야죠. 유부남을 탐내지 말아요!”임지훈은 경고하듯 말했다.말을 마치고 그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이지안의 안색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순진하고 무해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임지훈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쓸데없이 참견하고 있다고 느꼈다.그는 단지 강세헌의 비서일 뿐인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그녀는 몸 옆에 늘어뜨리고 있던 두 손을 꽉 쥐었다.강세헌의 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이지안은 임지훈이 자신을 정중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기를 원했다!회사에서 나온 임지훈은 차를 운전하고 송경 그룹으로 갔다.송연아는 사무실에 앉아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읽었지만 이해를 못 했다. 그녀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용어가 많았다.송연아는 이 분야의 지식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들어오라고 말했다.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송 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임지훈인 것을 확인한 송연아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들어오라 하고 먼저 나가 있
“송연아 씨, 어르신께서 부탁하신 일은 전혀 진척이 없네요? 오늘 도련님을 만나러 회사까지 가셨다고 들었는데요?”임지훈이 떠난 후 전 집사는 송연아를 부르는 호칭마저 바꿨다.송연아가 말했다.“세헌 씨를 찾으러 간 게 아니라 임지훈 씨를 찾으러 갔어요...”“누구를 찾으러 가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어르신께서 시키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잖아요!”전 집사는 매우 직설적으로 말했다.“송연아 씨가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하니까 이제 어르신께서 직접 나서실 거예요. 송연아 씨는 도련님을 그쪽으로 유인하는 것을 도와주기만 하면 임무를 완수한 셈이에요.”“어디로 유인해야 하는 거죠?”“랭턴 호텔의 로얄 스위트룸으로요.”전 집사가 말했다.송연아는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강의건 어르신은 강세헌과 이지안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 생각인 걸까?“왜요, 싫어요?”전 집사가 물었다.송연아는 확실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의 침대로 보내라고?“어르신과 약속한 것을 잊은 거예요?”전 집사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어르신께서는 이미 송연아 씨와 도련님의 이혼 증명서를 다 준비해 놓으셨어요. 송연아 씨가 먼저 배은망덕하게 어르신의 믿음을 저버린 것이니 어르신을 탓하지 마세요.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어르신의 신뢰를 깨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송연아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돈이 귀신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애초에 강세헌이 결혼을 거부했을 때 강의건은 대신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다.이제 강세헌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데, 강의건은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혼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사람은 역시 달랐다.“알았어요.”송연아는 자신이 신뢰를 깨뜨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르신께서는 송연아 씨가 약속을 지키길 바라고 있...”전 집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송연아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녀가 전화를 받자 건너편
송연아가 걸어 들어왔다.“강 대표님.”강세헌은 그 호칭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버렸다.이때 송연아는 그의 기분에 신경 쓸 컨디션이 아니었고, 그의 가라앉은 안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오늘 밤, 시간 있어요?”강세헌은 뒤로 의자에 몸을 기대어 무심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호텔 방을 예약했어요.”송연아는 몸 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쥐었다가 풀고 다시 꽉 쥐었다가 풀면서 반복했다. 몇 번 하고 나서야 차분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랭턴 호텔에 로얄 스위트룸...”“송연아.”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세헌이 끼어들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그는 가슴이 뛰는 것을 억누르며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송연아가 먼저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가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만 체면 때문에 그녀의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송연아가 물었다.“오늘 시간 안 되는 거죠?”“시간 있어.”그는 너무 빨리 대답했고, 그 단어는 그 순간 그의 기분을 폭로했다.송연아는 그가 바쁘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그러나 동시에 그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만약 그가 가기 싫다고 하면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게 되고 아이가 위험해지면 어쩌지?그녀의 마음은 갈등과 고통에 휩싸였다.“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일 보세요.”그녀가 돌아선 후 강세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면서 말했다.“같이 가.”송연아는 고개를 숙였다.“네가 먼저 적극적으로 날 찾아와 놓고선 아직도 쑥스러워?”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차피 그는 송연아 앞에서는 못난 모습을 보인다.그녀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강세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맞춰줄 수 있었다.“언제부터 그렇게 마음을 열었어?”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송연아가 이렇게 솔직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그녀가 순수하고 내성적이든, 정열적이고 거침이 없든, 그는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좋아했다.그녀가 송연아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마음을 설레
강세헌은 처음에는 송연아의 “유혹”에 휩쓸려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에는 자신에게 차갑게 대했던 그녀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텔까지 가려고 하는지 의아했다. 분명 논리에 맞지 않았다.“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은데 그것도 잘못된 건가요?”“뭐?”“오늘 임지훈 씨가 회사에 오셔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신 게 모두 세헌 씨 덕분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송연아가 설명했다.“그것 때문이라고?”강세헌의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았다. 송연아가 그를 좋아하거나 사랑해서 그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도움을 준 것에 보답하고 싶은 이유에서라니?“하...”강세헌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웃음은 차갑고 침울했다.“나한테 보답하기 위해서 헌신하겠다고?”“헌신”이라는 단어는 송연아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녀는 쓰라림을 억누르고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세헌 씨를 좋아해요.”강세헌은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송연아의 이 말이 너무 치명적인 듯했다!그는 몇 초간 얼어있었다.“송연아.”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송연아가 말했다.“알아요.”오늘 그녀가 한 모든 일은 어쩔 수 없이 한 것들이었고, 오직 이 말만 그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내가 기꺼이 원한 거예요.”강세헌은 자신이 그녀의 앞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기쁨과 분노가 그녀의 미소와 찡그린 눈썹에 묶여 있었다.“너.”강세헌은 그녀의 말 앞에서 무력했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그는 자신이 송연아의 손에 잡혔다고 느꼈다!강세헌은 차에 시동을 걸고 호텔로 갔다.방에 들어가자 송연아는 그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씻어요.”강세헌은 송연아의 허리를 감싸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귀에 가까이 속삭였다.“못 참겠어.”
송연아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도와줘요... 읍...”누군가 그녀의 입을 막았고 그녀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뒤에 있는 사람의 힘이 너무 세서 그녀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저항하는 와중에 송연아는 운전하는 사람이 임지훈인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놀라 동공이 확 수축되었고 뒤를 돌아보니 강세헌도 있었다.어... 어떻게 그가?지금 이지안과 함께 호텔에 있어야 하지 않나?그리고 강세헌은 자신이 따라준 와인을 마셨으니 지금쯤이면 약에 취해있어야 할 텐데!송연아는 몸부림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세헌 씨...”차창 밖의 화려한 네온 불빛이 빠르게 깜빡이고 수많은 차들이 휙휙 지나갔다. 강세헌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어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송연아, 감히 나를 다른 여자에게 보내?”강세헌의 목소리는 마치 마른 우물에서 울리는 것처럼 굵었고, 메아리치는 것처럼 소리가 차갑고 깊었다!송연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강세헌은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기분이 아니었다.그녀가 한 건 한 거고!했으면 인정해야지!강세헌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송연아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난...”이때 임지훈은 차를 운전하고 회사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안전하게 멈춘 뒤 차에서 내리고 떠났다!주차장 안은 매우 어두웠고 칠흑 같았다.송연아가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강세헌은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송연아는 강세헌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엄청 화가 났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호흡이 기복이 전혀 없이 차분했기 때문에 그녀는 강세헌이 그 와인을 마셨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 와인을 안 마셨죠?”송연아가 물었다.“송연아, 넌 그렇게 내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기를 원해? 내가 원하지 않을까 봐 겁이 났어? 그래서 약까지 타고 날 마시라고 회유한 거야?”송연아는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며 물
말을 마친 강세헌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쾅 하고 소리가 났다!차 문이 닫혔다.송연아는 깜짝 놀랐다.“세헌 씨?”그날 밤 그 남자가 강세헌이라고?송연아는 아픈 몸을 일으켜 차 문을 열고 내려 그를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아무 옷이나 집어 들어 가슴을 가리고 외쳤다.“세헌 씨 돌아와요!”지하 주차장은 너무 어두웠다!송연아가 소리를 질렀을 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렸고 비상등이 켜졌지만 강세헌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떠나갔다.송연아는 웃었다. 웃고 있었지만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헤픈 여자가 아니었다.그녀에겐 남자가 한 명뿐이었다.강세헌 한 명뿐이었다.그녀가 좋아하고 함께 하고 있고 싶어 하는 남자!송연아는 코를 세게 훌쩍거렸다.그녀는 몸의 고통도 신경 쓰지 않고 옷을 집어 들어 서둘러 입었다. 그녀는 강의건을 찾아가서 자신의 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 강세헌의 아이라는 것을 말해야 했다!옷을 다 입은 송연아는 차에서 내렸고 발은 땅에 닿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재빨리 차 문을 잡아서 다행이었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묶었다. 저녁이라 주차장은 조용했고 걷는 발소리가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주차장에서 걸어 나온 송연아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그룹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사장 사무실!강세헌은 통유리 창 앞에 서 있었다. 반대편에는 강가의 불빛들이 아른거렸고 희미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반사되어 얼굴 윤곽이 어둡고 불분명했다.쿵쿵--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임지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 대표님.”강세헌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옷깃을 가다듬었다.“모니터실로 가서 지하 주차장의 영상을 지워. 앞으로 송경 그룹에 갈 필요도 없고 아주머니한테 송연아의 물건을 모두 버리라고 말해. 더 이상 그 여자에 대한 어떤 흔적도 보고 싶지 않아.”임지훈은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