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슬은 잘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기 싫어서 주방에 들어가서 아기 용품을 씻었다.“점심에 뭐 드실 거예요?”“네?”안이슬은 이 남자는 왜 매번 이렇게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비비안 씨는 밥할 줄 모르던데, 강문희 씨도 못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지 않고서는 비비안이 주방을 폭파할 때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안이슬은 좀 있으면 어차피 임 언니가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이슬이 대답하지 않자, 단기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점심은 제가 할 건데 뭘 드시고 싶어요?”안이슬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고 단기문이 서둘러 해명했다.“저 남자여도 요리를 제법 잘해요. 선생님한테만 알려드리는 건데 저 아직 싱글이에요. 저 같은 남자 많지 않아요. 강 선생님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 없으시면 저랑 잘 지내보시지 않을래요?”안이슬은 이같이 가벼운 남자는 싫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실내 살균기를 세척하고 주방을 나섰는데 단기문이 쫓아가며 말했다.“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전 음식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어요.”안이슬은 한마디만 하고 바로 그의 시선을 벗어났다. 단기문은 안이슬이 분명 자기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나?’“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제가 나쁜 사람이면 재경이가 저를 부르지 않았겠죠. 그렇게 경계하시지 않아도 돼요. 매일 그렇게 이것저것 경계하고 사시는 거 피곤하지 않아요?”안이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점심을 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어서 점심 하러 가세요.”단기문이 말했다.“지금 상황을 그냥 지나가려고 하시는 같은데요?”“아니에요. 제가 사람과 대화하는 걸 잘못해서 그래요.”단기문은 심재경과 약속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 “알았어요.”안이슬은 바로 방에 들어가 숨어서 샛별을 지켰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서 단기문이 밥 먹으러 나오라고 하자 안이슬
안이슬은 충격에 휩싸인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이 남자의 말뜻은 심재경이 내 정체를 알아챘다는 건가? 그러면서 내색을 안 하는 거야?’안이슬은 순간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는데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만약 계속 생각하다 보면 여기에서 계속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샛별이 옆에 계속 남아서 보살피려면 들켰더라도 그녀는 모른 척해야만 했다. 만약 이대로 정체를 밝히고 나면 심재경과 같은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없기에 샛별이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모르는 체해야 했다.“저는 결혼했었어요. 이제 결혼에 얽매이는 것도 싫고 또 남자는 더더욱 싫어요.”그러고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단기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역시 두 사람 비슷한 데가 있단 말이야. 어쩜 똑같이 똥고집이지.”안이슬이 심각하게 말했다.“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하지 마세요.”단기문이 말했다.“저 농담한 거 아니에요.”그때 갑자기 샛별이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안이슬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곧바로 샛별이 곁으로 갔다. 잠에서 깬 샛별이는 피부가 새하얀데 울어서 눈시울이 빨개졌고 눈가에는 눈물이 구슬처럼 맺혀있었다. 안이슬은 휴지로 눈물을 살포시 닦아내고 일으켜 주었다.“우리 샛별이 배고파?”안이슬이 진작에 준비한 분유 병을 샛별이 앞에 보여주자, 바로 울음을 그쳤다.“샛별아, 양아빠도 보러 왔어.”단기문도 작은 딸랑이를 들고 샛별이와 놀아주었다.“우리 샛별이 양아빠 기억하나 보네. 아이고 착해라.”안이슬은 샛별이가 단기문을 보고 환하게 웃어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샛별이가 웃느라 분유가 옆으로 흘러나오자 안이슬이 닦아주었다.잘 먹은 샛별이는 기분이 좋아서 카펫 위에서 손을 휘젓고 발버둥을 쳤는데 마치 춤추는 것 같았다.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쁜지 단기문이 장난감으로 놀아주자, 손을 내밀고 장난감을 가지려고 했다. 바로 그때 심재경의 영상통화가 왔다. 단기문은 발걸음을 멈췄는데 심재경인 걸 확인하고는 받았다.“강 선생님은?”단기문은 입을
심재경은 그런 안이슬과 샛별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휴대폰 거치대처럼 휴대폰을 들고 있는 단기문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단기문, 샛별이 안 보여, 조금 왼쪽으로 해봐.”그러자 단기문은 왼쪽으로 조금 움직였다.“단기문,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봐.”심재경의 불평불만을 들으며 단기문은 계속 위치를 조정하더니 결국은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심재경, 나 휴대폰 거치대나 하려고 온 거 아니야.”그리고는 휴대폰을 안이슬에게 주고 옆에 앉아서 씩씩거렸다. 안이슬은 다시 휴대폰을 잘 세팅해 놓자, 샛별이가 휴대폰 속의 심재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심재경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는데 당장이라도 집에 가서 샛별이를 잘 안아주고 싶었다. 다만 지금 팀의 진척이 너무 늦어서 마음대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는데 오늘 들어오는 자료를 보면 판단할 수 있었다.“샛별아, 조금만 기다려줘 아빠 금방 돌아갈게.”“대표님, 돌아오시는 거예요?”안이슬은 지금 이대로 샛별이와 둘이 지내는 게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심재경이 돌아온다고 하니 불편할 것 같았는데 마침 그때 심재경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조금 더 걸려야 해요. 하지만 가능한 빨리 돌아갈 수 있게 할게요.”아까 말은 그냥 아이에게 한 말이었는데 안이슬이 믿었던 것이다.‘휴, 오지 않는다니 다행이다.’“그런데 비비안 씨가 안 보이네요?”‘그러네, 어디 갔지?’안이슬도 그제야 비비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단기문이 오고 나서 비비안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간 것 같은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비비안은 그때 길에 있었는데 옆좌석에는 거위 구이를 가지고 서둘러 심재경이 있는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심재경은 곧바로 단기문이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안이슬만 귀찮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심재경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방까지 옮기게 해서 미안해요.”안이슬은 개의치 않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딸이 있기에 딸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방이든 침대
안이슬은 여전히 영상화면을 등지고 말했다.“제 옷 단추가 열려 있는 것을 보시고도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잖아요. 그러시고도 존중한대요?”“그래요? 저는 못 봤는데요. 설마 제가 보기를 원하신 건가요?”심재경은 일에 지쳤는지 몸을 뒤로 젖히고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그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데 확실히 그는 남자였고 또 안이슬은 그가 좋아하는 여자였기에 생각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자로서 아무 느낌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는 몸도 생리적으로도 너무나 건강한 남자인데 말이다.안이슬은 샛별이를 위하여 이를 악물고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앞으로 각별히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대표님, 샛별이 잘 시간이에요. 영상 끊을게요.”그녀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말했는데 심재경은 거절했다.“제가 월급을 드리는 거니까, 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가요?”안이슬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지금 심재경이 월급을 주고 고용한 베이비시터이기에 고용주의 요구를 존중해야 했다.하지만…‘왜 지금 이 순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거지?’그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안이슬은 샛별이를 안고 천천히 돌아섰지만, 심재경과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심재경은 안이슬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반응해 주기를 바라며 줄곧 눈길 떼지 않고 바라봤다. 그런데도 안이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대치를 하다가 결국 심재경이 참지 못하고 굴복했다.“샛별이 돌보느라 고생이 많아요.”“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편히 쉬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심재경은 영상 통화를 끊었는데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지자, 안이슬 눈에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이슬의 기분을 감지한 듯 오리를 가지고 놀던 손을 멈췄다.“음… 이… 아…”안이슬은 감정을 추스르고 샛별이를 껴안았다.“엄마는 네가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싶단다.”안이슬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감정을 추스르고는 샛별이
안이슬은 비비안의 일에 신경을 쓰기 싫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이봐요? 무슨 뜻이에요?”비비안은 안이슬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강문희 씨, 거기 서요.”비비안은 화가 잔뜩 올랐다.안이슬은 그녀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심 대표님이 당신을 만나주지 않은 걸 왜 저한테 그래요. 제가 만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말하면서 안이슬은 비비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그런데 왜 꼴이 그래요?”“휴,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나서 견인차를 불렀는데 휴대폰이 또 배터리가 다 되어서 차에서 밤을 새웠어요. 저 지금 씻지도 못했어요.”안이슬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어서 가서 씻어요. 저도 옷 갈아입으러 가야겠어요.”“저기요!”비비안은 심재경에게서 받은 화를 풀지 못한 듯 다른 사람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니 안이슬에게 화풀이했다.“그게 무슨 태도예요? 지금 저를 지시해요?”“…”안이슬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상대하기도 싫었지만, 비비안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참다못해 안이슬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이른 아침부터 왜 이래요? 좀 조용해요. 이러다가 샛별이 깨면 저 심 대표님께 비비안 씨가 성격이 안 좋고 목소리도 높아서 샛별이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다 말씀드릴 거예요.”비비안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자기가 협박을 받았다는 생각에 그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저를 고발하겠다고요? 어이가 없어서!”비비안은 너무 화가 치밀었는지 발까지 쿵쿵 굴렀다.안이슬은 냉정하게 그녀를 보며 말했다.“남자들은 부드럽고 온순한 여자를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을 봐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표정도 일그러지고 심 대표님이 만나주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났더라면 아마 진작이 해고했을 거예요.”안이슬이 비비안의 아픈 상처를 콕 집어서 말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온순해졌다. 비록 화가 났지만, 안이슬의 말을 생각하며 억지로 참았다.‘그래 참자, 참아...’비비안이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자, 안이슬은 안심
“내가 여기에 오는데 비비안 씨 허락을 받아야 해요? 당신은 심재경의 임시 비서일 뿐이면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단기문이 비비안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비비안은 깜짝 놀랐다. 단기문이 늘 소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막되게 굴었던 것이다. 비비안은 억지로 침착하게 말했다.“저는 심 대표님이 부르셔서 온 거예요.”단기문이 물었다.“재경이가 왜 당신을 여기에 보냈는데요?”비비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대표님은 강문희 씨가 혼자 힘들까 봐 청소를 책임지라고 하셨어요.”“그런데 지금 도와주러 온거 맞아요?”단기문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조롱하는 어조로 말했다.“여기에 향수를 누리러 온거 아니고요?”비비안은 고개를 숙여 자기가 아직 잠옷 차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방금까지 자고 있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재경의 말을 듣고 거위 구이를 사 들고 심재경을 만나러 갔는데 그가 만나주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더니 화가 치밀었다.“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저한테 거위 구이를 사서 대표님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심 대표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다가 차가 고장나서 길에서 밤을 새웠다고요. 아니면 왜 지금까지 잤겠어요. 이건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단기문이 웃음을 터뜨렸다.“그건 당신이 멍청해서 그런 거죠. 왜 내 탓을 해요? 아무튼 내가 본 것은 당신이 해가 떴는데도 게으름을 피우고 자고 있다는 거예요. 심 대표가 모르니 전화해서 알려줘야겠네요.”말을 마치고 단기문은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하려고 하였다.비비안은 즉시 당황해하며 단기문의 팔을 붙잡았다.“안 돼요. 하지 마요.”단기문이 웃으며 말했다.“입 다물라고요?”비비안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불가능한 건 아닌데... 일 하나만 도와줘요. 그러면 당신이 일을 하지 않은 사실을 얘기하지 않을게요. 어때요?”비비안은 기운이 하나도
단기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정말이에요?”안이슬이 대답했다.“당연하죠. 그러니 저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단기문은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해하며 물었다.“그럼, 얘기해 봐요. 선생님은 1이에요? 0이에요?”“1, 0이요? 그게 뭔데요?”안이슬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단기문은 크게 웃었고 안이슬은 그를 정신 환자를 보는 듯했다.“병이 있으면 병원에 가봐요.”“저 멀쩡해요. 아무 병도 없어요.”단기문이 고개를 저었다.“선생님은 여자를 좋아하신다면서 1과 0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선생님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네요. 역시 선생님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 맞아요.”안이슬은 그제야 1과 0이 동성연애자들의 용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 그녀는 확실히 동성연애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차별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를 좋아하는 것은 마음이 정하는 것이기에 세간에서 접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틀리다고 하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다 똑같이 좋아하는 감정일 뿐이다.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인만 행복하면 된다.아앙~샛별이가 깨자 안이슬은 서둘러 샛별이 방으로 들어갔다. 생별이가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 안이슬이 검사를 했는데 응가를 한 거 아니어서 바로 물을 줬다. 샛별이는 목이 말라서 울었는지 물을 마시고 나서 천천히 울음을 멈췄다. 안이슬은 다른 일도 거의 다 끝냈기에 샛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샛별이를 안고 모자도 씌어주며 준비했는데 샛별은 안아주는 것만으로 너무 기뻐했다.단기문이 껌딱지처럼 그들을 따라다니자 안이슬이 물었다.“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요?”“저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단기문이 말하면서 의자에 앉았다.“무슨 말씀이세요?”안이슬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명확하잖아요. 저 여기에 일하러 온 거예요.”“심 대표님이 저를 감시하라고 시키셨어요? 그렇게 저를 못 믿으
심재경은 연속 며칠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지쳐가고 있다가 잠깐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안이슬과 샛별이 상황을 알아보려고 전화했는데 단기문이 받지 않자, 불안해하면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이슬에게 전화했는데 그녀의 휴대폰은 어젯밤에 잘 때 무음으로 해놨었고 또 현재 샛별이 재우느라 전화가 오는 걸 전혀 몰랐다. 두 사람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자, 심재경은 불안해하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호텔을 나와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향했다.단기문은 전혀 자기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거실의 소파에 누웠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서운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이다....비비안은 단기문이 말한 곳에 가서 옮겨야 할 물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두 눈을 부릅떴다. 그건 그냥 물건이 아니고 가구들이었는데 이사 규모였다.‘이것들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루 종일 해도 다 못 할 것 같은데! 날 죽이려고 작정했나 봐.’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이삿짐센터를 찾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는데 단기문의 메시지였다.「사람을 부르지 말고 비비안 씨가 직접 해요. 사람을 부르면 비밀을 지켜줄 수 없어요.」비비안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그녀는 단기문이 어차피 현장에 없기에 직접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는 일단 약속하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부르려는 생각에 시원하게 동의했다.「알았어요.」「아, 그리고 물건을 두는 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당신이 직접 하는지 안 하는지 휴대폰으로 모니터링이 가능하니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아요.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재경이에게 전화하는 거로만 끝나지 않을 거예요.」비비안은 분노가 치밀어 두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거리며 메시지를 보냈다.「뭘 어떻게 할 건데요?」「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죠. 재경이한테 당신을 해고하라고 할 거예요. 제가 비록 회사 일에 참견은 안 하지만 주주로서 당신 같은 비서 한 명쯤 해고 해달라는 제안은 들어 줄 거예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