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돌아가는 길에 남주 누나가 기어코 나랑 애교 누나를 끌고 같은 차에 탑승하는 바람에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것도 애교 누나가 앞에서 운전하고 나와 남주 누나가 뒤에 앉은 상태로 말이다.“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내가 너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남주 누나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심지어 일부러 바싹 붙으며 야릇한 분위기를 풍겼다.이에 나는 얼른 누나한테 경고했다.“남주 누나, 뭐 하자는 거예요? 애교 누나가 앞에 앉아 있는데, 질투하면 어떡하려고요?”“애교는 내가 너한테 호감 있는 거 진작 알고 있었어. 오히려 너야말로, 내가 안 예뻐? 몸매가 좋다는 생각 안 들어?”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뇨, 누나 예뻐요. 몸매도 좋고.”“그러면 왜 나랑 안 자는데?”생각지도 못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남주 누나의 말에 내 마음은 간질거리고 두근대기 시작했다.심지어 말조차 더듬거렸다.“누, 누가 싫댔어요? 누나가 매번 이상한 포인트에서 끊었잖아요.”“그래서 다른 여자 찾아갔어?”‘역시나, 이걸 물고 늘어질 줄 알았어.’나는 사실 진작 변명을 생각해 두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대답했다.“누가 다른 여자 찾아갔다고 그래요? 사람 함부로 모함하지 말아요.”“아니야? 그럼 앨범에 있는 적나라한 노출 사진은 어떻게 해명할 건데?”“그 사진이요? 그거 다 인터넷에서 찾은 거예요. 예뻐서 저장했고요.”“정말이야?”“당연하죠. 설마 지금 제가 애교 누나한테 미안할 짓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이럴 때 보면 내 얼굴도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만약 예전이었다면 절대 이러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내 허리를 꼬집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왜 또 그래요?”그저 낮은 소리로 물을 뿐.남주 누나는 입가에 냉소를 띤 채로 물었다.“윤지은이 누구야?”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머
“그 윤지은이라는 여자랑도 이렇게 잠자리 가진 거야?”“아니요.”“그럼 뭔데?”사실 지난번 형수한테 지은과의 일을 들킨 뒤 나는 바로 대화 기록을 삭제했었다.때문에 누나가 본 건 최근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뿐이다. 그러니 나와 지은이 무슨 사이인지 당연히 모른다.이 일에 대해 나는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한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더 많은 거짓말로 그걸 둘러대야 하니까.그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악순환과도 같다.심지어 지은과의 일을 애교 누나한테 솔직히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하지만 내가 진실을 얘기하면 애교 누나가 왕정민을 미워하는 것처럼 나를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마음이 너무 모순되고 고민된 나머지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대답했다.“나중에 기회 되면 천천히 설명할게요.”나는 말하면서 손을 움츠리고는 미안한 표정으로 앞 좌석에 앉은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순간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지은과의 일도 이미 충분히 애교 누나한테 미안한데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내가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동네에 도착했다.애교 누나 집에 가자는 남주 누나의 초대도 거절해 버렸다.아직 애교 누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돌아가서 잘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애교 누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식으로 애교 누나와 만나고 싶으니까.그렇다면 애교 누나한테 상처 주는 일은 하면 안 된다.집에 도착하니 형이 기분이 언짢은 듯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런 형을 보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형, 왜 그래? 형수는?”“샤워 중이야.”자세히 들어 보니 욕실 안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형이 왜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됐다.형수가 지금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데 그걸 만족시켜 줄 수 없으니 고민될 터다.“수호야, 내가 전에 했던 얘기 생각해 봤어?”그때 형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그 일은 생각도 안 해 봤는데.’그도 그럴 게, 형의 요구가 너무 황당했으니까.
“생각해 봐. 만약 내가 네 형수한테 아이를 못 낳는다고, 우리는 앞으로 아이가 없을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네 형수 심정이 어떻겠어?”“하지만 내가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잠시 힘에 부치는 거라고, 치료만 잘 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면 네 형수 심정이 어떻겠어?”“전자는 절망이야. 하지만 후자는 그나마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잖아. 한 사람이 무슨 일을 정말 하고 싶을 때 희망도 없다면 어떻게 견지하겠어?”형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형의 관점을 동의하는 건 아니다.“그래도 이렇게 형수를 속이는 건 아니지. 이러는 게 왕정민이랑 뭐가 달라?”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고 형수 생각은 안 하지?’‘이건 형수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형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수호야, 넌 아직 너무 어려. 왕정민이 그러는 건 자기 이익 때문이지만, 내가 이러는 건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야.”“내가 네 형수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 진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거고,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형 한 번만 도와주라. 응?”형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눈빛을 보니 너무 곤란하고 고민되었다.정말이지 이 일은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니까.“네 형수 이제 곧 나올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네가 한 번 찔러 봐. 애가 없으면 네 형수가 어떤 반응일지.”형이 또다시 나를 설득했다.그때, 형수가 마침 안방에서 나왔다.형수는 내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목욕 타월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풍만하고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수호 씨, 언제 돌아왔어요?”형수는 나를 보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웃으며 인사했다.하지만 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대답했다.“아까 금방요.”그때 형이 은근히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찌르며 부추기는 바람에 나는 결국 큰마음 먹고 농담하듯 말을 꺼냈다.“형수, 만약 형이랑 애가 없으면 어떨 것 같아요?”“그런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애교 누나의 태도를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았다.내가 혼자 결정하는 건 너무 독단적이고 무책임하니까.결국 나는 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전송했다.[애교 누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뭔데요?]곧바로 돌아온 애교 누나의 답장에 나는 깊은숨을 들이켜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만약 제가 누나 외에 다른 여자랑 만났어도 저와 만나줄래요?]이 질문이 아주 직설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만약 애교 누나가 싫다고 하면 내가 전에 했던 노력은 수포가 되는 거고 무척 큰 아쉬움이 남을 거다.하지만 이게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잔뜩 긴장해서 애교 누나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누나는 한참이 지나도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그 순간 나는 너무 불안했다.애교 누나의 마음이 안 좋을 거라는 걸 알기에 나는 먼저 해명했다.[제가 애교 누나한테 구애하는 동안에 한 여자를 만난 관계까지 가졌어요. 누나한테 솔직해지고 싶어서 얘기하는 거예요. 만약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제 연락처 차단해줘요.]이 문자를 보낸 뒤 나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애교 누나가 다시 나한테 답장을 하던 말던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고서.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누나의 답장이 도착했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사실 진작 눈치채고 있었어요.]애교 누나의 답장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진작 눈치챘다고?’‘그런데도 나한테 몸을 내어주었다는 건가?’이건 너무 놀라운 사실이었다.나는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타자했다.[어떻게 알았어요?][그때 매일 껌딱지처럼 나한테 들러붙었는데 선 넘는 짓은 한 번도 안 했잖아요. 그렇다는 건 혼자 해결했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해결한 것밖에 더 돼요? 혼자 해결했다면 그 정도로 참을 수는 없었을 텐데, 당연히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짐작했죠.][그런데 지금껏 그 상대가 태연이라고 생각했어요. 태연이 절대 수호 씨더러 솔직하게 말하게 하지 않을 테니 그때 태연을 자빠뜨려라고 했던 거고요.]나
나는 일부러 애교 부리는 말투로 문자를 보냈다.[그런데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제 마음속에는 애교 누나뿐이에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곧바로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오더니 말을 보탰다.[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듣기 좋네요. 그런데 만약 출세하고 남들 위에 서고 싶다면 남주 비위는 무조건 잘 맞춰 줘요.]나는 애교 누나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 것 같았다.남주 누나는 공무원이기에 다른 정계 인사를 많이 알고 있을 거다.때문에 내가 남주 누나의 비위를 잘 맞춰 주면 나중에 발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다.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그런데 정말 화 안 내요? 만약 신경 쓰인다면 솔직하게 말해줘요. 출세하는 기회를 버리더라도 누나를 잃고 싶지 않아요.]이 말은 내 진심이다.애교 누나 정말 좋은 여자이기에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그때 애교 누나가 나에게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이내 문자 하나를 보내왔다.[이런다고 나 잃지 않아요. 난 언제나 수호 씨 곁에 있을 테니까. 난 수호 씨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어요.]그 문자를 본 순간 나는 너무 감동했다.애교 누나는 어쩜 예쁜 데다 착하기까지 하고 나한테 또 이렇게 잘해주는지.만약 애교 누나 같은 여자와 결혼하면 분명 엄청 행복할 거다.애교 누나는 나한테 또 문자를 보내왔다.[남주가 모레면 간대요. 그러니 남은 시간 얼마 없어요. 내일 기회를 마련해 줄 테니까 꼭 성공해요.]‘나를 도와주려고 내가 자기 친구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다니.’애교 누나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이에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네, 누나 말대로 할 게요.]애교 누나 쪽 문제가 해결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형 쪽 문제다.하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그때, 밖에서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놀란 나머지 문에 귀를 바싹대고 들었더니 곧바로 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체 왜 그래? 우리 오늘 시도해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는 형을 보니 이 순간 형의 속이 얼마나 탈지 알 수 있었다.곁에서 지켜보는 나까지 속이 말이 아니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형, 너무 낙심하지 마. 요즘 의술이 발달해서 꼭 고칠 수 있을 거야.”“그만 위로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아.”형은 풀이 죽어 말하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한의학적으로 봐도 형의 경우는 완치되기 어렵다.때문에 형이 더욱 안쓰러웠다.하지만 지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을 지켰다.그대 형이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수호야, 이러다가 나 정말 미칠 것 같아. 네가 얼른 네 형수 임신시켜. 그러면 나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거야.”‘또 이 얘기를 하다니.’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숨이 턱 막혔다.“형, 나 좀 더 고민해 볼게.”나는 거절하면서 형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형은 오히려 내 손을 더 꽉 잡았다.“수호야, 더 고민할 필요도 없어. 네가 나 안 도와주면 난 끝장이야. 너도 내가 네 형수랑 이혼하는 게 싫을 거 아니야. 수호야, 형이 이렇게 빌게.”말하면서 아예 무릎 꿇으려는 형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형을 부축했다.“형, 이러지 마. 알았어. 약속할게.”너무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요구를 들어줬더니 형은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정말이지? 거짓말 아니지?”사실 나는 형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걸 곧바로 후회했다.하지만 이미 말을 꺼냈기에 번복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형의 희망찬 눈빛을 보니 거절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어, 진짜야.”형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수호야, 난 이제 모든 희망을 너한테 걸었어. 형이 남은 인생 행복할 수 있을지는 너한테 달렸어.”“형, 너무 오버 아니야?”형의 말에 나는 너무 난감하여 거절하기도 힘들었다.‘우선 이렇게 하는 수밖에. 안 그러면 형이 또 무릎 꿇으면 어떡해.’나는 얼른 형을 부축했다.“형, 이따가 먼저 방에 들어가.
‘내가 대체 무슨 약속을 했지?’‘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에 동의할 수 있지?’‘정말 미쳤네.’나는 괴로워 머리를 쥐어뜯었다.하지만 이미 동의한 마당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될 대로 되라지.’‘하지만 형수처럼 완벽한 몸매를 가진 여자와 한 번 하는 건 진짜 행복할 것 같단 말이지.’형수를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안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몰래 엿듣고 싶어졌다.특히 안방 문이 굳게 닫힌 순간 안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었다.‘분명 엄청 화끈하겠지?’‘형수는 워낙 열정적이라 분명 엄청 적극적일 거야.’이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나는 결국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금살금 안방 쪽으로 걸어갔다.그러고는 얼굴을 문에 바싹 붙이고 안쪽 상황을 엿들었다.그런데 아쉽게도 아무 소리도 드리지 않았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포기하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하지만 속이 어수선하고 거기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액정에 있는 지은의 사진을 확인했다.그걸 볼수록 아래는 점점 더 반응하기 시작했다.나는 아예 바지를 벗어 던지고 손을 움직였다.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형수와 함께 뒤엉켜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상상할수록 자극은 더 심해졌다.특히 형수의 육덕진 몸매와 매력적인 모습을 상상하니 몸이 둥실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절정에 도달하려 할 때쯤 안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너무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담요를 덮었다.그리고 간발의 차로 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호 씨, 늦었는데 안 자고 뭐 해요?”“이, 이따가 자려고요. 핸드폰 게임 좀 하고.”나는 불안함에 심장이 두근대고 쿡쿡 찔려 너무 괴로웠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은 듯싶었다.심지어 자꾸만 형수가 나에게로 다가와 내 꼴을 볼까 봐 걱정되었다.나는 형수가 제발 오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했다.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나에게 꼭 시련을 안겨주는 것만 같았다.형수가 나에
“형수, 저, 그게...”나는 더듬거리느라 한마디도 제로 내뱉지 못했다.그러다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담요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이 순간 형수를 볼 낯이 없었으니까.이 상황이 너무 어색하고 난감했다.그러다 한참 뒤, 형수가 손을 빼면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양이 정말 많네요. 수호 씨 형이 수호 씨 10분의 1이라도 되면 우리가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나는 담요 틈새로 형수의 표정을 살폈다.형수는 손에 묻은 액체를 바로 닦아내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뭐 하는 거지?’‘왜 저걸 저렇게 소중하게 쳐다보는 거지?’나는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하여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당장이라도 해명하고 싶었다.이에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이었다.“형수,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나도 알아요. 그런데 왜 여기에서 하는 거예요?”형수는 티슈 한 장을 꺼내 손을 깨끗이 닦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 물음에 나는 너무 난감했다.‘그러게, 왜 여기서 해서는. 차라리 화장실이나 방에서 했으면 얼마나 좋아?’‘젠장,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내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형수가 나에게 갑자기 다가오더니 뜨거운 숨결을 내 얼굴에 내뿜었다.“설마 우리 소리를 엿듣고 괴로워서 한 거예요?”형수는 화끈한 성격이라 말하는 데 거침이 없다.원래대로라면 이미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런 말을 들으니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이런 걸 어떻게 인정해?’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에요.”“아니라고요? 그럼 뭐예요? 어디 한번 말해봐요.”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바라보는 형수의 눈빛에 나는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이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내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던 형수는 손을 다시 담요 속으로 넣어 내 그곳을 잡았다.순간 온몸의 피가 한데 쏠리며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형수...”나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이런
나도 고수연이 농담한 거라는 걸 알았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차를 세운 뒤 우리는 함께 형수 집으로 향했다.매일 형수를 찾아와서 돌봐주는 건 이미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처음에는 형수가 얼른 깨어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점점 의식이 없는 형수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형수가 깨어나든 말든 나는 형수를 평생 돌봐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뜻밖에 남주 누나가 찾아왔다.지난번에 병원에서 헤어지고 난 뒤 남주 누나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남주 누나와 남편이 어떻게 됐는지도 몰랐다.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남주 누나는 형수 손등을 닦아주고 있었다. 남주 누나를 본 순간 나는 멍해졌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나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왔어?”“남주 누나, 여긴 어쩐 일이에요?”남주 누나의 미소는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깨뜨렸다. 때문에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남주 누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말 이상한 게 하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말이라도 해야 해?”“그건 아니에요. 물 마실래요? 물 따라줄게요.”“필요 없어. 태연이 몸 다 닦아줬어. 나 바로 갈 거야.”남주 누나는 형수 몸을 닦아준 뒤 예쁜 옷 한 벌을 꺼내며 말했다.“고태연. 얼른 일어나. 나 네 옷 샀는데 당장 입어보고 싶지 않아?”“그리고 너 깨어나지 않으면 정수호 다른 여자한테 뺏긴다.”남주 누나는 이 말을 형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나는 똑똑히 들었다.그 순간 나는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남주 누나가 예쁜 옷을 형수 옆에 내려놓고는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나한테 걸어왔다.“나 배웅해 줘. 괜찮지?”“네. 아래까지 배웅해 줄게요.”남주 누나가 고수연과 작별한 뒤 나는 남주 누나를 아래층까지 배웅했다.차에 올라타자마자 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았다.“남주 누나...”나는 다급히 누나를 밀어냈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묻지
오늘 매출액이 총 1760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오늘 솔직히 개업식을 하던 날보다는 손님이 확 줄어들어 매출도 확 줄어들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2천만 원가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수호야. 나 요즘 일할 맛 나. 우리 진짜 잘하면 부자 되겠는데.”털털하게 웃으며 말하는 민우는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현성은 여전히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젠장. 난 우리가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어. 너희 둘과 사업한 거 내 인생에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어.”한바탕 기뻐한 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오늘도 이런 매출을 유지한 건 우리 가게 평판이 좋기 때문이야. 오늘 보니까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 데려온 친구거나 친척들이었어. 계속 평판에 신경 쓰면 손님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아.”“민우야. 약재 구매는 네가 관리해. 무조건 엄격하게 통제해야 해.”민우는 진지하게 제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모든 약재는 내가 직접 확인하고 있어.”“현성아.”“어? 나한테도 시킬 일 있어?”현성은 일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요즘 여자 꼬시는 데 온 정신이 팔렸으니까.하지만 그래도 나는 귀띔해야 했다.“고객 관리는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돼.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면 고객 관리를 잘하는 게 관건이야.”“알아. 걱저앟지 마. 나도 민우처럼 열심히 할게.”현성은 비록 덤벙거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일 처리는 잘한다.우리는 간단한 회의를 한 뒤 식사하러 밖으로 나갔다.그러고 나서 민우는 임설아와 함께 떠났고 현성도 주선영을 찾으러 떠나 버렸다.나와 고수연은 같은 방향이었기에 출퇴근할 때 내가 항상 고수연을 데려다주곤 했다.일을 시작한 뒤로 고수연도 얼굴에 빛이 났고 눈이 이채를 띄었으며 말도 많아졌다.“수호 씨, 나 장부 정리 꽤 하죠? 나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월말에 내가 완벽한 도표를 만들어 보여줄게요.”고수연이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기뻤다.“그래
나는 백연우가 이렇게 까다로운 상대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미친 여자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하지만 윤지은 말처럼 이건 모두 내가 벌인 짓이기에 내가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수 없다.다음에 백연우가 찾아오면 나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고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을 거다.‘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속으로 답을 찾으니 나는 더 이상 짜증 나지 않았다.백연우가 미친 여자이긴 해도 너무 심하게 공격한 건 아니라 나는 피부가 살짝 까지는 거로 끝날 수 있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승호가 미치도록 질투 났는데 지금은 오히려 질투가 아니라 놈이 불쌍했다.백연우 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생겼으니 남은 인생 안 봐도 뻔하다.연승호는 아마 백연우가 어떤 사람인지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나는 오히려 백연우와 연승호가 약혼하는 날이 기대됐다.‘백연우가 하루빨리 연승호 주변만 맴돌아야 할 텐데.’...한편 백연우는 천수당에서 나오자마자 연승호의 전화를 받았다.[자기야. 지금 어디야?]백연우는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솔직히 대답했다.“방금 천수당에 다녀왔어.”그 말 한마디에 연승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백연우는 그의 약혼녀인데 이렇게 공공연히 천수당에 드나드는 것도 모자라 숨기려고 하지도 않으니 연승호는 체면이 깎였다.사실 연승호는 백연우를 시험해 보려고 전화한 거였다. 그런데 시험하기도 전에 백연우가 순순히 인정해 버리니 연승호는 오히려 화를 내지도 못했다.연승호는 확실히 백연우에게 쩔쩔맸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백연우가 그만큼 매력 있고 섹시했으니 연승호는 백연우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도 해도 정도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연승호는 자기 여자가 공공연히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천수당은 왜 갔어?]연승호는 일부러 화가 난 듯 말하며 백연우에게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보여주었다.그러자 백연우는 오히려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알
하지만 내가 배연우를 밀어내려고 할 때 백연우는 정말 칼로 내 어깨를 긁었다.그 순간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더니 어깨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나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내 팔을 바라봤다.“벤다는 거 진심이었어요?”백연우는 여전히 눈웃음을 살살 쳤다.“어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고의로 그런 거지.”“정말 미쳤네요!”나는 더 이상 백연우와 같은 공간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백연우는 내가 떠나가는데도 막지 않았다. 내 가게가 여기 있으니 본인은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백연우가 깔깔 웃으며 떠나자 민우와 현승은 다급히 내실로 달려와 나를 살폈다.“수호야. 너 팔 다쳤어. 아까 그 여자 짓이야?”현성은 놀란 듯 버럭 소리쳤다.“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정말 칼로 너를 벴다고? 대체 왜 이랬대?”나는 내 상처를 소독하면서 말했다.“됐어. 이미 떠났는데 뭐. 내 탓이야. 애초에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는데.”“어디 봐 봐.”“그냥 살짝 베인 것뿐이야. 상처가 깊지 않아서 괜찮아.”나는 팔에 난 상처를 신속히 치료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백연우에 대해 제대로 요해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해 백연우에 관한 걸 물었다.“지은 씨 친구 대체 어떤 성격이에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오히려 되물었다.[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 그건 왜 묻는 건데?]“그냥 궁금해서요.”나는 양심에 찔려 대답을 피했다.그러자 윤지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도 할 얘기 없어. 끊을게.]역시 윤지은 아니랄까 봐 한번 아니라고 하면 얄짤 없었다.나는 그제야 다급히 나와 백연우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내 말을 들은 윤지은의 말투에 갑자기 화가 잔뜩 나 있었다.[아무 일 없었다더니. 이게 아무 일 없었던 거야?]“용천 호텔에서는 백연우 씨가 먼저 유혹한 거거든요. 나는 남자지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상대가 그렇게 유혹하는데 내가 어떻게 버텨요?
“백연우 씨,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난 백연우 씨 때문에 번거로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요.”“그래서 내가 꼴도 보기 싫은 거야 아니면 성가시다는 거야?”백연우는 나에게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나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뭐가 다른데요?”“당연히 다르지. 전자라면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게. 난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한테만 관심 있거든. 상대가 나 거절하면 나도 들러붙지 않아. 하지만 후자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약속할게. 앞으로 연승호가 절대 너 괴롭히지 못하게 할게.”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잘 들어요. 두 가지 다예요.”“왜? 네가 후자라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전자도 있는데?”나는 그날 밤 백연우를 만나러 학교까지 찾아갔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백연우 씨, 내가 전에는 몰랐는데 백연우 씨한테 남자는 그저 장난감 같은 존재였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백연우 씨도 백연우 씨만의 생각이 있고 나도 내 생각이 있으니 애초에 서로 즐기려고 만난 거겠죠. 서로 사생활 터치하지 않는 조건으로요. 하지만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되죠.”백연우는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보더니 말할 때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다.“설마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네 주위만 맴돌기를 바랐던 건 아니지?”“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아직도 내 말 못 알아듣네요. 난 백연우 씨가 남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게 싫은 거예요. 백연우 씨를 만나면 내가 그저 도구가 된 기분이에요.”백연우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그거 알아? 그동안 나를 거절한 남자는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널 어떡하면 좋지? 가죽을 벗겨버릴까? 아니면 강물에 던져버릴까?”나는 흠칫 놀라 소름이 돋았다.“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갖지 못하면 망가트리겠다는 거예요?”백연우는 아주 매력적으로 웃었다.“맞아.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정수호, 난 네 가죽 벗기기 싫어. 하지만 나 화나게 하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백연우가
여준휘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선물 세트 옆에 자리 잡고 섰다.“그럼 나도 한 장 찍어줘. 멋있게 찍어줘.”어차피 돈 뽑을 대로 뽑았으니 당연히 최대한의 역할은 해줘야 했다. 때문에 나는 여준휘의 소원대로 사진을 찍어줬다.그 뒤로 여준휘는 모든 선물 세트를 들고 떠나갔다.민우와 현성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수호 너 진짜 대박이다. 저 자식 시비 걸러 왔다가 144만 떼인 거 실화야?”현성은 아예 배를 끌어안고 뒤로 넘어질 듯 웃었다.“이런 게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여 간다는 건가? 저 자식 아부할 생각에 신나서 돌아가는 거 봤어? 웃겨 죽겠어 정말.”“됐어. 일하자.”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일에 매진했다.여준휘는 천수당을 나간 뒤에야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싹 가셨다.“젠장. 정수호, 감히 나를 엿 먹여? 두고 봐. 내가 너 질질 짜게 만들어준다.”방금 전까지 여유로운 척했던 모두 여준휘의 연기였다.일이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구매하지 않고는 안 되는 상황이라 여준휘는 마지못해 연기했던 거다. 어쨌든 백연우에게 성의를 보여줘야 했으니까.하지만 그렇다고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자기가 된통 당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의 원한은 잘 기억해 뒀다가 꼭 갚으리라고 다짐했다.여준휘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실루엣이 천수당에 나타났다.나는 백연우를 본 순간 마음이 복잡했다. 어떤 마음으로 백연우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으니까.그래도 가게에 왔으니 손님 대접을 해줘야 하기에 쫓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건 불가능했다.때문에 나는 백연우를 보자마자 내실로 향하며 민우에게 말했다.“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하지만 나는 백연우를 너무 얕잡아 봤다. 민우는 백연우의 상대가 아니었다. ‘나 만지고 싶어요?’라는 한마디에 민우는 깜짝 놀라 연신 뒷걸음쳤으니까.나는 백연우가 나를 찾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나를 따라 내실까지 쫓아와 나는 숨을 곳도 없었다.“왜 또 찾아
여주휘는 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조금 더 둘러보고.”“여준휘 씨 윤지은 씨와 동창이라고 했죠?”그때 나는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그 말에 여준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그건 갑자기 왜 물어?”“윤지은 씨한테 구애까지 한 걸 보면 집안 배경과 신분 그리고 학식 모두 너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하수오는 선물하든 본인이 사용하든 괜찮은 선택일 텐데, 정말 생각이 없어요?”“이제 곧 추석이잖아요. 우리 가게에 선물 세트도 파는데 모두 고급 포장이라 선물하면 체면이 살거든요.”“아, 그러고 보니 연승호 도련님과 같이 다녔죠? 그 분과 그 가족분한테는 선불 안 해요?”여준휘의 얼굴은 울긋불긋해지더니 이내 반박하려고 했다.“네가 뭔 상관...”“아. 알겠다. 하수오는 연승호 씨 눈에 차지 않겠네. 그럼 인삼음 어때요? 얼마 전에 갓 들여온 인삼이 있는데. 산에서 캔 자연산 인삼이라 신분 높은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거든요. 이래 봬도 여준휘 씨와 연승호 씨는 우리 지인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특별히 남겨드렸어요.”“어디 보자. 연승호 씨 한 세트, 연승호 씨 부모님께 각각 한 세트씩, 그리고 곧 약혼한다고 하셨으니까 약혼녀한테도 한 세트 선물하고 약혼녀 가족한테도 보내려면 두 세트 또 더 필요하겠네?”“그렇게 기본으로 여섯 세트 사면 되겠네요. 제가 바로 백연우 씨한테 사진 찍어 보내드릴게요. 아주 기뻐하겠네요.”나는 일부러 여준휘가 사진에 보이게 찍어 사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을 만들었다.내 행동에 여준휘의 얼굴은 시커메졌다.“설, 설마 사진 보냈어?”“그럼요. 곧 추석인데 선물도 안 하려고요? 내가 골라준 거 다 가장 좋은 것들인데. 고마워할 거 없어요.”나는 일부러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 말에 여준휘는 화가 나서 가슴을 들썩거렸다.“우선 고민 좀 할게.”하지만 나는 여준휘에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아. 어떡해요? 아까 백
“우리 같은 의사도 모른 체하면 누가 환자들을 도와줘? 우리만 잘못한 게 없으면 되지. 나머지는 상관할 거 없어.”현성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넌 참 대단해. 난 영원히 너 같은 마음은 먹지 못하겠다.”이건 내가 대단한 게 아니다. 아마 나도 정 사장님의 영향을 받아 시시콜콜 따지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정 사장님은 바로 그런 분이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 분.내 기억에 정 사장님은 고아라고 했다. 어릴 때 온갖 고생을 다 해서 인생의 고난을 모두 맛보고 이해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 가진 능력도 모두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배우고 익힌 거라고 했다.정 사장님은 참 착한 분이다.나도 그런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나는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가장 행복한 일이 다른 사람 얼굴에서 미소를 보는 일이라고 하셨다.“됐다. 가자.”우리는 짐을 챙겨 가게로 돌아가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착한 척 오지네.”고개를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준휘였다.나는 여준휘를 상대하지 않았다. 내 눈에 그 자식은 그저 공기 같은 존재였으니까.여준휘는 그런 말로 나를 자극하려고 했는데 내가 무시하자 다급히 다가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정수호, 방금 한 짓 다 쇼지? 하. 여기 다른 사람도 없는데 순순히 인정하지 그래? 정수호,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네 속내를 모를 줄 알아? 내 앞에서까지 고고한 척하기는. 가식 떨기는...”가끔 이렇게 열폭하는 사람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면 된다. 어쨌든 우리는 인간이니 개한테까지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으니까.여준휘는 내 화를 돋우기는커녕 자기 화만 불타올랐다.“정수호, 거기 서!”나는 민우와 현성에게 물건을 건네며 두 사람더러 먼저 가게로 돌아가게 하고는 여준휘를 보며 냉소했다.“연승호가 보냈어?”여준휘는 그 말에 움찔하더니 바로 부정했다.“내가 오고 싶어서 오는
여준휘는 연승호한테 절대적으로 충성할 것처럼 아부했다.“승호 도련님, 혹시 뭐 내부 소식이라도 있는 겁니까?”“그건... 알려고 들지 마.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잘해.”“네네. 제가 쓸데없는 말이 많았네요.”여준휘는 자기가 연승호의 신임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러다가 연승호가 다연 한식당을 인수하면 자기가 매니저라도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윤지은을 쫓앚다닐 필요가 없다.그리고 반대로 만약 윤지은이라는 나무에 제대로 오를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은 출셋길이 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여준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승호에게 더 아부했다.“그 개자식은 할 일 없을 때 가서 더 밟아 줘. 난 그 자식만 보면 기분 잡치더라.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지 마.”연승호는 또 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언짢아했다.그 말에 여준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승호 도련님. 저 수단과 방법 많아요. 절대 그 자식 곱게 두지 않아요.”...천수당.나는 연승호와 여준휘의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한의관으로 돌아온 뒤 민우와 현성에게 주의를 주었다. 요즘 들어오는 약재를 눈여겨보라고.“걱정하지 마. 우리가 잘 지켜볼게.”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밖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알고 보니 가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작은 자동차 한 대가 전기 바이크와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나는 가게 직원들을 불러 신속히 부상자의 상처를 살피게 했다.“다리가 부러져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내 첫 번째 반응은 환자를 빨리 치료해 주는 거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구급차가 오기 전 출혈량을 줄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환자 가족은 우리가 환자의 치료를 도우려고 하자 버럭 소리 질렀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