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를 찾아 달려간 원경릉원경릉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번엔 또 뭐 때문인데?”우문호가 손을 뻗어 원경릉을 불러 앉히고: “이번은 나 뿐만 아니고 다른 친왕에 예친왕 전하도 맞았어, 우린 다 잘못이 없지만 나귀빈의 사건이 처리되어 아바마마께서 자책의 의미로 80대를 맞기로 하셨는데 그건 안될 말이라며 우리가 나눠서 맞은 거야. 그나마 내가 제일 적게 맞은 셈이야.”“친왕 몇명이 맞았는데?” 원경릉이 우문호 곁에 앉아서 치료한 상처 위에 다시 또 난 상처를 보고 탕양에게 상처에 면보를 덮어 이불에 피가 묻지 않게 했다.원경릉은 화도 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큰형, 둘째형, 넷째형, 그리고 황숙, 그리고 나까지 5명.”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눈물을 닦으며, 탕양의 동작이 약간 거친 것을 보고 얼른 가서 도우면서도, 조심스럽게 바람을 부쳐 주며 묻는 것을 잊지 않고: “5명이 80대를 나눠 맞았는데 왜 왕야가 25대야? 어떻게 계산해도 이상해. 왕야 말로는 왕야가 제일 적게 맞았다며? 25대는 어떻게 해도 제일 적을 수는 없어.”우문호가 임기응변으로: “80대에 비해서는 작다는 뜻이었지”원경릉의 추궁 끝에 주재상에게 한 방 먹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원경릉은 진심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이 일은 따질 데가 없는 것이 주재상이든 황제든 한 손가락으로 우문호 부부를 개미 죽이듯 눌러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당하는 거고, 당하기 싫어도 당해야 한다.금군이 원경릉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안으로 들어와 원경릉에게 잠깐만 보고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성지를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원경릉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는데 이 말을 듣고 악다구니를 하며, “가서 폐하께 알려요, 내 목을 자르면 그만이지 왜 내 남자를 때려서 이 꼴을 만들어 놓고, 내가 간호하는 것도 곁을 지키는 것도 안된다는 건가요?”원경릉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렇게 악다구니를 하며 억지를 부리는 날이 올 거
원경릉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귀빈은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고 나씨 집안사람들 모두 연좌제를 사면받았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울지 마. 난 괜찮으니까.”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쉰 목소리로 “그렇게 아프면 진통제라도 놔줄까?”라고 물었다.“그렇게 아픈 건 아니지만, 진통제가 있다면 맞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우문호가 주사를 놓아달라는 것은 확실히 아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갗이 찢기고 터졌을 텐데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원경릉은 그에게 진통제와 소염제를 놓아 염증이 나지 않게 했다. 오늘 밤, 어찌 됐든 옥제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나갈 수 없었다. 원경릉은 저녁도 먹지 못했기에 국만 몇 술 먹고는 그릇을 치웠다. 우문호는 침상에 엎드려 음식을 먹었다. 그는 힘에 부쳐도 다른 이에게 먹여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팔꿈치 때문에 나중에는 그릇에 머리를 박고 돼지처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원경릉은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렸다. “이리 와 내가 먹여줄게.”우문호는 그런 원경릉의 마음을 알고 웃었다. “좋아, 먹여줘. 너 한 입 나 한 입 번갈아 먹자.”원경릉은 그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며 “난 배불러서 너 많이 먹어.”라고 말했다. “맛있다. 곤장을 맞을 만한 가치가 있었어! 그렇게 얻어맞고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내 옆에서 시중을 들잖아?” 우문호가 철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이게 그렇게도 좋아? 이 모양으로 어떻게 정후부로 날 보러 오겠어?”“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데려다 달라고 하면 돼.” 우문호가 아픈 몸으로 꾸역꾸역 그녀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다른 데는 다 괜찮은데 목이랑 코가 막혀서 힘들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밥을 먹은 후 사람을 불러 둥근 베개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그의 이마와 턱을 받쳤더니 그의 호흡이 한결 편안해졌다. 식사를 마친 후 구사가 들어와 시중을 들었다. “왕야도 참 바보 같
구사는 ‘오’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왕비께서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구사는 우문호만 신경 쓰느라고 왕비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까부터 여기 계속 있었습니다.”원경릉이 힘없이 대답했다.원경릉은 나한 침상 가장자리를 붙들고 내려오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황상께서 내일 위왕을 데리고 정화군주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고요?”“예, 만약 위왕이 안 간다고 하면, 억지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든 일이거든요.” 구사가 말했다.원경릉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상께서도 어찌 그런 부탁을…… 그가 가기 싫다고 하면 안 가면 되지, 그렇게 끌고 가서 하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사과 자체가 의식이지요. 황상께서는 부부 싸움이나 서로 원한을 품지 않도록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은 침상에 앉아 구사를 바라보았다.“위왕이 가기 싫어할 텐데, 강요하지 마세요.”우문호는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등에 올려놓았다.“경릉아 등이 가렵다. 날개 뼈 아래 좀 긁어줘…… 어 그래 거기!”원경릉은 우문호의 등을 긁어주며 구사에게 말했다. “정화군주의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은 시기상조 같습니다. 추후에 사과를 해도 늦지 않을 텐데…… 그리고 사과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사, 황상께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떻습니까?”원경릉의 말을 듣고 구사는 웃었다. “왕비님, 소인을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황상께 제가 어찌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냉대인이라면 모를까.”“냉정언 대인?”“예.”원경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냉대인을 여기로 오시라고 하는 건 어때?” 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며 물었다.“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우문호가 물었다.“난 군주가 더 이상 충격을 받는 게 싫어.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마음이 좀 풀렸을 텐데…… 그녀는 정서장애가 있으니,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역효과가 날 거야.”그 말을 들은 구사
원경릉은 냉정언의 선택이 독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그녀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지금 위왕을 보면 위왕이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녀 마음속에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어떻게 할 겁니까?”냉정언은 고개를 저으며 “왕비, 그건 왕비의 생각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그의 말에 의자 팔걸이에 걸친 그녀의 손목의 힘줄이 도드라졌다.“제 생각입니다. 저도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누군가가 제 아이를 죽인 사람이 뻔뻔하게 찾아와 사과를 한다면…… 그건 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으면 내 아이를 죽인 원수를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냉정언은 격분하는 원경릉을 보고 그녀와 더 이상 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옆에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우문호는 냉정언의 질문에 놀랐다. 그가 여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곧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문호라면 자기의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똑같이 죽음으로 복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화군주가 셋째를 만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뺨을 때리거나 칼을 휘둘러도 그 모든 것은 셋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죄라고 생각됐다. “부황께서 그렇게 명령을 내리셨다고 하니 그렇게 합시다. 정화군주가 위왕이 꼴도 보기 싫다고 한다면 셋째를 끌고 나가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우문호가 냉정언을 보며 말했다.원경릉은 엄마가 되어보지도 않은 세 남자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경릉이 황제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구사를 보며 “내일 위왕을 잘 지켜보세요. 만약 위왕이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면 바로 기절시켜서 끌고 나오세요.”라고 말했다.“왕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구사가 말했다. “내일 제가 좀 일찍 가서 저도 그곳에 있겠습니다.”
고열이 계속되자 우문호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만아는 원경릉 옆에서 수건 짜는 것을 도왔고, 서일은 우문호를 들어서 외풍이 들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링거를 맞은 우문호는 한참 후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경릉아, 나 못 참겠어.”온몸에 상처 투성이인 우문호는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도 힘들었다. 서일이 요강을 들고 오자 우문호는 화를 내며 “그런 건 필요 없다! 본왕을 화장실로 옮겨줘.”라고 말했다.“안돼, 움직이면 많이 아플 거야. 오늘은 이거 쓰고 내일부터는 화장실로 데려다줄게.”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고집을 부리며 화장실로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한 걸음 걷기도 힘든 우문호에게는 무리였다. 서일은 요강을 들고 어쩔 수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 “왕비, 저와 탕대인이 부축해서 다녀오겠습니다.”원경릉은 만아를 시켜 탕양을 불러오라고 했다. 탕양과 서일은 우문호를 부축해서 나갔다가 잠시 후 들어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우문호는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원경릉이 다시 체온을 재자 39.3도 해열제를 먹어도 체온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약을 추가했고 링거도 바꿨다. ‘체온이 너무 높은데……’원경릉은 원래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우문호의 고열이 계속되자 정후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식이를 정후부로 보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하라고 했다. 원경릉의 말에 사식이가 급히 정후부로 갔다. 점심쯤이 지나서야 우문호가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더니 열이 내리기 시작해다. 원경릉은 안도감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원경릉은 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차를 준비해 바로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저 멀리서 사식이가 급히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원누이! 사고가 났습니다! 위왕이 정화군주를 때렸습니다!”그 말을 듣고 원경릉이 놀라서 쓰러질 뻔한 것을 만아가 붙잡았다. “어떻
“위왕은 지금 어디에 있어?”원경릉이 물었다. “아직 정후부에 계십니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구사도 끌고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사식이가 한숨을 쉬었다. “구사도 어쩔 수 없다고?” 원경릉이 놀랐다.사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위왕이 구사의 장검을 빼앗아 휘두르는 마당에 구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바로 왕비께 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마차가 정후부에 도착하자 사식이와 만아는 원경릉을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화군주가 있던 정원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밖이 소란스럽자 노마님과 원륜문까지 나와있었다. 위왕은 손에 구사의 장검을 쥐고 회화나무 아래에 서있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눈밑이 시커멓고 목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으면서도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공포가 느껴졌다. 구사는 위왕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정원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들 숨죽이고 위왕을 지켜보았다. 원경릉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왕은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 둘을 번갈아 보았다. 불안해진 원륜문이 달려와 원경릉의 앞을 가로막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위왕! 검을 내려놓으세요!” 원경릉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저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지?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꿈깨라 죄책감은커녕 난 내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해 떳떳해!” 위왕이 검을 들어 원경릉이 걸어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죠?” 원경릉이 가볍게 원륜문을 밀치고 천천히 걸어 나와 뒷짐을 졌다. “뭐라고?”“지금 와서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는지 아닌지 그게 뭐가 중요하죠? 설령 그녀가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고 해도, 강제 혼인이라고 해도, 그게 뭐가 대수
“정화군주 다들 나갔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지요.”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그녀의 속눈썹을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잠시 후 정화군주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눈을 꼭 감은 정화군주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 누워있는 그녀는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흐느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원경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아 눈물을 닦아주었다. 원경릉은 그녀가 탈진할까 걱정돼 수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수액을 놓아주고는 편하게 잠들 수 있게 했다. 수액을 다 놓은 원경릉은 밖으로 나와 한 사람만 방 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구사는 위왕을 왕부로 데리고 갔고, 정후부의 하인들은 그가 어지럽힌 정원을 치우고 있었다. 위왕이 정원에 있는 회화나무에 장검으로 상처를 내고, 꽃들도 모두 잘라버렸기에 정원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매화꽃이 예뻤을 정원에는 아무렇게 잘린 가지들과 아직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희상궁은 원경릉을 부축하며 “왕비,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눈 좀 붙이시지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왕부에 가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보다는 왕야를 챙기는 원경릉이 안타까웠다. “원누이, 어젯밤 한숨도 못 잤잖아요. 제가 왕부로 가서 왕야가 어떤지 살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나신다면 제가 이곳으로 오면 되지 않습니까?”원경릉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아니야. 쉬더라도 왕부에 가서 쉬어야지. 여기에는 정화군주께서 쉬고 계시니까 방해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희상궁과 사식이는 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왕부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왕부에 도착하자 사식이
열이 내리자 우문호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단잠에 빠진 그의 코 고는 소리는 마치 피리처럼 가늘고 길게 울렸다. 원경릉은 그의 추한 모습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비몽사몽한 얼굴로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잠시 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원경릉은 침상에서 일어나 들어오라고 했다.“왕비, 현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만아가 말했다.원경릉은 현비마마라는 말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현비마마라면 원주 원경릉을 싫어하는 시어머니?’그녀는 조용히 침상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우문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휙—” 순간 우문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조용히 해. 나 자고 있잖아.” 우문호가 말했다.“참나, 알겠어!”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톡톡 치며 말했다.그녀는 만아에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달라고 하고는 입가에 묻은 침자국을 닦았다. 현비마마는 출궁 할 때마다 화려하게 겉치레를 하기로 유명했다. 원경릉이 급히 밖으로 나오자 태감들과 궁녀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고,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고는 치마를 잡고 다급히 본관으로 향했다. “현비마마께서는 지금 천자의 수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식이가 원경릉을 붙잡았다. “본관이 아니라 천자의 수레에 계신다고?”원경릉은 현비의 허세에 기함을 토했다. 왕부에 오면서 궁인들과 태감을 대동하는 것도 모자라 천자의 수레를 타고 오다니.원경릉은 속으로 현비의 허세를 욕했다. ‘역시 시어머니가 불편하고 싫은 건 현대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기사 2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키운 아들을 맘에 들지도 않는 여인에게 장가 보냈으니 시어머니인 현비도 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겠어……’그녀는 과거나 현대나 고부관계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춥고 바람도 거센 겨울, 12명의 금군이 현비마마를 태운 수레 앞에 두 줄로 서있었다.현비마마는 천자의 수레에 앉아있었고, 상궁이 초왕비가 나왔다고 하자 ‘응’하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