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귀빈은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고 나씨 집안사람들 모두 연좌제를 사면받았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울지 마. 난 괜찮으니까.”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쉰 목소리로 “그렇게 아프면 진통제라도 놔줄까?”라고 물었다.“그렇게 아픈 건 아니지만, 진통제가 있다면 맞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우문호가 주사를 놓아달라는 것은 확실히 아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갗이 찢기고 터졌을 텐데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원경릉은 그에게 진통제와 소염제를 놓아 염증이 나지 않게 했다. 오늘 밤, 어찌 됐든 옥제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나갈 수 없었다. 원경릉은 저녁도 먹지 못했기에 국만 몇 술 먹고는 그릇을 치웠다. 우문호는 침상에 엎드려 음식을 먹었다. 그는 힘에 부쳐도 다른 이에게 먹여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팔꿈치 때문에 나중에는 그릇에 머리를 박고 돼지처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원경릉은 안쓰럽고 딱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렸다. “이리 와 내가 먹여줄게.”우문호는 그런 원경릉의 마음을 알고 웃었다. “좋아, 먹여줘. 너 한 입 나 한 입 번갈아 먹자.”원경릉은 그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며 “난 배불러서 너 많이 먹어.”라고 말했다. “맛있다. 곤장을 맞을 만한 가치가 있었어! 그렇게 얻어맞고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내 옆에서 시중을 들잖아?” 우문호가 철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이게 그렇게도 좋아? 이 모양으로 어떻게 정후부로 날 보러 오겠어?”“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데려다 달라고 하면 돼.” 우문호가 아픈 몸으로 꾸역꾸역 그녀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다른 데는 다 괜찮은데 목이랑 코가 막혀서 힘들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밥을 먹은 후 사람을 불러 둥근 베개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그의 이마와 턱을 받쳤더니 그의 호흡이 한결 편안해졌다. 식사를 마친 후 구사가 들어와 시중을 들었다. “왕야도 참 바보 같
구사는 ‘오’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왕비께서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구사는 우문호만 신경 쓰느라고 왕비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까부터 여기 계속 있었습니다.”원경릉이 힘없이 대답했다.원경릉은 나한 침상 가장자리를 붙들고 내려오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황상께서 내일 위왕을 데리고 정화군주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고요?”“예, 만약 위왕이 안 간다고 하면, 억지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든 일이거든요.” 구사가 말했다.원경릉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상께서도 어찌 그런 부탁을…… 그가 가기 싫다고 하면 안 가면 되지, 그렇게 끌고 가서 하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사과 자체가 의식이지요. 황상께서는 부부 싸움이나 서로 원한을 품지 않도록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은 침상에 앉아 구사를 바라보았다.“위왕이 가기 싫어할 텐데, 강요하지 마세요.”우문호는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등에 올려놓았다.“경릉아 등이 가렵다. 날개 뼈 아래 좀 긁어줘…… 어 그래 거기!”원경릉은 우문호의 등을 긁어주며 구사에게 말했다. “정화군주의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은 시기상조 같습니다. 추후에 사과를 해도 늦지 않을 텐데…… 그리고 사과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사, 황상께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떻습니까?”원경릉의 말을 듣고 구사는 웃었다. “왕비님, 소인을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황상께 제가 어찌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냉대인이라면 모를까.”“냉정언 대인?”“예.”원경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냉대인을 여기로 오시라고 하는 건 어때?” 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며 물었다.“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우문호가 물었다.“난 군주가 더 이상 충격을 받는 게 싫어.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마음이 좀 풀렸을 텐데…… 그녀는 정서장애가 있으니,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역효과가 날 거야.”그 말을 들은 구사
원경릉은 냉정언의 선택이 독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그녀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지금 위왕을 보면 위왕이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녀 마음속에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어떻게 할 겁니까?”냉정언은 고개를 저으며 “왕비, 그건 왕비의 생각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그의 말에 의자 팔걸이에 걸친 그녀의 손목의 힘줄이 도드라졌다.“제 생각입니다. 저도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누군가가 제 아이를 죽인 사람이 뻔뻔하게 찾아와 사과를 한다면…… 그건 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으면 내 아이를 죽인 원수를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냉정언은 격분하는 원경릉을 보고 그녀와 더 이상 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옆에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우문호는 냉정언의 질문에 놀랐다. 그가 여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곧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문호라면 자기의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똑같이 죽음으로 복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화군주가 셋째를 만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뺨을 때리거나 칼을 휘둘러도 그 모든 것은 셋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죄라고 생각됐다. “부황께서 그렇게 명령을 내리셨다고 하니 그렇게 합시다. 정화군주가 위왕이 꼴도 보기 싫다고 한다면 셋째를 끌고 나가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우문호가 냉정언을 보며 말했다.원경릉은 엄마가 되어보지도 않은 세 남자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경릉이 황제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구사를 보며 “내일 위왕을 잘 지켜보세요. 만약 위왕이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면 바로 기절시켜서 끌고 나오세요.”라고 말했다.“왕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구사가 말했다. “내일 제가 좀 일찍 가서 저도 그곳에 있겠습니다.”
고열이 계속되자 우문호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만아는 원경릉 옆에서 수건 짜는 것을 도왔고, 서일은 우문호를 들어서 외풍이 들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링거를 맞은 우문호는 한참 후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경릉아, 나 못 참겠어.”온몸에 상처 투성이인 우문호는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도 힘들었다. 서일이 요강을 들고 오자 우문호는 화를 내며 “그런 건 필요 없다! 본왕을 화장실로 옮겨줘.”라고 말했다.“안돼, 움직이면 많이 아플 거야. 오늘은 이거 쓰고 내일부터는 화장실로 데려다줄게.”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고집을 부리며 화장실로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한 걸음 걷기도 힘든 우문호에게는 무리였다. 서일은 요강을 들고 어쩔 수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 “왕비, 저와 탕대인이 부축해서 다녀오겠습니다.”원경릉은 만아를 시켜 탕양을 불러오라고 했다. 탕양과 서일은 우문호를 부축해서 나갔다가 잠시 후 들어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우문호는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원경릉이 다시 체온을 재자 39.3도 해열제를 먹어도 체온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약을 추가했고 링거도 바꿨다. ‘체온이 너무 높은데……’원경릉은 원래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우문호의 고열이 계속되자 정후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식이를 정후부로 보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하라고 했다. 원경릉의 말에 사식이가 급히 정후부로 갔다. 점심쯤이 지나서야 우문호가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더니 열이 내리기 시작해다. 원경릉은 안도감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원경릉은 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차를 준비해 바로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저 멀리서 사식이가 급히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원누이! 사고가 났습니다! 위왕이 정화군주를 때렸습니다!”그 말을 듣고 원경릉이 놀라서 쓰러질 뻔한 것을 만아가 붙잡았다. “어떻
“위왕은 지금 어디에 있어?”원경릉이 물었다. “아직 정후부에 계십니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구사도 끌고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사식이가 한숨을 쉬었다. “구사도 어쩔 수 없다고?” 원경릉이 놀랐다.사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위왕이 구사의 장검을 빼앗아 휘두르는 마당에 구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바로 왕비께 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마차가 정후부에 도착하자 사식이와 만아는 원경릉을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화군주가 있던 정원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밖이 소란스럽자 노마님과 원륜문까지 나와있었다. 위왕은 손에 구사의 장검을 쥐고 회화나무 아래에 서있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눈밑이 시커멓고 목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으면서도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공포가 느껴졌다. 구사는 위왕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정원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들 숨죽이고 위왕을 지켜보았다. 원경릉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왕은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 둘을 번갈아 보았다. 불안해진 원륜문이 달려와 원경릉의 앞을 가로막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위왕! 검을 내려놓으세요!” 원경릉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저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지?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꿈깨라 죄책감은커녕 난 내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해 떳떳해!” 위왕이 검을 들어 원경릉이 걸어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죠?” 원경릉이 가볍게 원륜문을 밀치고 천천히 걸어 나와 뒷짐을 졌다. “뭐라고?”“지금 와서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는지 아닌지 그게 뭐가 중요하죠? 설령 그녀가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고 해도, 강제 혼인이라고 해도, 그게 뭐가 대수
“정화군주 다들 나갔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지요.”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그녀의 속눈썹을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잠시 후 정화군주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눈을 꼭 감은 정화군주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 누워있는 그녀는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흐느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원경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아 눈물을 닦아주었다. 원경릉은 그녀가 탈진할까 걱정돼 수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수액을 놓아주고는 편하게 잠들 수 있게 했다. 수액을 다 놓은 원경릉은 밖으로 나와 한 사람만 방 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구사는 위왕을 왕부로 데리고 갔고, 정후부의 하인들은 그가 어지럽힌 정원을 치우고 있었다. 위왕이 정원에 있는 회화나무에 장검으로 상처를 내고, 꽃들도 모두 잘라버렸기에 정원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매화꽃이 예뻤을 정원에는 아무렇게 잘린 가지들과 아직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희상궁은 원경릉을 부축하며 “왕비,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눈 좀 붙이시지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왕부에 가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보다는 왕야를 챙기는 원경릉이 안타까웠다. “원누이, 어젯밤 한숨도 못 잤잖아요. 제가 왕부로 가서 왕야가 어떤지 살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나신다면 제가 이곳으로 오면 되지 않습니까?”원경릉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아니야. 쉬더라도 왕부에 가서 쉬어야지. 여기에는 정화군주께서 쉬고 계시니까 방해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희상궁과 사식이는 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왕부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왕부에 도착하자 사식이
열이 내리자 우문호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단잠에 빠진 그의 코 고는 소리는 마치 피리처럼 가늘고 길게 울렸다. 원경릉은 그의 추한 모습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비몽사몽한 얼굴로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잠시 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원경릉은 침상에서 일어나 들어오라고 했다.“왕비, 현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만아가 말했다.원경릉은 현비마마라는 말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현비마마라면 원주 원경릉을 싫어하는 시어머니?’그녀는 조용히 침상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우문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휙—” 순간 우문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조용히 해. 나 자고 있잖아.” 우문호가 말했다.“참나, 알겠어!”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톡톡 치며 말했다.그녀는 만아에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달라고 하고는 입가에 묻은 침자국을 닦았다. 현비마마는 출궁 할 때마다 화려하게 겉치레를 하기로 유명했다. 원경릉이 급히 밖으로 나오자 태감들과 궁녀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고,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고는 치마를 잡고 다급히 본관으로 향했다. “현비마마께서는 지금 천자의 수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식이가 원경릉을 붙잡았다. “본관이 아니라 천자의 수레에 계신다고?”원경릉은 현비의 허세에 기함을 토했다. 왕부에 오면서 궁인들과 태감을 대동하는 것도 모자라 천자의 수레를 타고 오다니.원경릉은 속으로 현비의 허세를 욕했다. ‘역시 시어머니가 불편하고 싫은 건 현대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기사 2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키운 아들을 맘에 들지도 않는 여인에게 장가 보냈으니 시어머니인 현비도 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겠어……’그녀는 과거나 현대나 고부관계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춥고 바람도 거센 겨울, 12명의 금군이 현비마마를 태운 수레 앞에 두 줄로 서있었다.현비마마는 천자의 수레에 앉아있었고, 상궁이 초왕비가 나왔다고 하자 ‘응’하
“치료했습니다. 만약 치료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열이 났을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계속 열이나라고 저주를 하는 것이냐?”현비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원경릉을 보며 엄하게 말했다.현비가 갑자기 멈추자 원경릉은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저주라니요! 제가 감히……”“그럼 그게 무슨 뜻이냐? 네가 임신한 몸으로 네 남편을 치료한 걸 공으로 인정해달라는 거야?”현비가 몰아세우자 원경릉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보았다. 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희상궁은 웃으며 현비를 부축하며 “마마님, 못 본 사이에 전보다 훨씬 젊어지신 것 같으시네요! 살갗이 희고 투명하셔서 쇤네가 잘 못 본 줄 알았습니다! 무슨 단약이라도 달여드십니까? 어쩜 이리 고우십니까?”라고 말했다.현비는 자신이 젊고 예쁘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참, 희상궁도…… 본궁이 그렇게 젊어 보입니까? 어휴, 세월이 빨라요. 제가 벌써 마흔이라니까요. 단약은 무슨 하나도 챙겨 먹는 거 없는데, 아 참! 예전에 희상궁이 본궁에게 줬던 백풍단, 그건 참 좋더라고요? 그건 먹으면 눈가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 봐봐요 희상궁이 보기에는 주름이 옅어진 것 같아요?”현비마마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다. 희상궁은 현비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았다. “어머! 세상에 피부가 아주 투명하십니다! 주름은커녕 진주같이 고와서 미끄러질 것 같아요!”현비는 희상궁의 손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실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 하는 사람이 많은데, 희상궁은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아요. 항상 진실을 말해주니까요.”“마마님 쇤네는 황실에서 반평생을 살았습니다.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잘 압니다.” 희상궁은 웃으며 그녀를 부축하며 안으로 향했다.원경릉은 왜 시어머니인 현비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알고 있었다. 다섯째가 다친 것 말고도 호 아가씨(扈小姐)때문일 것이다. 시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