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했습니다. 만약 치료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열이 났을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계속 열이나라고 저주를 하는 것이냐?”현비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원경릉을 보며 엄하게 말했다.현비가 갑자기 멈추자 원경릉은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저주라니요! 제가 감히……”“그럼 그게 무슨 뜻이냐? 네가 임신한 몸으로 네 남편을 치료한 걸 공으로 인정해달라는 거야?”현비가 몰아세우자 원경릉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보았다. 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희상궁은 웃으며 현비를 부축하며 “마마님, 못 본 사이에 전보다 훨씬 젊어지신 것 같으시네요! 살갗이 희고 투명하셔서 쇤네가 잘 못 본 줄 알았습니다! 무슨 단약이라도 달여드십니까? 어쩜 이리 고우십니까?”라고 말했다.현비는 자신이 젊고 예쁘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참, 희상궁도…… 본궁이 그렇게 젊어 보입니까? 어휴, 세월이 빨라요. 제가 벌써 마흔이라니까요. 단약은 무슨 하나도 챙겨 먹는 거 없는데, 아 참! 예전에 희상궁이 본궁에게 줬던 백풍단, 그건 참 좋더라고요? 그건 먹으면 눈가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 봐봐요 희상궁이 보기에는 주름이 옅어진 것 같아요?”현비마마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다. 희상궁은 현비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았다. “어머! 세상에 피부가 아주 투명하십니다! 주름은커녕 진주같이 고와서 미끄러질 것 같아요!”현비는 희상궁의 손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실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 하는 사람이 많은데, 희상궁은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아요. 항상 진실을 말해주니까요.”“마마님 쇤네는 황실에서 반평생을 살았습니다.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잘 압니다.” 희상궁은 웃으며 그녀를 부축하며 안으로 향했다.원경릉은 왜 시어머니인 현비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알고 있었다. 다섯째가 다친 것 말고도 호 아가씨(扈小姐)때문일 것이다. 시어머
현비도 호씨 집안 여식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항간에 도는 소문에도 호씨 아가씨가 진북의 도적 소굴에서 자랐기에 성격이 거칠고 제멋대로라고 했다. 그래도 현비는 다섯째가 계집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할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호씨 집안 여식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고 해도 다섯째가 태자가 될 수 있도록 호씨 집안에서 힘을 써줄 수 있지 않는가. 몰락한 정후부보다는 든든한 호씨 집안을 처가로 두는 게 우문호가 태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희상궁은 원경릉이 난처해질까 봐 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현비마마! 여인에게 특히 좋은 차를 가져왔습니다. 안에는 구기자와 계피 대추 등 몸에 좋은 것은 다 들어있습니다. 마시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혈색이 좋아질 겁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라고 말했다.현비는 희상궁이 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지도 않고 맛이 딱 좋네요. 역시 희상궁의 손맛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희상궁, 시간이 있을 때마다 왕비를 설득 좀 해봐요. 여인의 미덕 중에 하나가 나눔, 배려 아닙니까? 질투심이 강한 여인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마마님 왕비께서는 통이 크십니다! 왕비께서 임신을 한 이후로 계속해서 왕야께 후궁을 맞이하라고 하셨는데, 왕야가 전부 거절하신 겁니다.”희상궁이 말했다.희상궁의 말을 듣고 현비는 다섯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현비는 슬쩍 원경릉의 배를 쳐다보았다. ‘임신을 한 걸 보니 영 몹쓸 물건은 아니군……’희상궁은 현비의 표정이 유해진 것을 보고 한숨을 돌리고 물러났다. 현비는 이왕 출궁 한 거 원경릉에게 훈계를 몇 마디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시어머니로서 현모양처가 되는 방법부터 이상적인 며느리가 되는 법까지 원경릉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다.현비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드르렁- 드르렁-”현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원씨, 본궁이 지금 얘기하는 거 안 보입니까? 어떻게 본궁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코까지 골면서 잘
조어의가 원경릉을 보고 피로누적으로 인해서 잠을 자는 것이라고 하자 현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비는 부중의 사람들에게 왕비를 잘 돌보라고 분부하고 수레에 올라탔다. 현비가 떠난 왕부에서 원경릉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만아와 사식이의 부축으로 침상으로 옮겨져 누가 업고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들었다. 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녀는 출궁을 하면서 다섯째를 설득해 호씨 집안과 혼인을 하게끔 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밖의 상황에 이렇게 쫓겨나듯 궁으로 돌아오게 되다니. 궁으로 돌아온 현비에게 태후가 초왕비의 상태를 묻자 무사하다고 말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사람을 진북후부로 보내 내일 호 아가씨를 입궁하라고 분부했다.현비는 호 아가씨의 인품이 어떤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소문보다 성격이 견딜 수 있는 정도라면 빠른 시일 내 다섯째와 혼인을 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현비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아들 문호를 꼭 태자로 만들어야 해.’다섯째는 공주부 사건으로 근 1년 동안 황실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 왕비의 임신과 동시에 경조부윤으로 파견되어 승승장구하나 싶었더니 또 곤장을 맞고 그 모양 그 꼴이 되다니. 현비는 바보 같은 다섯째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다음날, 호 아가씨가 입궁했다. 호 아가씨는 빨간 단색 치마를 입고 검은 옷깃의 저고리에 털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쪽진 머리에는 적산호 비녀가 꽂혀있었으며 검은 피부에 짙은 눈썹,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곧게 뻗은 콧대. 전체적으로 그녀의 모습엔 활기가 가득했다. ‘소문대로 대범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군.’그녀는 무릎을 꿇고 현비 앞에 앉았다. “신녀가 현비마마를 뵙습니다. 제 이름은 호강연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비마마 만수무강하시옵소
현비는 호강연의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현비가 잠깐 눈을 감자 눈앞에 우문호가 태자로 책봉되는 순간이 그려졌다. 현비는 호강연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가늘게 떴다. “호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정말 다행입니다!”호강연은 활짝 웃으며 “예, 그 말씀을 줄곧 기다려왔습니다!”라고 말했다.현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오늘 본궁이 사람을 시켜 제비집을 준비해 두었는데, 마시고 계세요. 본궁이 사람을 시켜 황상을 모셔오겠습니다.”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현비는 방금 호강연과 나눈 대화를 황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강연은 황상이라는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비를 보았다.“예…… 신녀 다 마셨습니다. 제비집은 진북에서 아주 귀한 겁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준비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현비는 당황한 표정의 호강연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간에서 떠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겸손하고 예의도 바르다고 생각했다. 원경릉은 다섯째가 호 아가씨의 성격 때문에 혼인을 거절했다고 했는데, 그건 그가 호강연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생각보다 얌전하고 성격도 소탈하니 좋은데…… 다섯째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명원제는 요 며칠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는 나귀빈 사건이 해결된 후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고, 또 하나는 진북후측에서 트집을 잡지 않아 평온한 매일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여태감이 출궁해 초왕비를 보고 와서는 배가 남산만 하니 장군을 낳을 것 같다고 전하자 그 기쁨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하지만 명원제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는 셋째 때문이었다. 구사가 말하길 셋째가 정후부에서 소란을 피웠다는데, 그 말을 듣고 명원제는 낯이 뜨거워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렵다더니…… 정세보다 자식 관리가 더 어렵구나.’명원제가 궁궐화원에서 앙상해진 가시나무를 보며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때마침 현비가 보낸 사람이 와서 호 아가씨
다섯째도 후궁을 들여야 할 때가 됐다. 명원제는 호강연에게 거침없이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고, 그때마다 호강연은 꾸밈없이 진솔하게 대답을 했다. 황제 앞에서 떨지 않고 당차게 대답하는 호강연의 모습이 명원제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호강연의 모든 조건도 원경릉에 비해 떨어지지도 않는다. 명원제가 현비와 이야기를 나누자 호강연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숨죽여 기다렸다. 호강연은 본래 원하는 것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쟁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혼사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이기에 자신만만한 호강연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에 호강연의 아버지가 괜찮은 신랑감이 있다고 중매를 서겠다고 했을 때 호강연은 죽어도 싫다며 거절했다. 그녀는 줄곧 우문호를 기다렸다. 진북에서 경중으로 돌아왔으니 주사위는 던져졌다. 호강연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명원제는 현비와 이야기를 한 후 마음이 통한 듯 방글방글 웃었다. 호탕한 웃음소리에 호강연이 힐끗 명원제를 보다가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명원제는 그런 호강연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당차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생각보다 겸손하기까지 다섯째의 배필로 딱이다. 앞으로 황실에 법도와 규율을 잘 가르친다면 문제 될 것은 없겠어.’호강연은 명원제와 현비에게 인사를 하고 출궁 했고, 명원제는 그 길로 사람을 시켜 진북후를 입궁시켰다. 딸의 혼사를 걱정하던 진북후는 명원제가 혼사에 관련해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자 만사를 제쳐두고 궁으로 들어왔다. 진북후는 명원제가 자신을 급히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명원제가 호강연을 친왕의 부인으로 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설마 회왕은 아니겠지. 회왕은 전에 병을 앓았기에…… 어떤 친왕의 부인으로 점지하셨을까.’진북후는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북후의 마음에 가장 드는 친왕은 우문호였다. 만약 우문호를 사위로 맞이한다면 딸이 후궁으로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진북후의 말을 듣고 명원제는 기분이 언짢았다. ‘아무리 진북 사람 성격이 호탕하고 직설적이라고 해도 너무 속이 뻔히 보이지 않는가?’진북후는 진북으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장군에 불과했다. 진북으로 간 몇 년 동안 그가 많은 공적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그의 가족들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제공했으며 풍요롭게 살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야망을 품다니.명원제는 여러 신하를 다루어보았기에 진북후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저으며 그를 보았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짐이 초왕비를 친정으로 보낸 이유는 반성을 하라고 보낸 것이다.”“그렇습니까? 황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초왕부의 일이니 저도 더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황상께서 강연이와 이어주려는 친왕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상께서도 강연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강연이는 고집이 세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꼭 차지해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명원제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며 “알지. 당차고 똑 부러지는 아이더구나. 그래, 결혼은 큰일이니, 후작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짐이 이렇게 후작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려고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니냐.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만, 현비가 자네 집 여식을 불러 담화를 했다고 하네. 두 사람이 말이 잘 통하는 것을 보니 가족의 연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네.”라고 말했다. “신도 딸아이의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강연이도 현비마마를 존경하고 있어 현비마마의 진정한 며느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럼 진정한 며느리지 가짜 며느리도 있는가?” 명원제는 일부러 모르는 체하며 진북후에게 되물었다. “황상, 신에게는 딸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뭐든 최고로 해주고 싶습니다. 만약 강연이가 초왕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면 초왕의 정비로 보내고 싶습니다.”진북후가 과감 없이 말했다.명원제는 진북후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화가 났지만, 이 또한 진북후의 모습이거니 하고 화를 참았다.명원제는 후회스러운 마음을
“인품은 두말 할 필요없이 좋습니다. 다만 우리 집안에서 노력을 좀 해야겠습니다. 황상께서는 초왕의 후궁으로 우리 강연이를 들이려고 합니다.”“후궁? 초왕이 이미 혼인을 했느냐?” 노부인이 물었다. 옆에 있던 하인이 노부인의 옆에 다가왔다.“마마님, 잊으셨습니까? 명월암에서 부인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께서 바로 초왕비이십니다.” 그 말을 듣고 노부인은 놀라서 하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기억하지!”이에 진북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초왕비가 왜요? 누가 모친의 목숨을 구했다는 겁니까?”노부인은 명월암에 있었던 일을 진북후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내가 그 분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지도 못할 것이야.”“그런 일이 있었다니…… 초왕비가 우리 집안의 은인이군요.” 진북후가 말했다.“그렇다니까!”진북후는 마음이 착찹해졌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강연이를 정비로 보낼 수 있을까요? 우리 강연이는 절대로 후궁으로 혼인시킬 수 없습니다. 아니면 은인이신 초왕비의 아이를 강연이가 친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잘 보살펴 은혜를 갚으면 되지 않겠습니까.”“뭐? 초왕비를 폐비시킨다는 말이냐?” 노부인은 진북후의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네가 감히 인륜에 어긋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야?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진북후는 모친이 화가난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아니면 우리 강연이를 정비로 올리고 초왕비를 후궁으로 삼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후부 세력도 쇠해진 마당에 정비가 가당키나 합니까?”“그 입 다물라!” 노부인이 진북후의 뺨을 때리자 진북후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정비로 잘 지내고 있는 초왕비를 폐비시키다니, 초왕 내외를 꼭 갈라놓아야 네 속이 시원하겠느냐! 강연이 신랑이 꼭 초왕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진북후는 모친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그녀의 건강이 상할까 걱정했다.“아닙니다. 모친! 소자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노여움을 푸세요!”노부인은 화가 가시지 않았다.“네가 다시 한번 그
호강연은 진북후의 호출에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달려왔다. 그녀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온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조모! 아버지!” 그녀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의 말을 기다렸다.진북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보았다. ‘내가 이런 예쁜 딸을 낳았다니, 딸이 이렇게 커서 혼인을 논할 나이가 됐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구나…… 지금 이 순간 호연이의 어미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어……’진북후의 아내는 일찍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강연아 자리에 앉거라. 부친과 조모가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 너의 의견을 물어볼 것이니 잘 생각하고 답하거라.”“아버지, 말씀하세요.”호강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네 아비로써 네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다. 평민들 사이에서는 첩이라고 하지만 황실에서는 그것도 측비…… 후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말인데, 네 생각은 어떠냐?”진북후는 딸에게 후궁 자리를 말하기 미안한 마음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괜찮습니다.” 호강연이 흔쾌히 답했다.“정말 괜찮다고?” 진북후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호강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자고로 혼인은 집안끼리 문제입니다. 제가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다면 소녀도 따르겠습니다.”진북후는 붉어진 딸의 얼굴을 보고 호강연이 우문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 네가 그렇다면 초왕비를 모시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 되겠구나.’그는 호강연의 말에 웃었다.“그래, 그럼 잘 됐구나. 내가 내일 입궁해 황상께 말씀드리겠다.”호강연이 황제라는 말을 듣고 들고 있던 손수건을 움켜쥐었다.“황상…… 황상께서는 무슨 뜻이셨습니까?”“초왕이 임신까지 했으니 정비로 들일 수는 없고, 후궁으로 혼인을 허락하셨다.”“뭐라고요? 초왕의 후궁이요?” 호강연이 벌떡 일어났다.진북후는 부들부들 떠는 딸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왜? 후궁이라도 좋다면서?”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