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분노를 삼켰다.“본왕은 그저 그 여자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사지에 몰아넣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너무 뻔하지 않나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원용의가 말했다.제왕이 고개를 들어 원용의를 바라보며 “그래.”라고 말했다.“그래요 이제 잊어버리세요.”“그렇게 말 안해도 다 잊었어.”원용의는 그가 말로만 잊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지만 되묻지 않았다.제왕은 원용의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그냥 그 여자가 나를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말이야.”“악몽을 꿨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 만날 수도 있죠.” 원용의가 위로했다.제왕은 원용의에 말대로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그가 불속에서 도망쳐 나와 깨어났을 때 원용의가 제왕에게 주명취가 불을 질러 제왕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어떠한 원망의 마음이 있더라도 서로의 생명을 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밖에서 손왕비와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손왕비가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위왕비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위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손왕비는 줄곧 원경릉을 불러 위왕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원경릉이 위왕비를 진찰해보니 혈압이 낮고 빈혈이 있는 것 같았으며 정신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위왕비는 말을 할 힘도 없는 듯 원경릉을 보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동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하늘이 무너져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을 잘 돌보세요. 위왕비.”손왕비는 위왕과 그 여인의 일을 알고 위왕비를 위로했다.위왕비는 힘없이 웃으며 “알고 있습니다. 손왕비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백합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경국지색은 아니더라도 수수한 얼굴에 몽롱한 눈빛은 딱 고전미인형이었다.야리야리한 그녀가 인상을 조금만 써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뭉클하고
손왕비는 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위왕비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겁니까? 그 늙은 여자랑 제대로 붙어보라고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어요? 셋째랑 결혼을 하겠다고 혼사도 거부했던 그 용기는 어디 갔어요? 왜 이렇게 나약해졌습니까?”손왕비는 말하다가 돌아서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이리와서 위왕비 좀 설득해봐요. 이러다가 화병으로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사실 위왕비 손목의 상처는 원경릉이 검사를 할 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원경릉은 위왕비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르는 체 했으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손왕비가 손목의 상처를 알아버렸고 일이 커졌다. “손왕비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위왕비가 설마 셋째 아주버님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겠습니까?”손왕비는 자살이라는 말에 화가 잔뜩 났다.“셋째 때문이 아니라면 왜겠냐고요!”원경릉이 앞으로 나와 위왕비와 손왕비를 끌어당겨 앉혔다.위왕비는 다크서클이 축 내려온 공허한 눈빛으로 생기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위왕비, 요즘 잠을 잘 못 잤죠?”“예. 못 잤어요.”“잠을 못 자는 것 빼고 또 불편한 게 있습니까?”“초왕비님 뭘 물으시려는 겁니까?”“빈맥, 두통, 호흡곤란, 환각 이런 증상이 있어요?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위왕비는 넋 나간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어떻게 아셨어요?”손왕비는 깜짝놀란 표정으로 “설마 위왕비에게 누가 독을 쓴 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손왕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위왕비를 보며“위왕비, 언제부터 그랬습니까?”라고 물었다.위왕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글쎄요…… 제가 유산한 후 한 달 넘게 요양했는데, 하지만 몸이 계속 회복이 안됐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요통이 있었어요. 그 후에는 약간 환각이 보였고 눈을 감아도 귀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손목을 그었을 때, 환각이 보였나요?”원경릉이 물었다.“맞아요. 아이가 제 앞에서
“어우 머리 아파.” 손왕비가 말했다.“왜 아픕니까? 전에 어의에게 약을 처방받았잖아요. 다 나은 거 아닙니까?”위왕비가 물었다.손왕비는 자리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초왕비가 납치되어 간 이틀 후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원경릉이 물었다.“엉덩이 쪽이 아픕니다.”손왕비의 얼굴이 빨개졌다.“좌골신경? 앉아 있으면 아픈가요? 혹시 여기가 아픕니까?” 원경릉이 손을 뻗어 그녀의 좌골신경을 눌렀다.“아뇨. 거긴 아닙니다. 근데 이따금 통증이 느껴져서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립니다.”원경릉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찌하여 가슴이 벌렁거리죠? 정확히 어디가 아픈가요?”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안팎에 있는 하녀들을 다 내보내고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그…… 그곳이 아픕니다.”“어디요?” 원경릉이 되물었다.“바로 그……”원경릉이 번뜩 깨닫고 웃으며 물었다. “아, 혹시 혈변을 보셨어요?”“이틀 정도 혈변을 봤습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어의도 봤는데, 화독약 처방을 받고 오래 앉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왕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조용히 약상자를 떠올리며 치질 연고를 생각했다. ‘오늘은 치질 연고를 쓸 수 있겠군. 약상자에 치질 연고가 있던 이유가 바로 손왕비 때문이었구나.’임신 당시에 그녀는 임산부가 치질에 걸릴 가능성이 높기에 약상자가 미리 알고 치질 연고를 준비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질은 생기지 않았고, 아직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약상자에 있는 치질 연고를 보면서 이건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저에게 종기에 특효가 있는 약이 있습니다. 꺼내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위왕비를 검사할 때 꺼내 둔 약상자를 넣지 않았기에 그 안에서 바로 약을 꺼낼 수 있었다.그녀는 치질 연고를 찾아 손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안으로 꾹 눌러 넣으세요. 5일 동안 꾸준히 쓰면 괜찮아지실
위왕비는 강단 있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다. 그녀의 우울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외유내강인 위왕비같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갑자기 없던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위왕비는 자신의 병이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애를 썼고 그녀의 노력을 원경릉이 느꼈다.“내일 왕부에서 눈놀이 연회를 열 텐데, 그때 와주세요.”갑작스러운 초왕비의 초대에 당황한 위왕비가 손왕비를 쳐다보자 손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겠다고 했다.위왕비가 은은하게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꼭 갈게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이 떠난 후 사람을 사람을 시켜 손왕비에게 편지를 전했다. [손왕비, 내일 말고 다음에 왕부에 와주세요. 내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게 있습니다.]손왕비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 편지를 보고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셋째 위왕부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남의 집안일에 관여하는 거 아니다. 물론 본왕이 위왕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위왕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어.”“난 그 집안일에 관여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위왕비랑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약속을 잡았으니 어쩔 수 없지. 셋째와 넷째는 왕래가 잦고 사이가 좋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엮이지 마.”“셋째랑 넷째가 친하게 지내는 게 뭐 어때서?” 원경릉이 의아했다.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셋째와 넷째가 많이 가까워졌어. 우리가 그들과 가까워진다면 부황께서는 형제끼리 작당모의를 한다고 생각하실 거야.”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말에 수긍하고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오후에 태상황제가 초왕부로 유산 방지약을 보내왔다. 원경릉이 보니 그중 많은 처방이 기왕비가 보내온 것과 겹쳤다. 우문호가
위왕비는 구름무늬를 수놓은 새하얀 솜 옷으로 가냘픈 몸을 두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쪽진 머리에 백옥 비녀를 꽂았고, 목에 걸린 붉은 산호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왕부로 들어오는 우아한 자태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하인들도 넋을 놓고 위왕비가 가는 길을 눈으로 쫓았으며, 위왕비 때문에 초왕부가 밝아진 기분까지 들었다.위왕비는 몸종을 한 명밖에 거느리지 않았는데, 몸종마저도 그녀와 닮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원경릉이 일어서서 위왕비를 맞이하자 위왕비는 은은한 미소로 “형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방금 몸이 좀 불편하다고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오늘은 못 오실 것 같다네요.”위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혹시 형님께서 감기에 걸리신건 아니겠죠? 어제 불을 조금밖에 안 때웠는지 좀 추운 것 같았습니다.”원경릉은 안색이 더 안 좋아진 위왕비를 보고 “어젯밤에 또 잠을 못 주무셨습니까?”라고 물었다.“머리가 아파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 날이 밝고 조금 눈 붙인 게 다입니다.”그 순간 원경릉은 상처가 난 그녀의 손목을 보고 “혹시 어젯밤에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아무 일 없습니다.”위왕비는 손목을 가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위왕비…… 손목을 또 다치셨네요.”위왕비는 옷소매를 당겨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요즘 들어 더 자제가 안됩니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는데 자꾸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제 주변의 하인들이 저를 예의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어제 제가 물어봤던 질문들 생각나십니까? 제가 물어본 것 말고 또 다른 증상이 있으십니까?”“제가 그걸 말하면…… 저를 놀리실 것 같아서 말 못 하겠습니다.”위왕비는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쳐다봤다.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했다.위왕비는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아닙니다. 초왕비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정말로 잠을 못 잤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위왕비가
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주명취라는 이름에서 뿜어나오는 악의 기운은 여전히 원경릉에게는 공포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듯 살아있을 때에 있었던 원한들이 연기처럼 깨끗하게 사라져야 한다.*주명취의 장례식은 매우 단출했다. 원래 이 장례식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혼절차가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황상이 주씨 집안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주었다.주씨 집안의 백발노인들이 검은 머리의 주명취의 장례를 준비한다.우문호는 왕부에만 있는 원경릉이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우문호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사식이와 만아 그리고 서일이 그들의 뒤를 따라 나왔다.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 특유의 바람 냄새가 코 속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어찌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식이가 물었다.“주씨 집안에서 출관을 한다고 하니 모두 귀신 씔까 봐 모두 돌아다니지 않는 거겠지.”서일이 말했다.“주명취를 어디에 묻는다고 합니까?”“어디에 묻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묘가 있는 선산에는 못 들어갈 것이야.”우문호는 주명취라는 이름이 귀에 거슬리는 듯 인상을 썼다. “경릉아 배 안 고파? 어디 들어가자.” 우문호는 혹시나 원경릉이 장례 행렬을 마주칠까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었다. 마침 길 옆에 찻집이 있었는데 그는 원경릉과 함께 찻집 2층으로 올라가 대추차와 다과를 주문했다.그녀는 대추차를 한 입 마시고 몸을 부르르 떨며 “부황께서는 뭐라고 하셔?”라고 물었다.우문호가 정직 처분을 받은 지 꽤 됐는데 아직도 복직하라는 소식이 없자 원경릉은 불안했다.우문호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다과를 먹으며 “아직 별말씀 없으시다. 조급할 것 없어. 나도 이런 생활이 싫지만은 않다. 이틈에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오히려 좋다.”라고 말했다.“너무 오래 쉬는 것도 좋지 않아. 그리고 부부간에도 서로 공간이 필요해.”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무
’주명취의 자결, 만약 우문호가 주명취를 죽인 것이라면? 아니면 그녀의 자결을 도왔다면?’온갖 추측이 머릿속의 휘젓자 원경릉의 마음이 널뛰듯 뛰었고 불길한 예감에 손이 떨렸다.마침 밖에서는 슬픈 태평소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듣고 사식이가 난간에 매달려 밖을 보았다.“아이씨! 재수 없게 왜 이쪽으로 오는 겁니까! 성 밖으로 도는 것 아니었습니까?”사식이의 말에 우문호가 벌떡 일어나 원경릉을 잡아당겼다.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며 “괜찮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자.”라고 말했다.“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저 여자가 너를 저승길로 배웅하려고 했어. 그걸 잊은 거야?”우문호가 화를 냈다.“그래, 인생이라는 게 참 신기해. 나를 죽이려던 여자가 나보다 먼저 죽다니 말이야.”원경릉은 난간으로 걸어가 장의 행렬을 보았다. 주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도 할 수 없이 행렬은 초라했고 뒤를 따르는 하인들도 적었다. 얇디얇은 붉은 관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제왕비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어? 저 사람은 제왕 아닙니까?” 사식이가 놀라서 큰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사식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적막한 거리 끝에 한줄기의 그림자가 보였다. 얇은 옷차림을 한 그는 세찬 바람에 옷깃이 젖혀지고 두 소매가 바람에 불룩해져 소매 안으로 뼈가 앙상하게 보였다. 그의 뒤에는 원용의가 보였는데 그녀는 말을 끌고 멀리서 그런 제왕을 지켜보며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제왕이 행렬을 따라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표정이 보였다. 쓸쓸함과 슬픔 그리고 원한이 섞여있는 복잡한 얼굴에 원경릉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장례 행렬이 찻집 아래에 멈추자 제왕도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태평소 소리가 멈추자 종이를 흩뿌리던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다. 사식이는 작은 소리로 원경릉에 귀에 대고 “저 젊은 남자가 주명취의 이복동생으로 주복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주복은 제왕의 앞에 멈춰 그의 두 손을 맞잡고 인사를 했다.“제왕을 뵙습
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자리에 앉아 술주전자와 작은 술잔 그리고 향을 꺼냈다.찬합 안에는 제사 음식이 가득했고 제왕은 차갑게 식은 음식들은 하나하나 꺼내 그릇에 담았다.주복은 옆에서 향을 피워 관 위에 두었다. 바람이 불자 다 타버린 향이 떨어져 제왕의 발등이 검게 변했다. 제사를 준비하고 제왕은 관 앞에 서서 조용히 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맛있는 거로 챙겨봤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제비집은 늘 즐겨 마시는 것 같기에 필히 챙겼으니 가는 길에도 꼭 먹고 가. 부부로 지낸 일 년 동안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았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네. 꽃처럼 아름답던 너.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자책하기도 해…… 내가 도통 모르겠는 게 있는데…… 왜 날 그렇게 미워했어? 난 정말 모르겠어. 왜 넌 나를 죽이려고 했을까. 난 요즘에도 화염에 휩싸여 허덕이는 꿈을 꾸고, 비녀로 찌르려고 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꿈에 나와. 곱고 나긋나긋했던 네가 갑자기 그렇게 변한 이유가 뭐야? 만약 이 해답을 나에게 주려거든 꿈에 한 번 나와줘.”원용의는 슬픔에 잠긴 제왕을 보고 그럴 가치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자 이만하면 됐습니다. 그만 슬퍼하세요.” 원용의가 제왕의 어깨를 감쌌다.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야윈 얼굴로 원용의를 보았다.“나는 주명취 때문에 슬픈 게 아니야. 본왕은 그저 지난날의 내가… 내가 너무 안타깝고 주명취도…… 만약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텐데.”바람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우는 것 같이 들렸다.제왕의 말을 찻잔 2층에서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매우 아팠다. 제왕은 주명취를 사랑했다.그런 험한 꼴을 겪고도 정성스럽게 그녀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을 준비해 제사를 지내주었다. 주명취는 왜 한결같은 제왕을 두고도 왜 끝이 보이는 선택을 했던 것일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