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태상황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태상황이 우문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기 때문에 태상황 앞에서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현재 황제의 자리에 오를 유력한 후보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우문호다.황실에서 우문호에게 조금만 힘을 실어 준다면 그는 태자로, 황제로 우뚝 솟아날 수 있다.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갑자기 태상황에게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태상황이 말하는 폭풍우는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이며 무엇일까?정세가 바뀌려는 조짐이 보이자 황실에서 우문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이런 사사로운 감정이 들자 그녀는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태상황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이틀 후, 손왕비가 찾아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손왕의 생일 차림표를 보고, 원경릉은 전에 손왕이 생일 준비를 한다며 황제의 요리사에게 요리를 주문해 시식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손왕비, 손왕 생신은 이미 지났잖아요? 분명 몇 달 전에 오셔서 생일 준비한다고 요리사에게 요리를 부탁해 시식 했는데…”“초왕비는 손왕의 말을 믿습니까? 그냥 배고파서 그런 거겠죠.” 손왕비가 심술궂게 말했다.“아…… 그렇군요.” 원경릉이 웃음을 터뜨렸다.“맞다! 초왕비는 지금 제왕부 상황 알고 있습니까?” “원비가 지금 초왕부에 있어서 그녀에게 들었습니다.”“이혼?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손왕비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예?” 원경릉이 물었다.“주명취가 바보도 아니고, 일곱째는 황상의 적자에다가, 성격도 온화하고 됨됨이도 좋잖아요. 제왕같은 남자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데 주명취가 제왕을 포기한다고요? 그 똑똑하고 영악한 여자가 그렇게는 절대 못 할 겁니다.”“너무 단정 짓지는 마세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원경릉은 진지한 표정으로 열번을 토하는 손왕비를 보고 웃었다.“초왕부가 그녀를 받아준다면 몰라도, 주명취는 절대 제 발로 제왕부를 나오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왜 주명취를 초왕부랑 관련을 지으십니까?”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의미
원경릉은 손왕비의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왕부의 여인이 어떻게 임신을 한 거죠? 누구 씨랍니까?”“셋째 씨래요. 어휴… 그 여자가 위왕비가 구해준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지”손왕비가 한숨을 내쉬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형님 자세하게 얘기 좀 해주세요.” 원경릉이 물었다.원경릉은 위왕비 최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최씨는 소박하고 온화했다. 그녀의 집안도 주명취 못지 않게 빵빵했지만 주명취처럼 기세등등하거나 안하무인 하지 않았다. 최씨는 작년에 임신을 했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지 반년 만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슬픔에 잠겨 지금까지 은둔생활을 했었다.“위왕비도 불쌍하지… 이 얘기를 하면서 엉엉 우는데 나도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위왕이 무슨 귀신에 씌였는지, 위왕비한테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그 여인을 후궁으로 들이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위왕비가 그 여인을 괴롭힌다면 위왕비를 내쫓겠다고 협박까지 했대요.”원경릉은 혀를 찼다. “세상에 그렇게나 심각하다고요? 그 여자가 엄청 예쁜가요?”“예쁘다고? 그 여자 나이가 서른입니다. 위왕비랑 같이 서있으면 위왕비를 모시는 늙은 몸종 같다니까요?” 손왕비가 콧방귀를 뀌었다. “근데 어쩌다가 그런 여자한테 위왕은 코를 꿰었답니까?”“…… 뭐 그런게…… 좋았겠죠?” 손왕비가 우물쭈물했다.원경릉은 입이 떡 벌어졌다.“그렇지 않으면 위왕이 넘어갔겠어요? 위왕비 시녀가 말하길 그 여자가 위왕에게 입에 발린 말을 그렇게 잘한답니다. 남자 기를 엄청 세워준대요. 예전에 위왕 내외가 둘이 죽고 못 살았잖아요. 위왕비도 원래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걸 마다하고 위왕하고 혼인하겠다고 밥도 안 먹고 투쟁을 했답니다. 위왕도 위왕비의 집안을 설득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했어요. 근데 결국 이게 뭡니까? 늙은 여우한테 잡아먹혔죠 뭐.”원경릉은 남의 집안일에 왈가불가하기 싫어서 말을 아꼈지만, 속으로는 위왕비가 애처롭게 느껴졌다.‘님에다가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더니. 진짜다.’손왕비가 떠난 뒤 원경릉은 희상궁을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그녀는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살고 싶었다. 사람은 모두 때가 있는 법. 만아도 분명 말 못 할 속 사정이 있을 것이다.됐고, 그녀는 더 이상 고만아 일로 우문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희상궁 사건 이후, 그녀는 목숨보다 중요한 대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호명의 추측이 맞았다. 만아는 부두에서 짐을 나르고 있었다. 남강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짐을 더 나르더라도 받는 삯이 절반 밖에 안 됐다.그것이 이 부둣가에 암암리에 정해진 규칙이었다.사식이가 왕부를 나와 밖에서 일을 볼 때마다 부두에 들러 고만아를 지켜보았다.그녀는 쌀 두 포대를 날라다 소달구지에 던졌다. 다른 사람의 두 배를 날라야만 같은 삯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쉬지 않고 달렸다.사식이는 갈 때마다 점점 만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떨 때는 누군가가 ‘남강 계집!’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두에서 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녀의 몸집은 전에 비해 반쪽이 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만아를 알아볼 수 없었다.어느 날 고만아가 일을 하다가 사식이를 알아보고 들고 있던 쌀 포대를 내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그녀가 달아나자 사식이가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았다.얼마나 뛰었을까 힘에 부친 만아는 사식이에게 붙잡혔다.“왜 도망가느냐?”만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을 저었다.“나는… 정말… 왕비를… 헥… 해치지 않았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사식이는 인상을 쓰고 “누가 너 잡으러 왔대?”라고 물었다.만아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두 손을 짚은 채 사식이를 올려다보았다.“지금 나 잡으로 온 거 아닙니까? 그럼 왜 쫓아왔어요?”“도망가니까 그냥 쫓아온 건데?”만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꽤 먼 거리를 뛰었는데 사식이는 숨 하나 차지 않는 듯 평온해 보였다. 만아는 사식이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그나저나 왕비께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그때 내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못 했소.”사식이는
사식이는 왕부로 돌아가 부두에서 만아를 목격한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작은 체구로 사내들과 짐을 나른다는 소리에 원경릉은 마음이 아팠다. 원경릉은 조용히 사식이를 불러 은화 열 냥을 만아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고만아가 받지 않겠다고 해도 꼭 주고 와야 한다.”“왕비께서는 사람이 참 좋으십니다.” 사식이는 원경릉이 건네주는 은화를 받았다.다음날 사식이는 만아를 찾아가 은화를 억지로 쥐여주고는 도망 왔다.원경릉은 만아에게 은화를 줌으로써 마음속의 가책을 없애고 싶었다. 원경릉도 왜 자신이 만아를 가엽게 여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만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였다.저녁이 되자 우문호가 제왕과 함께 왕부로 왔다. 그는 온몸에 노기가 가득해 왕부로 돌아온 뒤 즉시 소월각으로 갔다.원경릉은 그런 우문호를 보고 의아했다.“왜 왕부에 오자마자 소월각으로 온 거야? 누가 널 화나게 했어?”우문호는 소월각에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원경릉 옆에 앉아 그녀의 배를 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잘 기억해라. 나중에 네가 네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나는 너를 때려죽일 것이야.”원경릉은 웃으며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딸이면 어쩌려고 아들이래! 그리고 제왕이 왜?”“이놈이 이틀 내내 관아로 와서 귀찮아 죽겠거든? 근데 이놈이 또 집까지 쫓아온 거야. 지금 짐까지 싹 싸들고 와서 밖에 서있는데…… 몰라 오늘은 초왕부에서 자겠대.”“왜?”“왜겠어? 부황께 주명취랑 이혼하겠다고 하고는, 제왕부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는 거지. 주명취를 보기가 껄끄럽대. 참나, 제왕부는 본래 지가 주인인데, 거길 못 들어가겠다고 저러는 거야.”“주명취가 울고 있을까 봐? 아니면 싸울 게 뻔하니까? 하긴, 볼장 다 봤는데 같이 있어 뭐 하겠어.”“볼장 다 봤다고 해도 아직은 부부 아니야? 그리고 주명취가 울든 말든 뭐가 무서워서 못 들어가?” “알겠어. 마침 여기에 원용의도 있으니 제왕보고 들어오라고 해서 하룻밤 묵게 해주자.”우
제왕의 말을 듣고 원용의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정색 하고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자존심도 없이…… 제왕비가 무서워 자기 왕부를 두고 초왕부로 피신 오다니. 한심하다 한심해.’원용의는 제왕에게 실망했고, 그런 사람의 후궁으로 들어간 자신이 창피했다.제왕은 원용의를 쫓아가서는 그녀를 잡아 세웠다.“해명하라고.”둘을 지켜보던 서일이 손을 저으며 해명하려고 하자 원용의는 그를 막았다.“동쪽에서 뺨 맞고 왜 서쪽 와서 화풀이십니까? 화를 낼 기운이 남아있으면 그 힘으로 주명취에게 가보세요.”“너……” 제왕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네가 무술을 잘 한다고 해서 본왕을 무시하나 본데, 함부로 굴지 마. 내가 너 봐주는 거거든?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말했다.서일은 제왕이 원용의에게 곤장 일도 내려칠까 무서워 황급히 제왕을 막아섰다.“제왕, 오해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왕비께서 넘어질 것 같아서 부축을 하려던 것뿐입니다. 왕야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불미스러운 관계는 절대! 전혀 아닙니다! 더군다나 원비 마마 같은 분은 제 취향도 아닙니다!”서일의 말을 듣고 원용의가 화가 났다.“서일! 취향? 입 다물어!”사식이는 서일을 끌며 “빨리 가자고요.”라며 자리를 피했다.서일은 난처한 표정으로 사식이를 보았다. “설마 치고받고 싸우는 건 아니겠지?”사식이는 웃으며 “걱정 마요. 적수가 못 됩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제왕이 크게 노했다.“사식아, 누가 누구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이냐?”“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이 내 적수나 되려나?” 원용의가 말을 가로챘다.“경고하는데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알겠어?”그 말을 들은 원용의는 눈살을 찌푸렸다.“제왕, 여기는 초왕부니까 우리 둘다 자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참, 이혼하기로 한 건 어떻게 됐죠?”“내가 이혼하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원용의는 노발대발하며 “그게 왜 나랑 상관없어요? 말 안 할 겁니까?”라고 말했다.그녀가 버럭 하자 제왕은 깜짝 놀라 입을 삐
원용의의 말에 제왕은 화가 났다.“어린애 달래는 말투 집어치워라! 네가 감히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해 줘? 내 혼사는 모후께서 알아서 하실 거야!”원용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조모께서 남자는 아이와 같아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모후께서……”“당신 모후? 예의를 차려라!” 제왕이 버럭 했다.원용의는 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만졌다.“나는 정비가 아니니 모후라고 부를 수 없죠.”제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네가 계속 내 심기를 건드리는구나.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정비라고 되고 싶은 것이야?”라고 말했다.“정비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원용의가 물었다.“좋은 거 많지.” 제왕이 잠시 생각하더니 “적어도 어디 가서 왕비라고 불릴 것 아니야. 정비가 되면 나와 합법적 부부가 되는 것이고!”라고 말했다.“합법적 부부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원용의가 물었다.제왕이 그녀를 보며 “정비가 되면 하인들을 네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백성들도 너를 칭송하겠지”라고 말했다. “하인들은 지금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백성들도 내 말 잘 듣는데요?”“또! 정비가 되면 황실 행사에 본왕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원용의가 웃었다.“지금도 갈 수 있는데요?”제왕이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말장난하는 거지? 정비는 내 본처야! 후궁은 첩이니 신분이 다르지!”“본처든 후궁이든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정비가 될 생각 없으니 빨리 주명취가 나간 후 대체할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주명취가 폐비되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내 상전으로 있으니 피곤해서 그런 겁니다. 당신이 정비를 새로 들이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말은 마친 그녀가 벌떡 일어서자 제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지 마.”“밥 먹으러 갈 겁니다.”원용의는 제왕과 말다툼을 하느라 허기가 졌다.“그럼 이 얘기만 듣고 가. 본왕이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야.”원용의는 진
제왕은 원용의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평소에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원용의가 저런 말을 하다니……’제왕은 원용의가 생각보다 철이 들었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는 문득 깨달은 눈빛으로 원용의를 보았다.“사실 오늘 모후께서 본왕을 꾸짖었다. 모후는 주명취가 본왕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시더라, 모후께서는 주명취가 한 모든 행동이 본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게끔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 본왕이 그녀를 받아줘야 한다고 설득했다.”그가 조용히 원용의를 바라보았다.“모후와 얘기를 나누고 나 자신이 너무 쓸모없는 놈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궁 밖으로 나와서도 자꾸 의심이 들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 주명취가 진짜 나를 위해서…? 아니면 그녀는 본왕을 통해 자신이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근데 오늘 너와 얘기를 나누고 난 뒤에 해답을 얻었다. 고마워.”그의 말을 들으며 원용의의 입가에는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제왕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났다.우문호와 원경릉이 나오자 탕양이 그들에게 제왕이 이미 왕부를 떠나서 식사는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왜? 갑자기 어딜?”우문호가 물었다.“왕부로 가신다고 했습니다.”원용의가 들어오다가 우문호를 보고 멈칫하며 한 걸을 물러서며“제왕은 제왕비랑 얘기를 나누러 갔습니다.”라고 말했다.“그래? 내기하자! 빨리 돈 걸어! 걔 둘이 이혼할지 안 할지!”우문호가 말했다.“이번엔 잘 모르겠다.” 원경릉이 무심하게 답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부축해 앉혔다.“넌 왜 이렇게 평온해?” 우문호가 그녀에게 물었다.“주명취 너도 잘 알잖아? 그게 쉽게 해결이 되겠어?”“당연하지. 걔는 어휴…” 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용의야, 너도 제왕부로 가봐. 가면서 조어의도 데리고 가고.” 원경릉이 말했다.“예? 어의는 왜요? 설마… 또 맞을까 봐요?”“내가 시키는 대로 해. 혹시 모르니까 가서 지켜봐.” 원용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조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사식이도 들어와 놀란 눈으로 “뭐가 움직였다고요?”라고 물었다.“본왕의 아들!” 우문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사식이가 놀라서 탕양을 바라보았고, 탕양은 처음 보는 우문호의 환한 미소에 그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원경릉은 웃으며 “됐어! 빨리 밥이나 먹자고!” 라고 말했다.“우리 큰 언니는요?” 사식이가 물었다.“왕부로 돌아갔어.”“제왕이 아까 우리 언니랑 서일을 의심했어요. 큰언니 화나면 정말 무서운데, 제왕은 겁도 없지 말입니다.”우문호는 태동을 느끼고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사식이를 보았다.“네가 일곱째를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일곱째도 무술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아.”“에? 정말요? 병든 닭 같던데……”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으로 계란 정도는 깰 수 있어.”라고 말했다.“소인은 맨손으로 돌도 깰 수 있습니다.”사식이의 말에 우문호가 웃었다.“제왕이 무술을 배웠다고?” 원경릉이 물었다.“황제의 아들이라면 무조건 무술을 배우도록 되어있어. 근데 무슨 이유인지 일곱째가 무술을 배우다가 말더라고.”“왜죠?” 사식이가 물었다.“나도 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도 얻어 맞고 다닐 수준은 아니야.”“근데 제왕비한테는 왜 맞고 사는 거죠?” 사식이가 물었다.“걔는 여자는 안 때려.”*그 시각 제왕은 단숨에 왕부로 돌아와 주명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주명취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지만 제왕이 들어오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성지가 내려왔어? 황제께서 나를 내쫓은 거야?”그녀의 눈빛에서 제왕을 무시하는 게 느껴졌다.‘겁쟁이.’오늘 아침 그녀를 찾아와 하는 말을 보니 제왕은 실로 무능력하고 강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제왕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보며 “괜찮아졌어?”라고 물었다.“이제야 관심을 주는구나? 퍽이나 괜찮겠다!” 주명취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제왕이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빌 것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