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 소식을 듣고상선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아, 아닙니다. 왕비께서는 무탈하십니다.”주재상이: “태상황 폐하 고정하시지요, 우선 상선의 말을 들어봅시다.”상선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덕비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고: “태상황 폐하, 초왕부에서 사람을 보내 희상궁이 자신하였다고 알려와서 왕비는 바로 돌아갔습니다.”주재상이 벌떡 일어나 눈알이 튀어 나와 머리 꼭대기에 가서 달릴 듯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덕비마마 뭐라고요? 희상궁이 자진을? 지금 어떤가요? 왜 자진을 했답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초왕부에서 수모를 당한 거 아닙니까?”소요공이: “주대인, 고정하시게, 우선 덕비마마가 하시는 말을 들어봅시다.”주재상이 긴 세월 쌓아온 위신이 하루아침에 다 물거품이 되고 미친 몰골로, “덕비마마, 말해요, 어서 말해요!”덕비가 숨을 삼키고 요점을 간추려, “요즘 밖에 나도는 소문에, 희상궁이 당시 재상과의 일이 있을 때 그녀가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 태상황 신변의 수석 궁녀란 신분을 무기로 주재상을 색으로 유혹하고 재상에게 버림받자 목을 매고 죽겠다며 재상을 협박 했으나 태상황에게 호되게 혼났다. 그래서 희상궁은 대상을 바꿔 방우와 사통하여 방우는 태상황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희상궁은 떠도는 소문이 너무도 추악하고 더러워서 견디지 못한 듯 합니다. 어찌 알았겠습니까. 왕비가 오늘 입궁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던 것을요.”주재상은 바로 이순간 건곤전에서 사라졌다.태상황이 노발대발하며, “방우? 밖에서 희상궁이 방우와 사통했다고 한단 말이냐? 게다가 방우가 나에게 맞아서 죽었다?”덕비가 어쩔 줄 몰랐지만 답할 수 밖에 없어: “이것은 왕비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왕비가 사람을 시켜 물어본 것으로 밖에는 이렇게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소요.” 태상황이 불같이 소리치며, 분노로 태산이라도 뽑을 듯한 기세로, “당장 조사해라, 소문을 퍼트린 자는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소요공이 어명을 받들고 조용히 나
상궁이 독을 먹었다. 그녀가 무슨 독을 먹었는지 어의는 찾아내지 못했고 방안에도 아무 흔적이 없었다. 심지어 독주를 먹은 잔이 깨끗하게 씻겨 있었다.조어의가 부랴부랴 해독 약을 만들어 그녀에게 두 알 먹였지만 약을 먹고 난 뒤에도 희상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힘없는 눈동자와 가는 숨소리는 그녀가 죽음에 문턱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광경을 본 원경릉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우문화 조어의를 막아서는 순간 약 상자를 꺼냈다. 침상 옆에 꿇어앉은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박동이 너무 약해……’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약 상자를 뒤져 아트로피닌을 꺼냈다. 희상궁이 무슨 독을 먹었든 관계없이 원경릉은 다급한 마음에 우선 약을 넣고 보았다.그 순간 주수보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문호가 그를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한 걸음에 희상궁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달려왔다.그는 입이 벌어진 채 공허한 눈빛으로 희상궁을 내려다보았다.주수보가 부중에서 출발하면서 사람을 시켜 쓸만한 약은 모조리 챙겨 왕부로 오라고 명령했다.그는 축 늘어진 희상궁을 보자 온몸에 한기가 돌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해다.우문호는 그런 주수보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재상…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주수보는 멍한 표정으로 원경릉이 희상궁에게 위를 세척하는 수액을 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주수보가 희상궁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녀는 겨우 열다섯의 소녀였다. 그녀는 큰 눈에 웃을 때마다 쏙 들어가는 보조개가 아름다웠고 깔끔하게 빗은 쪽머리가 새침해 보였다. 고급스러운 자수가 놓인 비단 옷을 입은 그녀는 지금의 태상황, 당시 태자 옆에서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날은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거세게 비가 내렸다. 태자는 비를 맞으면서도 지금의 주수보를 상대로 무술을 연마했다. 그때 상선도 어린 태감이었는데 그와 어린 희상궁은 항상 복도에 숨어서 태상황
오랜 기억 속에서 주수보는 점차 현실로 돌아왔다.그는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호흡은 점점 가늘어졌고 숨이 가쁜 듯 가슴이 연신 오르내렸다.침상에 삐죽 나온 그녀의 손목은 가시나무처럼 가늘었다. 주수보는 당시에 왜 그녀의 손을 놓았을까 왜 좀 더 용기내지 않았을까 후회됐다. 주수보는 희상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선 거친 눈보라가 치는 듯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았다.“가망이 없는 건가?”그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희상궁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요. 약을 투여해 독성을 최대한 희석시키기는 했지만 독이 이미 몸에 스며들어서…… 얼마나 독이 퍼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어의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겠어요.”어의가 다가와 희상궁의 맥을 짚었다.“맥박이 너무 약합니다. 몸속으로 독이 많이 퍼진 것 같습니다. 해독환을 먹이고 왕비께서 약도 썼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녀가 무슨 독을 먹었느냐.” 주수보는 아무런 표정 없이 조용히 물었다. 주수보는 감정을 숨기는 데 능했다. 기쁨, 슬픔, 노여움도 쉽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바짝 마른 입술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의 공포를 보여주었다.“모르겠습니다. 희상궁의 방에서는 주전자와 독약을 담았던 종이를 태운 재를 제외하고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희상궁을 독살하려고 독을 종이로 싸서 왔을 것이다. 그 종이까지 태워 무슨 독인지 모르게 하다니…… 범인은 희상궁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주수보는 희상궁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다가… 이렇게…”주수보가 조용히 읊조렸다.우문호는 주수보와 희상궁이 단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원경릉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원경릉이 뱉는 말이 칼처럼 우문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우문호는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처절하게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눈을 감았다.“미안해… 미안해…원경릉” 그의 목소리는 후회로 가득했고, 원경릉의 큰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주수보의 명을 받은 하인이 많은 약들을 가져왔다.주수보는 탁자 위에 약을 쏟고는 약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서 확인했다. 그리고 몇 개를 골라 먼저 먹어보더니 끓인 물에 약을 갈아 넣고는 희상궁 입에 조금씩 쏟았다. 원경릉도 어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수보를 지켜보았다.희상궁에게 약을 먹이고 난 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그의 얼굴에는 비통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기지 못할 절망에 빠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주수보의 마음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손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그녀가 살아나길 간절히 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선과 소요공이 도착했다. 소요공은 설연(雪莲)을 한 떨기 가지고 와 사람을 시켜 물을 부어 끓이게 했다. 물이 끓자 주수보가 먼저 먹어보고는 희상궁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어의가 희상궁의 손목을 잡고 다시 진맥했지만 맥박은 여전히 가늘었다.“재상께서는 돌아가 보세요. 금방 돌아가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처리하실 일도 있지 않습니까.”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하십니까?”소요공의 말을 듣고도 주수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태상황께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엄벌하라고 했습니다.” 소요공이 조용히 말했다.“엄벌?” 주수보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를 띤 얼굴로 “다들 나가세요. 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주수보의 진지한 표정에 모두들 자리를 떴고 안에는 다시 희상궁과 주수보 둘만 남았다.원용의는 사식이를 위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 아직도 자기가 이팔청춘인 줄 아십니까?” 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난 괜찮아요.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좋네요.” 그는 희상궁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전에는 흰머리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시간이 무정하네요.”라고 말했다.주수보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야심으로 가득 차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고생 한 번 하지 않았겠는가. 원경릉과 우문호는 하루아침에 야위어버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원경릉 마음속에 주수보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점차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주수보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산 것인가…… 그 긴 세월 희상궁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그 순간 왕부의 하인이 안으로 들어오며 우문호에게 약 한 병을 주었다.“대주의 강영후(江寧侯)께서 약을 가져오셨습니다. 용태후께서 직접 조제한 용염단(龍焰丹)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황조부께 드리려고 한 것인데…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중독이 됐을 때 먹으면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약입니다.”어의는 대주의 용태후가 직접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약은 검은콩보다 작고 동그란 것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냄새를 맡으니 연꽃 향기가 났다.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무우환(無憂丸)보다도 향이 좋았다.“빨리 물을 떠오거라.”주수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 침울하던 주수보의 얼굴이 용태후가 보낸 약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강영후가 보낸 약은 물에 타서 먹지 않고 혀로 꾹꾹 눌러 천천히 녹여 먹는 겁니다.”우문호가 말했다.주수보는 약을 들어 희상궁의 입을 살짝 벌리고 약을 집어넣었다. 주수보는 희상궁의 고개를 살짝 받치며 약이 녹아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녀 입안의 약이 천천히 녹아 흡수될 때까지 주수보는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약을 먹은 후에도 희상궁
주수보는 강영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탕양에게 강영후를 좋은 술집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그가 술집으로 가기 전 희상궁의 상태를 살피려고 돌아오는데 원경릉이 대청에서 그를 막아섰다.“재상 혹시 밖으로 나가시려거든 덕화찻집으로 가서 바깥에는 어떤 소문이 도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덕화찻집은 소문의 근원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주수보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예, 왕비 이번 일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그는 소요공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의 청색 옷은 바람에 나부꼈고 눈처럼 흰 머리카락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났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백성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졌다. 그는 말을 끄는 시종(侍從)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며 소요공과 몇 마디 주고받고 싶었지만 그들은 서로 말을 아꼈다. 그들은 모퉁이에 다다르자 말없이 각자 제 갈 길을 갔다.주수보의 뒤에서 걷던 시종은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에서 왠지 모를 고독함과 허망함이 보였다. 주수보는 허리를 곧게 펴고 따스하게 비추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난밤의 한기를 배출하였다.뒤에 있던 시종이 말을 재촉해 주수보를 쫓아왔다.그는 원경릉의 부탁을 듣고 시종을 불러 덕화찻집에 가보라고 했고 결과는 이미 주수보의 손에 건네졌다.그시각 주부(周府).주씨 집안의 큰 어른이 밤새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주수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답사나 업무를 보러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는 술을 먹으러 가도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인을 보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곤 했다. 그러나 어제 아침에 주부에서 말을 끌고 나간 후 종적을 감춘 것처럼 사라졌다. 그는 떠나기 전에 태상황님을 뵈러 간다는 말만 남겼을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주부 사람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사람을 시켜 궁 밖에서 주수보의 행적을 물었다.왕부의 문을 지키는 수장이 주수보가 아침에 입궁하여 점심쯤에 출궁했고 그 후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이 말을 듣고
주수보는 편액에 걸린 글자의 뜻을 그들 스스로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집사! 저기 걸린 편액을 바꿔야 하겠어! 내가 새로 쓴 게 있으니 새 거로 가져오게.”주수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집사가 허리를 굽히며“재상 나리께서 어떤 편액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수보는 몸을 돌려 집사를 바라보았다.“엊그제 내가 쓴 거 가져와.”그 말을 들은 집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편액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며칠 전 주명양이 초왕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규방에서 단식을 할 때, 이를 들은 주수보가 화가 나서 쓴 편액이다. “그래 그거!” 주수보가 화를 냈다.그의 위엄 있는 표정을 보고 집사는 온갖 의문을 애써 감추며 그의 명령에 따랐다.주씨 집안사람들은 주수보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나왔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나오라는 말에 말을 못하는 노부인까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주수보는 정좌에 앉아서 처첩과 자손들이 본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주명양도 있었는데 그녀의 싸늘한 눈빛으로 가장자리에 서있었다.주수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근엄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주수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모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반쪽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세다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이게 무슨일인지 너무 궁금하고 무서웠다.그의 아들은 급히 걸어 나왔다. “부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되셨어요?”이 말을 들은 주수보는 아무 말 없이 날카롭게 그의 아들 내외를 보았다.그 눈빛이 얼마나 차가운지 모두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서로 훔쳐보았다.그런데 집사가 편액을 가지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쓰인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때마침 주명양도 도착했다. 제왕은 주명취 옆에서 조용히 주수보가 쓴 글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 멍하니 굳어있었다. “외조부,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제왕! 이
“외조부께서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사람들이 하는 말은 상관하지 마세요. 그리고 방금 외조부께서 본왕에게 물으셨죠. 주씨 가문이 오만방자한지 아닌지, 본왕 생각엔 주씨 집안은 오만방자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왕은 주씨 집안을 헐뜯는 소문이 하루 이틀 돈 것도 아니고 지금와서 유별나게 행동하는 외조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왕도 말을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 주씨 집안은 오만방자, 안하무인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주수보’라고 말만해도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주수보를 중축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집안사람들이 세상에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주수보는 제왕의 말을 무시하고는 주대부인을 바라보았다.“너는 바깥사람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아느냐.”“부친,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기십시오.” 주대부인의 뻔뻔함에 주수보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주대부인에게 꽂혔다.“그래, 네 말이 맞지. 허나 소문은 독화살과 같아서 잘 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주대부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주수보의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예…… 부친 말씀이 맞습니다.”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주수보가 말하는 소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이번 소문은 여느 때와 달리 파급력이 어마어마해서 3일 만에 온 백성들이 다 알게 되었고 평민 양반 할 것 없이 이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해했다.소문의 주인공이 당대의 태상황을 모시는 상궁이라니……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주씨 집안의 노부인이 몸을 덜덜 떨며 눈을 감았다.그녀는 주수보를 잘 알고 있었다. 주수보는 다른 일은 다 참아도 희상궁이 관련된 일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게 가족이든 벗이든 상관하지 않고 엄하게 다스렸다. 그래서 노부인은 누누이 주씨 집안사람들에게 희상궁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주수보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너희들은 방우(方宇)가 누구인지 아느냐.”그의 눈빛은 말끝마다 주대부인에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
미색은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방법은 왕비 마마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면 안 되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만, 강한 자에게는 굴복한다고 하셨지요.”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 같았다.이틀 후, 원경릉은 청우헌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왕비가 사람을 보내 약이 도착했으니, 원경릉에게 추 할머니의 방으로 오라고 전했다.원경릉은 급히 추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왕비와 다른 두 사람이 추 할머니의 침대 옆에 있었다.두 사람은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센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잘생긴 생김새에 이리 나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깨끗하고 강인한 기운을 느낀 원경릉은 그가 현대 군인임을 직감했다.그리고 여자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외모가 왕비와 매우 닮았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단정하고 유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도 역시... 군인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강한 기를 보아, 계급이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원경릉은 그들이 왕비의 두 자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소 흥분했다.그 순간, 왕비가 담담하게 한 마디 소개했다.“이쪽은 나의 아들 진예와 딸 진리다.”원경릉의 흥분된 마음은 단번에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 악수하였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원경릉이라고 합니다...”세 사람은 악수하며 웃었다.“들어봐서 자네를 알고 있네.”“정말입니까? 그럼 제가... 삼촌과 이모라고 불러야겠습니다.”원경릉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호칭은 중요하지 않네!”진예가 말했다.“약을 갖고 왔다.“왕비가 원경릉에게 귀띔해 주었다.“예, 알겠습니다. 어디 보지요!”원경릉은 서둘러 돌아서서 약을 확인했다. 약은 한 상자 가득했고, 반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이기에, 그녀의 약 상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