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558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원경릉이 뱉는 말이 칼처럼 우문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우문호는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처절하게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눈을 감았다.

“미안해… 미안해…원경릉” 그의 목소리는 후회로 가득했고, 원경릉의 큰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

주수보의 명을 받은 하인이 많은 약들을 가져왔다.

주수보는 탁자 위에 약을 쏟고는 약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서 확인했다. 그리고 몇 개를 골라 먼저 먹어보더니 끓인 물에 약을 갈아 넣고는 희상궁 입에 조금씩 쏟았다.

원경릉도 어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수보를 지켜보았다.

희상궁에게 약을 먹이고 난 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그의 얼굴에는 비통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기지 못할 절망에 빠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주수보의 마음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손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그녀가 살아나길 간절히 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선과 소요공이 도착했다.

소요공은 설연(雪莲)을 한 떨기 가지고 와 사람을 시켜 물을 부어 끓이게 했다. 물이 끓자 주수보가 먼저 먹어보고는 희상궁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어의가 희상궁의 손목을 잡고 다시 진맥했지만 맥박은 여전히 가늘었다.

“재상께서는 돌아가 보세요. 금방 돌아가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처리하실 일도 있지 않습니까.”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하십니까?”소요공의 말을 듣고도 주수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태상황께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엄벌하라고 했습니다.” 소요공이 조용히 말했다.

“엄벌?” 주수보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를 띤 얼굴로 “다들 나가세요. 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주수보의 진지한 표정에 모두들 자리를 떴고 안에는 다시 희상궁과 주수보 둘만 남았다.

원용의는 사식이를 위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명의 왕비   제 559화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 아직도 자기가 이팔청춘인 줄 아십니까?” 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난 괜찮아요.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좋네요.” 그는 희상궁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전에는 흰머리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시간이 무정하네요.”라고 말했다.주수보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야심으로 가득 차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고생 한 번 하지 않았겠는가. 원경릉과 우문호는 하루아침에 야위어버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원경릉 마음속에 주수보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점차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주수보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산 것인가…… 그 긴 세월 희상궁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그 순간 왕부의 하인이 안으로 들어오며 우문호에게 약 한 병을 주었다.“대주의 강영후(江寧侯)께서 약을 가져오셨습니다. 용태후께서 직접 조제한 용염단(龍焰丹)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황조부께 드리려고 한 것인데…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중독이 됐을 때 먹으면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약입니다.”어의는 대주의 용태후가 직접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약은 검은콩보다 작고 동그란 것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냄새를 맡으니 연꽃 향기가 났다.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무우환(無憂丸)보다도 향이 좋았다.“빨리 물을 떠오거라.”주수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 침울하던 주수보의 얼굴이 용태후가 보낸 약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강영후가 보낸 약은 물에 타서 먹지 않고 혀로 꾹꾹 눌러 천천히 녹여 먹는 겁니다.”우문호가 말했다.주수보는 약을 들어 희상궁의 입을 살짝 벌리고 약을 집어넣었다. 주수보는 희상궁의 고개를 살짝 받치며 약이 녹아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녀 입안의 약이 천천히 녹아 흡수될 때까지 주수보는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약을 먹은 후에도 희상궁

  • 명의 왕비   제 560화

    주수보는 강영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탕양에게 강영후를 좋은 술집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그가 술집으로 가기 전 희상궁의 상태를 살피려고 돌아오는데 원경릉이 대청에서 그를 막아섰다.“재상 혹시 밖으로 나가시려거든 덕화찻집으로 가서 바깥에는 어떤 소문이 도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덕화찻집은 소문의 근원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주수보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예, 왕비 이번 일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그는 소요공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의 청색 옷은 바람에 나부꼈고 눈처럼 흰 머리카락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났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백성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졌다. 그는 말을 끄는 시종(侍從)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며 소요공과 몇 마디 주고받고 싶었지만 그들은 서로 말을 아꼈다. 그들은 모퉁이에 다다르자 말없이 각자 제 갈 길을 갔다.주수보의 뒤에서 걷던 시종은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에서 왠지 모를 고독함과 허망함이 보였다. 주수보는 허리를 곧게 펴고 따스하게 비추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난밤의 한기를 배출하였다.뒤에 있던 시종이 말을 재촉해 주수보를 쫓아왔다.그는 원경릉의 부탁을 듣고 시종을 불러 덕화찻집에 가보라고 했고 결과는 이미 주수보의 손에 건네졌다.그시각 주부(周府).주씨 집안의 큰 어른이 밤새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주수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답사나 업무를 보러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는 술을 먹으러 가도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인을 보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곤 했다. 그러나 어제 아침에 주부에서 말을 끌고 나간 후 종적을 감춘 것처럼 사라졌다. 그는 떠나기 전에 태상황님을 뵈러 간다는 말만 남겼을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주부 사람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사람을 시켜 궁 밖에서 주수보의 행적을 물었다.왕부의 문을 지키는 수장이 주수보가 아침에 입궁하여 점심쯤에 출궁했고 그 후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이 말을 듣고

  • 명의 왕비   제 561화

    주수보는 편액에 걸린 글자의 뜻을 그들 스스로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집사! 저기 걸린 편액을 바꿔야 하겠어! 내가 새로 쓴 게 있으니 새 거로 가져오게.”주수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집사가 허리를 굽히며“재상 나리께서 어떤 편액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수보는 몸을 돌려 집사를 바라보았다.“엊그제 내가 쓴 거 가져와.”그 말을 들은 집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편액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며칠 전 주명양이 초왕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규방에서 단식을 할 때, 이를 들은 주수보가 화가 나서 쓴 편액이다. “그래 그거!” 주수보가 화를 냈다.그의 위엄 있는 표정을 보고 집사는 온갖 의문을 애써 감추며 그의 명령에 따랐다.주씨 집안사람들은 주수보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나왔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나오라는 말에 말을 못하는 노부인까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주수보는 정좌에 앉아서 처첩과 자손들이 본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주명양도 있었는데 그녀의 싸늘한 눈빛으로 가장자리에 서있었다.주수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근엄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주수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모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반쪽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세다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이게 무슨일인지 너무 궁금하고 무서웠다.그의 아들은 급히 걸어 나왔다. “부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되셨어요?”이 말을 들은 주수보는 아무 말 없이 날카롭게 그의 아들 내외를 보았다.그 눈빛이 얼마나 차가운지 모두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서로 훔쳐보았다.그런데 집사가 편액을 가지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쓰인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때마침 주명양도 도착했다. 제왕은 주명취 옆에서 조용히 주수보가 쓴 글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 멍하니 굳어있었다. “외조부,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제왕! 이

  • 명의 왕비   제 562화

    “외조부께서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사람들이 하는 말은 상관하지 마세요. 그리고 방금 외조부께서 본왕에게 물으셨죠. 주씨 가문이 오만방자한지 아닌지, 본왕 생각엔 주씨 집안은 오만방자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왕은 주씨 집안을 헐뜯는 소문이 하루 이틀 돈 것도 아니고 지금와서 유별나게 행동하는 외조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왕도 말을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 주씨 집안은 오만방자, 안하무인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주수보’라고 말만해도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주수보를 중축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집안사람들이 세상에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주수보는 제왕의 말을 무시하고는 주대부인을 바라보았다.“너는 바깥사람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아느냐.”“부친,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기십시오.” 주대부인의 뻔뻔함에 주수보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주대부인에게 꽂혔다.“그래, 네 말이 맞지. 허나 소문은 독화살과 같아서 잘 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주대부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주수보의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예…… 부친 말씀이 맞습니다.”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주수보가 말하는 소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이번 소문은 여느 때와 달리 파급력이 어마어마해서 3일 만에 온 백성들이 다 알게 되었고 평민 양반 할 것 없이 이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해했다.소문의 주인공이 당대의 태상황을 모시는 상궁이라니……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주씨 집안의 노부인이 몸을 덜덜 떨며 눈을 감았다.그녀는 주수보를 잘 알고 있었다. 주수보는 다른 일은 다 참아도 희상궁이 관련된 일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게 가족이든 벗이든 상관하지 않고 엄하게 다스렸다. 그래서 노부인은 누누이 주씨 집안사람들에게 희상궁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주수보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너희들은 방우(方宇)가 누구인지 아느냐.”그의 눈빛은 말끝마다 주대부인에게

  • 명의 왕비   제 563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주대부인은 주수보가 식구가 아닌 희상궁보다 주씨 집안의 며느리인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여겼다.“부친, 둘째 노부인께서 하신 말을 저도 들었습니다. 방우는 죽어 마땅하지요. 감히 태상황의 수석 궁녀와 내통하다니! 죽어서도 그 죄를 씻지 못할 겁니다!”방우도 죽은 마당에 이 소문의 근원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과거의 일을 누가 따지겠는가? 방우라는 금군이 처형당한 것은 태상황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태상황의 노여움을 사 처형을 당한 남자, 궁중에서 여러 해 동안 시중을 들었던 늙은 상궁의 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사건을 파헤쳐야 할 가치가 있을까.주대부인의 당돌함에 주수보는 분노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주대부인을 쳐다보았다.“방우는 16살부터 태상황을 곁에서 모셨고, 태상황이 황제에 등극한 이후로는 그는 어전 시위대장으로 임명되어 임기 동안 맡은 직무를 열심히 하였다. 태상황과 방우가 이끈 어전부대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나와 소요공 그리고 방우는 생사를 함께한 사람들이다. 수많은 전투에서 북당이 승리를 하고 평화를 되찾은 날은 바로 28년 전의 어제이다.”사람들은 처음 듣는 얘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수보를 보았다. 주수보가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전쟁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누구와 함께 참전을 했는지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어전부대의 대장을 맡을 정도로 태상황의 총애를 받던 방우가 태상황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니, 그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은지 알 수 있었다.“방우는 26살로 여기 있는 너희들보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 당시 태상황은 등극한지 얼마 안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로 했었어 태상황은 그 날짜보다 일찍 답사를 나섰는데 적들이 이를 알고 태상황을 시해하려고 한 것이야. 방우는 이 소식을 듣고 태상황을 보호하려다가 죽게 되었지. 태상황은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를 호국후(護國侯)로 추서했다. 방우는 우리 북당의 첫 호국후이다.

  • 명의 왕비   제 564화

    후작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았지만, 그녀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태상황께서 제게 벌을 내리라고 하셨다고요? 저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사사로운 일로 태상황께서 저를 죽일 리가 없다는 겁니다. 부친께서는 희상궁을 위해서 가족을 죽이는 것도 꺼리지 않고, 어머님의 목소리를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부친의 그런 행동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한 평생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님께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주대부인이 악에 받쳐 소리치자 어디선가 손이 날아와 그녀의 뺨에 꽂혔다. 뺨을 맞은 그녀는 놀란 눈으로 때린 사람을 보았다. 그 앞에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서있었다.노기가 가득한 시어머니는 화가 어찌나 많이 났는지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주대부인은 억울한 표정으로 맞은 뺨을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어머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어머님을 대변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근데 왜 저를 때리시는 겁니까? 어머님은 그렇게 사시는 거 답답하지 않습니까? 다른 여자의 그늘에 사는 거 지겹지도 않으시냐고요!”노부인이 아버지는 죄를 받기 전에 조정의 어사대부로 있었는데, 아첨하는 소인들의 꼬임에 넘어가 황제에게 무례를 범했고, 이를 알고 분노한 황제가 일가를 몰살하라는 명을 내렸다.당시 주수보가 황제를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일가 132명은 모두 목이 잘렸을 것이다.결국 노부인의 아버지만 죽고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은 모두 목숨을 구했다. 그래서 그녀는 은혜를 갚기 위해 자원하여 주수보에게 시집을 오게 되었다. 주수보와 혼인을 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그녀는 희상궁과 주수보 사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수보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갚고 싶었다.그것도 몇 년. 그녀의 마음에 점점 욕심이 생겼다. 불평하지 않던 그녀가 희상궁이 미워졌다.그녀는 희상궁을 향한 주수보의 마음이 잠깐의 바람이겠지라고 여기며 희상궁이 채워주지 못하는 공허함을 다른 여인으로

  • 명의 왕비   제 565화

    주명취가 벌떡 일어나 제왕을 끌어당기면서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조부를 설득해 주지도 못할 거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해? 당신은 그냥 왕부로 돌아가.”제왕은 주명취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너도 네 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느냐. 주부가 황실을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넌 왜 본왕에게 시집을 왔느냐? 데릴사위를 데려와 주부에 살면 되지.”“왜 말에 본질을 흐려? 그만 좀 해.” 주명취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제왕은 본관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말다툼을 멈추었다. “재상의 말이 맞아. 너희 집안사람들은 오만방자해.”말을 마친 제왕은 화가 나서 왕부로 돌아가버렸다.주명취는 제왕에게 크게 실망했다. 제왕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명취는 화가 나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주명양은 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은근 고소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위기에 빠진 이 순간 그녀는 쉽게 나설 수 없었다.제왕이 떠나면서 한 마지막 말이 주씨 집안사람들을 화나게 했다.“빨리 이혼 서류를 써라!”주수보도 이 상황이 수치스럽다는 듯 더욱 큰 소리로 후작에게 소리쳤다.“아버지!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 사람은 딱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서방님, 쓰라고 하면 쓰세요. 전 상관없습니다.” 주대부인이 콧방귀를 꼈다.‘저 늙은이가 나를 겁주려고 으름장을 놓네?’그녀는 여전히 이 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반성의 기미 하나 없는 부인을 보고 후작이 깜짝 놀랐다.“부인, 지금 제정신입니까?”“쓰라는데 써야죠. 부친께서 제가 잘 못했다고 우기지 않습니까.” 주대부인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웃었다.후작은 주수보를 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본관 밖으로 나갔다.하인이 차를 한 잔 더 따르자 주수보의 얼굴에 있던 노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방금 제왕이 나가면서 한 말을 들은 후 주수보의 눈에는 결연함이 보였다.‘화내지 말고 진정하자……’그는 찻잔을 받치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펄펄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낸 차라서 아주 뜨거웠지만 목구멍을 넘어

  • 명의 왕비   제 566화

    증조 마님은 주수보의 생모이다. 증조 마님은 친왕의 딸인 군주(郡主) 신분으로 주수보의 부친와 혼인을 했다.그녀는 당시 아들이었던 주수보가 궁녀를 정비로 맞이하겠다고 하자 엄하게 반대하였다. 그녀는 온갖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혼인을 반대했고, 궁에 들어가 희상궁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군주였던 증조 마님은 궁 안의 명부(命婦), 후궁들과 왕래하는 일이 많았으며 이 일로 궁 안의 여인들이 희상궁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황실의 남자들이 언제든 첩으로 들일 수 있는 궁녀라니? 증조 마님은 집안에 천한 신분이 들어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후에 주수보가 죄를 지은 어사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쨌든 증조모는 그 궁녀만 아니면 됐다. 증조모는 일찍이 암자에 들어가 마음을 수련하고 매일 아침 자손들에게 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그녀가 주부에서 나가 암자에 들어간 이후 주씨 집안의 세력은 점점 강해졌고 아들은 재상이 되었다.주후작은 부친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증조모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월미암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이혼서를 쓰면서 일부러 글자를 틀리게 적어 시간을 끌었다.주수보는 급할 건 없다는 듯 차를 마시며 주전부리를 먹었다.그의 여유로운 모습과 상반되게 집안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주대부인이 무릎을 꿇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대부인도 부잣집의 아씨로 그녀의 친정에서는 아끼는 자식이다. 이런 모욕을 당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주대부인이 희상궁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께서 늘 희상궁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기에 그녀도 희상궁을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명양을 위해 어미 된 도리로서 어쩔 수 없었다. 주대부인은 이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은화를 찔러주면 희상궁이 금방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

최신 챕터

  • 명의 왕비   제 3038화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 명의 왕비   제 3037화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 명의 왕비   제 3036화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 명의 왕비   제 3035화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 명의 왕비   제 3034화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