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느낌이 들었다.처음에는 그녀는 우문호가 거짓말하는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우문호의 태도를 보자 원경릉은 점차 그와 주명양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어제 관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게 분명하다.원경릉은 눈을 내리깔고 다바오를 보며 “가자!”라고 말하고는 다바오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우문호는 서일을 무섭게 노려볼 뿐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왜냐하면 그는 어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어제 점심을 먹고 매일 하던 대로 관아 구석의 방에 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문틈으로 주수보가 보였다. 문을 열어보니 주수보 옆에는 주명양이 서있었고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부승을 만났는데 부승이 얼굴에 입술 자국이 있다고 해서 그는 손으로 그 입술 자국을 지웠다.우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문지기를 불렀다. 경조부의 점심시간에는 문지기만 밖에 서있고 관원들도 순찰을 돌지 않는다. 문지기는 주수보가 문을 두드렸고 그와 주명양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우문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원경릉이 화난 것을 보고도 변명할 방법도 없었고 화가 잔뜩 난 그녀를 감히 건드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화를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대화를 나누는 방법뿐 없었다. 하지만 우문호가 사실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하면 원경릉은 틀림없이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문호는 사식이를 보고 “사식아 가서 왕비를 보살피거라.”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며 “왕야께서 그런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남겨진 것은 서일과 우문호 둘뿐. 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서일을 노려보았다.“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두 발로 걷는 게 지겨워
원경릉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우문호가 쫓아와서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겼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그래서 뭐? 말해 봐 네가 말하는 대로 그냥 믿을게.” 원경릉은 진정하고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 남자는 그런 황당한 일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그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우문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주명양이 왔어. 근데 그 이후로는 걔랑 무슨 말을 했는지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그리고 걔 혼자 온 게 아니야 주수보도 같이 왔었어.”“서일은 주수보를 못 봤다고 하던데? 작은 할머니를 봤다고 했어.”우문호는 서일을 보며 “주수보를 보지 못했다고? 작은 할머니?”라고 물었다.서일은 머리를 긁다가 무엇이 생각이 난 듯 눈을 크게 떴다.“소인 기억이 났습니다! 확실히 주수보는 아니었…… 주수보의 옷! 학이 수놓인 그의 옷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걸 입은 사람이 주수보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남장을 한 작은 할머님 같았는데 얼굴에 주름이 아주 많았습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 본왕이 문지기를 불러 물었더니 문지기는 주수보와 주명양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방에 들어간 후에는?”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문지기도 그냥 지나쳤다고 하더라고. 나도 아무 것도 기억 나지 않아……” 라고 말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본왕 얼굴에 입술 자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난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정말이야.”원경릉은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그들이 방에 들어가서 얼마나 후에 나온 거야?”“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라고 문지기가 말했어.”“나갈 때 문지기가 주수보를 보았대 아니면 할머니를 봤대?”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문지기는 나가는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배웅하거든.”이라고 말했다.“그럼 너는 주수보랑 주명양이 들어오는 것은 기억이
깊은 밤이 되자 우문호는 침실을 맴돌다 솜이불 하나를 들고 침실 밖의 회랑(回廊)에서 잠을 잤다. 우문호는 이불을 꼭 끌어안고 생각을 했다. 그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했다.바닥은 딱딱하고 뒤척일 때마다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아팠다. 그는 한밤중에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갔다. 쓱 목을 빼서 보니 원경릉은 깊게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는 살포시 발을 들어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가 등을 대고 눕자 원경릉이 바로 발로 그를 걷어찼다. 그는 침상 아래로 떨어졌고 아픈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다시 회랑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그가 회랑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새겼다. 그녀는 사실 우문호를 믿고 있었다. 그가 정신이 멀쩡했으면 절대로 주명양과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다. 우문호는 주명양을 증오했고, 그 사실은 원경릉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명양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우문호 몰래 들어가서 무슨 짓을 했다면 그녀는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 우문호는 동이 트자마자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원경릉 앞에 대령했다.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얼굴 몇 번 닦았어?”라고 물었다.“삼백 번! 삼백 번은 닦았어! 봐봐 얼마나 박박 닦았는지 뼈가 보인다니까?”우문호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원경릉은 능청을 떠는 우문호가 꼴 보기 싫었다. 때마침 사식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왕비! 탕양 어른이 찾아오셨습니다!”사식이는 우문호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우문후는 사식이의 말을 듣고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나 보구나! 들어오라고 하여라!”탕양은 소월각에 도착하자마자 서일에게 잡혀 어제 왕부에서 벌어진 일을 들었다. 서일은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뺨을 맞았다고 말했다. 탕양이 들어오자 제일 먼저 우문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많이 야윈 것 같았다. “조사가 끝났느냐?” 우문호가 그에게 인사도 생략하고 다급히 물었다.“예. 주
우문호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원경릉의 손을 잡았다. “이거 놔!”원경릉이 손을 뺐다.“가만히 있어. 네 손을 잡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야. 그래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원경릉은 할 수 없이 그가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잠시 후 원경릉은 우무호에게 “이제 좀 기억이 나?” 라고 물었다.“안고 있으면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우문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너…… 좀 진지하게 굴 수 없어?” 원경릉이 분노했다.“나 지금 엄청 진지해. 근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서 모든 것들이 엉키는 기분이야.”“잘 생각해 봐. 주수보의 손이나 옷, 머리 장신구 혹은 다른 것들……” 원경릉인 천천히 말했다.“옷…… 그 옷에는 학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움직이면서 소리가 났던 것 같기도 하고……”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다.원경릉은 무언가 깨달은 듯 서일에게 “빨리 나가서 술하고 살아있는 닭 한 마리를 가져오게.” 라고 말했다.서일은 빠르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가 술과 닭을 들고 들어왔다.“반 병만 마시는 거야.” 원경릉은 술병을 들고 우문호에게 말했다.“왜 술을 마시라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그냥 마셔!” 원경릉은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듯 그를 재촉했다.술을 받은 우문호는 고개를 들고 꿀꺽꿀꺽 술을 반 병 마셨다.“이제 이리 와서 의자에 반쯤 걸 터 앉아 봐.”우문호는 의자로 걸어가면서도 머리가 팽글팽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원경릉은 닭을 가슴에 안고 우문호에게 다가가자 놀란 닭이 소리를 빽 질렀다. 우문호는 눈앞이 아찔했다. 그는 닭이 우는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듯 두 눈을 질금 감았다.원경릉은 그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몸에 긴장을 풀고 머리를 비워.”우문호는 온몸이 축 처지고 긴장이 풀렸다.“당신은 지금 관아에 작은방에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매우 졸립니다. 눈이 감깁니다. 근데 어디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당신은
주명양의 손은 천천히 그의 허리를 감더니 그의 허리띠를 풀고 요염하게 웃었다.“소첩을 가지세요. 왕야가 갖지 않으면 소첩은 기왕의 후궁이 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그녀의 입술이 그의 뺨과 귀에 닿았다. “문호 오라버니. 나를 갖고 싶지 않습니까?”우문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더니 갑자기 한 손으로 주명양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꺼져!”주명양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우문호의 귀에는 짹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주명양을 노려보았다.옆에 있던 주수보가 다가와 주명양을 당기며 고개를 저었다.“안되겠어. 그의 저항력이 너무 강해. 이만 가자.”주명양은 그를 노려보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끌려갔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주수보는 천천히 문쪽으로 걸어가며 가면을 찢었다. 가면이 벗겨지자 주름진 얼굴이 드러났다. “왕야, 오늘은 실례했습니다. 왕야의 혼인 증표를 가져가겠습니다. 이제 저희 둘째 아가씨는 왕야와 혼인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치고 노인은 우문호의 허리춤에 달린 옥패를 끊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주명양의 한쪽 귀고리를 빼서 우문호의 비단 주머니 속에 넣었다.잠시 후 정신이 든 우문호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문을 열고 그들을 내보내고 다시 누웠다.얼마나 지났을까 우문호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그 앞에는 원경릉과 서일 그리고 사식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주머니를 뒤집었다. 과연 그 안에는 진주 귀고리 하나가 들어있었다.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주명양의 덫에 걸리다니.’그는 원경릉을 보고 두 손을 들고 맹세했다.“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서일은 웃으며 “알겠습니다. 왕야께서 방금 다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주명양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기왕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스스로 말해놓고 지금
우문호는 바로 주부(周府)로 가지 않고는 경조부 관아로 향했다.관아에 도착한 우문호는 당일에 근무한 문지기와 그날 주명양을 본 관원들 그리고 예친왕과 소요공도 함께 주부로 데리고 갈 준비를 했다.주수보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주명양이 밤새도록 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초왕과 혼인 증표를 주고받았으니 기왕과의 혼사를 취소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주수보는 주명양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손녀인 주명양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그는 주명양이 밖에서 얼어 죽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당일 아침.주명양이 걱정된 주대부인이 주명취를 주부로 불러 주명양을 설득하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온 주명취는 주명양이 우문호와 혼인을 하겠다고 하자 깜짝 놀랐다. 주명양이 주수보의 정원에 들어서자 주명양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모습이 마치 서리 맞은 동백꽃처럼 생기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는 굳은 심지가 보였다.“주명양.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냐? 기왕과 혼인하는 게 싫어?” 주명취가 물었다.주명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내가 누구한테 시집을 가든 언니랑 무슨 상관입니까? 언니는 당연히 내가 초왕에게 시집가는 게 싫겠죠? 언니는 못 누릴 호사를 내가 누릴 생각을 하니까 배 아픕니까?”“너는 왜 말을 그따위로 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무슨 죄라도 지었어?” 주명취가 화를 냈다.“그럼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내버려 둬요! 서로 신경 쓰지 말고 살자고요!” “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이게 다 널 위해서 그런 거다! 너는 왜 우문호와 혼인을 못해서 안달인 거야? 보아 하니 초왕비가 하루 이틀 내에 죽을 것 같지 않은데, 넌 만년 후궁 자리라도 좋다는 거야? 기왕은 정비 자리라도 노려볼 수 있잖아!”“그럼 지금 당장 죽여요.” 주명양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주명취를 보았다.“그걸 지금 말이라고!”주명양은 밤새 무릎을 꿇고 조부를 기다렸지만 주수보
주명양의 계교이제 주명양에게 주었으니 처음부터 우문호의 주명취에 대한 사랑은 거짓이었다.주명취는 마음속에서 미움이 솟구쳐 주명양의 손에서 옥패를 낚아채 바닥에 던졌다. 옥패는 3조각으로 부서지고 주명취는 차갑게: “너희들 끼리 혼사를 정해 보렴.”주명양이 길길이 날뛰며 벌떡 일어나 채찍을 빼 들고 정면으로 주명취를 향해 휘둘렀다.채찍 자국이 주명취의 왼쪽 얼굴에서 뻗어 나와 마치 지네가 기어오르는 것 같고, 고통으로 주명취는 하마터면 혼절할 뻔 했다.자연히 하인들이 와서 말리고 주명취는 분해서 온몸을 덜덜 떨며 눈에 눈물을 머금고 바닥에 꿇어앉아 큰 소리로: “할아버지, 소녀가 간청 드려요. 나와서 시비를 가려주세요.”문지기가 뛰어 들어와 문을 두드리고, “어르신, 초왕, 예친왕 그리고 소요공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어르신을 뵙겠다고 하십니다.”주재상은 뒷짐을 지고 나가는데 음침한 얼굴색으로 주명취와 주명양을 쏘아 보고는 진노해서: “둘을 데리고 가거라, 이게 무슨 체통 없는 짓이냐?”주명양은 꿇어앉아 완강하게: “할아버지, 손녀는 초왕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습니다.”주명취도 하소연하며, “할아버지, 동생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렸습니다. 이걸 좀 보세요……”주재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갔고 말조차 듣지 않았다.주명양은 따라 나가고 주명취는 땅에 꿇어앉아 한동안 넋이 나가서 수치와 모욕, 분노와 미움으로 견딜 수 없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주재상이 본관으로 가서 까맣게 모인 무리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초왕은 화가 난 얼굴이고 옆에 앉은 소요공과 예친왕도 안색이 좋지 않다. 주재상이: “무슨 일인가?”소요공이 우문호를 가리키며, “초왕이 나와 예친왕에게 와서 증인이 되달라고 했는데 뭘 증언하라는 건지는 모르겠네.”우문호가 일어나서 말하기 전에 쫓아온 주명양을 보고 마음속에서 열불이 뻗쳐올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상, 오늘 온 것은 어떤 일에 가르침을 받고자 해서입니다. 주부에서는 가정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하십니까? 출가
목을 맨 주명양과 시녀 만아우문호는 한 손으로 주명양의 채찍을 빼앗고 직접 주명양의 목에 씌워지게 던지면서 서일의 허리띠를 풀어 채찍에 연결해서 묶으니 서일이 풀어지지 않도록 허리띠를 잡아당기며 주명양을 대들보에 달아 올렸는데 이 모든 과정이 단숨에 이루어져, “초왕부 문에 목을 맬 필요없이, 아예 여기서 죽어라.”서일이 얼른 저기 허리를 끌어 안고 옷이 벗겨지지 않게 했다.이 행동으로 주씨 집안의 하인과 시위들이 놀라 서둘러 달려와 도우려하자 우문호가 진노하며, “감히 누구든 앞으로 나서면 그 사람부터 끝장내겠다.”주명양은 숨이 막혀 얼굴이 시뻘겋게 되고 두 눈알이 목이 졸려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주명양은 두 다리로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더욱 세게 죄어들었다.주명양의 목에서 끅끅 소리가 나고 도와 달라고 아래를 보는데 시녀 만아가 어느새 달려와: “왕야, 연약한 여자를 괴롭히다니 참으로 악랄하십니다!”우문호는 이 시녀의 키와 몸집을 보니 그녀가 주재상으로 분장하고 우문호에게 주술을 건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부아가 치밀어서 한발로 만아의 배를 걷어차자 곧바로 날아갔다.하지만 날아간 뒤 두 다리로 벽에 발을 디디더니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날아서 돌아왔다. 손에 비수를 꺼내 들고 허리띠를 자르더니 주명양이 수직으로 떨어지자 날아가서 받으려고 하는데 우문호가 채찍을 들어 만아에게 휘둘렀다.만아가 피하면 주명양은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진다.만아가 이 채찍을 고스란히 맞으면 주명양을 받을 수 있다.채찍이 다다라도 만아는 미동도 하지 않고 채찍이 만아의 정수리를 내리치도록 내버려두어 붉은 줄이 그어지더니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주명양을 받아서 천천히 땅바닥에 내려 놓았다.주명양은 떨어진 후 크게 숨을 쉬더니 가슴이 터질 듯한 아픔으로 질식할 지경이다.우문호는 냉랭하게 주명양의 앞에 서있고, 시녀 만아는 경계하며 막고 있다. 방금 채찍은 힘이 세서 만아는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전부 피가 배어 나와 검붉고, 눈빛이 음험해지며, “왕야, 사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
미색은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방법은 왕비 마마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면 안 되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만, 강한 자에게는 굴복한다고 하셨지요.”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 같았다.이틀 후, 원경릉은 청우헌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왕비가 사람을 보내 약이 도착했으니, 원경릉에게 추 할머니의 방으로 오라고 전했다.원경릉은 급히 추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왕비와 다른 두 사람이 추 할머니의 침대 옆에 있었다.두 사람은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센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잘생긴 생김새에 이리 나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깨끗하고 강인한 기운을 느낀 원경릉은 그가 현대 군인임을 직감했다.그리고 여자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외모가 왕비와 매우 닮았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단정하고 유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도 역시... 군인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강한 기를 보아, 계급이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원경릉은 그들이 왕비의 두 자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소 흥분했다.그 순간, 왕비가 담담하게 한 마디 소개했다.“이쪽은 나의 아들 진예와 딸 진리다.”원경릉의 흥분된 마음은 단번에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 악수하였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원경릉이라고 합니다...”세 사람은 악수하며 웃었다.“들어봐서 자네를 알고 있네.”“정말입니까? 그럼 제가... 삼촌과 이모라고 불러야겠습니다.”원경릉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호칭은 중요하지 않네!”진예가 말했다.“약을 갖고 왔다.“왕비가 원경릉에게 귀띔해 주었다.“예, 알겠습니다. 어디 보지요!”원경릉은 서둘러 돌아서서 약을 확인했다. 약은 한 상자 가득했고, 반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이기에, 그녀의 약 상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