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임신을 하면 화장실에 자주 갑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녹주와 기라를 보고 손짓했다.“이리 와서 부축해 줘. 내가 다리가 후들거려서… 아니 오래 앉아있었더니 혈이 돌지 않아 저린 것 같다.”녹주와 기라는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향했다. 원경릉은 문 앞을 나온 뒤 재빨리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깜짝 놀랐네 진짜!”하마터면 화살이 그녀의 머리를 관통했을 생각을 하니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마침내 우문호가 주명취와 원용의가 싸우면 주명취가 이길 수 없다고 한지 알게 되었다. 제왕이 원용의를 업신여긴다면 방금 같은 무공 고수들이 나서서 제왕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제왕 참 불쌍하다.’원경릉은 마음을 가다듬고 머리를 다시 빗어 올리자 본관 안에 있던 소녀가 비녀를 들고 왔다.“왕비님 여기 비녀요!”원경릉은 웃으며 “너 줄게.”라고 했다.소녀는 감동받은 눈빛으로 “정말요?”라고 물었다.“응. 마음에 드니?” 원경릉이 물었다. 그녀는 비녀를 받을 수 없었다. 만약에 이 비녀를 가지고 있다면 볼 때마다 화살 꽂힌 비녀가 생각나 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네! 정말 마음에 듭니다!” 소녀는 비녀를 가슴에 품고 울먹였다.원경릉은 그녀를 보며 왜 자신처럼 타락한 왕비를 이렇게 소중하게 아끼고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온 집안사람들이 원경릉을 보러 오다니? 그리고 무공을 하는 집안에서 아끼는 무기들을 내어주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본관으로 돌아가자 원노부인은 안색을 가다듬고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왕비님, 늙은이가 무리한 부탁을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노부인은 화살을 쏘는 소녀를 보며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우리 원씨 집안의 아가씨들이 난폭하고 괴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망나니 같은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같이 예쁘장하게는 생겼지만 성격이 우악스럽고 제멋대로라 이 아이들의 혼사만 생각하면 앞이 캄
화살을 가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작은 소녀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비님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사식이는 왕비의 가르침을 따르고, 왕비를 보호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흔들렸다.현재 우문호가 서일을 그녀의 옆에 배치했지만, 서일은 남자여서 그녀와 같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에 제한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자들 모임 같은 것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사식이는 달랐다. 사식이는 아무 데나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식이는 원씨 집안의 처녀인데 무슨 명목으로 왕실에 남게 할 수 있을까? 밖에 사람들이 사식이를 보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을까?“왕비님은 임신 중이시니 고민되는 일은 일체 생각도 마십시오. 만약 사식이가 필요하다면 쓰시면 됩니다. 몇 개월 정도 왕부에 머물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희상궁이 말했다.희상궁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사식아 이렇게 된 마당에 내 옆에서 지내거라. 가끔 이야기도 하고 내 기분에 장단도 맞춰주거라.”“예! 왕비님 감사합니다.” 사식이는 감동해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사식이는 원씨 집안의 다른 소녀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받으면 한쪽으로 물러섰다. 이른 본 원용의는 사식이를 보고 머리가 아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렇게 빨리 시집을 가지 않았을 텐데……’모두들 앉아서 한참을 떠들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서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원경릉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통제가 안 되고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시대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막연한 사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그녀는 이들과 있으니 마치 현대의 자신의 집으로 온 기분이 들었다. 현대에서 설날이 되면 그녀는 삼삼오오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대화도 나누었다.식사 후, 원노부인이 가족들과 작별을 고할 때, 뜻밖에도 원경릉은 아쉬워 눈물이 났다.“
원경릉 사랑원경릉은 우문호에게 물을 따라주며 궁금하다는 듯: “사실 잘 모르겠어. 나랑 원부인이랑 딱 한 번 만난 인연이 전부인데 그 집안은 왜 나한테 그렇게 열정을 다하는 걸까?”우문호가 설명하길: “노마님이 무림 출신이라 며느리들도 무림 출신이 많지. 강호의 의협이시라 의를 가장 중시하는데 네가 성밖에서 한 일이 신분불문, 더럽고 추한 것도 가지리 않은데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노마님 집안 사람들은 당연히 존경할 수밖에.”“그게 존경까지 할 일이야?” 원경릉의 의아해하며, 그런 존경은 너무 자의적인 거 아닌가? 세상에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그 집 사람들이 사람 볼 줄 알거든.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인지 아닌지, 딱 봐서 아는 거지. 네가 그날 한 행동은 오직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도가 순수하고, 어떤 공이나 이익도 목적으로 삼지 않았으니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고 여긴 거야.”원경릉이 눈을 깜박이며, “지금 그 말은 왕야의 추측이야 아님 마음 속으로 나를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을 향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이더니, “주변 사람들이 눈이 삐었다니까. 널 제대로 안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아는 건 나뿐이야. 넌 소심하고, 질투심 많고, 흉악한데다 결점이 산더미 같은 여자거든. 이런 여자를 내가 보배처럼 대하고 있으니,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틀림없어.”원경릉이 눈을 흘기며, “만약 맨 뒤에 두 문장이 없었으면, 왕야는 오늘 내 손에 죽을 뻔 했어.”우문호가 웃으며 물을 마시고 제대로 못 알아듣게, “사실 넌 정말 최고야.”원경릉이 일부러 못 들은 척, “뭐라고?”“내 말은 오늘 관아 음식이 정말 최고라고.” 우문호가 한 글자 씩 또박또박 말한다.원경릉이 우문호를 한 대 때리더니 웃으며: “왕야는 날 좀 칭찬해주면 어디가 덧나? 여자들은 다 칭찬에 약하다고.”“천박한 지고!” 우문호는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것을 싫어한다.“그래도 난 듣고 싶다고!” 원경릉이 미련 넘치게 말했다.
소요공을 만나러 가는 길원경릉은 줄곧 소요공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었기에 사식이가 나가자마자: “짬을 봐서 우리 소요공한테 인사하러 다녀오자.”우문호는 상당히 거부반응을 보이며, “안가!”“이해가 안되네. 소요공처럼 좋은 분을 왕야는 왜 싫어 하는 거야?”우문호는 답답하게: “누가 싫어한데? 난 그냥 소요공을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야.”“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원경릉은 이해가 안 갔다.“너는 왜 꼭 소요공을 만나야 하는데?” 우문호도 이해가 안 갔다. 일 개 늙은이에 불과한 그런 망나니 영감이 뭐 볼 게 있다고?원경릉이: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중요한 거야.”“꼭 물어봐야 돼?”같은 곳에서 왔는지 역시 꼭 물어봐야 한다.그래서 원경릉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문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그러자, 내일 휴가를 내고 사람을 시켜 우리가 간다고 명함첩을 보낼 게.” 원경릉은 우문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 뒤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고마워!”우문호는 순간 잘했다고 생각했다.다음날 이른 아침, 우무호는 일어나 옷을 입었다.우문호는 서일을 시켜 전투갑옷을 뒤져오게 했는데, 이 갑옷은 항상 첫번째 옷장에 들어 있어서 서일이 자주 닦아 놓고 군영에 갈 때만 입지만 경조부에 부임한 뒤로는 한번도 입은 적이 없다.원경릉은 호기심이 들어서: “국공부(國公府)에 가는데 평상복 입으면 돼잖아, 왜 전투 갑옷?”“있다가 군영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그때 와서 옷 갈아입을 필요 없이 미리 입는 거야.” 우문호가 변명했다.“군영에 가서 뭐하게? 오늘 휴가 아니야?”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끌고 가 화장대에 앞에 앉히고, “맞아, 휴가 받은 김에 동료들 만나려고.”동으로 된 거울에 원경릉의 동그랗고 매끄러운 얼굴과 딱 봐도 가슴이 방망이질 칠만큼 잘 생기고 기개가 넘치는 우문호가 뒤에 서있다. “우린 정말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야.”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래? 나 추녀 아니었어?” “못 생기긴 못 생겼
소요공을 만나러 간 원경릉 부부소요공부에서는 어제 명함첩을 받고 소요공의 며느리 양부인은 벌써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가 마차가 도착하자 식솔을 거느리고 나왔다.“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를 뵙습니다!” 양부인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예를 취하자 다른 식솔들도 너나없이 예를 취했다.원경릉이 양부인을 보니 오늘 붉은색 어두운 구름무늬 비단 치마에 보랏빛 비녀를 머리에 꽂았는데 존귀한 분위기가 그날 성밖에서 봤을 때와 사뭇 다르고 손님을 각별히 존중하는 의미로 세심하게 화장을 했다.원경릉이 웃으며: “부인 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양부인이 우문호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왕야, 이러질 거 까지야!”우문호가 꽁하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지요.”원경릉이 두사람을 보며, ‘무슨 뜻이야?’양부인은 웃으며 부부를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소요공부는 커서 눈으로 대충 어림짐작해도 수천 평은 되 보이고 앞쪽 넓은 곳이 전부 화원이라 수많은 식물이 심어져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을 맞은 지금도 몇몇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인공조경물이나 정자, 누각이 거의 없어서 생활하는 공간 외에 다른 휴게 건축물은 적고 기본적으로 빈 땅에 전부 화초와 채소가 심어져 있다.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을 몇 보지 못했는데 우연히 마주친 두 세 사람도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걸어갔다.“부인, 이 저택은 참 개방적이네요.” 원경릉은 이런 설계가 좋다. 농장 같다.“그래요, 아버님이 이렇게 배치하시는 걸 좋아하세요. 뒤쪽은 돼지, 소, 말, 양, 닭, 원숭이, 뱀 등을 키운 답니다.” 양부인이 말했다.“어르신은 정말 고상하세요.” 원경릉이 칭찬했다.말하는 중에 거름을 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노인이 뒤쪽 나무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키가 크고 혈색은 까무잡잡하고 붉은데 머리와 눈썹은 굵고 검다. 거름을 메고 있는데도 어깨에 무거운 짐이라 고는 하나 없는 것처럼 걷는 게 가뿐……요염하다.노인은 이쪽으로 오지 않고 뒤쪽으로 돌아서 채소밭
소요공과 우문호의 대화양부인이 일어나 웃음을 머금고: “아버님, 왕야와 왕비 마마 오셨어요.”원경릉이 듣고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이 거름지는 노인이 소요공이라고?원경릉은 허겁지겁 일어나 예를 취하며: “어르신을 뵙습니다.”소요공이 원경릉을 보고 짙은 눈썹을 움찔거리며 ‘허허’하고 웃더니, “왕비마마께서 늙은이에게 절이라니요,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원경릉이 겸손하게: “어르신이 윗사람인데 당연히 제가 인사를 드리는 게 맞지요.” 왕비라는 칭호는 별거 아니고 그저 신분이 존귀하다는 뜻일 뿐이다. 실력으로 따지면 소요공이 원경릉을 수차례는 따돌리고도 남으니 이 여우 같은 인간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굴면 안된다.“이 계집애는 사람 됨됨이가 됐구나.” 소요공이 칭찬하며 눈은 우문호를 향해 비웃으며, “다섯째 꼬맹아, 한동안 안 오더니 늙은이가 ‘딱콩’할까 봐 겁나던?” 우문호의 얼굴이 굳으며, “어르신은 젊은 후배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아니십니까,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을 골리면 안됩니다.” 소요공이 앉으며 발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렸는데 거무튀튀한 발은 흙투성이로 밭을 가는 남자의 발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 골려 주는 것으로 치면 태상황 폐하가 둘째가라면 서럽지. 넌 황조부한테 먼저 얘기하고 와.”우문호는 감히 답할 수 없었다.비록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황조부께서 이 평범한 늙은이를 오만 방자하게 내버려 두셨으니 할말 없다.원경릉은 사실 혼자 소요공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고 소요공의 관심은 우문호에게 쏠려 있다.잠시 얘기하고 소요공이 일어나며, “다섯째 꼬맹아, 나랑 서재 가자.”우문호가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일어나 소요공을 따라 갔다.원경릉은 우문호가 형장에 끌려가는 죄인 꼴이라 우스워 죽겠다. 소요공은 꽤 친근한데 왜 무서워하지?소요공과 우문호가 안으로 들어가 향 하나 탈 정도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서 우문호는 나가서 처리할 일이 있다고 원경릉을 끌고
원경릉의 결심과 기왕의 돈줄우문호는 분개하면서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기왕이 공을 세우고 돌아온 데다가 지금은 막 주씨 집안 딸을 후궁으로 맞았으니 정세가 잠시 변함없어야지. 그게 아니면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태자로 점 찍으신 걸지도.”수족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을 황제 폐하는 왜 택하신 걸까? 원경릉은 이해할 수 없었다.우문호는 차갑게: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지키겠다고 한 이상, 난 기왕의 썩어 문드러진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고야 말겠어. 누가 태자가 되든 기왕은 안돼.”원경릉은 조금 걱정이 되어, “만약 아바마마께서 정말 기왕을 점 찍으셨으면 왕야가 그렇게 하는게 아바마마의 뜻과 상반돼서 겁이…..”우문호는 화난 얼굴로: “일이 이지경인데 겁 날게 뭐가 있어, 이 일을 아바마마께서 추궁하지 않으시면 기왕은 더욱 날뛸 거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라고. 아바마마 주변에 기왕이 심어 둔 눈이 없을 것 같아? 소요공이 상소를 올린 일을 기왕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요 며칠 기왕이 꼬리를 말고 조용히 있는 게 공을 세운 후에 오는 무기력인 줄 알았더니, 이 일 때문일줄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우문호는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며 걱정스럽게, “내 유일한 걱정은 네 안위야. 만약 내가 정말 기왕과 전쟁을 선포하면, 기왕은 맨 먼저 네 목숨을 노릴 테니까.”“난 겁 안나. 고작해야 밖에 좀 덜 나갈 뿐 인걸. 어쨌든 초왕부에 자객을 보낼 순 없을 거잖아!”원경릉이 이렇게 참기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결국 언젠가 속아서 당하고 말 테니까.우문호는 심사숙고하며: “일단 완벽한 계책을 세워 보자.”우문호는 줄곧 안심이 되지 않았다. 원경릉과 아이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눈을 보고 진지하게: “난 왕야가 일을 크게 만들길 바라지 않지만, 일이 터지면 우리도 숨어 있을 순 없지. 숨는다고 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반격을 안 한다고 우릴 가만 놔두겠어? 그럴 리 없지. 더 기
입궁한 원경릉탕양을 파견하고 우문호는 인력배치를 시작해 야근으로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초왕부로 돌아왔고, 원경릉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목욕 후 살금살금 자러 가서 고요하게 잠든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뽀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옆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잠이 안 온다.마음은 암울하다. 아바마마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우문호는 태자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기왕의 태도에만 관심이 있다.살해사건 때 우문호는 목숨을 잃을 뻔 한 건 물론이고 도리어 청부업자를 시켜 자해했다는 모함까지 받았다.이제 소요공이 증거를 찾았으나 아바마마는 뜻밖에도 모른 척 하고 있다.지난 세월 우문호의 마음 속엔 오직 조정, 아바마마만 있었고, 공로나 총애를 다투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조정을 위해 일하고 아바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마음은 암담함을 넘어 분노가 들어찼다.이번에 기왕의 잘못을 찾아내며 솔직히 불공평을 견딜 수 없었다.몸을 뒤척여 원경릉이 순수하게 잠든 모습을 보며 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탄식했다. 만약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하는 건 본인의 의도가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계속 태자의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면 아마도 원경릉 모자는 앞으로 덩달아 수모를 당할 것이다.마음이 슬그머니 확실해 져 갔다.다음날 아침 일찍 원경릉이 일어나기 전에 우문호는 또 나갔다.원경릉은 오늘 입궁해야 해서 우문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상궁이 와서 깨웠다.원경릉은 이미 차갑게 식은 이부자리를 만지며, “왕야는 어젯밤 안 들어 오셨어요?”희상궁이 원경릉을 부축해 일으키고 옷 시중으로 들며, “늦게 오셔서 새벽같이 또 나가셨어요.”“이렇게 일찍.” 원경릉은 사실 어젯밤 우문호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너무 졸려서 조금만 눈을 붙인다는 게 죽은 듯이 잠들어 버렸다.“그러게요, 왕야께서 요즘 바쁘신 것 같아요.” 희상궁은 원경릉의 옷을 정리하고 녹주는 뜨거운 물을 대령했다.입을 헹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