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423화

Author: 유애
소요공을 만나러 간 원경릉 부부

소요공부에서는 어제 명함첩을 받고 소요공의 며느리 양부인은 벌써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가 마차가 도착하자 식솔을 거느리고 나왔다.

“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를 뵙습니다!” 양부인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예를 취하자 다른 식솔들도 너나없이 예를 취했다.

원경릉이 양부인을 보니 오늘 붉은색 어두운 구름무늬 비단 치마에 보랏빛 비녀를 머리에 꽂았는데 존귀한 분위기가 그날 성밖에서 봤을 때와 사뭇 다르고 손님을 각별히 존중하는 의미로 세심하게 화장을 했다.

원경릉이 웃으며: “부인 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부인이 우문호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왕야, 이러질 거 까지야!”

우문호가 꽁하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지요.”

원경릉이 두사람을 보며, ‘무슨 뜻이야?’

양부인은 웃으며 부부를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소요공부는 커서 눈으로 대충 어림짐작해도 수천 평은 되 보이고 앞쪽 넓은 곳이 전부 화원이라 수많은 식물이 심어져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을 맞은 지금도 몇몇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인공조경물이나 정자, 누각이 거의 없어서 생활하는 공간 외에 다른 휴게 건축물은 적고 기본적으로 빈 땅에 전부 화초와 채소가 심어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을 몇 보지 못했는데 우연히 마주친 두 세 사람도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걸어갔다.

“부인, 이 저택은 참 개방적이네요.” 원경릉은 이런 설계가 좋다. 농장 같다.

“그래요, 아버님이 이렇게 배치하시는 걸 좋아하세요. 뒤쪽은 돼지, 소, 말, 양, 닭, 원숭이, 뱀 등을 키운 답니다.” 양부인이 말했다.

“어르신은 정말 고상하세요.” 원경릉이 칭찬했다.

말하는 중에 거름을 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노인이 뒤쪽 나무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키가 크고 혈색은 까무잡잡하고 붉은데 머리와 눈썹은 굵고 검다. 거름을 메고 있는데도 어깨에 무거운 짐이라 고는 하나 없는 것처럼 걷는 게 가뿐……요염하다.

노인은 이쪽으로 오지 않고 뒤쪽으로 돌아서 채소밭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424화

    소요공과 우문호의 대화양부인이 일어나 웃음을 머금고: “아버님, 왕야와 왕비 마마 오셨어요.”원경릉이 듣고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이 거름지는 노인이 소요공이라고?원경릉은 허겁지겁 일어나 예를 취하며: “어르신을 뵙습니다.”소요공이 원경릉을 보고 짙은 눈썹을 움찔거리며 ‘허허’하고 웃더니, “왕비마마께서 늙은이에게 절이라니요,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원경릉이 겸손하게: “어르신이 윗사람인데 당연히 제가 인사를 드리는 게 맞지요.” 왕비라는 칭호는 별거 아니고 그저 신분이 존귀하다는 뜻일 뿐이다. 실력으로 따지면 소요공이 원경릉을 수차례는 따돌리고도 남으니 이 여우 같은 인간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굴면 안된다.“이 계집애는 사람 됨됨이가 됐구나.” 소요공이 칭찬하며 눈은 우문호를 향해 비웃으며, “다섯째 꼬맹아, 한동안 안 오더니 늙은이가 ‘딱콩’할까 봐 겁나던?” 우문호의 얼굴이 굳으며, “어르신은 젊은 후배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아니십니까,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을 골리면 안됩니다.” 소요공이 앉으며 발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렸는데 거무튀튀한 발은 흙투성이로 밭을 가는 남자의 발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 골려 주는 것으로 치면 태상황 폐하가 둘째가라면 서럽지. 넌 황조부한테 먼저 얘기하고 와.”우문호는 감히 답할 수 없었다.비록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황조부께서 이 평범한 늙은이를 오만 방자하게 내버려 두셨으니 할말 없다.원경릉은 사실 혼자 소요공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고 소요공의 관심은 우문호에게 쏠려 있다.잠시 얘기하고 소요공이 일어나며, “다섯째 꼬맹아, 나랑 서재 가자.”우문호가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일어나 소요공을 따라 갔다.원경릉은 우문호가 형장에 끌려가는 죄인 꼴이라 우스워 죽겠다. 소요공은 꽤 친근한데 왜 무서워하지?소요공과 우문호가 안으로 들어가 향 하나 탈 정도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서 우문호는 나가서 처리할 일이 있다고 원경릉을 끌고

  • 명의 왕비   제 425화

    원경릉의 결심과 기왕의 돈줄우문호는 분개하면서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기왕이 공을 세우고 돌아온 데다가 지금은 막 주씨 집안 딸을 후궁으로 맞았으니 정세가 잠시 변함없어야지. 그게 아니면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태자로 점 찍으신 걸지도.”수족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을 황제 폐하는 왜 택하신 걸까? 원경릉은 이해할 수 없었다.우문호는 차갑게: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지키겠다고 한 이상, 난 기왕의 썩어 문드러진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고야 말겠어. 누가 태자가 되든 기왕은 안돼.”원경릉은 조금 걱정이 되어, “만약 아바마마께서 정말 기왕을 점 찍으셨으면 왕야가 그렇게 하는게 아바마마의 뜻과 상반돼서 겁이…..”우문호는 화난 얼굴로: “일이 이지경인데 겁 날게 뭐가 있어, 이 일을 아바마마께서 추궁하지 않으시면 기왕은 더욱 날뛸 거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라고. 아바마마 주변에 기왕이 심어 둔 눈이 없을 것 같아? 소요공이 상소를 올린 일을 기왕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요 며칠 기왕이 꼬리를 말고 조용히 있는 게 공을 세운 후에 오는 무기력인 줄 알았더니, 이 일 때문일줄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우문호는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며 걱정스럽게, “내 유일한 걱정은 네 안위야. 만약 내가 정말 기왕과 전쟁을 선포하면, 기왕은 맨 먼저 네 목숨을 노릴 테니까.”“난 겁 안나. 고작해야 밖에 좀 덜 나갈 뿐 인걸. 어쨌든 초왕부에 자객을 보낼 순 없을 거잖아!”원경릉이 이렇게 참기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결국 언젠가 속아서 당하고 말 테니까.우문호는 심사숙고하며: “일단 완벽한 계책을 세워 보자.”우문호는 줄곧 안심이 되지 않았다. 원경릉과 아이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눈을 보고 진지하게: “난 왕야가 일을 크게 만들길 바라지 않지만, 일이 터지면 우리도 숨어 있을 순 없지. 숨는다고 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반격을 안 한다고 우릴 가만 놔두겠어? 그럴 리 없지. 더 기

  • 명의 왕비   제 426화

    입궁한 원경릉탕양을 파견하고 우문호는 인력배치를 시작해 야근으로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초왕부로 돌아왔고, 원경릉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목욕 후 살금살금 자러 가서 고요하게 잠든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뽀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옆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잠이 안 온다.마음은 암울하다. 아바마마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우문호는 태자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기왕의 태도에만 관심이 있다.살해사건 때 우문호는 목숨을 잃을 뻔 한 건 물론이고 도리어 청부업자를 시켜 자해했다는 모함까지 받았다.이제 소요공이 증거를 찾았으나 아바마마는 뜻밖에도 모른 척 하고 있다.지난 세월 우문호의 마음 속엔 오직 조정, 아바마마만 있었고, 공로나 총애를 다투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조정을 위해 일하고 아바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마음은 암담함을 넘어 분노가 들어찼다.이번에 기왕의 잘못을 찾아내며 솔직히 불공평을 견딜 수 없었다.몸을 뒤척여 원경릉이 순수하게 잠든 모습을 보며 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탄식했다. 만약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하는 건 본인의 의도가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계속 태자의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면 아마도 원경릉 모자는 앞으로 덩달아 수모를 당할 것이다.마음이 슬그머니 확실해 져 갔다.다음날 아침 일찍 원경릉이 일어나기 전에 우문호는 또 나갔다.원경릉은 오늘 입궁해야 해서 우문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상궁이 와서 깨웠다.원경릉은 이미 차갑게 식은 이부자리를 만지며, “왕야는 어젯밤 안 들어 오셨어요?”희상궁이 원경릉을 부축해 일으키고 옷 시중으로 들며, “늦게 오셔서 새벽같이 또 나가셨어요.”“이렇게 일찍.” 원경릉은 사실 어젯밤 우문호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너무 졸려서 조금만 눈을 붙인다는 게 죽은 듯이 잠들어 버렸다.“그러게요, 왕야께서 요즘 바쁘신 것 같아요.” 희상궁은 원경릉의 옷을 정리하고 녹주는 뜨거운 물을 대령했다.입을 헹구고

  • 명의 왕비   제 427화

    태상황과 ‘노벤져스’ 두 어르신은 담뱃대를 내려 놓고 상선을 불러 가져가라고 했다.태상황이 원경릉에게: “앉아!”원경릉이 이리저리 살펴봐도 의자라곤 없는데 어디 앉으라는 거지?하지만 상선이 바로 의자 하나를 가져오게 시켜 마당에 놔뒀지만 원경릉이 앉으면 태상황보다 자기가 높아져서 앉아야 할지 말지 난감한 상황이다.마음속으로 중얼중얼, ‘저 셋은 왜 같이 모인 거야?’주재상이 물러나 걸어오다가 희상궁을 힐끔 보더니 급 비틀거린다. 그러다 ‘실수로’ 희상궁에 부딪혀 사과하면서 왠지 기뻐하며 갔다.원경릉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잘못 본 게 아닌지 눈을 비볐다. 방금 그 ‘유치 뽕짝’한 행동의 주인공이 주재상이라고? 닮은 사람 아니고? 쌍둥이겠지 설마?주재상의 인상은 신중하고 준엄하며 함부로 말하거나 웃는 일이 없는데다 심지어 약간 흉악하기까지 하다.원경릉은 마음에 상당한 충격을 입었다. 이토록 오랜 기간 주씨 집안의 최고 당주를 경계해 왔건만, 뜻밖에 이런 ‘유치 뽕짝’한 행동을 할 줄이야.원경릉이 희상궁을 보니 눈을 내리깔고 얼굴엔 아무 표정도 없지만, 볼에 살짝 노을 빛이 감도는 게 나이가 들어도 자태가 우아하다.원경릉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태상황에게 가서: “술 드셨어요? 얼마나 드신 거예요?”태상황이 조금 멋쩍은 듯, “입술에 조금 적신 정도지 뭐.”“입술에 살짝 적신 용안이 아니신 데요, 반 근은 드신 것처럼 보여요.” 원경릉이 대놓고 말했다.소요공이 ‘푸하하’웃으며, “반 근? 사람을 너무 얕잡아봤네.”원경릉이 더욱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어르신 병에는 술 드시면 안되는 거 아시죠?”태상황이 느릿느릿: “어의가 매일 한 모금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활기차게 한다고 했어, 과인은 오랫동안 안 먹었으니 매일 한 모금 씩을 모아서 오늘 마신 거야.”태상황이 일어나다 휘청거리니 상선이 얼른 부축하며, “아이고, 너무 드셨어요.”“어렵게 셋이 모였잖아. 주가 놈은 오랫동안 과인과 마신

  • 명의 왕비   제 428화

    소요공의 대답과 탕양의 귀환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소요공에게, “폐하께선 심장이 원래 안 좋으신데 오늘 술을 이렇게 많이 드셨으니 혈압이 급등할 수 밖 에요.”소요공이 원경릉의 약 상자를 보고 다시 원경릉의 귀에 걸린 청진기를 보고, 혈압계를 보더니 소요공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 스쳤다.하지만 소요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와서 앉으며 태상황에게: “그럼 앞으로 마시지 맙시다. 의원 말은 들어야 하거든.”태상황이 기분 나빠 하며, “내 일에 관여하지 마, 난 가서 잘 거야.”원경릉은 태상황이 술기운이 오른 것을 알고 얼른 상선에게 약을 주고, “드시고 주무시는 걸 확인하세요.”상선이 받아 들고, “명심하겠습니다!”태상황이 비틀비틀 들어가고 소요공과 원경릉이 건곤전에 남았다.원경릉이 화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제서야 오늘 소요공의 일을 물으려 했던 게 떠올라 약 상자를 끌어 와, “어르신, 이 약 상자에 물건을 보신 적이 있으신 가요?”소요공이 잠시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본 적 없어.”원경릉이 실망하며, “정말 본 적 없으세요?”소요공이 순간 멍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확실히 본 적이 없어.”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짐작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소요공이 같은 시대에서 왔다면 동지를 만나서 기뻐해야 마땅하다. 적어도 자신과 같은 심정일 게 틀림없다. 절대로 시인하지 않을 리 없다.됐어, 시공을 초월하는 게 그렇게 흔하겠어?원경릉은 약 상자를 챙기고 태상황에게 혈압강하제를 며칠 치 처방해서 가지고 나가 상선에게 전해준 뒤 나갈 땐 소요공은 이미 가고 없었다.원경릉은 출궁하기로 했다. 궁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니 오래 머무르지 않는 편이 좋다.우문호는 연달에 며칠을 심하게 바빠서 일찍 나가 늦게 돌아오고 오자마자 골아 떨어졌다가 또 나갔다.마침내 이 날은 우문호가 일찍 귀가해서 희희낙락하면서 들어왔다.“뭐가 그렇게 좋아?”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웃으며: “오늘 사건을 접수 했어.”원경릉이 웃으며

  • 명의 왕비   제 429화

    기왕비에 대한 기왕의 속셈탕양이 웃으며 지혜롭게: “어쩌면, 이편이 더 쓰기 편할 지도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번 일은 기왕의 송곳니를 확실히 뽑기 전까지는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정강부 수재들이 상경해 고소장을 낸 사건은 다음날 아침 일찍 명원제도 알게 되어 벽력같이 진노했다. 그래서 우문호에게 각별히 엄중하게 조사할 것을 명하고, 일단 범죄의 증거가 확실하면 정강부 관원 중 연루된 사람이 몇 명이든, 일단 일률적으로 파직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도록 했다.기왕도 조정의 아침 조례에 있었는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퇴청할 때 기왕이 우문호를 쫓아왔다.“동생, 잠깐 기다려.”우문호가 멈춰서 고개를 돌려, “형, 부르셨습니까?”기왕이 웃음을 머금고 우문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냐, 그냥 우리 형제가 같이 술 마신 지도 오래 됐잖아. 오늘밤 형이 좋은 술을 초왕부로 들고 갈테니, 한잔 신나게 마시는 거 어떠냐?”우문호는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나며, “다음에 하죠, 최근 공무로 바빠 서요.”기왕이 손을 저으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정강부 일은 그 수재들이 호강에 겨워서 괜ㅎ한 일을 만든 거 같아. 나라면 저 수재들 정신이 번쩍 나게 곤장을 쳐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정강부 관아에서 잘 지켜보게 하겠어.”우문호가 웃는듯 마는듯, “형, 이 일은 아직 조사도 안 했는데, 수재들이 괜히 일을 만들었는지 아시는군요?”“나야 정강부에서 비적을 토벌했으니 막문이 비적토벌 비용 어쩌고를 거두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알지.” 기왕이 말했다.“받고 안 받고는 조사하면 알겠지요.”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예를 취한 뒤, “저는 일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겠습니다.”기왕이 슬픈 기색으로: “다섯째, 권할 때 안 마시면 벌주 마신다?”우문호가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권하는 술도 벌주도 다 안 마십니다.”기왕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우리 친왕들 중에 뒤에 구린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네가 들춰내면 반드시 누군가 네 구린 일을

  • 명의 왕비   제 430화

    기왕비의 계략과 바람둥이 구사기왕비는 황당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게, 큰 오빠는 지금 비록 호부에서 물러났지만 그 시절에 어떻게 집안을 일으켰는데, 황제 폐하의 조사가 들어오면 내막이 철저히 파헤쳐지고 뿌리가 뽑혀버릴 것임은 안 봐도 훤하다.그러나 기왕비의 마음 속엔 분노가 끓어올랐다. 친정에서 음으로 양으로 돈을 얼마나 대줬던가? 만약 친정의 지원이 없었으면 기왕에게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을까?비록 기왕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그래도 기왕은 여전히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 주재상의 손녀를 후궁으로 맞아서 기왕비를 직접 버릴 생각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토사구팽 이요 배은망덕한 인간의 표상이다.기왕비는 태생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지금 미친듯이 분노해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지만 일말의 분노와 슬픈 눈빛조차 감추고 평소처럼, “왕야, 후궁을 아직 맞지 않으셨고 원경릉의 배속에 아이도 아들딸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다른 여러가지 변수가 있으니 신첩이 전에도 왕야께 말씀드렸듯이 범사에 여지를 남기세요. 오늘도 이 말씀 올립니다. 왕야께서는 버린 바둑알로 여기시지만 치명적인 한 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기왕이 담담하게: “내가 방금 한 말이, 이미 여지를 남긴 거야. 이번 사건의 죄는 너와 네 사촌동생에게 물을 것으니 난 널 대신해 빠져나올 방법을 생각하도록 하지.”기왕비는 작게 웃으며 거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기왕을 보고, “왕야, 이 잘못의 책임은 누구도 질 필요 없습니다. 우문호가 뭘 찾아낼 수 있을까요?”“그 녀석은 내가 잘 아는데 충분히 자신 없으면 가볍게 손을 댈 녀석이 절대 아니야.”기왕비는 악랄한 눈빛으로, “기왕 그렇게 된 것이라면 사건 하나로 초왕을 묶어버리죠, 정강부 일엔 신경 쓸 겨를도 없게.”기왕이 듣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기왕비에게, “왕비는 방법이 있어?”기왕비는 몇 번이고 기침을 하더니 호흡이 가빠지고 한동안 숨을 헐떡이다가 기왕을 똑바로

  • 명의 왕비   제 431화

    원경병과 구사“그렇다니까? 다른 사람이 못 들었으니 망정이지.” 원경병은 다시 고민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사람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 아니겠지? 그 사람 어쩜 그렇게 못될 수가 있어? 난 그 사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좋은 사람 아냐!”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원경병이 ‘아’하고 눈가가 금방 붉어지면서, “그….그럼 그 사람이 나 가지고 논 거야?”원경병은 여전히 구사는 착한 사람이란 생각에 요 며칠간 전전반측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질문하던 구사를 떠올리면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다.“구사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널 가지고 놀거나 널 떠볼 사람으로는 안 보여.”원경병이 손목을 휘휘 흔들며 급하게: “그럼 빨리 분석해봐 언니,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건데?”원경릉이 원경병의 손을 감싸며, “말해봐, 구사에 대한 네 감정은 어떤데? 만약 구사가 정말 구혼하면 그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어?”원경병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자 입술을 깨물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가고 싶지. 그 사람은 잘 생겼지 집안 좋지, 말도 얼마나 잘해, 게다가 무술도 잘하고 게다가 궁내 시위국 국장이고……”“부.국장이라니까!” 원경릉이 고쳐줬다.원경병이 언니에게 눈을 흘기며, “부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젊은데 부 시위국장인 것도 대단하지.”“네 형부보단 못하네.” 원경릉이 자랑했다.원경병이 얼굴색을 단정히 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흘끔 보며, “그건 알 수 없지. 형부는 운이 좋아서 황실의 아들로 태어났잖아. 만약 구사랑 같은 출신으로 평범한 백성의 가문에……”원경릉은 어쩔 수 없이 원경병의 말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구사는 평범한 백성의 가문 출신이 아닌 걸. 너도 알지? 구사의 아버지는 진북후(鎮北侯)시고 어머니는 군주(郡主)셔.”원경병의 얼굴 색이 변하더니 눈초리가 서서히 어두워지며, “큰 언니, 내 생각에 그 사람이 날 가지고 놀았나 봐. 그 사람처럼 세도가 자제가 어떤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377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 명의 왕비   제3376화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 명의 왕비   제3375화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