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 사랑원경릉은 우문호에게 물을 따라주며 궁금하다는 듯: “사실 잘 모르겠어. 나랑 원부인이랑 딱 한 번 만난 인연이 전부인데 그 집안은 왜 나한테 그렇게 열정을 다하는 걸까?”우문호가 설명하길: “노마님이 무림 출신이라 며느리들도 무림 출신이 많지. 강호의 의협이시라 의를 가장 중시하는데 네가 성밖에서 한 일이 신분불문, 더럽고 추한 것도 가지리 않은데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노마님 집안 사람들은 당연히 존경할 수밖에.”“그게 존경까지 할 일이야?” 원경릉의 의아해하며, 그런 존경은 너무 자의적인 거 아닌가? 세상에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그 집 사람들이 사람 볼 줄 알거든.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인지 아닌지, 딱 봐서 아는 거지. 네가 그날 한 행동은 오직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도가 순수하고, 어떤 공이나 이익도 목적으로 삼지 않았으니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고 여긴 거야.”원경릉이 눈을 깜박이며, “지금 그 말은 왕야의 추측이야 아님 마음 속으로 나를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을 향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이더니, “주변 사람들이 눈이 삐었다니까. 널 제대로 안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아는 건 나뿐이야. 넌 소심하고, 질투심 많고, 흉악한데다 결점이 산더미 같은 여자거든. 이런 여자를 내가 보배처럼 대하고 있으니,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틀림없어.”원경릉이 눈을 흘기며, “만약 맨 뒤에 두 문장이 없었으면, 왕야는 오늘 내 손에 죽을 뻔 했어.”우문호가 웃으며 물을 마시고 제대로 못 알아듣게, “사실 넌 정말 최고야.”원경릉이 일부러 못 들은 척, “뭐라고?”“내 말은 오늘 관아 음식이 정말 최고라고.” 우문호가 한 글자 씩 또박또박 말한다.원경릉이 우문호를 한 대 때리더니 웃으며: “왕야는 날 좀 칭찬해주면 어디가 덧나? 여자들은 다 칭찬에 약하다고.”“천박한 지고!” 우문호는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것을 싫어한다.“그래도 난 듣고 싶다고!” 원경릉이 미련 넘치게 말했다.
소요공을 만나러 가는 길원경릉은 줄곧 소요공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었기에 사식이가 나가자마자: “짬을 봐서 우리 소요공한테 인사하러 다녀오자.”우문호는 상당히 거부반응을 보이며, “안가!”“이해가 안되네. 소요공처럼 좋은 분을 왕야는 왜 싫어 하는 거야?”우문호는 답답하게: “누가 싫어한데? 난 그냥 소요공을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야.”“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원경릉은 이해가 안 갔다.“너는 왜 꼭 소요공을 만나야 하는데?” 우문호도 이해가 안 갔다. 일 개 늙은이에 불과한 그런 망나니 영감이 뭐 볼 게 있다고?원경릉이: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중요한 거야.”“꼭 물어봐야 돼?”같은 곳에서 왔는지 역시 꼭 물어봐야 한다.그래서 원경릉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문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그러자, 내일 휴가를 내고 사람을 시켜 우리가 간다고 명함첩을 보낼 게.” 원경릉은 우문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 뒤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고마워!”우문호는 순간 잘했다고 생각했다.다음날 이른 아침, 우무호는 일어나 옷을 입었다.우문호는 서일을 시켜 전투갑옷을 뒤져오게 했는데, 이 갑옷은 항상 첫번째 옷장에 들어 있어서 서일이 자주 닦아 놓고 군영에 갈 때만 입지만 경조부에 부임한 뒤로는 한번도 입은 적이 없다.원경릉은 호기심이 들어서: “국공부(國公府)에 가는데 평상복 입으면 돼잖아, 왜 전투 갑옷?”“있다가 군영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그때 와서 옷 갈아입을 필요 없이 미리 입는 거야.” 우문호가 변명했다.“군영에 가서 뭐하게? 오늘 휴가 아니야?”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끌고 가 화장대에 앞에 앉히고, “맞아, 휴가 받은 김에 동료들 만나려고.”동으로 된 거울에 원경릉의 동그랗고 매끄러운 얼굴과 딱 봐도 가슴이 방망이질 칠만큼 잘 생기고 기개가 넘치는 우문호가 뒤에 서있다. “우린 정말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야.”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래? 나 추녀 아니었어?” “못 생기긴 못 생겼
소요공을 만나러 간 원경릉 부부소요공부에서는 어제 명함첩을 받고 소요공의 며느리 양부인은 벌써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가 마차가 도착하자 식솔을 거느리고 나왔다.“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를 뵙습니다!” 양부인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예를 취하자 다른 식솔들도 너나없이 예를 취했다.원경릉이 양부인을 보니 오늘 붉은색 어두운 구름무늬 비단 치마에 보랏빛 비녀를 머리에 꽂았는데 존귀한 분위기가 그날 성밖에서 봤을 때와 사뭇 다르고 손님을 각별히 존중하는 의미로 세심하게 화장을 했다.원경릉이 웃으며: “부인 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양부인이 우문호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왕야, 이러질 거 까지야!”우문호가 꽁하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지요.”원경릉이 두사람을 보며, ‘무슨 뜻이야?’양부인은 웃으며 부부를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소요공부는 커서 눈으로 대충 어림짐작해도 수천 평은 되 보이고 앞쪽 넓은 곳이 전부 화원이라 수많은 식물이 심어져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을 맞은 지금도 몇몇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인공조경물이나 정자, 누각이 거의 없어서 생활하는 공간 외에 다른 휴게 건축물은 적고 기본적으로 빈 땅에 전부 화초와 채소가 심어져 있다.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을 몇 보지 못했는데 우연히 마주친 두 세 사람도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걸어갔다.“부인, 이 저택은 참 개방적이네요.” 원경릉은 이런 설계가 좋다. 농장 같다.“그래요, 아버님이 이렇게 배치하시는 걸 좋아하세요. 뒤쪽은 돼지, 소, 말, 양, 닭, 원숭이, 뱀 등을 키운 답니다.” 양부인이 말했다.“어르신은 정말 고상하세요.” 원경릉이 칭찬했다.말하는 중에 거름을 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노인이 뒤쪽 나무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키가 크고 혈색은 까무잡잡하고 붉은데 머리와 눈썹은 굵고 검다. 거름을 메고 있는데도 어깨에 무거운 짐이라 고는 하나 없는 것처럼 걷는 게 가뿐……요염하다.노인은 이쪽으로 오지 않고 뒤쪽으로 돌아서 채소밭
소요공과 우문호의 대화양부인이 일어나 웃음을 머금고: “아버님, 왕야와 왕비 마마 오셨어요.”원경릉이 듣고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이 거름지는 노인이 소요공이라고?원경릉은 허겁지겁 일어나 예를 취하며: “어르신을 뵙습니다.”소요공이 원경릉을 보고 짙은 눈썹을 움찔거리며 ‘허허’하고 웃더니, “왕비마마께서 늙은이에게 절이라니요,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원경릉이 겸손하게: “어르신이 윗사람인데 당연히 제가 인사를 드리는 게 맞지요.” 왕비라는 칭호는 별거 아니고 그저 신분이 존귀하다는 뜻일 뿐이다. 실력으로 따지면 소요공이 원경릉을 수차례는 따돌리고도 남으니 이 여우 같은 인간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굴면 안된다.“이 계집애는 사람 됨됨이가 됐구나.” 소요공이 칭찬하며 눈은 우문호를 향해 비웃으며, “다섯째 꼬맹아, 한동안 안 오더니 늙은이가 ‘딱콩’할까 봐 겁나던?” 우문호의 얼굴이 굳으며, “어르신은 젊은 후배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아니십니까,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을 골리면 안됩니다.” 소요공이 앉으며 발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렸는데 거무튀튀한 발은 흙투성이로 밭을 가는 남자의 발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 골려 주는 것으로 치면 태상황 폐하가 둘째가라면 서럽지. 넌 황조부한테 먼저 얘기하고 와.”우문호는 감히 답할 수 없었다.비록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황조부께서 이 평범한 늙은이를 오만 방자하게 내버려 두셨으니 할말 없다.원경릉은 사실 혼자 소요공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고 소요공의 관심은 우문호에게 쏠려 있다.잠시 얘기하고 소요공이 일어나며, “다섯째 꼬맹아, 나랑 서재 가자.”우문호가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일어나 소요공을 따라 갔다.원경릉은 우문호가 형장에 끌려가는 죄인 꼴이라 우스워 죽겠다. 소요공은 꽤 친근한데 왜 무서워하지?소요공과 우문호가 안으로 들어가 향 하나 탈 정도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서 우문호는 나가서 처리할 일이 있다고 원경릉을 끌고
원경릉의 결심과 기왕의 돈줄우문호는 분개하면서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기왕이 공을 세우고 돌아온 데다가 지금은 막 주씨 집안 딸을 후궁으로 맞았으니 정세가 잠시 변함없어야지. 그게 아니면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태자로 점 찍으신 걸지도.”수족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을 황제 폐하는 왜 택하신 걸까? 원경릉은 이해할 수 없었다.우문호는 차갑게: “아바마마께서 기왕을 지키겠다고 한 이상, 난 기왕의 썩어 문드러진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고야 말겠어. 누가 태자가 되든 기왕은 안돼.”원경릉은 조금 걱정이 되어, “만약 아바마마께서 정말 기왕을 점 찍으셨으면 왕야가 그렇게 하는게 아바마마의 뜻과 상반돼서 겁이…..”우문호는 화난 얼굴로: “일이 이지경인데 겁 날게 뭐가 있어, 이 일을 아바마마께서 추궁하지 않으시면 기왕은 더욱 날뛸 거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라고. 아바마마 주변에 기왕이 심어 둔 눈이 없을 것 같아? 소요공이 상소를 올린 일을 기왕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요 며칠 기왕이 꼬리를 말고 조용히 있는 게 공을 세운 후에 오는 무기력인 줄 알았더니, 이 일 때문일줄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우문호는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며 걱정스럽게, “내 유일한 걱정은 네 안위야. 만약 내가 정말 기왕과 전쟁을 선포하면, 기왕은 맨 먼저 네 목숨을 노릴 테니까.”“난 겁 안나. 고작해야 밖에 좀 덜 나갈 뿐 인걸. 어쨌든 초왕부에 자객을 보낼 순 없을 거잖아!”원경릉이 이렇게 참기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결국 언젠가 속아서 당하고 말 테니까.우문호는 심사숙고하며: “일단 완벽한 계책을 세워 보자.”우문호는 줄곧 안심이 되지 않았다. 원경릉과 아이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눈을 보고 진지하게: “난 왕야가 일을 크게 만들길 바라지 않지만, 일이 터지면 우리도 숨어 있을 순 없지. 숨는다고 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반격을 안 한다고 우릴 가만 놔두겠어? 그럴 리 없지. 더 기
입궁한 원경릉탕양을 파견하고 우문호는 인력배치를 시작해 야근으로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초왕부로 돌아왔고, 원경릉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우문호는 목욕 후 살금살금 자러 가서 고요하게 잠든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뽀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옆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잠이 안 온다.마음은 암울하다. 아바마마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우문호는 태자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기왕의 태도에만 관심이 있다.살해사건 때 우문호는 목숨을 잃을 뻔 한 건 물론이고 도리어 청부업자를 시켜 자해했다는 모함까지 받았다.이제 소요공이 증거를 찾았으나 아바마마는 뜻밖에도 모른 척 하고 있다.지난 세월 우문호의 마음 속엔 오직 조정, 아바마마만 있었고, 공로나 총애를 다투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조정을 위해 일하고 아바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마음은 암담함을 넘어 분노가 들어찼다.이번에 기왕의 잘못을 찾아내며 솔직히 불공평을 견딜 수 없었다.몸을 뒤척여 원경릉이 순수하게 잠든 모습을 보며 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탄식했다. 만약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하는 건 본인의 의도가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계속 태자의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면 아마도 원경릉 모자는 앞으로 덩달아 수모를 당할 것이다.마음이 슬그머니 확실해 져 갔다.다음날 아침 일찍 원경릉이 일어나기 전에 우문호는 또 나갔다.원경릉은 오늘 입궁해야 해서 우문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상궁이 와서 깨웠다.원경릉은 이미 차갑게 식은 이부자리를 만지며, “왕야는 어젯밤 안 들어 오셨어요?”희상궁이 원경릉을 부축해 일으키고 옷 시중으로 들며, “늦게 오셔서 새벽같이 또 나가셨어요.”“이렇게 일찍.” 원경릉은 사실 어젯밤 우문호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너무 졸려서 조금만 눈을 붙인다는 게 죽은 듯이 잠들어 버렸다.“그러게요, 왕야께서 요즘 바쁘신 것 같아요.” 희상궁은 원경릉의 옷을 정리하고 녹주는 뜨거운 물을 대령했다.입을 헹구고
태상황과 ‘노벤져스’ 두 어르신은 담뱃대를 내려 놓고 상선을 불러 가져가라고 했다.태상황이 원경릉에게: “앉아!”원경릉이 이리저리 살펴봐도 의자라곤 없는데 어디 앉으라는 거지?하지만 상선이 바로 의자 하나를 가져오게 시켜 마당에 놔뒀지만 원경릉이 앉으면 태상황보다 자기가 높아져서 앉아야 할지 말지 난감한 상황이다.마음속으로 중얼중얼, ‘저 셋은 왜 같이 모인 거야?’주재상이 물러나 걸어오다가 희상궁을 힐끔 보더니 급 비틀거린다. 그러다 ‘실수로’ 희상궁에 부딪혀 사과하면서 왠지 기뻐하며 갔다.원경릉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잘못 본 게 아닌지 눈을 비볐다. 방금 그 ‘유치 뽕짝’한 행동의 주인공이 주재상이라고? 닮은 사람 아니고? 쌍둥이겠지 설마?주재상의 인상은 신중하고 준엄하며 함부로 말하거나 웃는 일이 없는데다 심지어 약간 흉악하기까지 하다.원경릉은 마음에 상당한 충격을 입었다. 이토록 오랜 기간 주씨 집안의 최고 당주를 경계해 왔건만, 뜻밖에 이런 ‘유치 뽕짝’한 행동을 할 줄이야.원경릉이 희상궁을 보니 눈을 내리깔고 얼굴엔 아무 표정도 없지만, 볼에 살짝 노을 빛이 감도는 게 나이가 들어도 자태가 우아하다.원경릉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태상황에게 가서: “술 드셨어요? 얼마나 드신 거예요?”태상황이 조금 멋쩍은 듯, “입술에 조금 적신 정도지 뭐.”“입술에 살짝 적신 용안이 아니신 데요, 반 근은 드신 것처럼 보여요.” 원경릉이 대놓고 말했다.소요공이 ‘푸하하’웃으며, “반 근? 사람을 너무 얕잡아봤네.”원경릉이 더욱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어르신 병에는 술 드시면 안되는 거 아시죠?”태상황이 느릿느릿: “어의가 매일 한 모금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활기차게 한다고 했어, 과인은 오랫동안 안 먹었으니 매일 한 모금 씩을 모아서 오늘 마신 거야.”태상황이 일어나다 휘청거리니 상선이 얼른 부축하며, “아이고, 너무 드셨어요.”“어렵게 셋이 모였잖아. 주가 놈은 오랫동안 과인과 마신
소요공의 대답과 탕양의 귀환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소요공에게, “폐하께선 심장이 원래 안 좋으신데 오늘 술을 이렇게 많이 드셨으니 혈압이 급등할 수 밖 에요.”소요공이 원경릉의 약 상자를 보고 다시 원경릉의 귀에 걸린 청진기를 보고, 혈압계를 보더니 소요공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 스쳤다.하지만 소요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와서 앉으며 태상황에게: “그럼 앞으로 마시지 맙시다. 의원 말은 들어야 하거든.”태상황이 기분 나빠 하며, “내 일에 관여하지 마, 난 가서 잘 거야.”원경릉은 태상황이 술기운이 오른 것을 알고 얼른 상선에게 약을 주고, “드시고 주무시는 걸 확인하세요.”상선이 받아 들고, “명심하겠습니다!”태상황이 비틀비틀 들어가고 소요공과 원경릉이 건곤전에 남았다.원경릉이 화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제서야 오늘 소요공의 일을 물으려 했던 게 떠올라 약 상자를 끌어 와, “어르신, 이 약 상자에 물건을 보신 적이 있으신 가요?”소요공이 잠시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본 적 없어.”원경릉이 실망하며, “정말 본 적 없으세요?”소요공이 순간 멍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확실히 본 적이 없어.”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짐작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소요공이 같은 시대에서 왔다면 동지를 만나서 기뻐해야 마땅하다. 적어도 자신과 같은 심정일 게 틀림없다. 절대로 시인하지 않을 리 없다.됐어, 시공을 초월하는 게 그렇게 흔하겠어?원경릉은 약 상자를 챙기고 태상황에게 혈압강하제를 며칠 치 처방해서 가지고 나가 상선에게 전해준 뒤 나갈 땐 소요공은 이미 가고 없었다.원경릉은 출궁하기로 했다. 궁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니 오래 머무르지 않는 편이 좋다.우문호는 연달에 며칠을 심하게 바빠서 일찍 나가 늦게 돌아오고 오자마자 골아 떨어졌다가 또 나갔다.마침내 이 날은 우문호가 일찍 귀가해서 희희낙락하면서 들어왔다.“뭐가 그렇게 좋아?”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웃으며: “오늘 사건을 접수 했어.”원경릉이 웃으며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