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이 질문할 동안 의료진과 원경주가 주 재상을 데리고 병실로 돌아왔다.태상황과 소요공은 이제서야 주 재상 혼자 개두술을 받고 온 것을 확인하고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렸다. 태상황은 원경주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교통경찰이 얼른 말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냥 교통사고 따위 조사하러 와서 어쩌다가 도굴 사건과 의료진 폭행 건을 대처해야 하는 거냐고?’결국 원경주를 때리지는 못했지만, 태상황과 소요공 앞에서 원경주는 신용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주진도 같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게다가 주 재상이 수술 후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비록 정상적으로 호흡 했지만, 몸에 이렇게 많은 물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너무 두려워서 태상황은 주 재상을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여기 남아있을 수 없다고 했다.원경주는 하는 수 없이 결국 원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쨌든 나이 많은 노인이고 원 교수가 원경릉의 할머니 사진을 꺼내왔는데, 두 사람에게 자신이 사진 속에 이 나이 든 여자분의 아들이라고 하자 태상황이 그제서야 진정됐다. 태상황은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는데 비록 복식이 다르고 머리모양이 달라도 아무리 봐도 생긴 건 똑같았다.“자네가 주디 아들이라고? 그런데 자네는 대흥 사람이 아닌데? 여기가 설마 대흥인가?” 태상황이 의혹을 느끼며 물었다.“아니요, 대흥은 아닙니다. 사실 제 어머니도 원래는 이곳사람입니다.” 원 교수는 두 사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이 일은두 분께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어쨌든 경릉이가 수술을 마치면 두 분은 돌아가실 테고, 여기서 오래 머무실 필요가 없으시니까요.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경릉이 수술이 끝난 뒤 연구실에서 15일은 있어야 하고 15일 후에 반드시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세 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여기서 적어도 두세 달은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제 생각에 감춰서 좋을 게 없지, 싶어 얘기 드리는 겁니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원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긴장한 듯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예, 우리 곁에서 자랐죠.”“그러니까 태자비는 정후부와 자네 곁에서 동시에 자랐다? 그런가?” 태상황이 원 교수에게 말했다.원 교수가 땀을 닦으며 답했다. “에…. 예, 하지만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원 교수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딸이 얘기 안 했더라니, 이건 단박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모를 땐 상식에 어긋난다며 오해하기 쉽고, 자신도 쉽게 상대를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둘은 사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후부에서 자란 것은 원경릉이고 제 곁에서 자란 아이는….”“자란 아이는.. 뭐?” 두 사람이 원 교수를 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그러자 원 교수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역시 원경릉입니다. 하지만 정후부의 원경릉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자네 말은 원경릉이 두 명이란 소리군. 그러면 어떤 원경릉이 태자비인가?”원 교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둘다 입니다.”“그러니까 태자비가 둘이다?”원 교수가 당황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원 교수를 한동안 보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아셨다고요?”“응!” 태상황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원 교수를 바라봤다. 태상황은 주디의 아들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눈치챈 것이다.원 교수는 약간 마음이 급해졌다. “정말 아시겠습니까?” ‘설명을 제대로 못 했는데 어떻게 바로 안다는 거지?’태상황이 원 교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해했다는 듯 답했다. “이해했네. 우리가 자네와 주디 관계를 얘기해 보도록 하지. 자네는 주디의 아들이야? 주디는 대흥국 사람이 아니고. 주디는 여기 사람이지. 나중에 고향을 등지고 대흥으로 갔어. 이렇게 된 거 맞지?”원 교수는 어리둥절했으나 듣고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된 겁
태상황이 약간 웃긴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건 아마 자네가 아직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하하.”주 재상이 놀라서 천천히 손을 들어 눈을 만져보니 역시나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부끄러운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하하하.”마취에서 깨자, 주 재상은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태상황과 소요공은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원경주의 능력이 돋보였다. 원경주가 오면 항상 주 재상의 통증이 경감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을 주거나 진통 주사를 놔서 주 재상의 상태가 호전되게 했다. 그런 원경주의 모습에 태상황과 소요공은 원경주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고 상당히 신뢰하기 시작했다.원경주는 두 사람에게 주 재상의 상태를 얘기해 주었다. “시신경을 누르고 있던 핏덩어리를 포함해 핏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해서 시력을 회복하실 겁니다. 내일 눈을 가린 붕대를 풀거니 두 분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태상황은 원경주의 이 말을 듣고 재상의 상황에 대해 안심했으나 원경릉의 상황이 걱정됐다. “태자비는 어디로 갔지? 몰래 수술받고 있는 거 아냐? 수술은 어떻게 됐어?”그러자 태상황은 느낌이 딱 왔다. 원경릉은 수술하러 갈 때 자신을 속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원경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실 본인도 걱정이 되는 게 수술이 12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미 15시간째가 지났기에 걱정되어 주진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상황이 어때?” 셋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원경주는 그저 그들을 위로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수술이 안 끝나서. 동생 수술은 비교적 복잡한 거라 아마 이렇게 빨리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세 분 다 안심하셔도 되는 게 동생을 수술하는 사람은 신의라고 불리는 엄청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 분께서 이번에 오신 것도 전부 그 사람이 도와주신 덕택이거든요.”“태자비도 개두술을 하나?” 주 재상이 물었다.“네, 동생도 합니다.”“그럼, 아
주진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사실 이식한 뒤에 나타난 일련의 문제는 주진도 처리한 적 있었다. ‘아이들이 다 자가 치유 능력이 있는데 원경릉한테 원래 몸의 주인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사실 약물을 주사한 건 현대 원경릉인데 어째서 그쪽 아이들에게 유전된 거죠?” 주진이 물었다. 이 일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가 있었지만 양여혜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요 몇 년간 현대 원경릉이 북당의 원경릉의 신체를 제어했어요. 그래서 북당 원경릉의 유전자를 바꿔 북당 원경릉의 몸을 현대의 몸과 같이 되게 한 거죠.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난 뒤 원경릉 본인이 유전자 암호 한 벌은 다시 쓴 거예요.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전부 없앴지만 어쨌든 시공간이 떨어져 있으니 원경릉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신체를 보호함과 동시에 북당 원경릉의 뇌세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던 거죠. 따라서 대뇌가 쇠약해지며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식하지 않으면 계속 쇠약해지다 죽는 거죠. 다행히 전에 두 번째 아이를 배면서 태아 대뇌가 발육하는 과정에서 탯줄을 통해 모체를 살릴 수 있는 세포가 나왔지만,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원경릉이 쓰러졌고 흡수를 마치자 깨어났죠. 세 번째 임신했을 때는 대뇌가 상당히 심각하게 쇠약해졌고 현대 쪽에서 사고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계속 지탱할 수 없었던 거죠.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어요.”주진은 비록 이쪽 연구에 종사하는 인력이지만 양여혜의 말을 듣고 역시 좀 놀랐다.주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 계속 과학의 끝은 신학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보아하니 제가 틀렸네요. 과학은 과학이고, 예전 인류는 미지의 사건이나 영역에 대해 늘 신의 영역이라고 해 왔는데 저도 같은 실수를 범했어요.”양여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에요!”“어째서요?”양여혜가 손을 내 저었다. “스스로 알아보세요!”깨달은 자의 말은 원래 한두 마디에 그치는 법이다. 주진이 알아듣고 더이상 묻지 않았다.한 사람의 능력엔
꿈도 꾸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좀처럼 있기 힘든 고요함 속에서 그저 고요하게 누워만 있었다.만두는 이쪽에서 반나절을 있다가 돌아갔다. 돌아가니 우문호가 자신들을 데리고 초왕부로 돌아가고 있었다.우문호는 여전히 만두를 지키고 있었다. 만두가 깨자 원 선생이 수술을 마쳤고 순조로웠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랑 얘기해 봤어?” 우문호가 얼른 물었다.“아직 안 깨어나셨어요. 며칠이 지나야 깨어나신대요. 큰 수술이었잖아요.” 만두가 말했다.우문호는 자기도 모르게 또 걱정이 앞서서 흥분했다. “얼마나 더 있어야 깨어난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그럴 리 없어요! 전혀!” 만두가 얼른 아빠를 안심시켰다. “주진이 그러는데 엄마 상태가 좋데요.”우문호는 그 쪽에도 총명한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막상 원 선생에 관해서는 좀처럼 안심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털고 일어나 할 일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원 선생이 진짜 돌아왔을 때 집이 엉망진창이 되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만두의 손을 잡고 나갔다. “우리 여동생 보러 가자.”계란이는 오늘 요 부인이 만들어준 붉은색 긴 옷을 입었는데 아주 예뻤다. 백옥같이 뽀얀 얼굴에 검은 포도알 같은 눈동자가 콕 콕 박혀있었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포대기에 침을 흘리며 혀를 날름날름 내밀며 귀여움을 보여주었다. 우문호는 그때 딸의 미간에서 옅은 붉은색 불꽃무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 전에는 몰랐는데, 오늘 노느라 흥분해서 혈기가 위로 올랐는지 옅은 불꽃 인장이 보이게 된 것이다.우문호가 계란이를 안고 살살 두드려주자, 불꽃 인장이 사라졌다.그러자 만두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계란이가 삶은 계란이 됐어요.”만두가 손을 뻗어 여동생의 볼을 꾹 누르며 다가와서 말했다. “동생, 얼른 자라자. 오빠가 어흥이 줄께.”“뭐?”“호랑이요, 동생한테 호랑이 주려고요.”“네 건 눈 늑대 아니었어?”“쌍둥이 거를 여
그래도 어쨌든 선물로 주신 거니 못생겼다고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복도에 걸어놓고 키우는거 어때? 벌레도 잡아서 먹여주고.”서일이 답했다. “섬전위가 그러는데 얘 벌레는 안 먹고 잔디에도 안 앉는데요. 풀어주면 오동나무를 찾아서 서식한대요! 마당에 마침 오동나무가 있으니 거기에 풀어줄까요?”우문호는 새끼 봉황 날개를 보니 아직 못 날겠다. “그래, 풀어줘!”서일이 새장을 들고 나가 ‘훠이~’하고 날리자, 아이들이 달려와 재잘재잘거리며 새에 대한 품평회를 시작했다.“이게 봉황이란 거야? 완전히 못생겼는데!” 만두가 솔직하게 말했다.“닭이 더 이쁘겠어, 근데 저 발톱은 진짜 이쁘다.” 찰떡이가 발톱을 뚫어지게 보는데 발톱 전체가 노란색으로 꼬리와 색이 같고 조그만 발에 예쁜 비늘이 있어 날려 보내주자, 땅을 아주 단단히 잡았다.“”걸을 수 있을까? 걸어봐!” 경단이가 새끼 봉황을 밀었지만, 새끼 봉황은 걷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눈앞에 5개의 사람을 쳐다봤다.“걷지도 못하고 여동생이 안 좋아할 게 분명해. 환타야 네 호랑이 여동생한테 줘.” 만두가 명령하자 환타가 대담하게 답했다. “그래, 우리 동생한테 주지 뭐!”칠성이가 말했다. “나도 줄래, 나도 우리 호랑이 여동생한테 줄래.”찰떡이도 말했다. “동생이 눈 늑대 좋아하면 나도 줄 거야.”만두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따라 말했다. “그럼 나도 줄래.”그러고는 아무 말 없는 경단이에게 물었다. “넌 줄 거야, 안 줄 거야? 우린 다 줘서 여동생이 고르라고 할 거야. 고르면 바꿀 수 없어.”경단이도 희한하게 대범한 말투로 말했다. “은자도 줄 수 있는데! 눈 늑대는 말해, 뭐해.”이처럼 여동생은 5명에게 보물 같은 존재로 달님 같고 별님 같았다. 백옥같은 자신의 동생이 바라는 건데 뭔들 못 주겠나!우문호는 계란이를 안고 복도에서 흐뭇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봤다. 모두 동생을 위하는 모습을 보자 뿌듯함이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자기 이마를 딸 이마에
“갔어요!” 녹주가 마당문을 들어서며 얼굴이 새하얘졌다. “우리가 오늘 부엌에 준비해 둔 고기를 전부 싸서, 예쁜 대접 몇 개까지 가져갔어요. 새끼 봉황이 자기들에게 왔을 때 날아올라서 그릇을 몇 개 깨 먹었다면서 우리더러 배상하라고 했어요. 부엌에서 나갈 때 솥단지도 하나 가져가면서 그릇만 가져가면 깨지기 쉬우니까 솥에 넣어 가면 안정적이라고.”우문호는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라고? 큰할아버지께서 그들을 그렇게 홀대하신다니.. 식기까지 가지고 다니면서.탕양도 들어와서 말을 보탰다. “그게 대숩니까? 본관에 왔을 때는 말이죠. 다리가 부러져서 마당에 놔둔 의자 2개가 있었는데, 나중에 고쳐야지 한 걸 바로 멜대에 달아 어깨에 메고 갔어요.”“안풍친왕 전하께서 그렇게 가난하신가?” 서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듣기로는 저들도 봉지와 생업이 있고, 소요공과 이리 나리처럼 부유한 제자가 있으니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시는 건 아니죠?”“그건 몰라. 희상궁에게 물어봐야지.” 탕양이 말하자 녹주가 바로 희상궁에게 물어보러 갔다.삼대 거두가 원경릉과 현대로 간 뒤로 희상궁은 초왕부로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지냈는데, 삼대거두와 원경릉을 걱정하긴 해도 치료하러 간 데다 믿고 맡길 수 있는 태자비의 사부라고 생각하니 위기의식이 들지 않았다.안풍친왕 부하 얘기를 들은 희상궁이 웃으며 말했다. “적성루가 전에는 가난했죠. 하지만 분봉을 받은 뒤로 전답이 있고 왕비 마마도 장사를 하신 데다 나중에 방비부인께 유산도 받아서 살기 좋아졌어요. 안타까운 건 휘종제께서 보위에 오르신 뒤 안풍친왕 전하 부부께서는 경성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시겠다며 수중에 은자와 재산을 전부 나눠주셨거든요. 아직도 기억하길 당시 왕비마마께서 아주 흥분하셔서 마침내 여기를 떠날 수 있다고, 또 이제 돌아올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적성루 물건을 산산조각으로 다 때려 부수며 아주 통쾌하기가 그지없었죠. 그런데 떠난 지 1년 만에 왠지 다시 돌아오셔서 저희와 오래 있지 않으시고 적성루 물건을 챙
주 재상은 수술 후 이틀째가 되는 날에 드디어 눈에 감긴 붕대를 풀 수 있었다.사실 어렴풋이 빛을 느끼고 있어서 붕대가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원경주가 와서 주 재상이 붕대를 푸는 것을 도와주고 태상황과 소요공이 우선 원경주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태상황이 원경주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자, 원경주가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하지만 태상황의 요구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주진 말에 의하면 이 노인네가 고집을 부리면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도와준 뒤 주 재상의 붕대를 풀어줬다.“천천히 눈을 뜨세요. 서두르실 것 없습니다. 우선 실눈을 뜨고 빛에 익숙해지셔야 해요.” 원경주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주 재상이 천천히 눈을 뜨자, 빛이 눈을 자극해 아파와서 얼른 다시 감았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눈을 크게 뜰 수 있게 되었다.주 재상이 눈을 뜨자 앞에 두 얼굴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있었다. 주 재상이 감동 받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태상황이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듯 말했다. “과인 머리를 밀게 하는 건 탐탁지 않지만, 약간 짧게 자르는 거 정도는 괜찮지. 이렇게 너랑 보조를 맞추는 것도 괜찮지? 어쨌든 과인은 이제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지 않으니, 머리카락을 잘라도 효에 거스르지 않다네. 하하.”소요공도 머리를 긁적였다. “이러니까 아주 상쾌하네. 어쩐지 여기 남자들이 전부 머리를 짧게 잘랐더라니.”주 재상이 산소호흡기를 치우고 두 사람을 보고 웃었다. “이게 방금 큰조카에게 너희들이 부탁한 거야? 어쩐지 솨 솨솨 윙 윙윙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이게 머리 깎는 소리였군.”“너랑 같이하려고 그랬다네!” 소요공이 천진난만하게 말했다.원경주는 이 모습을 보며 천천히 물러 나왔다.원경주는 원 교수 사무실로 가서 주 재상 상태를 얘기한 뒤 물었다. “저 세 사람과 얘기는 다 끝내신 거예요? 이곳이 어떤 곳이고, 대체 동생 일은 무엇인지요?”원 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저들은